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생님 200주년 기념판을 읽기 전에 가볍게 읽을 만한게 없을까 생각하다 얼마 전 이 세트를 발견한 기억이 났다.
찾아보니 도선생님의 작품이 들어가있었고 얼마 전 친구 분의 글에서도 이 책을 발견한 기억이 났다. <백야>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 발표할 무렵이 전작의 실패로 힘들 때라고 하던데 일단 나는 유일하게 읽었던 <죄와 벌>과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놀랐다.

읽으면서 좀 피식거리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했다.
우울한 인간인데 세상을 향한 시선에 열려 있는 듯하다. 남들을 관찰하기 좋아하고 어찌 보면 오지랖 넓은 인간인 것 같기도 하고…(처음엔 스토커인줄…)

만약 내가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간다면 마주치는 사람들 중 한 두명쯤은 같은 시간에 나서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안 나온다고 해서 딱히 궁금하지도 않을 뿐더러 반대의 상황에도 그 사람이 나를 궁금해할까 싶은 것이다.

나는 지금 언젠가 과거에 나름대로 행복을 느꼈던 장소들을 기억해 내곤 일정한 시간에 그곳을 방문하길 좋아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과거에 맞추어 현재를 꾸미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마치 그림자처럼 까닭 없이, 목적도 없이 우울하고 침울하게 뻬쩨르부르그의 골목골목, 거리거리를 싸돌아다닙니다. 회상이란 참 대단한 거죠! (p56)

주인공은 다리 난간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한 여자를 봤고 그녀를 위험에서 구해준 일을 계기로 몇 번의 만남을 가진다. 여자는 결국 다른 남자와 떠나는데 나는 ‘아이고야… 순진하다 순진해.’ 했다.

이 작품은 수채화 같다고나 해야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정작 주인공은 되는 일도 없고 곁에 있는 이도 아무도 없는데 이상하게 맑은 느낌.


나는 몽상가라기보다는 현실주의자다. 그래서 과거에도 이건 안 되는 일이야 라고 생각하고 판단할 경우 덤비려고 시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무모하더라도 해 보는 도전이나 공상들이 혁신적인 일들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물론 결과는 의도와는 다를 수도 있고 의도가 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작품이 작가의 중기 작품이라고 한다면 이제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읽으려고 한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4-02-08 1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께서 이 글에서 말씀하신 이유때문에 소설을 읽고 도작가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저도 이 책 마감헤야하는데 아직 몇 권 남아있어요^^

거리의화가 2024-02-08 12:46   좋아요 3 | URL
<죄와 벌>을 읽을 때는 처연해서 힘이 들었는데 역시 작가는 삶과 작품이 함께 가는 건가 싶었어요. 관찰력이나 묘사력은 역시나 뛰어난 것 같고요.
NOON 세트는 두꺼운 책 읽을 때 중간에 넣으며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stella.K 2024-02-08 12: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사람의 생각은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진 않는 것 같더라구요. 저도 현실주의적 사고를 많이 하는데 뭐 하다가 안 되면 어때 해 보는 게 중요한 거지 하는 때도 가끔 있더라구요. 물론 결과는...ㅠ
저 도 선생 기념판 사 셨군요. 부럽습니다. 300주년 땐 어떻게 나와도 못 살 텐데 그때 사 둘 걸 그랬나 봅니다. ㅠ

거리의화가 2024-02-08 14:13   좋아요 1 | URL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뛰어들 수 있는 일이 어찌 보면 용기인데 갈수록 그런 힘이 줄어드는 것을 느낍니다^^;
전집은 저때 뭔 생각으로 구매했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딱 떨어지는 숫자로 기념할 숫자이기도 하고 양장판에 디자인에 결국 넘어간 것 같아요. 아무튼 사두니까 아까워서라도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4-02-08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난한 사람들, 백야 둘 다 좋았어요

거리의화가 2024-02-08 19:46   좋아요 1 | URL
백야 좋더라구요. 역시 초기작부터 좋았다니^^ 앞으로 즐겁게 읽을 일만 남았네요.

희선 2024-02-09 0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작가여도 나이에 따라 조금 다른 글을 쓰기도 하겠습니다 도스토옙스키도 그랬겠네요 아직 하나도 못 읽어 봤지만... 언젠가 볼 수 있을지...

