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제이미 제파 지음, 도솔 옮김 / 꿈꾸는돌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아주 특별한, 그러나 지극히 일상적인

지난 가을,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만에 친구(형)를 만났다. 그는 부산의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도 지난 여름 방학 때 우리집에 온 기억에 사로잡혀 있었다. 동네는 그대로이며, 풀을 건내눈 소는 아직 거기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지... 십년 동안 그의 머리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우리나라가 아닌, 저, 내게는 '왜 그런 곳에'라고 생각되어지는 곳에 살고 있다. 내가 받은 느낌은 '우리 보다 못한',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곳으로 갔느냐이다. 이민을 가려면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등으로 갈 것이지 왜 하필이면, 하지만 친구는 그곳에서의 삶이 행복하다며, 나에게 놀러 오라는 말을 남기고 한국에서 짧은 시간을 마무리 했다.

제이미를 보면서 나는 11월에 떠난 친구를 생각했다. 물론 잠시 다녀오는 여행이라면,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라면, 낯설음에 대한 동경이라면 떠날 수 있지만 2년은 너무 길지 않은가? 이 두려움을 나만 가지고 있었던게 아닌가 보다. 처음에는 내가 제이미며, 제이미가 내가 된다. 차츰 부탄 속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제이미가 될 수 없고, 제이미 역시 내가 되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는 제이미 할아버지처럼, 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
제이미는 '부탄'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영어 선생님을 구한다는 알림글을 보고 떠난다. "현실 세계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11쪽)"고 생각한 스물넷살의 아가씨는 비행기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다시 멀미 혜성(35쪽)을 타고 도시와는 격리된 듯한 공간에 다다른다.

경험을 위해 낯선 곳에 도착한 곳에서 그를 맞이한 것은 천장을 운동장이냥 삼고 있는 쥐와 비만 오면 똑똑 안기는 빗방울. 경험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삶이 궁핍하며 감당하기에는 벅찬 곳이다. 제이미는 스스로도 짐작할 수 없었던 사람들 속에 이방인으로 놓여져있다. 더구나 그는 꽃띠가 아닌가? 처음 마음 먹었던 의지는 오래지 않아 빛이 바래고, 급기야 계절을 하나도 채우지 못하고 떠날 결심을 한다. 하지만 운명이였던 것일까? 길을 잃고 다시 찾아 온 곳이, 페마 카첼이다.

제이미는 페마 카첼에서 2학년 C반 어린이들을 가르치게 된다. 그는 아이들 곁에서 가르침과 배움을 동시에, 순수함 속에서 때묻지 않은 동심을 보고는 가끔 놀라기도 한다. 그가 보기에는 천지가 아름다움뿐이다.

"모든 이름들을 종교와 자연과 관련된 뜻을 갖고 있었다. 카르마는 별을 뜻하고, 싱게이는 붓다를 뜻하며, 페마는 연꽃, 체링은 장수를 의미했다. 그 단어들을 이어 놓으면 놀랄 만큼 시적인 이름이 되었다. 예를 들어 페마 카펠은 행복의 연꽃, 카르마 장초는 별들의 호수였다.(132쪽)"

차츰 마음의 문이 열리면서 칠판을 도저히 쓸 수가 없을 정도이며, 53곳이나 버룩에 물렸지만(144쪽) 좋아져만 간다. 부족하기에 모든 것이 의미가 있는 곳(221쪽), 아이들은 선생님의 집에 놀러와서는 자칭 쓰레기라는 것을 보물로 만들어버리는 마술을 부린다. 즉 빈병이며 깡통을 어떻게 치울까 고민을 했는데... 아이들은 빈병은 천을 뭉쳐 주둥이로, 빈깐통은 계랑컵이나 화분으로 쓴다. 한아름 부족한 것을 가지고도 행복해하는 아이들,

"찌그러진 축구공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집을 떠나는 아이들의 표정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선생님 덕분에 너무 행복해요."하고 아이들이 몇 번이나 말하는 바람에 나는 그만 울고 싶어졌다.(165쪽)"

아이들은 부족하지만 '선생님이기에' 무엇을 주려한다. 아침 일찍 그들은 문을 두드리며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채소를 들고 서 있다. 좋아하는 선생님이기에, 부모들이 존경해야 한다기에... 하지만 고마움의 댓가로 1달러 정도를 준 것이, '상품 즉 물질의 값어치'로 매겨지는 장면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즉 그는 부탄이라는 나라에 들어온 '낯선이'며,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또한 문화 속에 벌어지는 차별에 대해서 침묵해야 할 것인가 의미를 드러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이루어진다. 이는 초등학교를 벗어나 대학교에 서게 되면서 더욱 구체화된다.

2.
초등학교의 모습은 순수함 그 자체이다. 여기에는 사생활도 없으며 도둑도 없다. 모두가 이웃이며 가족이며, 친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교가 있는 도시로 발령을 받아 오게 되면서, 제이미는 좀 더 깊이 부탄을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 그를 사로잡는 것은 남부와 북부의 갈드이다. 부탄의 문화를 지키려는 북부, 이주민으로의 문화를 지키려는 남부의 네팔인들. 그는 다시 한번 이방인으로 서게 된다. 이런 갈등을 통해 부탄이라는 실체를 보게된다. 즉 부탄에도 사람이 사는 곳이며, 시기와 질투가 있고, 슬픔도 존재한다. 또한 이곳에는 부족하지만 넉넉함이 존재한다. 즉 그들은 그들의 삶을 존중하며 물질적인 욕심보다 부족함 속에 넉넉함으로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직 완전체로서의 이상향은 아니지만, 불교를 통해 심적인 평화와 깨달음을 얻는 제이미는 차마 부탄을 버리지 못한다.

"나는 부탄에서의 내 삶을 사랑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지 알고 있었다.(276쪽)"

지은이는 '경험삼아 떠난 낯선 곳에서 자아(自我)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문화에 대해 생각을 해 본다. 그가 넘어야 할 것인가 넘지 말아야 할 것인가? 이러한 계속적인 물음은 잠시 둘러보고, '다 보았다'는 수박 겉?기식의 자랑이 아니다. 사랑이 없이는 차마 할 수 없는 물음이다.

나는 제이미를 만나면서, 친구가 왜 그곳에 집을 지었는지 조금씩 이해를 해 간다. 분명 한 번 놀러 가기에는 좋은 곳에, 왜 굳이 집을 지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린 것이다. 나는 진정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한다면서 속으로는 줄을 세우고 등수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이미는 내게 이렇게 들려준다.

"행복하다면 가난해도 상관없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한국인 이주철을 보게되면, 이렇게 물어보세요. '희상이를 아느냐고?', '희상이가 이제 조금씩 형의 삶을 이해하고 있다고...' 행복한지에 대해서는 묻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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