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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기른 원숭이
데즈먼드 모리스 / 까치 / 1996년 9월
평점 :
품절
지은이와 첫 만남은 『털 없는 원숭이』이에서였다. 그의 유쾌하고 발랄한 이야기는 재치가 넘치고 재미가 있었다. 나는 새로운 시선이지만 그를 신뢰하고 『접촉』과 『인간 동물원』이라는 책을 보았다. 그는 동물학자이면서 사람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의 시선은 동물의 선상에 사람을 놓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가 말하듯이 호모 사피엔스라고 스스로를 높여서 다른 종과는 구별하게 했다. 지은이의 눈 맞춤은 동물학이지만 그 끝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고 몇 권의 책에서 느꼈다. 그리고 다시 『머리 기른 원숭이』를 잡았다. 그는 절대 인간을 특이한 종으로 보지 않고, 원숭이 선에 놓고 있다. 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전체적이 감상을 적는 것 보다, 부분 부분을 할애하여 글을 적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즉 한 장 마다 쟁점을 내어놓고 나와 그의 시선이 같으면 이야기를 이끌고 가고, 시선이 다르면 내 부족한 지식이지만 다른 선을 그어 보려 한다. 그의 글은 동물에서 나타나는 몸짓에서 잃어버린 고리-인간의 조상을 찾는 가설에 새로움을 하나 더 한다. 그것은 '초원의 사냥꾼 이론'이 아닌 '수생이론'(75쪽)을 들려준다. 도시가 인간에게 가하는 정서적 불안과 사랑의 행위, 사람의 전생(全生)과 놀이로서의 인간 등에 대해 말한다.
1장 신체의 언어
언어가 발달하기 이전에 아마도 몸짓이 먼저 행하여 졌을 것이다. 몸짓은 언어가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는 소통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하여, 같은 몸짓이 다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지은이는 우리 몸이 지니고 있는 원초적 몸짓의 행위에서, 문화적 흐름에 따라 달라진 몸짓을 재미나게 풀어낸다. 하지만 우리 몸이 가지고 있는 전통의 "폭로 신호들 (tell-tale signs, 52쪽)"들은 숨길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그리고 만국 공통의 의미를 내포한다. 거짓말이나 긴장감은 여느 사람이 같게 나타난다고 했다.
거짓말이나 긴장감에서 나타나는 등의 몸짓이 의식화된 위장이 아닌가를 문제가 남게 된다. 하지만 지은이는 포커에서 벌어지는 보기를 통해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며, 사람이 택한 방법-'무표정'이라 말한다. 즉 아무런 표정 없음이 거짓말이나 긴장감에서 나타나는 몸짓을 숨기는 방법이라 한다. 두 가지 방법, "가짜 광대"나 "엉뚱한 신호 보내기(55쪽)"라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탈로 나거나 힘들다고 말한다.
또 하나 공통점은, '좋은 것을 보면 눈이 커진다'는 점이다. 좋은 것은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대상물로 전이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이성을 눈을 보면 알 수가 있다(?)
2장 사냥하는 원숭이
"지구상의 모든 운동 중에서 추적이나 포살, 또는 두 가지 요소 모두의 상징성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96쪽)
이는 심리적인 문제를 버리고 동물적 요소로 규정짓는 이분법 혹은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가 있다. 모든 것은 상징성과 연결고리가 맺어지기 때문에, 이미 주어진 답을 짝 맞추기 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열렬히 계층상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모조품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사람에게는 지위를 나타내는 모든 상징이 진짜여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페라리(Ferrari)나 모터-요트를 살 돈이 없으면 돈을 빌려서라도 자신들의 우위를 과시하고, 이런 속임수가 제대로 효력을 발휘해서 언젠가는 자신이 꿈꾸던 지위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상상에 빠진다."(144쪽)
즉 시각적인 작용에 의한 자신의 지위 행사가, 힘에 의해서라기보다-자본주의 시대에는 돈에서 이루어진다. 스스로가 상위 계층이라고 나타내기 위해, 돈으로써 스스로를 드러내는 표현방법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는 동물학적 접근과 동시에 심리학적으로 바라 볼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어를 통해 '나는 너와 다르지 않다' 드러내듯이, 그들은 옷이란 걸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옷은 외적 표현물이다. 이는 화장이나 칼 등과 같이 무기의 동일 선상에 놓을 수가 있다. 싸움을 할 때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칼을 든 사람이 아니라 맨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다. 이는 그의 몸 전체가 무기이기 때문이다. 즉 칼을 휘두르는 사람은, 칼이 자기의 무기를 대신하게 된다. 칼이 없어지게 되면 그를 보호하거나 위장하는 무기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에 나약한 존재로 남게 되다. 화장 또한 내면의 아름다움이나 힘을 숨기기 위한 치환작용이다. 즉 현대 사회는 고도로 전략 화된 머리와 상업주의 어우러져 내면의 허약함을 철저하게 위장하고, 겉모습으로 스스로를 들어내곤 한다. 여기에는 동물적 서열이 존재하지만 인간적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를 분할하는 것이 언어이며, 이를 통합하는 것이 신체언어이다"(65쪽)
