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上擊布時 爲流矢所中 行道疾甚 呂后迎良醫入見 上嫚罵之曰 吾以布衣 持三尺 取天下 此非天命乎 命乃在天 雖扁鵲何益 遂不使治疾 〈出本紀〉

○ 呂后問曰 陛下百歲後 蕭相國 旣死 誰令代之 上曰 曹參可 問其次 曰 王陵可 然少戇 陳平可以助之 陳平知有餘 然難獨任 周勃重厚少文 然安劉氏者 必勃也 可令爲太尉 呂后復問其次 上曰 此後 亦非乃所知也 〈出本紀〉

夏四月帝崩


고조가 병이 나서 여후가 훌륭한 의원을 들어와 보게 하였으나 거부했다. 죽을 때가 되었는데 천명이 아니겠냐며 돌려 보냈다.
여후가 앞날에 대하여 고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상국의 역할은 조참이 하게 하고 왕륭은 우직하지만 진평이 도와주게 하기를, 주발이 유씨를 배신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이끌고 갈 수 있으니 그 역할을 맡기게 하였다.
한 고조가 한을 세운지 12년 만에 붕어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반부터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해서 천천히 속도를 늦췄는데 이는 당시 일본의 정치, 경제, 역사, 예술계의 인사들이 우후죽순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정신, 창조와 활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 그러면서 조선, 일본, 중국, 미국, 유럽 각국의 문화를 비교한다. 이들을 다 찾아보며 정리하는 것은 무리라 보여서 일단 리스트업만 해놓는다.


야나기 무네요시: 미술사학자
요시노 사쿠조: 정치인

나카노 시게하루: 프롤레타리아 시인
아카마쓰 가쓰마로: 정치인
나카무라야 소마 부부: 사업가
기노시타 나오에: 시인. 기독교 사회주의자


그런데 생각할수록 작가님은 정말 놀랍기 그지 없다. 전반적인 당시 정세를 알지 못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경지이다.

기분 나쁜 그 소리, 오렌지빛 안개 같은 빛을 발하는 발가숭이 전등이 높은 곳에 매달려 있었던 유치장 밖에서는 늘 바람이 스산하게 불었었다. 어찌 그들이 두렵지 않았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유치장의 문은 육중하였고 열쇠 꾸러미의 소리도 육중하였다. 몇 밤을 잠자지 못하게 하며 취조하던 일인 형사의 얼굴, 십리 가다 한 오라기 오리 가다 한 오라기, 며칠을 면도하지 못했을 때 유황같이 누리끼한 안면에 돋아났었던 수염, 그 얼굴은 공포 이외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간의 피를 느낄 수 없는, - P281

벼랑과 같은 절망적 얼굴이었다. 그러나 어떤 순간, 그것은 꼭한 번이었었지만 그 얼굴을 불행의 표상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가해자가 반드시 승리자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은 인실에게 매우 중요한 심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의 학살을 목도하였던 유인실은 피해자가 갖는 한 치의 여유도 없는 저항의식을 불태웠다. 그것은 부러질 것만 같은 가파로움이었다. 가해자가 반드시 승리자는 아니다. 피해자의 체념, 피해자의 굴복이야말로 피해자의 패배로써 그들의 승리와는 관계없이 패배할 뿐이라는 사실, 적이 누구이든, 설령 적이 인간이 아닐지라도. - P282

"형님, 지는 말입니다, 지는요, 지는 말입니다. 후회 안 할 깁니다. 겁이사 나겠지마는요, 발 빼지는 않을 겁니다. 영호하고약조를 했인께요. 살인죄인으로 세상 끝내기 보담이야 애국자로 세상 끝내는 편이 안 낫겄십니까." 지애국자라 했을 때 한복의 얼굴에는 수줍음이 지나갔다. 그리고 술 안 마시고는 못할 말들이었다.
"그리고 그래야만 나는 빚을 갚는 기이 안 되겄십니까? 빚 안지고 살겄다 그기이지 평생의 소원인께요. 관수형님이 처음지보고 만주 가라 했을 직에는 원망스럽기도 했지요. 하지마는만주 가서 길상형님을 만나보고 그곳 사정을 보이, 야, 길상형님이 나를 깨우쳐준 기라요. 나는 과거의 굴레를 벗어라 벗어라 그것은 니 잘못이 아니다・・・・・・. 남이사 머라 카든지 서럽어도 억울해도 이자 나는 기대고 떠받칠 기둥 하나를 잡은 기라요. 사람답게 살자…………. 나는 발 못 뺍니다. 나도 이 강산에 태어나서 소리칠 곤리(권리)가 있인께요. " - P312