거리의화가 님 설 연휴 즐겁게 편안하게 보내세요 새해가 한번 더 오는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2-09 14:44   좋아요 1 | URL
네^^ 작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심경에 변화도 있을 때고 아무래도 작품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백야는 아주 짧은 소설이라 언제 기회가 되면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희선님 명절 즐겁게 보내시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새파랑 2024-02-09 13: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야의 저 문장이 좋았습니다. 의외로 낭만적인 도스토예프스키~!! 도박만 잘하셨다면...

그레이스 2024-02-09 13:4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4-02-09 14:45   좋아요 2 | URL
ㅋㅋㅋ 도박은 역시 운인데 운이 안 좋은걸로!~~~ 새파랑님도, 그레이스님도 명절 잘 보내세요^^
 

20세기 후반 환경정의 이론 틀은 노동자계급의 허파로 예시되는횡단-신체성에 접근하기 위한 강력한 길잡이이다. 환경정의는 특정한몸과 장소, 특히 문자 그대로 쓰레기처럼 버려진 사람과 장소 사이에있는 물질적 상호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환경정의 사회운동들과 분석의 방법은 인종과 계급(그리고 때로 젠더와 성정체성)이물질적 불평등, 간혹 장소와 뗄 수 없는 불평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추적함으로써 환경혜택과 환경피해가 불평등하게 분배되어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 P77

물질세계를 인간의 착취를 위한 수동적 자원으로 간주하는 존재론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환경주의 이론가들이 자연의 ‘작용능력‘을 새롭게 개념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 만큼 노동자가 자신의 몸이 산업 자원으로 이용되는 것에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84

르쉬외르의 단편소설과 취재기사는 자연과 노동자가 자본주의라는 기계를 위한 소모품으로 똑같이 전락하는 처지를 폭로하면서 자연과 노동자를 융합시킨다. 그렇다고 노동자의 몸이 자본주의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장소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기쁨과 아름다움, 가치, 에로스의 장소의 역할도 가지고 있다. 엄격한 사회구성주의 관점으로는 이런 이중적 태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본주의 비판과 유토피아적 욕망, 그 어느 한쪽도 포기하길 원치 않는다. 그녀는 신체성이 자연 세계와 합류하는 대안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가치와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함께 엮는다. 손으로 만질 수 있을만큼 자연이 우리 ‘가까이 있다‘는 이러한 느낌은 아름다운 사진으로자연을 바라보는 도회적이며 중·상류 계층적인 감상과 현저하게 대비된다. - P89

가난과 산업질병의 현실로부터 영적인 초월을 향한 희망이라는 주제는, 사악한 횡단-신체성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시의 흐름과 일치하지않는다. 허파를 침공하는 이산화규소는 노동자와 환경의 상호연결을 강조한다. 뤼케이서는 그러한 연결을 시적인 방식으로 기록하는데, 비 - P136

가시적인 것을 충격적으로 가시화하는 작업은 어떤 의미에서는 X선처럼 작동한다. "허파를 유리로 가득 채우는 노동자의 이미지는 신체의고통과 손상을 효과적으로 포착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이산화규소와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유리 사이의 환유적 미끄러짐metonymic slide을 사실로서, 그리고 시적인 환유로서 충실하게 기록한다. 시인이 당시의 지배적인 생각을 심문하는 동시에 부정의의 물질적 증거를 포착하려고 노력할 때, 유리는 보는 것의 메커니즘을 암시해 준다. 더욱이탈근대적인 공식화에서, 봄과 앎의 매개인 유리는 보여지는 물질산업/경제적 공정으로 특성이 부여되는 물질이기도 하다. 초월적이기보다는 물질에 녹아들어 가 있는, 물질화된 인식론이다. - P1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70년대 내수면개발과 한국자연보존협회의 자연보존운동

1977년 10월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형태로 자연보호운동이 추진되었을 때, 박정희는 운동 추진의 이유를 "자연보호를 위해선 하천의 어족보호, 환경보존 등 그 범위가 매우 넓으므로, 이 운동은 범국민적으로 벌여야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하천의 어족 보호가 가장 먼저 언급된 표현이었다는 점에서도 자연보존 운동과 자연보호 운동의 연관성을 찾을수 있다.05 1974년부터 식물학자 이덕봉을 중심으로 자연보존협회의 회원들은1978년 공개된 자연보호헌장의 제정 과정에도 참여했다. - P1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南陽의 鄧禹가 지팡이를 짚고 劉秀를 따라 縣에 이르자, 劉秀가 말하기를
"내가 마음대로 侯에 封하고 장수로 임명할 수 있으니, 그대가 멀리서 찾아온 것은 벼슬을 원해서가 아니겠는가?" 하니, 가 대답하기를 "벼슬하기를원치 않고 다만의威嚴과 德이四海에 가해지면 제가 얼마 안 되는 작은을 바쳐서功을 竹帛(역사책)에 남기기를 원할 뿐입니다." 하였다. 劉秀가 웃고는 인하여 유숙하였는데, 가 나아가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
"지금 지방이 편안하지 못해서 赤眉와 靑의 무리들이 모두 만으로헤아려지고,更始는 이미 보통의 평범한 인물에 불과하여 스스로 다스리고결단하지 못하며,諸將들은 모두 용렬한 사람들이 흥기하였으므로 그 뜻이재물과 폐백에 있어서 다투어 위엄과 무력을 사용하여 당장 스스로 만족하게할 뿐이요, 충성스럽고 어질고 밝고 지혜로워 깊이 생각하고 멀리 도모해서 - P204