언어 또한 사람과의 이야기 통로가 아닌, 서로를 나누는 도구로 전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조금 안다는 이들은 '너와 다르다'는 생각을 넌지시 주입하기 위해 낯선 언어를 선택한다. 즉 '너와는 다른 언어를 쓰기 때문에 나는 너보다 위에 선다'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문화적 주류의 흐름이 작용하겠지만, 지금 현상화는 문법을 무시한 새로운 언어에 집착을 보인다. 문법이 중요하지 않고 몇 개의 낯선 언어가 들어 있는가에 따라 자기의 존재 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 낯선 존재의 언어는 문화적 다양성을 비어 버리고 우열성을 갖다 주었으며, 힘을 실어 주었다. 즉 모국어 대신에 타국어를 써야 높게 보이는데, 타국어의 기준을 문명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언어나 동남아시아의 언어 대신에 서구의 언어 특히 미. 영어는 나 보다 낫다는 문화 서열주의가 존재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문화에 대한 정체성과 자부심을 잃어버리고, 문화 서열주의로 만들어 다시 자기 자리를 높이려 한다. 하지만 그는 항상 2등 밖에 될 수가 없다. 스스로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없고, 다른 무엇인가를 끌고 와야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기에. 진정 그는 스스로의 1등이 되지 못하면서, 1등인 체 하며 살아간다. 이런 문화가 사회 전반에 퍼질 경우, 낯선 언어 속에 자아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모조품'과 '언어'는 동일한 도구로서 인간의 위장으로 쓰여지고 있다.
지은이는 이런 계층의 억압을 벗어나기 위해 분노를 폭발시켜 다른 이를 상하게 하거나 대리만족을 통해 해결한다고 본다. 그의 논리로 나아가면, 사색이나 지식의 사유 등은 허약한 자가 취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는 이가 취한 행동이다. 더구나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은 약한 자의 변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인간의 존엄성 대신에 동물적 인간만이 존재하며, 자본을 통한 치장은 힘에 의한 것과 동일하게 놓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본주의는 다름 아닌 동물들의 전이된 싸움터이며 적자생존의 서열이 존재하는 곳이다.
3.인간 동물원
동물적 인간에 의한, 집단의 거대화에 따른 문제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거대하지만 자율성이 잘 지켜지는 평등한 집단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지은이의 사유는 다양한 접근을 막아버리고, 동물에서 인간이라는 하나의 잣대만 존재하고 있다.(그는 "도심을 파괴적 본능이 아닌 창조성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자율적이고 유쾌"(147쪽)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이는 인간적 접근이 아니 동물학적 접근 방법이다)
4. 사랑의 생물학
"자상한 수컷이 자기 가족들을 위해서 먹이를 찾으러 나갔다가 우연히 매력적인 다른 암컷을 보았을 경우는 어떻게 될까? 이 수컷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정자를 다른 암컷에게 조금 나누어주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184쪽)
가족을 위해, 다른 암컷과 잠자리를 같이 해도 된다? 지은이의 동물학적 관점은 '우열 유전자의 전승'이다. 즉 다른 이성과 성행위를 가질 경우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고도의 지식이라는 전략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는 현대 사회에 변이 되거나 직접적으로 드러나곤 한다고 말한다.
"남성은 다른 여성과의 성행위를 공상할 수 있는 상상력"(189쪽)을 허용하는 것을 통해 "성인쇼나 영화 소설" 혹은 "포르노그래피"를 통한 대리만족으로 얻는다. 또한 "매춘부와 성관계"나 냉혹한 유혹이라 부르는 "강간" 등을 통해 성행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가 보는 시선이 동물학적 관점으로 통해 남성의 성적 편력을 합리화한다는 비판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두번째로는 강간이 "병리적 지배행위"(191쪽)로 보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가 있다. 그는 그 근거로 강간 뒤 살인을 보기로 들었는데, 강관 뒤 살인은 비례관계가 아니다. 또한 강간을 충동적 행위로도 접근할 수가 있는 점을 빼버리고 있다. 세번째로 아이 아빠와 아가씨가 눈맞을 경우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점이다. 혹시 아가씨의 우성 유전자를 얻기 위한 동물적 행위인가? 그렇다면 우성 유전자는 무엇으로 평가할 수가 있는가? 마지막으로 "젊은 군인"들이 통제에서 벗어나 저지르는 전쟁의 광기를 "가학적 강간범들과 같은 정신병자가 아니다(191쪽)"는 표현은 어색하다. 어찌 집단적 강간을 하고, 집에 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 것이 '병'이 아닌가?
동물학적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가운데 핵심은 힘에 의한 지배를 통한 우성 유전자의 전승에 대한 이해이다. 그의 모든 논의는 '강한 자의 유전자가 살아남는다'는 식이 이야기를 통해, 사람의 모든 행위를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동물과 사람이 완전히 같은가? 동물과 사람이 나눠지면서 사람으로서 지니는 고유한 특성은 없는가에 대한 기준점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5. 불멸의 유전자
이 장에서는 인간이 태어나서 평생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엄마의 뱃속에서 나옴과 함께, 어린아이의 눈, 20, 30, 40대를 넘어서 황혼에 이르기 까지……. 장수하는 비결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 마음을 먹는다. 이 마음가짐은 엄마가 아기를 가진 상태에서 시작을 한다.