"하지만 전쟁을 하지 않고도………… 일본의 권력구조가 파괴된다면 조선 독립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글쎄요. 그러나 어떤 정치 형태이든 조선을 내놓지는 않을 겁니다. 가령 오가타 씨가 정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오가타 씨의 이상이 국리)를 저버릴 수 있을까요? 일본이 약해지든지 조선이 강해지든지 그 두 가지 이외 무엇이 있겠소." - P350

"난생처음 도방에 나오고 보이 해묵고 살 기이 있어야제요.
다리 밑에서 거적 깔고 문전걸식, 지난 일 말하믄 머하겠십니꺼 다 소앵이 없는 일이고 더럽운 세상 한탄한들 그것 다 소앵이 없지요. 왜놈이 철천지원수요. 인피를 써서 사람이지 삼강오륜도 모리는 짐승만도 못한 놈들, 품속에 땡전 한 푼 없어도나는 왜놈의 짐만은 안 집니더." 이지노인의 수염이 흔들렸다.
저녁을 끝낸 뒤 인실은 망연한 모습으로 벽에 기댄 채 땡전한 푼 없어도 왜놈의 짐은 안 진다는 노인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오가타를 의식한 때문이겠지만 그 말은 심장을 헤집고들어오듯 아팠다. 대일본제국의 판사 검사 되어보겠다고 최고학부를 나와서 또 머리 싸매고 고문 패스를 목표하는 수재들은 차별이 자심한 식민지정책을 원망하며 영광의 길이 멀고 먼 것을 한탄하는데,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노인이 삼강오륜을 앞세우며 땡전 한 푼 없어도 왜놈의 짐은 지지 않는다…………. - P359

압에 시달리는 우리 민족을 동정한다는 것은 모순이에요. …
어차피 문화란 다소간에 서로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건데 처지에 따라 강조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힘이 없다 해서 걸핏하면 중국을 들먹이는데 그건 의도적인 악의지요.
또 일본은 그럴 필요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구요. 한자의 경우도 그래요. 글자란 엄밀히 말해서 전달의 수단이지 내용은 아니지 않겠는가. 한자를 우대하기론 일본도 마찬가지였고 당신네들한테도 우리를 거쳐 중국 것이 들어갔고 또 우리 것도 가져갔다면 모화사상(慕華思想)에다 모조사상(思想)도 성립이되겠네요.
야나기의 그릇된 관점 중에 옳은 것이 하나 있어요. 조선의 예술은 고유한 것이며 독특하다고 한 그 말은 옳아요.
- P370

"칼로써 힘을 빼고 황폐해진 정신으로, 파괴가 있을 뿐 창조는없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즐겨 말하는 조선의 사대주의 그게 진실이라면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는 있을 수가 없지요. 평화는 무력(無力)이 아니에요. 평화는 한의 대상이며 생명에의 지향이에요. 오늘날 결과가 어떠했든, 이건 악의 승리, 하지만 결정은 아닌 거예요." - P374

"언젠가 요시노 사쿠조[作]선생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인 지휘에 반항하는 조선인을 불령도배(不逞徒輩)로 비난하는 논리에 대해서 선생은 적어도 도덕적으로 그들의입장은 부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했는데, 그분도 한계는 있었겠지만 우리의 정당함을 지적한 것은 훌륭했어요. 우리에겐 자비나 동정을 받을 이유가 없거든요. 요시노선생은 귀한 양심이었습니다. 일본 같은 나라에선 말예요. 왜냐하면 그분이 길러낸 수많은 제자, 영향을 받은 지식인도 적지 않았겠는데, 공산 - P379

주의를 논하고 사회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일본 군국주의 자본주의의 밑깔개가 되어 신음하는 조선에 대하여 거의 어떤 소리도 없었으니까요. - P380

야나기는 참아라, 바위에 깔리어 빈사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참아라! 폭력과 살생은 어느 쪽이든 나쁘다, 아아 비운의 민족이여!
하며 슬퍼했지요. 조선에서는 또, 소위 지식의 반풍수들이, 지적 댄디스트, 그리고 민족개조론 따위를 쓰는 기회주의자들이조선예술의 예찬자 야나기에게 박수를 보내고 감사 감격하며그런 자신을 애국자로 착각하여 또 감격하는데 한 마디로 치사해요. 골자를 얘기하자면 조선의 예술은 참담한 민족수난이 빚은 쓸쓸하고 비애에 젖은 아름다움이라, 야나기의 그런 관점의 저변에는 사대주의의 조선이란 의식이 짙게 깔려 있어요. 그는 예술만은 사대가 아니라 했거든요. …" - P380

