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환경정의 이론 틀은 노동자계급의 허파로 예시되는횡단-신체성에 접근하기 위한 강력한 길잡이이다. 환경정의는 특정한몸과 장소, 특히 문자 그대로 쓰레기처럼 버려진 사람과 장소 사이에있는 물질적 상호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환경정의 사회운동들과 분석의 방법은 인종과 계급(그리고 때로 젠더와 성정체성)이물질적 불평등, 간혹 장소와 뗄 수 없는 불평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추적함으로써 환경혜택과 환경피해가 불평등하게 분배되어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 P77

물질세계를 인간의 착취를 위한 수동적 자원으로 간주하는 존재론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환경주의 이론가들이 자연의 ‘작용능력‘을 새롭게 개념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 만큼 노동자가 자신의 몸이 산업 자원으로 이용되는 것에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84

르쉬외르의 단편소설과 취재기사는 자연과 노동자가 자본주의라는 기계를 위한 소모품으로 똑같이 전락하는 처지를 폭로하면서 자연과 노동자를 융합시킨다. 그렇다고 노동자의 몸이 자본주의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장소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기쁨과 아름다움, 가치, 에로스의 장소의 역할도 가지고 있다. 엄격한 사회구성주의 관점으로는 이런 이중적 태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본주의 비판과 유토피아적 욕망, 그 어느 한쪽도 포기하길 원치 않는다. 그녀는 신체성이 자연 세계와 합류하는 대안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가치와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함께 엮는다. 손으로 만질 수 있을만큼 자연이 우리 ‘가까이 있다‘는 이러한 느낌은 아름다운 사진으로자연을 바라보는 도회적이며 중·상류 계층적인 감상과 현저하게 대비된다. - P89

가난과 산업질병의 현실로부터 영적인 초월을 향한 희망이라는 주제는, 사악한 횡단-신체성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시의 흐름과 일치하지않는다. 허파를 침공하는 이산화규소는 노동자와 환경의 상호연결을 강조한다. 뤼케이서는 그러한 연결을 시적인 방식으로 기록하는데, 비 - P136

가시적인 것을 충격적으로 가시화하는 작업은 어떤 의미에서는 X선처럼 작동한다. "허파를 유리로 가득 채우는 노동자의 이미지는 신체의고통과 손상을 효과적으로 포착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이산화규소와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유리 사이의 환유적 미끄러짐metonymic slide을 사실로서, 그리고 시적인 환유로서 충실하게 기록한다. 시인이 당시의 지배적인 생각을 심문하는 동시에 부정의의 물질적 증거를 포착하려고 노력할 때, 유리는 보는 것의 메커니즘을 암시해 준다. 더욱이탈근대적인 공식화에서, 봄과 앎의 매개인 유리는 보여지는 물질산업/경제적 공정으로 특성이 부여되는 물질이기도 하다. 초월적이기보다는 물질에 녹아들어 가 있는, 물질화된 인식론이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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