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 읽기를 거북이 걸음처럼 진행하고 있다. 


중국어와 영어 원서를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어나간다는 게 쉽지가 않다.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중국어 원서만 1쪽 읽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영어 원서만 몇 페이지 읽곤 한다. 

그렇게 느리게 거북이처럼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놓지 않고 읽고 있다.


현재 읽고 있는 중국어 원서는 '미샤오췐'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아이,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학생의 나이가 쓴 일기다. 이 책은 학년별로 나와서 가족 이야기, 학교 생활, 반려 동물 등 어릴 적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비슷하게 경험했던 것들이라 읽다 보면 미소가 지어진다.

장난기도 있고 엉뚱하기도 하고 소소한 것에 기뻐하는 그런 아이다. 


하루 분량의 일기를 모두 읽으면 투비 홈(https://tobe.aladin.co.kr/t/roadpainter)에 꾸준히 올리고 있다. 올려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니 더 열심히 읽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뭔가 파이팅을 외치지 않으면 원서는 놓게 되니까. 




오늘 읽은 분량에 나오는 이미지이다. 반려견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다행히 부모님께서 집안일을 하면 돈을 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어 그 후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후 결말은 예상대로 흘러갈 것 같다가도 그렇지가 않아서 놀랍다. 


아무튼 재미나게 읽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 하이드님 소개로 DK Life Stories 시리즈를 샀었다. 이 중에서 Anne Frank 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앤의 일기에만 익숙하다가 막상 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했고 당시에는 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어 더 흥미로웠다.

읽기 수준도 어렵지 않아서 거의 매일 한 챕터씩 읽어내려가고 있다.


이런 삽화 이미지들이 많이 포함되어 글을 읽는데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경험이 되고 있다. 

어느덧 6일차까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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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8-23 1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어와 영어가 어순이 같죠? 외국어 두가지를 같이 공부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도 저는 엄두가 나지 않는데...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3-08-23 13:10   좋아요 1 | URL
맞아요 미미님^^ 사실 그래서 영어도 중국어도 어순 그대로 읽어야 좋을텐데 매번 해석할 때 앞뒤로 왔다갔다거리네요. 어순이 같으니 중국인들이 영어 공부할 때 훨씬 편하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드라마 보는 것에 재미를 붙이면서 중국어도 하면 좋겠다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근데 드라마는 드라마로만 보고 듣는 것은 EBS로 들어요. 원서를 꾸준히 읽는다는게 쉽지는 않은데 일주일 이상 빼먹으면 언어는 바로 티나더라구요. 그래서 힘들더라도 매일 읽는 것을 습관으로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해요 미미님^^

희선 2023-08-24 0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느리게 읽더라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 많이 늘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8-24 08:58   좋아요 1 | URL
네^^ 그렇게 생각하고 꾸준히 읽고 있어요. 희선님의 일본어 책 읽기도 응원합니다!ㅎㅎㅎ

그레이스 2023-09-04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우와 !
저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이제 6편 읽었을 뿐인데 이리 좋을 수가 있나. 
물론 저자가 해설을 워낙 친절하게 해주셔서 그런 것이겠지만.

긴 감상평을 하고 싶지만 그런 재주는 없고 느낀 바를 짧게만 표현하려고 한다. 


< 늙은 갈대의 독백 >
해가 진다 갈새는 얼마 아니하여 잠이 든다
물닭도 쉬이 어느 낯설은 논두렁에서 돌아온다
바람이 마을을 오면 그때 우리는 섧게 늙음의 이야기를 편다.
...
이 몸의 매듭매듭
잃어진 사랑의 허물 자국
별 많은 어느 밤 강을 내려간...
늙어감에 대한 비애. 


< 여우난골족 >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랫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윗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대의 사기 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계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랫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
가족들과 두런두런 있는 정겨운 풍경. 잊혀지고 있는 고유의 것들


< 모닥불 >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갖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닥의 깃도 개 터럭도 타는 모닥불

화합, 공존


좋구나. 해설이 있어서 참 다행이야. 
아무튼 이렇게 계속 읽어서 이달 말까지 다 읽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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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8-23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닥불>.....와...모닥불 안에 다 담긴 거네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눈동자를 오른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는데 ㅎㅎㅎ모두들 다 안은 것은 모닥불..