"내 부친께서는 생각을 매우 잘못한 겁니다. 친일파란 합방되기 이전에 필요한 것, 합방이 되고 나면 쓰레기로변하는 것을 몰랐다, 세계만방에 체면 세우기 위하여 조선왕실을 일본황족으로 하고 친일파에겐 작위를 주고 그것도 일종의체면용일 뿐, 일본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영토와 자원과 노동력뿐이지요. 다 써먹고 이제는 필요없게 된 밥버러지가 뭐 그리반갑겠소. 죽어 없어지는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게요. 처량한 신세지요. 나의 부친은 매우 셈을 잘못한 겁니다. 작위를 받을 게 아니라 상놈으로 격하됐어야 옳았어요. 노역형(勞役刑)보다 금고형(禁鋼刑)이 가혹한 걸 몰랐지요. 대학을 나오면 뭣합니까? 손도 발도 내밀 수 없는데, 과거 조선문화에 대한 일본의콤플렉스는 그것을 말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 유산을많이 싸안고 있는 과거 지배층이 반가울 까닭이 있겠어요?" - P410

"나카노 시게하루도 있지요. 비내리는 시나가와역(品川驛)」말입니다. 신(辛)이여 잘 가거라, 김(金)이여 잘 가거라, 그대들은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에서 승차한다, 그 시를 쓴 나카노 시게하루."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는 시인이면서 소설가, 평론가이며 나프[NAPE, 全日本無産者藝術團體協議)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비 내리는 시나가와 역은 조선의 독립과 독립운동에 대한 뜨거운 지지를 나타낸 시다. - P411

"그렇소. 일본에서 말이오. 야나기는 조선의 예술은 사대(事大)가 아니라고 웃기는 강변(辯)을 했는데 문화에서 사대로 일관해온 일본의 역사가 증명하듯 지금 불고 있는 새 바람, 흐르고 있는 실개천도 분주하게 들여오는 서구문화에 묻어서 온것 아니오. 박래품 선호사상의 일단에 불과한 거요." - P412

"최초의 공산당 결성에 참가했었던 아카마쓰경우는 군주제 폐지를 지령한 코민테른에 반발하여 민주주의 획득에 이의는 없으나 국체 변혁을 주장할 필연성은 없다, 하고 오히려 반공으로 선회했는데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의 한 면을 살필 수 있는 예가 되겠지요. 그러한 아카마쓰를 비난할 만큼 내게는, 사실 이념이 투철하지 않습니다. 아카마쓰의 경우 군주제 폐지 때문에 선회했다면 그는 애초부터 공산당에 참가할 필요가 없었고 그는 우익인 것입니다. 사회개혁을 하더라도 일본주의아래서 한다, 일본주의가 뭡니까? 그건 황도주의(皇道主義), 절대로 천황을 부인할 순 없지요." - P415

"소위 공산주의 독재가 실현된다 하더라도 결코 국가주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저의 예상이지요. 어중이떠중이 그많은 급진파들이 조선독립에 대하여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관심이 없다기보다 기득권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나카노시게하루 같은 사람은 드물지요. 나카노는 커뮤니스트지만 나는 그를 사이교의 흐름에다 묶고 싶습니다. 아름다움은 청정하고 진실되고 착한 것이며 슬픔은, 대상에 대한 슬픔은 휴머니티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정신도 일본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 P416

"일본인은 현세적입니다. 본시부터 유물론이지요. 그런 비정한 것에 구멍을 뚫어주는 것이 바로 감상이며 쾌락주의입니다. 참 아까 저질의감상 얘길 하다 말았지요? 음 그렇지요, 저질의 감상이 일본만의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정도의 차인데 그 정도의 차이라는 것이 시간과 공간을 거치면서 어떤 결과를 낳는가 그것은 매우중대한 일인 것 같아요. 진부한 얘깁니다만, 적절한 예가 될는지……… 어떤 사람이 나카무라야[中村屋]의 소마 부부를 찬 - P418

