책에 관한 100가지 명언

1. 단 한 권의 책 밖에 읽은 적이 없는 인간을 경계하라.
- 디즈레일리(영국의 정치가 · 소설가) 

2.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 같다.
- 키케로(고대 로마의 문인 · 철학차 · 정치가 · 변론가)

3. 모름지기 남자는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
- 두보(중국 당나라 시대의 시인)

4.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통해진다.
-  ≪위략≫

5. 독서는 완성된 사람을 만들고, 담론은 재치 있는 사람을 만들고, 필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 베이컨(영국의 정치가)

6.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며, 그것을 자기 것이 되게 하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 존 로크(영국의 정치사상가)

7. 어떤 책은 맛만 볼 것이고, 어떤 책은 통째로 삼켜버릴 것이며, 또 어떤 책은 씹어서 소화시켜야 할 것이다.
- 베이컨

8. 남의 책을 읽는 데 시간을 보내라. 남이 고생한 것에 의해 쉽게 자기를 개선할 수 있다. - 소크라테스(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10. 처음 책을 읽을 때에는 한 사람의 친구와 알게 되고,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옛 친구를 만난다.
- 중국 속담

11. 가난한 사람은 책으로 인해 부자가 되고, 부자는 책으로 인해 존귀하게 된다.
- ≪고문진보≫

12. 가장 훌륭한 벗은 가장 좋은 책이다. 
-  체스터필드(영국의 정치가)

13. 누구에게나 정신적으로 하나의 기원(紀元)을 만들어 주는 책이 있다.
-  파브르(프랑스의 곤충학가 · 박물학자)

14. 책 속에는 과거의 모든 영혼이 가로누워 있다.
-  칼라일(영국의 비평가 · 역사가)

15. 친구를 선택하듯이 좋은 책을 선택하라
- w.딜런

16. 집은 책으로, 정원은 꽃으로 가득 채워라.
- 앤듀르 랑그

17. 생각하지 않고 읽는 것은 잘씹지 않고 먹는 것과 같다.
- 바이크

18.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
- 기케로 루보크

19.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 데카르트

20.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책은 당신으로 하여금 가장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 마크 트웨인

21. 책은 세상 안에 있는 하나의 보다 훌륭한 세상이다. 나는 긴 잠, 다시 말해서 죽을 때, 책을 베개 삼아 누울 것이다.
- A. 스미드, [꿈꾸는 마을]

22. 책 속에 미인이 있으니 얼굴과 몸이 다 같이 아름답다.
- 중국 속담

23. 책은 책 이상이다. 책은 생명이다. 지난 시절의 심장과 핵심이요, 인간이 왜 살고, 일하고, 죽었는가의 이유이며, 생애의 본질과 정수이다.
- A. 조월, [보스턴의 신전]

24. 우리는 모두 책이 불에 탄다는 것을 알지만, 책을 불로 죽일 수 없다는 더 큰 지식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죽어도 책은 결코 죽지 않는다. 아무도 어떤 힘도 기억을 제거할 수는 없다. 삶이라는 전쟁에서, 아시다시피 책은 무기이다.
- F.D 루스벨트, [미국 서적 상인 조합에 보낸 메세지]

25. 책은 그 저자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나오는 데는 한 가지 길밖에는 없지만 세상에서 나가는 길은 1만 가지나 되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 J. 스위프트, [통 이야기]

26. 책은 절대적으로 죽은 사물이 아니다. 그 곳에는 그들의 자손이 자기와 같이 활발한 영혼이 되기를 원하는 생명력이 있다. 그렇게 그들은 자손을 길러 줄, 지성의 가장 순수한 효험과 추출물을 약병에 담은 것 처럼 보관하고 있다.
- J. 밀턴, [재판관]

27. 책이란 잘 이용하면 가장 좋은 것이고, 악용하면 나쁜 것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다.
- 에머슨, [자연 연설 및 강의집]

28. 책과 친구는 수가 적고 좋아야 한다.
- 스페인 격언

29. 우선 제1급의 책을 읽으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읽을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 도로

30. 어리석은 사람은 이름난 작가의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찬미한다. 나는 오직 나를 위해서만 읽는다.
- 볼테르

31. 보기 드문 지식인을 만났을 때는 그가 무슨 책을 읽는가를 물어 보아야한다.
- 에머슨,[문학과 사회의 목적]

32. 인생은 매우 짧고 그 중에서도 조용한 시간은 얼마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시간을 가치없는 책을 읽는 데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 J.러스킨,[참깨와 백합]

33. 황금을 상자에 가득 채우는 것이 자식에게 경서 한 권을 가르치는 것만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주는 것이 그들에게 한 가지 제주를 가르치는 것만 같지 못하다.
- 반고

34. 책 속에 길이 있다.
- [속담]

35. 독서의 진정한 기쁨은 몇 번이고 그것을 되풀이하여 읽는 데 있다.
- D. H 로랜스

36. 독서는 충실한 인간을 만들고, 회의는 각오가 선 인간을 만들며, 저술은 정확한 인간을 만든다.
- 베이컨

37. 훌륭한 독서. 즉 마음을 바로 하고 잠된 책들을 읽는 것은 고상한 행동이다.
- H. D. 도로 [숲속의 생활]

38. 독서와 마음의 관계는 운동과 육체의 관계와 같다.
- R. 스릴 경

39. 나는 재산도 명예도 권력도 다 가졌으나,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독서를 통하여 얻었다. 독서처럼 값싸고 영속적인 쾌락은 없다.
- 몽테스키외