‘군주를 높이고 백성을 편안히 하려는 자가 있지 않습니다. 은 본래 성대한 德과 큰 功이 있어서 천하 사람들이 향하고 복종하는 바가 되었습니다.
軍政이 整齊되고 엄숙하며 이 분명하고 信實하니 ≪後漢書≫〈鄧禹傳〉에는 ‘明公素有이하의 네 미가 없다. 지금을 위한 계책으로는 영웅을 맞이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를 힘써서 漢高祖가 當年에 이룩한 功業을 세우고 만백성의 목숨을 구하는 것만 한 것이 없으니, 公을 가지고 생각해 보건대 천하는 굳이 평정할 것이 못 됩니다. (천하를 평정하기가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劉秀가 크게 기뻐하고, 인하여 鄧禹를 항상 군막 안에 머물게 하여 그와함께 계책과 의논을 결정하고, 매번 여러 장수들에게 임무를 맡기고 부릴 때에 鄧禹에게 많이 물었는데, 모두 그 재주에 합당하게 하였다. - ≪後漢書鄧禹傳≫에 나옴. - P2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H25] The End of the World

중세 흑사병은 오늘날 선페스트라고 불리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역병은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감염된다. 당시 중국에서 실크 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이 흑해로 돌아갔고 Caffa(카파)로 전파,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 도착한 뒤 전 유럽으로 퍼지게 되었다. 중세 사람들은 쥐가 병을 옮긴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신의 심판, 지진, 악마, 나쁜 음식으로 인해 생긴다고 생각했다고. 흑사병이 수년간 지속되자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여 인구가 급감한다. 귀족들의 농토를 경작할 농노들은 상당수가 죽고 그마저도 남은 이들은 같은 돈으로는 일을 못하겠다며 들고 일어선다. 이중 많은 이들이 도시로 떠나고 성직자도, 수공업자도 도시로 떠난다. 귀족들은 소유한 농토를 운영하기 어려워졌고 땅은 줄어들고 대신 상인이나 수공업자들의 위세가 커지게 된다. 흑사병으로 많은 이들이 사망하면서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 


[CH26] France and England at War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에서 흑사병이 진행되는 동안 잠시 전쟁을 멈췄다가 흑사병이 지나가고 나서 전쟁을 재개했다(백년전쟁). 영국왕 헨리 5세는 프랑스로 시집간 선조 이사벨라가 받은 땅을 자신이 상속받고 프랑스왕 찰스 6세의 딸인 캐서린을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요구 조건을 내걸었으나 찰스6세가 거부하자 공격을 감행했다. 영국군이 프랑스에 닿을 무렵 군대 내 병이 돌고 겨울이어서 공격을 포기하려고 도망가려했으나 아쟁쿠르 전투에서 승리(백년 전쟁의 전환점)하면서 원하던 것을 모두 얻는다(영국왕=프랑스왕). 헨리 5세가 사망했을 때 헨리 6세는 갓난아이 1살이었다. 이 때 프랑스 황태자가 왕권을 되찾으려 했다. 프랑스인들 중에는 황태자가 왕이 되길 원하는 부류가 있던 반면 헨리6세가 왕권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Burgundian)는 부류 사이에 내전이 발생한다. 이 때 신의 부름을 받아서 명성을 쌓던 John of Arc가 등장하여 황태자 편에 서서 Burgundian과 영국인들을 오를레앙에서 쫓아내고 승리를 얻어낸다. 황태자는 찰스 7세로 프랑스 왕이 되었으나 남은 Burgundian과 영국인을 프랑스에서 쫓아내는 것 대신 협상을 하고 Joan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그는 요술을 부리는 여자로 몰려 유죄를 받고 1431년 화형을 당했고 25년이 지나서야 사건을 재조사받은 끝에 무죄임이 증명되었다. 


