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의 사진엽서를 통해 본 시선의 권력과 조선의 이미지
권혁희 지음 / 민음사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1.
일 백 년 앞서의 사진, 그 사진엽서는 과연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너와 나가 동등한 입장이 아닌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자리, 폭발적 제국주의의 힘이 꿈틀거리는 거리에서 약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를 지니는가? 지은이는 이 물음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생각을 해 봅니다.(107쪽)

이 이야기는 우리 조상들은 일 백 년 전에 어떻게 살았나라는 호기심보다, 사진엽서가 말하지 않는 숨은 헤게모니를 파헤치려는 야심찬 작품입니다.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으로 읽히는 동양의 낯선 시선 -신비함 보다 미개인이라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합리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피고 있습니다.

우선 지은이는 서구에서 행해지는 식민지에서 사진찍기를 통해, 그들이 낯선 이민족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볼거리'로 전락시킵니다. 이들은 삶은 이야기꺼리가 아닌 동물원의 구경꺼리가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동물원 우리 속 코리끼에 과자를 던지는 것이 아무런 잘못이 되지 않듯, 그들의 손가락질 역시 죄가 없습니다. 그들은 '볼거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헤게모니를 주입시키는 것은 제국주의며, 그들의 충실한 실행자는 사진가입니다. 이들은 특정 종교인 처럼, 그들이 지배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숭고히 따르라는 것처럼 사진을 찍습니다. 종교인들이 현지에서 식민지를 합리화했다면 사진가들은 본국의 시민들에게 그 의미를 전수합니다.

"많은 아프리카인, 인디언, 아시아인들이 서구인들의 차별적 시선에 의해 대상화되었으며, 지배자의 의도가 반영된 장치에 의해 이미지로 만들어졌다. (23쪽)"

이러한 서구의 제국주의적 시선은 아시아에서 일찍 근대화에 눈을 뜬 일본인들에 의해 재탄생됩니다. 일본인들은 서구인들이 아프리카인을 담았다는 모습을 조선에서 담아냅니다. 그들은 조선의 생활상을 근대화되지 못하고, 궁핍하다고 묘사하여 식민지를 합리화 합니다. 또한 식민지를 통해 발전되었다며 이미지를 구성하여, 연출을 꽤합니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 것이 아닌, 지배자의 의도에 따라 재구성됨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오리엔탈리즘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서구는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함포를 앞세우고 세계 곳곳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때 함선에는 어김없이 사진가가 동승해 그들이 발견한 지역의 지형과 원주민들을 기록했으며, 이 자료는 본국에 보고되어 통치 자료로 활용되었다."

"사집엽서는 이 이미지들을 대량 생산, 복제헤 제국주의를 대중에 널리 유포하고 그들의 인식 속에 깊이 각인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사진엽서는 간편하고 저렴한 근대적 우편 제도로서 대중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사진이라는 새로운 시각 문화를 손쉽게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36쪽)"

2.
사진 엽서, 타자화 즉 문화적으로 나 보다 못한 민족으로 표현되는 [인디아나 존슨]같은 영화적 도구라고 말한다. 이러한 것이 정책적으로, 국가의 전략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외 시민을 동등하게 놓고 보는 점에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즉 그는 제국주의라는 말로 일반 시민들에 대한 경험담을 닫아버린다. 이러한 정책은 '제국주의의 산물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너는 빨갱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실제 사진이 미친 문화적 파장에 대해서는 논의를 하지 않고, 어련히 그렇게 되었다라는 전체주의적 시야를 곳곳에 보이곤 한다.

아프리카에 가서 자연을 담으면 제국주의적 시선인가? 아름다움을 담으려는 보편적 감정은 아닐까. 이 아름다움은 낯설음과 동경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내가 우리나라를 여행하며 처음 들런 곳에 사진 찍는 행위나 나라 밖에서 다른 이가 사진 찍는 행위는 같은 모습이다. 아름다움, -낯설음과 동경이다. 물론 여기에 상업적 요소가 들어가면 상품적 가치를 변용될 것이며, 많은 판매를 통해 상업적 이익을 얻으려 할 것이다. 이 때에 아프리카 여인의 옷 벗은 몸매는 서구인들의 억압 속에 성적 유희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물론 지은이 말처럼 '아프리카의 원시성'을 강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은이는 상업적인 요소와 함께 국가적 폭력 -식민지에 가해지는 차별, 억압적 시선을 통해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논리-을 말하고 있다. 상업적 요소와 국가적 폭력이 아무런 문제 없이 융화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하지만 더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이러한 논리적 근거를 이미 읽은 책에서 찾는 듯 한, 서구인들의 생활상에서 비켜서 있다는 것이다. 즉 국가적 폭력이 과연 서구인들의 생활상에 합리화 내지는 제국주의적 논리를 지지하는 도구로서의 가치로 인정 받았는가 아니면 단순한 성적인 호기심으로 전략한 상술인가에 대해 깊이 살펴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지은이는 피해자로서의 오리엔탈즘에 젖어서, 이분법적으로 서구와 동양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에서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은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논리적 근거는 희박하다. 즉 내재적으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피해의식에 젖은 지은이의 시선은, 이미 정답을 마음에 두고 글을 쓰 내려 가고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사진가들이 제국주의의 헤게모니에 동승한 것 까지는 별문제이지만 과연 이들의 사진이 서구인들에게 어떻게 미쳤는가에 대한 해답은 없다. 아니 서구인들에게서 찾으려 하지 않고, 책에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착각일까.

3.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서구 사진이라는 발명품이 어떻게 식민지의 삶을 재구성하였는가라는 문제 제기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근거를 찾는 과정과 깊이 있는 분석은 얇은 강물을 보는 듯 하다. 너무 정답을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글자의 간격만큼 생각도 넓어져 보인다. 조금은 더 치열하고, 자료를 많이 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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