40. 읽은 책이 한 권이면 한 권의 이익이 있다.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면 하루의 이익이 있다.
- 과문철 

41. 양서는 향료를 써서 정중하게 보존된 위인이 쓴 피다.
- J.밀턴

42. 책치고 약간의 이익마저 얻지 못할 만큼 나쁜 책은 없다.
- S.플리니우스,[서한집]

43. 설령 당신이 가지고 있는 책의 전부를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쨌든 손에 들고 쓰담고 들여다보며 아무 데고 닥치는 대로 펴서 눈에 뜨인 문장부터 읽어보시오. 그 책을 책장에 꽂아 두고서 무엇이 씌어 있는가 이해를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그 책이 어디에 꽃혀 있나를 알아두고 할 수만 있다면 친구가 되도록 노력을 해보시오.
- 윈스턴 처칠

44. 독서할 때는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 해독하여야 한다
- [주차훈학육기]중에서

45. 아무리 어려운 글이라도 일 백 번 정도 되풀이하여 읽으면 그 참뜻을 스스로 깨우쳐 알게 된다.
- [주차훈학육기]중에서

46. 한 권의 읽기를 마치지는 않고서는 절대로 다른 책을 읽지 말라. 한 권을 다 읽었다 하더라도 그 뜻을 체득하지 못하였으면 또 다른 책을 읽지 말라.
- 북스톤

47. 무엇이든 하루에 다섯 시간 독서하라. 그러면 당신은 곧 박식하게 될 것이다.
- S. 존슨 보즈웰

48. 천천히 읽는 법을 배워라. 모든 다른 장점들이 적당한 곳에서 따라올 것이다.
- W.워커 [독서의 기술]

49. 자기의 전력을 다 사용하지 않으면 훌륭한 독서 행위라 할 수 없다. 만일 독서 후에 피로하지 않으면 그 독자는 상식이 없는 것이다.
- A. 베네트,[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

50. 단지 도착하기 위한 여행이라면 불쌍한 여행이며, 그 책이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가를 알기위한 독서라면 가련한 독서이다.
- A. 콜런, [리더 誌]에서

51. 책은 읽되 전부 삼켜버리지 말고, 무엇에 이용할 것인가를 새겨두어야 한다.
- H.잎센

52. 책을 읽는 것은 그에게서 배우고 싶다, 그 의 사상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지 나의 생각을 그에게서 찾아내기 위한 것은 아니다.
- 러스킨

53. 독서에 소비한 만큼의 시간을 생각하는 데 소비하라.
- 베네트

54. 독서에 빠지면 기르던 양이 없어져도 모른다.
- 장자

55. 만 권의 책을 읽으면 신의 경지에까지 통한다.
- 소식

56. 언제고 괴로운 환상을 위로 받고 싶은 때는 너의 책에게로 달려가라. 책은 언제나 변함없이 친절하게 너를 대한다.
- T. 풀러, [성지] 

57. 사람들은 책을 샀다는 것만으로 그 책이 자기 것이라고 착각한다.
- 쇼펜하워

58. 사귀는 벗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의 품격을 알 수 있다.
- 스마일즈

59. 학자 가운데 섞인 무식쟁이는 백마속에 섞인 까마귀.
- 힌두 격언

60. 나는 책을 싫어하는 왕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책을 좋아하는 가난뱅이가 되고 싶다.
- 어느 철학자의 독서예찬

61. 책이 없는 궁전에 사는 것보다, 책이 있는 마구간에 사는 것이 낫다.
- 영국 격언

62. 한 사람의 충실성과 가치는 독서를 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다. 또 그 이상으로 무엇을 읽는가가 중요하다.
- 메튜 아놀드

63.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그 말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있는 사람이다.
- S. 버틀러

64. 많이 읽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높은 존경은 문학에 바치는 더할 수 없는 찬양이다.
- 에머슨

65. 목적이 없는 독서는 산책이지 학습이 아니다
- B.리튼

66. 책을 수집하는 일은 모든 오락 중에서 가장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오락이다.
- A.S.W.로오른 백,[책 사냥꾼의 휴일]

67. 책 속에 과거의 모든 마음이 잠자고 있다. 오늘의 참다운 대학의 목적은 잠자고 있는 책을 일깨우는 데에 있다.
- 칼라일

68. 큰 도서관은 인류의 일기장과 같다.
- G.도슨(버밍햄 자유도서관 개관식 연설 중에서)

69. 무엇이거나 좋은 책을 사라. 사서 방에 쌓아두면 독서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외면적인 것이긴 하나 이것이 중요하다.
- 베네트

70. 장서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장한다.
- A,비절,[부수적 의션]

71. 욕심만으로 책을 잔득 쌓아 놓고 잘 구비된 서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머리 속은 아는 것 없이 텅 비어 있는 사람처럼 되지 말라. 많은 책을 가지고 싶어하면서도 결코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잠자는 동안 줄곧 자기 곁에 촛불을 켜두기를 원하는 어린아이와 같다.
- H. 피첨,[완전한 신사]

72. 돈이 가득 찬 지갑보다는 책이 가득 찬 서재를 가지는 것이 훨씬 좋아 보인다.
- J.릴리,[유퓨이즈]