"의학적 관점이 아닌 동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진화과정이 이런 중요한 문제를 간과했다는 것은 엄청난 실수인 것처럼 생각된다. 장시간에 걸쳐서 진행되는 출산과정 동안 임산부는 거의 무방비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선사시대의 여성들은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무엇인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고, 원래는 인간도 다른 동물들처럼 쉽게 출산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 좀 더 설득력을 가진다."(214쪽)
성행위와 출산은 자연계에서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한다. 네 발 달린 아기 동물들이 눈뜨기에 앞서 먼저 서는 것은 위대함이나 신기함이 아닌 생존본능이다. 다른 동물들에게 생존의 위협을 느끼기에, 그들은 언제든지 뛰쳐나갈 준비를 취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에게도 같이 적용되지 않을까. 알몸으로 자연계에 서면, 결코 힘센 천하장사가 되지 못한다. 이는 출산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인류학자들이 촬영한 기록영화를 보면 부족의 산모들은 커다란 나뭇잎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별반 소동도 피우지 않고 조용히 아기를 낳는다."(214쪽)
이는 몇 해 전, TV에서 보여준 것과 동일하다. 제주도의 할머니들은, 예전에 의자에 앉아 아기를 낳았다고 들려주었다. 즉 우리나라에서도 의자에 앉아 아이를 순탄하게 낳곤 한 것이 증명된 것이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산모는 꼭 넘고 가야 할 산으로 '산고'를 치르고 있다.
지은이는 나무의자 대신에 수중분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중분만은 새로운 흐름이라고 말한다. 수중분만을 통해 아이가 물에 빠질 위험성이 없다. 아이는 탯줄로 숨을 쉬며 자연스레 물위로 떠오른다. 또한 공기의 압력을 차단하기에, 외부의 압력에 따른 고통으로 벗어날 수가 있다. 물속은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자궁 속의 환경'(215쪽)에 부담도 없다고 한다. 더 나아가 앞서 말한 '수생이론'으로 볼 때에,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산모는 불안할수록 출산 시간이 더 길어지고, 산모가 평안할수록 출산시간은 짧아진다."(216쪽)
엄마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편안한 마음과 자세이다. 그리고 지은이는 아이를 순산하고 나서, 엄마와 함께 머물기를 강조한다. 아이는 먼 거리에 있는 물체는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하지만 30cm이내에는 분간할 수 있다며, 이는 엄마의 얼굴까지임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어린아이가 엄마 품이 아닌, 병원의 한곳에 놓이는 것은 분명 엄마와 아이의 입장이 아닌 병원의 입장임은 분명하다.
"다섯 살이 되면 2,000단어를 알고 10년간의 학교교육을 받을 준비를 갖춘다. 아이의 뇌 무게는 성인 것의 90퍼센트에 육박하고 젊은 성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들로 채워져야 할 때이다. 5`15세까지의 긴 교육기는 스폰지나 압지에 견줄 만한 인생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단계에는 놀라운 속도로 정보로 빨아들인다. 진화과정은 이런 시기를 만들면서 성년이 도는 것을 늦추었다. 다른 어떤 종보다도 인간의 유아기는 훨씬 길다."(231쪽)
TV에서 3살도 되지 않았는데, 모르는 게 없다면서 부러운 시샘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아이의 타고난 천재성이라면 잘 키워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평범한 아이인데, 맹목적인 주입식이라면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는 생존본능으로 인하여 주변의 사물을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흡수한다고 했다. 여기에 동물적 존재로서가 아닌 지식의 몇 알이 자리매김을 한다면 그는 정서적 불안과 삶의 균형 감각이 흔들릴 수가 있다.(과학적 검증이 아닌, 어느 책에서 읽은 부분은 재구성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의 눈높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항상 곁에서 지켜보며, 양손을 마주잡고 첫발을 내디딜 때의 조심스러움으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6. 생존을 넘어서
지은이는 인류발전을 놀이와 호기심으로 보고 있다. 침팬지와 어린아이도 같은 그림을 그리지만, 침팬지는 주기적 반복과 패러다임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계속된 물음과 호기심으로 더 낳은 문명을 만들었다. 즉 어린아이의 놀이와 호기심은 인류발전의 틀을 새울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이다.
프롤로그
이 책은 앞서의 책의 종합판이라 할 수가 있다. 『털 없는 원숭이』는 1장에서 다루어지고, 『인간 동물원』은 2장과 3장에서 논의되고 있다. 『접촉』은 4,5장에서 이어진다. 즉 세 권의 책을 한 권에 담아 놓았다고 볼 수가 있다. 세 권의 책을 읽은 장점과 수생이론을 통한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찾는 시선은 새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지만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무시하고, 동물의 선상에서 사람의 행위를 놓고 보니 '힘의 논리'가 합리화되는 헤게모니가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헤게모니를 읽어낸다면 색다른 책읽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