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師表, 리영희를 만나다."]
강준만의 책을 읽는 내내, 리영희의 『대화』가 머리에서 맴돈다. 리영희도 이러이러한 부분을 이야기 하든데, 리영희는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 하든데...?
리영희의 『대화』는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라면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의 길라잡이 리영희』는 철저히 제3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다. 여기에서 제3자가 지칭하는 것이 객관성이나 중립성의 관계가 아니다. 거리감을 말하는 것이다. 강준만은 머릿글에서 말했듯이, 이 책의 편저자이다. 즉 리영희의 모든 책들을 읽고,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고, 주요 부분은 다른 책들을 더하곤 하여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1차적으로는 리영희에 대한 비판적 검증은 그의 머리를 걷혔기에, 나는 맹목적으로 믿어야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문제는 내가 그의 책-리영희의 저서를 읽지 않았다면, 난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혹은 신기루를 만들지 모른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받은 느낌은 리영희의 글이 왜곡되었거나 과장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글 내용 자체와는 별개로 사회구조와의 연계 선상에서 책이 놓여질때, 그 책이 지는 장단점은 또 다른 문제이다. 나는 리영희를 리영희로 보지 못하고, 강준만의 리영희로 만나고 있는 중이다.그래서 리영희의 『대화』가 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강준만의 리영희는 주관적인 느낌보다 객관적인느낌, 사회적인 느낌을 드리운다. 즉 리영희라는 인물 자체를 시대상에 놓고, 그의 자리가 얼마만큼인지 하나씩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우리 사회에 리영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포함되어 있다. 이로써 나는 리영희를 사표(師表)로 삼는다. 하지만 이 책이 지니는 한계는 강준만이 너무 똑똑하다는 것이다. 즉 『전환시대의 논리』가 지금 가지는 의미와 책이 나올 당시, 30여년 전에 가지는 의미를 동일시하여, 내가 느낀 감정을 너희도 느끼지 않고 있느냐 묻는다. 물론 몇 몇 지인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지만, 내가 처음 접한(-10여년 전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받은 충격)때의 충격과 흥분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베트남 전쟁의실상, 『새들은 좌.우의 날개로 난다』를 일고 미국의 북한에 대한 심리적 탐구나 국가 보안법의 문제, 남북한 전쟁 능력에 대한 비교분석 등의 충격도 없다. 그리고 한 개인을 역사 속의 인물로 가두어 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도 든다. 평전이 아닌 책에 대한 탐구여서인지. 리영희의 삶 자체에 대해서도 조금 비켜 서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즉 사회적 인간인 리영희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지, 인간적인 동물로서 고뇌하거나 왜 역사 속에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굳굳하게 서 있으며 걷센 비바람을 맞는가에 대한 동정 내지 의문, 탐구는 미비하다..
인간적인 리영희를 알기 위해서는 조금 멀리 느껴지고, 그의 책을 먼저 읽기 위한 길라잡이로서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분석이 조금 부족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한 인간에 대한 탐구를 객관적으로 하여, 잊혀져 가는 인물이 아닌 우리시대의 사표로 다시 불러 들인 점에 대해서는 옳다고 느껴진다. 누군가 이런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는 강준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