73. 호화로운 주택의 깨끗한 책장 속에 책이 얼마 꽂혀 있지 않거든 그 집에 사는 가족들은 부족한 사람이라고 보아도 틀림없다. 더욱이 그것이 어디에나 있는 흔한 소설책뿐 일 때는 더욱 그렇다. - 칼 힐티

74. 책만큼 매력적인 가구는 없다.
- S.스미스 홀전드 부인,[회상록]

75. 책의 진짜 좋은 점은 정서의 경작지라는데 있다. 아니 오히려 정신의 수목과도 비슷하여 몇 년, 몇 세대씩 이어가며 해마다 새로운 잎사귀를 낳고, 그 잎 하나하나가 주문의 표시 같이 기적을 낳는 능력이 있다. 그것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 토마스칼라일

76. 책을 사느라고 돈을 들이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 오히려 훗날 만 배의 이익을 얻을 것이다.
-왕안석-

77. 사람이란 그 얼굴이나 용맹이나 조상이나 문벌을 가지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다만 독서한 학문인이라야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느니라.
-공자-

78. 독서는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
-명심보감-

79. 책을 읽는 데에 어찌 장소를 가릴소냐?
-퇴계 이황-

80. 독서는 정신적으로 충실한 사람을 만든다. 사색은 사려 깊은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논술은 확실한 사람을 만든다.
-벤저민 프랭클린-

81. 내가 세계를 알게 되니 그것은 책에 의해서였다.
-사르트르-

82. 책은 이를 펴 보지 않으면 나무조각이나 같다.
-영국 격언-

83.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난다.
-안중근-

84.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 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
-빌 게이츠-

85. 머리를 깨끗이 하는 데에 독서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건전한 오락 가운데 가장 권장해야 할 것은 자연과 벗하는 것과 독서하는 것 두 가지라 하겠다.
- 도쿠토미 로카 -

86. 잡서의 난독은 일시적으로는 다소의 이익을 가져다줄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시간과 정력의 낭비로 돌아가는 것이다.
- E. S. 마틴 -

87. 사대부는 3일을 책을 읽지 않으면 스스로 깨달은 어언(語言)이 무미하고, 거울에 비친 가지 얼굴을 바라보기가 또한 가증하다.
- 황산곡 -

88. 약으로써 병을 고치듯이 독서로써 마음을 다스린다.
- 시이져 -

89.  내가 인생을 알게 된 것은 사람과 접촉해서가 아니라 책과 접하였기 때문이다.
-A. 프랜스-

90. 사람은 음식물로 체력을 배양하고, 독서로 정신력을 배양한다.
- 쇼펜하우어 -

91. 독서는 약처방처럼 당장 효과가 나타나거나 행복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러나 한 권 한 권 읽어가는 동안에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이 됨에 틀림없다.
- 패디먼 -

92. 배 없이 해전에서 승리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책 없이 사상전에서 이길 수는 없다.
- 프랭클린 루즈벨트 -

93.  독서란 자기의 머리가 남의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다.
- 쇼펜하우어 -

94.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
- 베버 -

95. 기회를 기다리는 것은 바보짓이다. 독서의 시간이라는 것은 지금 이 시간이지 결코 이제부터가 아니다. 오늘 읽을 수 있는 책      을 내일로 넘기지 말라.
- H. 잭슨 -

96.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 신용호 -

97.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많은 경우에, 자신의 미래를 만든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 에머슨

98. 나는 책을 읽을 때 어려운 부분과 만났다고 해서 결코 지나치게 골똘히 생각하지 않는다. 한두 번 고쳐 생각하다가 그냥 버려둔다. 그렇지 않고 어려운 부분을 계속 고집하면 자기 자신과 시간을 모두 잃고 만다.
- 몽테뉴

99. 반드시 한 가지 책을 익히 읽어서 그 안의 참된 이치와 뜻을 모두 깨달아 모두 통달하고 의심이 없게 된 연후에야, 비로소 다른 책을 읽을 일이다. 여러 가지 책을 탐내어 이것저것을 얻으려고 분주히 섭렵해서는 안 된다.
- 이율곡

100. 독서는 천천히 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법칙이다. 이것은 모든 독서에 해당된다. 이것이야말로 독서의 기술이다.
- E. 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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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주랑 | 2005-09-21 03:58 | | 관련글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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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5-09-21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퍼가서 잘 활용할께요. ^^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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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를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나는 언제나 이처럼 우리 군부나 정보주나 극우.반공 .반통일적 전쟁주의자들이 몽매한 국민을 속여가며 그들의 정권 연장을 도모하고 민족의 화해를 거부하는 그들의 주장의 가면을 벗기기를 사명으로 여겼지. 대중에게 진실을 밝히고 깨우쳐주려고 했어요(646쪽)"

리영희를 처음 접한 것은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그의 저서에서 였습니다. 그 책에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무엇이 진실인지 들려주었습니다. 그 충격을 통해 그의 책을 몇 권 보았습니다. 『새들은 좌.우의 날개로 난다』까지 들려준 그의 이야기는 가히 '전환시대의 논리'를 제공해 주었으며, 내가, 우리가 가진 미국관(--觀)에 대해 전혀 낯선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그 깊이와 정세 분석,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낙동강 오리알 처럼,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든데라는 거짓말같다는 이야기뿐. 하지만 내가 그의 책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그가 말하는 논리가 사실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 시대에 두 사람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은 리영희를 아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리영희를 모르는 사람.

나는 ①리영희의 글쓰기가 무엇인가를 살핀 다음, 그 글쓰기에 비친 ②세계관을 담아보고, ③리영희라는 인간적인 존재④역사적인 물음, 더 나아가 ⑤우리가 지향해야 할 시대를 적어보겠습니다.

