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내가 이중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두 가지 이미지다. 하나는 우표를 통해 본 '흰소'처럼 굵은 선과 일본인 아내를 두었다는 것이다. 우표를 통해 처음 접한 굵은 선은 강인한 민족혼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흰소를 보고 있노라면 나와 대면케 한다는 생각을 가져보곤 했다. 그리고 일본인 아내에 대해서는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 일본인 아내일까라는……? 아주 얇게 포장된 이미지로 이중섭의 안다는 건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포장된 이미지로 난 이중섭을 생각하곤 했다. 즉 선입관에서 쉬이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릴 수 없는 사랑..
이중섭의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먼 길 고이 보낸 님을 기다리는 간절히 기다리는 어느 여인의 모습이 겹쳐진다. 여인은 우리님이 밤길에 헛딛지 않았을까? 새벽이슬을 맞지는 않을까? 배라고 굶는 것은 아닐까. 있는 걱정 없는 걱정을 토해낸다. 이에 대한 구구절절한-애끓는 심정이 이중섭의 편지라 말하면 틀리지는 않으리라.

이중섭은 그의 부인에게, 항상 "나의 귀엽고 소중한", "나의 최고 최대 최미(最美)의 기쁨 그리고 한없이 상냥한 최애의 사람, 오직 하나인 현처 남덕군, 잘 있었소? 나는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꽉 차있소.(117쪽)"라는 표현이다. 그는 편지를 쓸 때 마다 아름다운 문구를 그의 부인에게 선사한다. 며칠이라도 편지가 오지 않으면 몸은 안절부절이다. 그의 가족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열정적인지 숨길이 들리는 듯 하다.

나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일은 당신들 곁에서 일사분란하게 제작하는 그 일뿐이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소. 당신들 곁이라면 하루 종일 노동하고 밤에 한 두 시간만 제작할 수 있어도 충분하오(72쪽

빨리 빨리 아고리의 두 팔에 안겨서 상냥하고 긴 입맞춤을 해주어요. 언제나(지금도) 상냥한 당신 이로 내 가슴은 가득차 있소. 하루빨리 기운을 차려 내가 좋아하고 발가락군을 마음껏 어루만지도록 해주시오. 아! 나는 당신을 아침 가득히, 태양 가득히, 신록 가득히, 작품 가득히, 사랑하고 사랑하고 열애해서 마지않소. 나의 끝없이 귀여운 사람, 내 머리는 당신을 향한 사랑의 말로 가득차 있소. 다정하고 다정하게 받아 주시오. 내 최애의 어여쁘고 소중한 정다운 사람, 나의 둘도 없이 훌륭한 남덕군.(78쪽)

이중섭의 편지는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곧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밀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지금 자기가 처한 현실을 뒤집어 놓고 있다. 즉 그는 한국에 홀로 있으며 지독한 외로움에 몸부리치며 어떻게든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가려고 한다. 지루한 길찾기는 안개 속을 헤메이는 듯 하며, 뜻하는 대로 풀리지는 않는다. 외로우면서 지루하지만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한결 같다. 짙은 외로움으로 인해 자기 방에 갇히는 것이 아닌 새로운 집을 지어, "우리 식구, 행복하게 살자"는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다. 어쩌면 그의 타고난 기질일 수도 있으며, 짙은 외로움을 감추기 위한 위장일 수도 있다. 스스로 말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것이다.

억척으로 견디어 하루바삐 감기 따위는 쫓아버리고 건강하다는 반가운 소식 길게 써보내주시오. 이렇게 소식이 뜸해지면 맥이 풀리오. 아고리군은 그저 편하게 지내면서 제작(制作)을 하는 건 아니오.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옮기면서 안간힘을 다해 제작을 계속하고 있소.(97쪽)

이중섭은 아내에 대한 편지에, 지극한 사랑으로 담아 보낸다. 그러면서도 조국에 대한 의지도 있지 않고 있다.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세계 속에 올바르게,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오. 나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畵工)으로 자처(自處)하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조국을 떠나는 것은……. 더욱이 조국의 여러분이 즐기고 기뻐해 줄 훌륭한 작품을 제작하여 다른 나라의 어떠한 화공에게도 뒤지지 않는 올바르고 아름다운, 참으로 새로운 표현을 하기 위하여 참고하지 않으면 안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소. 세계의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최악의 조건하에서 생활해 온 표현, 올바른 방향의 외침을 보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95쪽)

이중섭은 아내에 대한 사랑 못지않게 조국에 대한 믿음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편지는 떨어진 아내에 대한 부침이기에, 아내에 대한 궁금함으로 가득차 있다. 한 인간이 얼마나 고독한가를 편지를 읽으면서 절절히 느낀다.

무엇인가에 취해 있으면, 외로움마저 비켜간다. 하지만 어정쩡하게 취하면 외로움은 죽어라 달라붙고, 사랑은 한없는 그리움의 덩어리로 끌어내린다. 이중섭은 그림에 대한 강한 열정이 있었는가는 둘째이고, 외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는 건 이 책을 읽으므로써 나에게 읽혀진다. 더욱이 그의 죽음이 이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의미를 나에게 새겨준다. 만년에 불행한 삶을 살다간 그이지만, 그가 남긴 편지는 이러한 불행을 끊는 사랑의 메아리가 될 것이다.

불행했지만 행복했던 사람
다시 처음으로, 내가 처음 가졌던 의문을 이 책을 통해 푼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궁금증이 더할 뿐이다. 그의 그림은 내가 보기엔 충분히 작품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높이 평가를 할까? 살아 있을 때에는 왜들 그를 기억하지 않았을까? 아내는 그의 죽음을 알았을까? 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았을까? 혹시 일본으로 건너가서도 그림을 그릴 수가 있었을까? 등등 의문이 남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고지순했다는 것과 민족에 대한 남다른 생각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를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차츰 그를 만나고 있는 중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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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7-06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희귀본이네요
근데 이중섭은 살아 있을 때도 인정을 받았대던데요. 단지 우리 사회가 예술가를 먹여살릴 여유가 없었던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