[CH27] War for the English Throne

영국도 장미 전쟁이라 불리는 내전이 있었다. 요크셔 가문(흰 장미)과 랭커셔 가문(붉은 장미) 사이의 전쟁이었다. 헨리 6세에게 정신 이상이 생기자 요크셔 가문은 헨리의 사촌 뻘인 자신들의 가문에서 대체자로 요크 공작을 왕으로 민다. 그러나 헨리 6세의 증세가 호전되고 요크 공작은 왕위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헨리 6세 측은 그들을 처리하고 왕권을 수호한다. 요크 공작의 아들인 에드워드가 힘을 키워 헨리 6세를 공격해 그를 감옥으로 보내고 자신은 에드워드 4세로 왕위에 오른다. 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가문에서 좋아하지 않는 엘리자베스와 몰래 결혼하고 엘리자베스가 지나친 권력을 가지는 것에 위협을 느낀 귀족들이 헨리 6세를 다시 왕으로 추대했으나 누군가 그를 살해하는 바람에 에드워드 4세는 치세를 잇게 되었다. 그의 아들이 에드워드 5세가 되었으나 너무 어려서 사촌인 리차드가 그의 치세를 돕기로 한다. 그런데 에드워드 5세가 어딘가로 사라져서 리차드에 대해서 안좋은 말이 떠돌았다. 2년 정도 왕위를 이었다 사촌인 헨리 튜더가 리차드의 왕권에 도전하여 보스워스 전투에서 그를 몰아내고(리차드는 전투에서 사망) 영국의 새 왕이 되면서 장미 전쟁은 끝났다.  

에드워드 4세의 아들인 두 형제는 삼촌이자 호국경이었던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에 의해 런던탑에 갇혔다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실종 당시 에드워드 5세는 12 세, 요크공 리처드는 9세에 불과하였다. 에드워드 5세는 대관식을 앞두고 있었으나 실종되어 왕위는 리처드 3세에게 넘어갔다. 런던탑에서 두 소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앞뒤의 정황을 보면 살해당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리처드 3세가 왕위를 탐해 조카들을 죽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또는 둘이 암살을 피해 탈출하여 신분을 숨긴채 살았다는 설도 있다. 


[CH28] The Kingdoms of Spain and Portugal

스페인에는 아라곤과 카스티야라는 두 개의 강력한 왕국이 성장해가고 있었고 서쪽에는 포르투갈이 있었다. 카스티야의 왕인 엔리케는 스페인을 통합하기를 원했고 귀족 중 Pedro Giron을 이사벨라와 결혼시키는 대신 군을 강하게 만들기를 원했다. 이사벨라(13세)는 그가 나이도 너무 많고(40세 넘음) 술도 마시고 싸움꾼에 난봉꾼이라는 소문에 엔리케에게 결혼 안한다고 말했으나 그는 거부했다. Pedro Giron은 여행을 갔다가 병을 얻어 사망하는 바람에 이사벨라는 결혼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엔리케는 4년 후에 포르투갈 왕과의 결혼을 추진했다. 그는 뚱뚱하고 아버지로 보일 만큼 나이들어 보이는 사람이었기에 이번에도 이사벨라는 결혼을 거부했지만 엔리케는 추진했다. 결국 이사벨라는 소문으로 듣던 카스티야의 왕자인 페르디난드에게 접근하여 만난지 4일 만에 결혼하여 카스티야의 왕비가 된다. 1491년 스페인의 유일한 이슬람 왕국이었던 그라나다를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는 무너뜨리고 스페인을 기독교 아래 통합한다. 다만 이 때 유대인들이 스페인에서 쫓겨나는 불운을 겪었다.

포르투갈에 헨리 왕자는 배를 타고 짧게 나가는 것을 좋아했지만 더 멀리 가고픈 욕심이 있었다. 그는 왕의 4번째 아들이었기에 왕위를 상속받을 염려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추진하기에 장애는 없었다. 중세는 음식 저장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향신료인 후추, 정향 등이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황금과 상아에 관심이 있음을 알게 되어 아프리카 부족을 직접 대면하기 위해 배를 건조하고 astrolabe(태양이나 북극성이 지평선과의 거리를 이용해서 배의 위치를 계산하는 기구)를 개발하여 북아프리카로 향한다. 그는 거기서 더 나아가 남아프리카에도 가기를 시도하여 결국 성공한다. 그는 인도를 찾아나서고자 했지만 그 전에 사망한다. 