1. 리영희의 글쓰기
"취재기자는 세 가지 스타일이 있어. 발로 뛰는 기자, 남의 기사들을 모아서 쓰는 기자, 안건의연구를 통해서 접근하는 기자. 이 세가지에요. 나는 그 세번째의 연구.조사하는 방식이 주특기였기 때문에, 간사이면서 혼자 정보원을 만나는 그런 취재는 필요가 없었어요(315쪽)"

언제나 연구 조사하는 방식이 주특기이기에, 그는 무작정 찾아가서 '~꺼리'가 없느냐고 묻고 다니지 않습니다. 연구 조사를 통해 90% 이상의 문제에 대한 확신을 가진 다음, 나머지는 이에 대한 답변을 얻는 형식을 취합니다. 이런 지은이의 글쓰기는 삶을 관통하는 세계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일생 동안 '군부'나 '정보부'가 주는 정보만을 가지고 기사화했다면, 시대의 증인으로 우리곁에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정부에 의해 압박을 받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세상에 다가가야 하는가를 지은이의 직업정신에서 읽어내려갑니다. 그의 글쓰기는 『모략』에서, 손자의 전략을 인용한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勝兵先勝而後求戰 敗兵先戰而後求勝
이기는 兵은 먼저 승리를 구하고 싸움을 한다. 패하는 兵은 먼저 싸우고 나서 승리를 구하려 한다.

2. 리영희가 바라보는 세상(세계관)
"공자의 『논어』에 「정언」(正言)편이 있어. 제자가 공자에게 "정의의 요체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데 대해, 공자는 "사물의 이름(명칭 또는 명분)을 정확하게 쓰는 것이다"라고 답했어요. 다시 말하면, 검은 것은 희다고 할 것이 아니라 검다고 해야 하고, 악은 선이 아니라 악이라고 칭해야 하고, 사슴은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불러여 하고, 말은 사슴이 아니라 말이라고 칭해야 하고... 이처럼 모든 형태나 관계나 성격이나 형상의 본질을 정학하게 인식하고, 그 실체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인간 상호간의 생존에서 혼란을 예방할 수 있고. 또한 그 사고의 주체인 개인의 의식과 행위에 괴리가 생기지 않는 것이에요.(374쪽)"

"나는 한일관계에서 일본의 조선침략과 합방, 그리고 식민지 문제들에 대한 법적.정치적 죄과에 대해서는 응분의 준엄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민족적 입장을 취하지요. 이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겁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한일 두 나라의 문제를 과거의 역사적 사실만을 강조하면서 일본인 또는 일본 민족에 대해 일방적 비난이나 규탄을 일삼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아요. 19세기 말의 한민족이나 당시 우리 선조들이, 어느모로 보나 나라를 지키는 데 허물이 없었다면 모르지만, 실제로는 당시 우리 선조들의 책임도 컸어요. 이것은 누구나 부인하지 못하는 엄연한 진실이지요. 자기 민족의 허물은 비단 보자기로 덮어두고 상대방의 행위만을 극악하게 그려내는 것을 나는 반대해요.(585쪽)"


지은이는 공자의 말을 빌려서,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는 것"이 정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글쓰기나 세계관은 이 '정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물은 현실과 같습니다. 그는 현실 또한 객관적인 눈으로 옳은 것은 옳고, 그런 것은 그러다고 말할 때 긴실을 볼 수 있고,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노신을 스승으로 모실 정도로 그럴 감싸는 것도 '정의'에 먼저 다가갔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3. 내가 믿는 사랑이...
가장 추한 모습으로 다가 올 때에 너는 그 사랑을 두 손 열고 맞이할 수 있느냐?

혁명을하든가, 민중 운동을 하든가, 역사적 진보를 믿는다면서, 가진자보다 못 가진자, 조금 더 힘들여 사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건냅니다. 하지만 그는 때때로 사랑으로 화답하지 않고 시기, 질투, 배반 등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진정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가?

광주 교도소에서 박정희의 죽음을 알고, 그 기쁨을 같은 재소자에게 알린 댓가가, "22일 벌방형". 작은 광한만 곳에 가만히 누운 채 있어야 하는 곳, 빛 마저 들어오지 않고, 온통 새까많게 칠해진 먹방 같은 공간에 화장실이 나란이 누워 있는 곳. 그곳에서 낯 모를 사람에게 '빵'과 '우유'를 얻어먹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런가?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육체적 경험을 가장 낮은 장소에서 온몸을 겪습니다. 과연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어갈 수가 있을까? 지은이는 "난 머리가 혼란해졌어요"라고 인간적인 고뇌를 이야기 합니다. 그는 신(神)이 아니며, 또한 성인(聖人)도 아닌, 우리곁에 숨쉬는 이웃이였습니다. 이웃이기에 그의 인간적인 고뇌를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세상이란 엉뚱한 사람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는 반면, 같은 국민에게 밀고를 당하고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기도 하는 그런 것인지. 난 머리가 혼란해졌어요.(499쪽)”

세상이 어지러운 날, 미륵이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내려옵니다. 그리고 온 사람들에게 바르게, 착하게 살아라, 내 말을 듣고 극락을 누려라, 너희가 그토록 바라던 이, 내가 미륵이다.라고 했는데, 혼탁한 세상에서 돌아온 답은 '니가 미륵이면, 나도 미륵이고, 저 강아지도 미륵이다'라는 암상뿐이다. 미륵은 수 없이 이야기를 하고, 수 없이 같은 말을 되로 받는다. 하지만 끝끝내 사람을 저버리지 못하고, 그가 한 행동은...(소설 토정비결』 참조)

감옥에서 인간적인 고뇌를 할 때에, 나는 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떠올립니다. 수 많은 색과 국제 정세 분석의 능력과 대학교수라는 상당한 인텔리겐차이면서, 사람 앞에서 '머리가 혼란'스러워하는 인간 리영희. 그도 나와 같이 숨쉬는 사람이란걸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동질감보다 내가 평생을 따라도 모자랄 듯한 선생(先生)인 동시에 스승입니다.