거리의 화가님 덕분에 재미난 시 한편 늦밤에 즐겼어요.

백석시인은 아무리 봐도,,,,넘나 ㅎㅅ하심!

거리의화가 2023-08-23 09:10   좋아요 1 | URL
<모닥불> 1연만 올린 것인데요. 1연은 서로 비슷한 것들을 배치했는데 2연은 반대로 대립되는 것들을 배치해요. 3연은 또 다른 형식인데 묘하게 어우러져서 재미나더라구요. 몇 편 보지도 않았는데 시들이 좋네요. 남은 뒷편들도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늦은 밤 시 즐기기 딱 좋았겠어요. 외모까지 참 출중하신 분!ㅎㅎㅎ

독서괭 2023-08-23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옷 저도 어서 읽고 싶은데 백래시가 저의 발목을 잡습니다.. ㅠㅠ

거리의화가 2023-08-24 08:55   좋아요 1 | URL
괭님 백래시 읽기 고생많으십니다. 사례가 그렇게 많다고 소문을 들었어요!^^;
사례가 많다는 게 사실 좋은 일이 아니어서 씁쓸하긴 하지만(그만큼 많은 사건 사고가 많다는 방증이므로) 책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겠죠. 완독하시고 난 후 백석 시 읽으면 좋으실 것 같습니다. 힘내세요!

희선 2023-08-24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동주 시인이 백석 시인 시집을 찾아 읽으려고 하던 게 생각나기도 하네요 도서관에서 시집 시를 다른 데 옮겨 적었다고 합니다 백석 시인이 북한으로 가서 한때 못 읽기도 했네요 그때는 많은 시인이 읽고 싶어했군요 몰래 읽었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8-24 08:57   좋아요 1 | URL
예전에는 한참 잊혀졌다가 이제 많은 자료들이 나오고 해서 지금은 시인들이 사랑하는 시인이 되었죠!^^ 시들이 참 좋네요. 토속적이어서 그런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들이 많습니다.

자목련 2023-08-24 09: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백석 시은 왠지 겨울과 어울린다는 느낌이 강한데, 여름에 겨울을 상상하며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거리의화가 2023-08-24 09:29   좋아요 1 | URL
쓸쓸함이 묻어나는 시들이 전반적으로 많아서 여름보다는 겨울이 더 잘 어울리긴 할 것 같아요. 그래도 시들이 좋아서 언제 읽어도 그 감성은 고스란히 전해질듯 합니다^^
 

복잡한 당구치기 현상이 서쪽 초원과 오아시스, 사막에서 일어나고있었다. 카라한이 카를루크를 날려 버린 뒤, 이번에는 여진족인 금나라에게 쫓겨난 카라 키타이(서요)가 야율대석의 지휘 아래 카라한을 삼켜버렸다. 거기에 또 칭기즈 칸에게 쫓긴 나이만 왕자 쿠추르크가 서요를빼앗은 것이다. 이 쿠추르크도 머지않아 칭기즈 칸에게 패해서 죽고 만다.
야율대석의 서정(西征)은 그 자신조차도 깨닫지 못한 커다란 역사적의미를 지닌다. 그때까지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오아시스에 나타난 사람들은 투르크계가 아니면 이란계, 아니면 아랍계 정권이었다. 이 방면의 - P22

큰 정권 중에 몽골계 정권은 사실 망명 집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야율대석의 서요가 최초이다.
이후 칭기즈 칸이라는 거대한 몽골계 군국 정권이 이 지방을 뒤엎는데, 야율대석의 서요가 그 기선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카라한, 셀주크, 위구루, 호라즘 등 이 시기의 투르크계 여러 민족은대개 이슬람화했는데, 몽골계의 서요 카라 키타이는 마지막까지 이슬람화하지 않고 동방 시대부터의 불교신앙을 지켜나갔다. - P23

문화에 면역성이 없는 여진족은 곧바로 한문화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민족 고유의 야성적인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것보다 오히려 이쪽이 더 큰 문제였다. 여진족의 한족(漢族化)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요나라의 경우는 ‘한(漢)의 분위기가 연운 16주로 한정되어 있었다. - P76

