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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서머셋 몸 단편선 - 사르비아총서 608 ㅣ 범우 사르비아 총서 608
서머셋 모옴 지음, 이호성 옮김 / 범우사 / 1999년 11월
평점 :
나온 지 15년도 넘은 책이라 구성이나 번역이 허술하지 않을까 했는데 기우였다. 특히 번역이 기대 이상으로 깔끔했다. 수록작이 대체로 통속적이긴 한데 문장에 온갖 분칠을 하느라 작가 스스로 결국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길을 잃은 채 출간되는 쓰레기들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 무엇보다 재밌다!
서머셋 모옴은 우리가 선망해 마지않는, 이른바 절제되고 금욕적인 인간군상이란 전부 쓰잘데기 없음을 선언하며 그러한 가치관에 ‘카 아악 퉤!’ 하고 침을 뱉을 줄 아는 작가였다. 일테면 그는 삶의 가치를 유예한 채 오로지 '노오력'이 최고라 믿는 개미보다는 허구한 날 방구석에 처박혀 기타줄이나 퉁기며 ‘노오래’를 부르다 죽더라도 ‘지금 여기’에 살 줄 아는 ‘베짱이가 짱이야!’라고 외칠 수 있는 넘나 훌륭한 작가였던 것.
그는 묻는다. 금욕과 절제된 삶이란 것이 대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냐고. 방탕과 사치를 일삼고(「약속」) 심지어 충동에 못 이겨 살인을 저지르더라도(「편지」) 지금 이 순간 내 감정, 내 선택에 충실한 자와 비교해 종교와 제도, 타인의 평판과 명예에 묶여 사는 이(「비」, 「최후의 심판」)가 진정 살고 있기나 한 것인지를 말이다.
작품들이 주는 메시지의 공통점은 '지금'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삶의 의미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지 과거나 미래, 종교와 명예 따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평생을 금욕으로 일관하며 지루한 삶을 연명하느니 방탕한 삶을 살았더라도 짧은 생 자신에게 정직했다면 그로써 족하다는 것이다. 과연. 무릎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