4. 계속 되풀이 되는 역사?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남한의 청녀들이 돈덜이를 위해서 미국의 용병으로 파견되었을 때에, 한국정부와 극우 반공주의 언론들은 마치 전 세계 국가와 민족들이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을 지원하는 줄로 착각했어. 미국의 압력에 못이겨 군대를 파견해, 그 따위의 범죄적인 전쟁에 협력한 나라는 남한 이외에 필리핀, 타일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세 나라밖에 없어요. 한국에서 상시 5만 명의 전투부대를 보낸 것과 달리, 이들 나라에서 보낸 병력은 포병, 공병, 병참 등, 천 명 내지는 최고 3천 명 정도였어오. 그밖의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거절했어. 영국은 혈연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미국의 전쟁협력자가 아닐 수 없는 처지인데도, 마지못해 '유니온 잭'(영국 국기)을 앞세운 의장대 6명만을 파견했어. 600명도 6천 명도 아닌 단 6명이오! 사이공 공항에서 외국 귀빈을 맞이하는 의장대요. 수없임낳ㅇ느 국제법 위반과 정치적 관례와 상식을 뒤엎는 행위들이 많았어. 나는 베트남전쟁 기간 중에 오로지 미국 지배집단의 이 같은 범죄적 행위를 연구하고, 우리 한국의 극우 반공적 언론 통제의 쇠살을 뜷?진실의 편린이나마 전달하고자 무진장 애를 썼어요.(357쪽)"

우리 민족성을 평화를 상징하는, 남의 나라를 한번도 침범하지 않은 나라라고 더 이상 말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에 5만명이라는 젊은 사람을 보냈고, 그곳에서 '라이따이한'이라는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켰고, 나몰라라 합니다. 아무런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에 세계 3위의 강력한 군사력을 드높였습니다. 과연 우리나라가 주권국가로서의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가? 미국과 관계에서 형님 동생으로 지내거나, 한 배를 탄 민족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이 없으면 안되는 나라. 미국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나라. 과연 한 국가로서의 존엄성과 자부심을 가질 수가 있는가? 미군이 빠져나가면 그 국방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우리 누나가 동생이 미군에게 처참히 짓밟혀도 아무런 말도 못하고, 이 분노를 타국에 가서 그대로 행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마저 듭니다? 미군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해방, 한국 전쟁을 그치는 동안 꾸준히 준비하였다면, 적어도 국방비에 얽매혀 한 국가의 존엄성을 남의 나라에 그냥 던져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미국이 부르면 언제나, 어디든지 달려가는 총알바지 군인을 키우는 나라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악순환의 고리 끊기와 국제 관계 속에서의 자리매김을 언제할 것인가? 미군없는 한국을 준비하여 주체성과 내 나리에대한 자부심과 타나라에 대한 이해와 겸손을 지닌 국가로 거듭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나는 베트남전쟁 끝에 하나의 확고한 의견을 갖게 됩니다. 미국자본주의는 그 본성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잔인무도할 수밖에 없다. 약소민족에 대한 전쟁 없이는 그 제국주의적 경제.정치.군사.과학기술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확신이에요. 베트남전쟁이 그노골적인 본보기이지만, 이미 그때에는 라틴아메리카의 10여 개 약소국을 잇달아 군사적으로 침범.점령했고, 약소후진국들이 조금이라도 민주적 복지와 자립적 경제정의를 추구하려고 하면 그런 정권들은 미국이 뒷받침하는 반동적이며 미국에 예속된 군부로 하여금 쿠테타를 읽으켜서 전복시켰 왔어요.
그 대표적인 예가 쿠바와 카스트로 정권타도 공격이고, 니카라과에서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부패.타락한 미국 예속정권을 혁명으로 쓰려뜨리고 참신한 민중적 정치혁신을 하려던 산디니스타 정권을 그런 방식으로 타도했어요(1979).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깨끗하고, 공정하고,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서 사회주의정권을 세운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의 정권에 대해 미국은 역시 같은 음모적 수법으로 대통령을 사살하고 미국 예속 군부쿠테타를 조장하여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시킵니다(1973). 아르헨티나 군부쿠테타(1976), 볼리비아(1980), 콰테말라(1983), 아이티(1988), 파나마(1989), 콜롬비아(1989) 등 열거하면 끝이 없어. 이것이 민주주의.정의.자유를 내세우는 '미국이라는 나라'요, 나는 한국인의 미신인 미국(美國)이라는 국가의 지배적 본성의 추악함으로 깨우치는 노력을 나의 임무의 중요한 항목으로 삼았지. 오늘의 아프카니스탄, 그리고 이라크전쟁을 보시오. 이것이 나의 연구와 집필의 주요 동기였어. 이 모든 추악한 행위의 근본 동기는 미국 자본주의의 투자와 시장확보와 미국 기업의 무한정적인 경제력 장악을 위한 것이지. 미국 자본주의의 목적에 조금이라도 제동을 걸거나 자주적이고자 하는 인민과 정권을 미국 자본주의는 결단코 용납하지 않는다구.(361~362쪽)"