[CH29] African Kingdoms

유럽인들은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이라고 불렀다.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을 불안과 공포로 느끼고 검은색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중세 서아프리카에는 가나, 말리, 송가이라는 3개의 강력한 국가가 있었다. 가나는 아프리카 서해안에 접해 있으며 철 제련에 능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유럽인들은 가나를 금이 나는 땅이라고 불렀다. 가나는 사금을 채취하여 북아프리카의 아랍 상인들이 왔을 때 금을 주는 대신 소금으로 교환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에는 메마르고 건조한 땅이라 소금이 꼭 필요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소금 광산은 무척 가혹한 환경이었다. 당시 가나는 금으로 온갖 것을 도배할 정도로 부유한 국가였다. 하지만 아랍 상인과의 교류를 위해서는 이슬람교로의 개종이 필요했으나 이를 거부하면서 이슬람 제국인 말리로부터 공격을 받아 쇠퇴하게 된다. 말리도 가나와 마찬가지로 황금과 소금이 지나는 길목에 있었다. Mansa Musa가 말리왕이 되자 군을 키워서 이웃 나라를 공격할 생각을 갖는다. 또 그는 충실한 이슬람교인으로 순례 여행을 결심했는데 혼자가 아니라 아내, 아이들을 비롯한 식구들, 요리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까지 6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메카로 나서게 된다. 그가 가다가 멈춘 길에는 모스크가 지어지기도 했다고(-_-). 하지만 그의 이동 때문에 금이 한꺼번에 많이 유출되는 바람에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도 벌어진다. 그가 죽고 나서 국력이 약해진 말리 대신에 송가이 제국이 떠오른다. 그곳은 땅이 넓은 것이 장점이었다. Timbuktu(팀북투)라고 하는 도시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200개가 넘는 학교가 있었고 의사, 성직자, 법률가, 학자들도 넘쳐났다고 한다. 1526년 Leo Africanus가 서아프리카에 관한 책(History and Description of Africa and the Notable Things Contained Therein)을 쓰고 난 뒤 유럽인에게 이곳이 역설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송가이 제국은 모로코의 침략으로 멸망하게 된다. 


[CH30] India Under the Moghuls

인도를 하나로 통합한 찬드라굽타 이후 굽타 왕조 아래에서 평화로운 치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훈족이 침입하여 여러 왕국으로 쪼개져버렸다. 계속되는 전투와 홍수로 인한 전염병으로 지도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때 오스만 투르크의 소왕국을 다스리던 Babur(바부르)는 칭기스칸의 후손으로 새로운 땅을 찾아나섰다. Babur는 델리를 정복하고 스스로 황제로 올라선 뒤 기존의 힌두교 공간들을 파괴한다. 그렇지만 통합을 위해서 힌두교는 용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도의 메마른 땅을 고향과 같이 만들기위해 인공적으로 물을 끌어들이고 각종 화초를 심고 벤치를 설치하며 정원을 세운다. 이곳은 the Garden of Scattered Flowers로 Ram Bagh라고 불리기도 하며 오늘날에도 Agra에 남아 있다. 

Babur 아들 때 국력이 약해졌다가 손자인 Akbar에 이르러 왕국은 강력해진다. 그는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힌두교를 용인했고 힌두교 공주와 결혼하기도 했다. 그 무렵 사람들에게서 유행하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불운한 사나이 Gulshan에 관한 소문이었다. Akbar는 Gulshan을 황궁 하인으로 고용해 그를 직접 시험해보고자 한다. 아침으로 가져온 빵에 머리카락이 들어 있고 다리가 갑자기 가렵기도 했으며 농노의 반란이 일어났다. 집사가 오더니 겨울에 보관해놓은 고기에 구더기가 생겼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가 가장 아끼던 말의 다리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한다. 그는 불운한 사나이가 맞다며 처형당할 뻔 했으나 풀려난다. 다만 다시 하인으로 쓰진 않았다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 2024-02-08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진도 많이 나가셨군요!
완독까지 응원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4-02-08 14:21   좋아요 1 | URL
미미님^^ 아무래도 읽다 말다 하면 동력이 떨어져서 가능한 긴 텀을 두지는 않고 읽고 있습니다. 근데 연휴 때 읽을 수 있을 것인지는ㅋㅋ 중세는 역시 더 과거인 고대보다 이름들이 더 익숙하네요. 흑사병이라던지 장미전쟁이라던지 무굴 제국이라던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