가의 한 부분이었으므로, 이원제(二元制, 二院制) 정치로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북을 취하고, 나아가 하남으로 진출한 금나라는 ‘한‘의 것이 주류였다. 이원제의 정체(政體)를 폐지한 것은 그것으로는 이제 해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금나라는 요나라와 달리 한적(漢的)인 중원 국가로 변질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중원으로 진출할 것을 결정했을 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금나라 황제는 여진족의수장이라는 성격보다 한적 중원 국가의 천자라는 성격을 강화하지 않을수 없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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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장

Anne thought of herself as having increasingly adult ideas about the world and how she would someday fit into it. - P41

If they were nervous about what further restrictions or hardship might lie ahead, they somehow managed to keep their focus on the present.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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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 7개의 도시
발레리 한센 지음, 류형식 옮김 / 소와당 / 201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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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역사를 조금씩 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기나 한서를 통해 중국 한나라 시기와 교류한 다양한 나라들(대표적으로 흉노)의 이름을 눈으로 익혔다. 수-당과 경쟁했던 돌궐의 역사도 보았다. 몽골의 역사는 안다고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청을 제외하면 비교적 익숙한 것 같다.

이 책은 우리에게 초원길로 잘 알려진 실크로드의 범위에 있던 7개의 대표 도시의 역사를 다룬다. 내부에서 바라본 역사이기 때문에 미시사를 다룬다고 할 수 있겠다. 미시사는 이야기들 자체가 흥밋거리가 되는 경우이므로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길을 걸으며 산책하듯 도시를 누빈다는 생각으로 저자인 가이드의 시선에 따라 도시를 탐방하면 되겠다.

실크로드의 "로드(길)"는 "길"이 아니라 사실은 이동의 범위였고, 거대한 사막과 산맥을 가로지르는 이정표 없는 발자취들이었다. "실크(비단)"는 "로드(길)" 못지 않은 오해를 담고 있다. 비단은 실크로드의 여러 무역 상품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P21). "실크로드"라는 명칭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1877년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 남작이 "실크로드"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그는 1868년부터 1872년까지 중국에서 석탄 매장지와 항구를 조사했던 유명한 지리학자였고, 5권짜리 지도책을 썼다. 거기서 처음으로 실크로드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P22).

실크로드의 "실크"와 "로드", "실크로드"라는 명칭에 대한 정의와 기원은 다음과 같다. 리히트호펜이 만들어낸 실크로드라는 용어는 점점 퍼져나가다 중앙아시아 탐험 관련 책이 번역되어 출간된(The Silk Road, 1936) 이후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산되면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생각보다 실크로드라는 용어를 사용한지는 얼마 되지 않은 셈이다.



실크로드의 역사책이 유물을 기반으로 설명한 것이 많은데 이 책은 고문서를 바탕으로 했다. 7개의 도시는 니아/누란, 쿠차, 투르판, 사마르칸트, 장안, 돈황, 호탄이며 역사의 범위는 2~3세기에서 11세기 초까지 다룬다. 11세기 초로 범위가 설정된 이유는 발굴된 고문서들의 하한 연대가 그렇기 때문이다. 2~3세기 중국과 서양의 문화가 처음 만나기 시작하여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각기 다른 실크로드 유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니아, 쿠차, 투르판, 돈황, 호탄은 중국의 북서부에 위치하며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에, 장안은 옛 당나라의 수도로 중국 중부 섬서성에 있던 곳이다. 무역은 제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서 간의 광범위한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다.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길로 중앙아시아를 거쳐갔다. 이 때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나 비단을 직조하는 기술이 중국에서 서쪽으로 전해지고, 유리를 만드는 기술이 중국으로 전해졌다.