지은이는 수 없이 미국이라는 실체를 해부함으로써, 우리가 존경하거나 동지애를 가질 수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져줍니다. 과연 '극우.반공. 반통일적 전쟁주의자들'이 미국을 등에 업고 우상화할 때에 굳굳히 맞서 싸운 이가 리영희입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등을 통해 미국이라는 실체를 이야기하면서, 민족의 주체성을 제기합니다. 만약 리영희가 없었다면 우리가 가진 미국관은, CNN이 내보내는 영상만을 진실이라고 믿지 않았을까 합니다.

5. 시대를 읽는 힘.
우리는 내부적으로 보는 시선에서, 외부적으로 보는 시선으로 돌려야 합니다.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일본의 영구 집권만 생각하는어리석음, 박정희의 유혈 독재의 지속이나 높은 경제 성장이라는 단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지구촌이라는 울타리에서 벌어이지는 힘찬 움직임과 그 속에 우리가 나아갈 지향점과 희망을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광범위하고 선구적인 시점을 심어준 사람은 리영희입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보여준 "베트남 전쟁에 관한 미국정부의 극비문서(펜타곤 페이퍼)'를 통해 "세계적 변화가 머지 않아 한반도와 남한애 광명의 햇살을 비춰줄 것이라고 예상하고 기대했어. 이것이국내의 질식할 것만 같은 반죽음의 상태를 참을 수 있게 하는 활력소(424쪽)"였다고 회고합니다. 즉 국내에서 암울한 통치가 이어지고 있을 때, 그는 세계적 정세를 통해 우리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짐작합니다. 우리는 지구촌이라는 하나의 땅 위에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미국과 우리나라만 존재하는 마냥, 좁은 세계관만 존재합니다.

이제 인터넷을 통한 시.공간의 동시성이 열렸습니다. 마우스 클릭(click) 한번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을 볼 수가 있으며, 미국의 일방적인 언론에서 벗어나 이슬람을 대변하는 알자지라 방송도 볼 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는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상호 연관성에서 놓여 있으며, 같이 일을 쉽게 꾸밀 수가 있습니다. 몇 몇 지상파나 언론이 전해주는 정보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변화가 기계적인 변화에 인간이 대응하면서 깨닫는 것이라면, 온몸으로 부딪혀 세계적인 흐름을 읽어냔 사람은 리영희입니다. 스스로 열린 생각으로, 역사의 진보를 믿고, 인류애적 사랑을 추구한다면 커다란 파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한 세대 먼저 탐구하고, 노력한 사람 - 그는 역사적 중심에 서서 살아있는 기록이자, 그의말을 빌려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제공한 선구자입니다.

리영희의 글쓰기는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의 탐구는 "연구.조사"가 주특기입니다. 연구.조사를 통한 폭넓은 시야는 내가 보지 못하고나 못 본 것에 대한 쿠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 일으켜 주었습니다. 즉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세우지 않았다면, 리영희는 시대의 선구자로 남아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원칙론적 자세가 시대의 증언자이자 선구자로 우리곁에 두었습니다. 분명 우리시대는 두 분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리영희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 이렇게 높을 수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 자리는 높습니다.

덧붙임--
리영희의 대화는 그 이전 저서, 『역정』이라는 자서전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새들은 좌.우로 난다』등 몇 권의 저서를 읽지 않고 접근할 때에, 얼마나 대단한 인물일까라는 의문은 기대만큼의 선물을 주지 않을 듯 합니다. 즉 『대화』에는 인간적인 리영희가 있고, 그의 저서에는 사회적 리영희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부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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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강준만 편저 / 개마고원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시대의 師表, 리영희를 만나다."]

강준만의 책을 읽는 내내, 리영희의 『대화』가 머리에서 맴돈다. 리영희도 이러이러한 부분을 이야기 하든데, 리영희는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 하든데...?

리영희의 『대화』는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라면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의 길라잡이 리영희』는 철저히 제3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다. 여기에서 제3자가 지칭하는 것이 객관성이나 중립성의 관계가 아니다. 거리감을 말하는 것이다. 강준만은 머릿글에서 말했듯이, 이 책의 편저자이다. 즉 리영희의 모든 책들을 읽고,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고, 주요 부분은 다른 책들을 더하곤 하여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1차적으로는 리영희에 대한 비판적 검증은 그의 머리를 걷혔기에, 나는 맹목적으로 믿어야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문제는 내가 그의 책-리영희의 저서를 읽지 않았다면, 난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혹은 신기루를 만들지 모른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받은 느낌은 리영희의 글이 왜곡되었거나 과장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글 내용 자체와는 별개로 사회구조와의 연계 선상에서 책이 놓여질때, 그 책이 지는 장단점은 또 다른 문제이다. 나는 리영희를 리영희로 보지 못하고, 강준만의 리영희로 만나고 있는 중이다.그래서 리영희의 『대화』가 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강준만의 리영희는 주관적인 느낌보다 객관적인느낌, 사회적인 느낌을 드리운다. 즉 리영희라는 인물 자체를 시대상에 놓고, 그의 자리가 얼마만큼인지 하나씩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우리 사회에 리영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포함되어 있다. 이로써 나는 리영희를 사표(師表)로 삼는다. 하지만 이 책이 지니는 한계는 강준만이 너무 똑똑하다는 것이다. 즉 『전환시대의 논리』가 지금 가지는 의미와 책이 나올 당시, 30여년 전에 가지는 의미를 동일시하여, 내가 느낀 감정을 너희도 느끼지 않고 있느냐 묻는다. 물론 몇 몇 지인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지만, 내가 처음 접한(-10여년 전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받은 충격)때의 충격과 흥분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베트남 전쟁의실상, 『새들은 좌.우의 날개로 난다』를 일고 미국의 북한에 대한 심리적 탐구나 국가 보안법의 문제, 남북한 전쟁 능력에 대한 비교분석 등의 충격도 없다. 그리고 한 개인을 역사 속의 인물로 가두어 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도 든다. 평전이 아닌 책에 대한 탐구여서인지. 리영희의 삶 자체에 대해서도 조금 비켜 서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즉 사회적 인간인 리영희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지, 인간적인 동물로서 고뇌하거나 왜 역사 속에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굳굳하게 서 있으며 걷센 비바람을 맞는가에 대한 동정 내지 의문, 탐구는 미비하다..

인간적인 리영희를 알기 위해서는 조금 멀리 느껴지고, 그의 책을 먼저 읽기 위한 길라잡이로서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분석이 조금 부족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한 인간에 대한 탐구를 객관적으로 하여, 잊혀져 가는 인물이 아닌 우리시대의 사표로 다시 불러 들인 점에 대해서는 옳다고 느껴진다. 누군가 이런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는 강준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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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은 더 이상 울음없는 외침을 하지 않는다."]

...이제 그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서준식의 편지를 읽어가면서 하나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 그것은 형기를 7년 받은 이가 만기 출소를 하지 않고 계속 형을 더 살고 있는 것이다. 형기를 마쳤으면 감옥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는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편지를 읽어가면서 나는 이 의문을 풀지 못했다.

1970년대 집중적으로 미전향수 수용 교도서에서 집중적 혹은 파괴적 인권 탄압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구속된 이들이 만기 출소를 하게 되자, 정부에서는 두려움을 안고 사회안전법이라는 악법을 만들어, "미전향 공안사범은 전향서를 쓰지 않는 이상 절대로 살아서 감옥 바깥으로 나가도록 하지 않겠다"는 인권 테러를 저지른다.

사회안전법은 소위 반국가사법으로서 금고형 이상의 선고를 받은 일이 있는 자에 대하여 그 개개의 대상자의 미래의 재범 위험성의 현저도에 따라서 세 가지의 보안처분을(즉 보호관찰처분, 주거제한처분, 보안감호처분) 과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의 재범 위험성은 현저도를 과학적으로 예측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정권자는 불가피적으로 사상범의 내심을 탐색함으로써 '위험성'의 정도를 억측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런 내심 탐색이란 재범 위험성 판단기준으로는 참으로 애매하고 불안정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결정권자는 필연적으로 사상전향 여부로 사상범을 분류하는 저 일본제국주의의 발명품이요 잔재물인 사상전향제도에 의존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전향거부' ->'현저한 위험'. 이것은 확실히 결정권자에게는 '손쉬운' 판단 기준이다. 사상전향제도 없이는 재범의 위험도 판단은 완전히 자의의 혼돈에 빠져 버리는 것이며 사회안전법은 존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5 ~6쪽)

정부에서는 공정성과 형평성은 뒷전으로 하고, 사상적 근본 틀이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스러움에, 자유를 억압한다. 그들은 그들의 입맛에 맛게 자유를 주었다 죄였다 하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에서 사회안전법이라는 것이,

일제 통치하의 '사상전향제도'(1930년대 전반에 성립)->'사상범예방구금령'(1941년)이라는 순서를 대한민국은 '사상전향제도'(해방 후 청산되었다가 1956년경에 부활) ->'사회안전법'(1975년, 전쟁시 장기형을 받은 소위 좌익수들은 1970년대 초반부터 만기출소하기 시작함)이라는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6쪽)

즉, 정부 권력자들의 집단 무의식에는 '영구불변의 집권'이라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일제시대 때 독립군을 잡던 법을 고쳐,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서준식은 이러한 정부의 끈질긴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자유'를 얻기 위해 10여년을 넘게 싸움을 하여 마침내 얻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서준식의 사회안전법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 국회의원과의 면회를 통해 그의 처우 등에 대한 문제도 엿볼 수가 있다. 서준식의 『옥중서간집』이 개인에 대한 사랑과 연민 등의 감정이라면 『나의 주장』은 권력에 맞서 싸운 개인의 기록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내심은 법적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나의 주장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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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내가 이중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두 가지 이미지다. 하나는 우표를 통해 본 '흰소'처럼 굵은 선과 일본인 아내를 두었다는 것이다. 우표를 통해 처음 접한 굵은 선은 강인한 민족혼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흰소를 보고 있노라면 나와 대면케 한다는 생각을 가져보곤 했다. 그리고 일본인 아내에 대해서는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 일본인 아내일까라는……? 아주 얇게 포장된 이미지로 이중섭의 안다는 건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포장된 이미지로 난 이중섭을 생각하곤 했다. 즉 선입관에서 쉬이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릴 수 없는 사랑..
이중섭의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먼 길 고이 보낸 님을 기다리는 간절히 기다리는 어느 여인의 모습이 겹쳐진다. 여인은 우리님이 밤길에 헛딛지 않았을까? 새벽이슬을 맞지는 않을까? 배라고 굶는 것은 아닐까. 있는 걱정 없는 걱정을 토해낸다. 이에 대한 구구절절한-애끓는 심정이 이중섭의 편지라 말하면 틀리지는 않으리라.