니아와 누란은 간다라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이 정착한 곳이다. 그들은 카로슈티 문자와 목판에 글을 새기는 기술을 현지인들에게 전했고 불교를 전파했다.
오아시스인 쿠차의 주민들은 독실한 불교 신자들이었는데 쿠마라지바(344-413)는 산스크리트어 불교 경전을 중국어로 최초로 번역하여 중국에 불교가 널리 확산되는데 도움을 주었다. 쿠마라지바가 얼마나 유명한지 대표적인 유적지인 키질 석굴에는 그를 기리는 거대한 기념상을 만날 수가 있다.
투르판은 중국 지역과 이란 지역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했던 도시다. 오늘날에도 화려한 국제도시의 느낌이 드는 곳이라고 한다. 투르판과 관련해서는 현장 법사의 서역 원정기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제자 혜립에 의해 그의 여정기가 마치 무용담처럼 전해지는데 사실로 다 믿기는 어려우나 이런 목숨을 건 여정들이 많았겠구나 생각해보게 된다. 투르판 주민들은 5~6세기 다른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동전을 사용하는 동안 은화를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서쪽의 이란과 많은 교역이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투르판은 매우 건조하여 상대적으로 유적의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고 한다(다른 도시들에 비해서).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의 대표적인 상인인 소그드인이 주로 활동하던 도시였다. 그들은 이란계 민족으로 실크로드 무역에서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 문헌상으로는 그들의 특성이 야비하고 남을 잘 속이는 식으로 묘사되어 있는데(아이가 성장해서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고 손에 들어온 돈은 꿀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 그들은 무역에 능하여 이익을 좋아한다. 이익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 역시 이는 상행위를 그만큼 잘했다는 방증일 것 같다. 소그드인은 소그드어라는 중세이란어를 사용했고 국제적인 교류가 있었던 당나라 시기에는 그쪽으로 많이 이주하기도 했다.
장안은 10개 왕조의 수도였다. 그 중 7개의 왕조는 통치 기간이 짧아 금방 왔다 사라졌지만 3개의 왕조는 통일된 왕조인 전한, 수, 당이었다. 장안은 정치의 중심일 뿐 아니라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고 서역으로 떠나기 위한 출발지이기도 했다. 도시는 109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높은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으며 엄격한 시간에 따라 통행이 이루어졌다. 시장 중 동시(東市)는 국산품, 서시(西市)는 수입품에 특화되어 있었다.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자신의 종교를 그대로 가지고 들어와 당시 장안에는 조로아스터교 사원이 6곳, 기독교(네스토리우스파) 교회 1곳이 있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남아 있는 당나라 건축물이라고는 두 개의 전탑인 대안탑과 소안탑 뿐이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
돈황은 기원후 천년 동안 중요 군사 주둔지이자 불교 순례지, 무역 거점도시의 역할을 했다. 저자 왈 실크로드 유적지 한 곳만 가야 한다면 무조건 돈황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바위 절벽을 파내어 만든 석굴들이 500여 동이 있고 거기에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또 도서관인 장경동 석굴도 만날 수 있다. 석굴 자료는 8세기 중반 이전은 중원에서 온 텍스트이고 이후는 돈황 인근에서 생산된 텍스트인데 이 때 학생들이 필사한 자료들이 많이 기록되었다는 게 흥미롭다. 짐작하겠지만 돈황은 현존하는 실크로드 자료들이 가장 많이 배출된 곳이다. 하지만 이 많은 유적과 유물을 발견한 사람의 행위는 협잡꾼이자 도굴꾼과 다를 바가 없어 마음이 찜찜했다. 아쉽게도 돈황의 석굴이 많은 관광객들의 유입으로 최근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관광객도 적당히 받는다고 하지만 이제는 거기에 기후 변화가 더해져 그 훼손도가 가속화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호탄은 1006년 이전까지는 불교 왕국이었다가 이슬람이 정복하면서 완전히 성격이 바뀐 도시이다. 호탄 주민들은 이후 이슬람으로 개종하였으며 자국어인 호탄어를 사용하지 않고 위구르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순례객들이 많아서 방문객들은 이곳을 "성지"라고 부른다.

실크로드는 인류 역사상 교통량이 가장 적었던 길이다. 일정 시기에 운송된 물량, 교통 빈도, 혹은 여행객의 수를 의미 있는 기준으로 본다면 연구할 가치가 별로 없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크로드는 역사를 바꾸었다. 대체로 실크로드의 일부 혹은 전체를 힘겹게 건넸던 사람들이 외래종의 씨앗을 심듯이 자신의 문화의 씨앗을 먼 지역으로 옮겨와 심었기 때문이다. ... 여러 갈래 길의 네트워크는 지구상 가장 유명한 문화의 혈맥이었다. 이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종교, 예술, 언어, 신기술이 교환되었기 때문이다(P403).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러나 한때 다양한 문화를 포용했던 한 세계의 유물을 보고자 하는 관광객들이 지금도 이곳을 찾고 있다(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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