이중섭은 그의 부인에게, 항상 "나의 귀엽고 소중한", "나의 최고 최대 최미(最美)의 기쁨 그리고 한없이 상냥한 최애의 사람, 오직 하나인 현처 남덕군, 잘 있었소? 나는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꽉 차있소.(117쪽)"라는 표현이다. 그는 편지를 쓸 때 마다 아름다운 문구를 그의 부인에게 선사한다. 며칠이라도 편지가 오지 않으면 몸은 안절부절이다. 그의 가족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열정적인지 숨길이 들리는 듯 하다.

나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일은 당신들 곁에서 일사분란하게 제작하는 그 일뿐이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소. 당신들 곁이라면 하루 종일 노동하고 밤에 한 두 시간만 제작할 수 있어도 충분하오(72쪽

빨리 빨리 아고리의 두 팔에 안겨서 상냥하고 긴 입맞춤을 해주어요. 언제나(지금도) 상냥한 당신 이로 내 가슴은 가득차 있소. 하루빨리 기운을 차려 내가 좋아하고 발가락군을 마음껏 어루만지도록 해주시오. 아! 나는 당신을 아침 가득히, 태양 가득히, 신록 가득히, 작품 가득히, 사랑하고 사랑하고 열애해서 마지않소. 나의 끝없이 귀여운 사람, 내 머리는 당신을 향한 사랑의 말로 가득차 있소. 다정하고 다정하게 받아 주시오. 내 최애의 어여쁘고 소중한 정다운 사람, 나의 둘도 없이 훌륭한 남덕군.(78쪽)

이중섭의 편지는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곧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밀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지금 자기가 처한 현실을 뒤집어 놓고 있다. 즉 그는 한국에 홀로 있으며 지독한 외로움에 몸부리치며 어떻게든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가려고 한다. 지루한 길찾기는 안개 속을 헤메이는 듯 하며, 뜻하는 대로 풀리지는 않는다. 외로우면서 지루하지만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한결 같다. 짙은 외로움으로 인해 자기 방에 갇히는 것이 아닌 새로운 집을 지어, "우리 식구, 행복하게 살자"는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다. 어쩌면 그의 타고난 기질일 수도 있으며, 짙은 외로움을 감추기 위한 위장일 수도 있다. 스스로 말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것이다.

억척으로 견디어 하루바삐 감기 따위는 쫓아버리고 건강하다는 반가운 소식 길게 써보내주시오. 이렇게 소식이 뜸해지면 맥이 풀리오. 아고리군은 그저 편하게 지내면서 제작(制作)을 하는 건 아니오.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옮기면서 안간힘을 다해 제작을 계속하고 있소.(97쪽)

이중섭은 아내에 대한 편지에, 지극한 사랑으로 담아 보낸다. 그러면서도 조국에 대한 의지도 있지 않고 있다.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세계 속에 올바르게,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오. 나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畵工)으로 자처(自處)하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조국을 떠나는 것은……. 더욱이 조국의 여러분이 즐기고 기뻐해 줄 훌륭한 작품을 제작하여 다른 나라의 어떠한 화공에게도 뒤지지 않는 올바르고 아름다운, 참으로 새로운 표현을 하기 위하여 참고하지 않으면 안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소. 세계의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최악의 조건하에서 생활해 온 표현, 올바른 방향의 외침을 보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95쪽)

이중섭은 아내에 대한 사랑 못지않게 조국에 대한 믿음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편지는 떨어진 아내에 대한 부침이기에, 아내에 대한 궁금함으로 가득차 있다. 한 인간이 얼마나 고독한가를 편지를 읽으면서 절절히 느낀다.

무엇인가에 취해 있으면, 외로움마저 비켜간다. 하지만 어정쩡하게 취하면 외로움은 죽어라 달라붙고, 사랑은 한없는 그리움의 덩어리로 끌어내린다. 이중섭은 그림에 대한 강한 열정이 있었는가는 둘째이고, 외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는 건 이 책을 읽으므로써 나에게 읽혀진다. 더욱이 그의 죽음이 이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의미를 나에게 새겨준다. 만년에 불행한 삶을 살다간 그이지만, 그가 남긴 편지는 이러한 불행을 끊는 사랑의 메아리가 될 것이다.

불행했지만 행복했던 사람
다시 처음으로, 내가 처음 가졌던 의문을 이 책을 통해 푼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궁금증이 더할 뿐이다. 그의 그림은 내가 보기엔 충분히 작품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높이 평가를 할까? 살아 있을 때에는 왜들 그를 기억하지 않았을까? 아내는 그의 죽음을 알았을까? 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았을까? 혹시 일본으로 건너가서도 그림을 그릴 수가 있었을까? 등등 의문이 남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고지순했다는 것과 민족에 대한 남다른 생각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를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차츰 그를 만나고 있는 중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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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7-06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희귀본이네요
근데 이중섭은 살아 있을 때도 인정을 받았대던데요. 단지 우리 사회가 예술가를 먹여살릴 여유가 없었던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