양하더군요. 그들의 국경을 넘은 세계주의를 말입니다. 그때나는 찬양하는 사람도 그랬었지만 소오마부부에 대해 일종의혐오감을 느꼈어요. 신파조의 냄새가 물씬 나더란 말입니다.
인도의 망명객 포스의 후원자들, 그들의 낯짝들을 보면 뻔한것이지요. 도야마 필두로 하여 오카와大川周明, 이누를
가이犬養毅], 그 밖의 누구누구 모사가에다 정상배, 거물 정객들 아닙니까? 기왕의 식민지는 말할 나위도 없고 대륙 진출의야심으로 눈에 핏발이 선 면면들이 인도의 독립운동가를 비호한다? 하긴 그들이야 내놓은 사람들이지요. 이득을 위해선 어떤 것이든 정당화하니까요. 국익은 어떠한 악덕을 행해도 정의(正義)라 믿는 사람들이지요. 그들을 따라 장구 치면서 엔야 완야 하는 소마 부부, 그래 그들의 행위가 세계주의며 인류애라그 말입니까? 나는 그들에게 혐오를 느끼지만 그들을 통해서본 저질의 감상과 그릇된 시각과 뭔가 접근해보려는 심각함이결여된 위선에 좌절을 느낍니다. 게다가 소마는 기노시타 나오에의 친구로서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으니 넌센스지요. 지순했던 것을 광대춤으로 펼쳐놓고 우롱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 P419

화제의 소마 아이조[相馬愛藏]는 크림빵으로 유명해진 나카무라야의 주인이다. 노일전쟁 때 고토쿠 슈스이[秋水], 사카이]와 함께 비전론(非戰論)을 폈던 기노시타 나오에[木下尙江]는 기독교적 공산주의를 표방한 사상가이자 소설가인데, 소마는 그 - P419

의 친구로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며 유명한 빵가게인만큼명한 예술가들이 들락거려, 자연스럽게 살롱 비슷한 것을 형성하게 되고 소마 부부는 그들 예술가를 지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무렵 일본으로 망명한 인도의 독립투사 라스비봐리 포스는 추방령에 의해 관헌에게 쫓기는 몸이 되었는데 그를 숨겨주고 보호한 사람이 소마 부부였다. 오가타가 말했듯이 이 망명객을 후원한 정가의 거물들을 비추어 관헌으로부터 지켜준다는 행위에 연극적 요소가 없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소마 부부는 사랑하는 딸까지 포스에게 주면서 요란을 떨었고 소마의 처 요시는 남편보다 더 적극적이어서 눈먼 러시아의망명 시인 앨센코를 자택에서 보호했던 것이다. - P420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망고 2023-03-24 22: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토지 읽으면서 놀랐어요 작가님의 방대한 역사지식과 그시대 국제정세에 훤한 점 읽으면서 새롭게 안 사실도 많고요 토지 읽기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여요^^

그레이스 2023-03-24 23:03   좋아요 2 | URL
저두요!^^

거리의화가 2023-03-25 09:30   좋아요 2 | URL
앞에서도 느끼긴 했는데요. 14권은 정말 놀랄 노자였습니다. 시대적으로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공산주의 등이 등장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복잡해진 탓도 있지만 이것을 이해하지 않고 있으면 절대 작품 내에 녹여낼 수 없으니까요. 너무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님의 지식에 감탄합니다ㅠㅠ

희선 2023-03-25 02: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토지 하나를 쓰려고 박경리 님이 많은 자료를 찾아봤겠습니다 일본 정치 경제 역사 예술까지... 저는 그런 거 몰랐습니다 그때 한국 일만 나오는 건가 막연히 그렇게 생각한 듯합니다

거리의화가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3-25 09:31   좋아요 1 | URL
네. 당연히 자료 조사도 많이 하셨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인물의 감정 묘사도 놀랍지만 이런 전반적인 역사적 흐름을 잘 녹여내신 부분이 놀랍네요.
희선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독서괭 2023-03-25 0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머리에 쥐가 나고 정리까지 하시다니 역시 화가님! 저는 운전하며 듣다가 이런 내용만 나오면 자꾸 딴 생각하게 되어 ㅋㅋㅋㅋ 역사공부는 거의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흘려듣기라도 하니까..?? 박경리 선생님 대단하다는 건 알겠고요 ㅋㅋ

거리의화가 2023-03-25 09:34   좋아요 2 | URL
ㅎㅎㅎ 이렇게라도 정리 안하고 넘어가면 나중에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요. 어쨌든 기록은 남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저 인물들 조사 다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한국어 자료로 된 것을 찾는 일도 한계가 있을 것 같고;;;
ㅋㅋㅋ 운전하면서 이 내용 들으실 때 힘드셨을 것 같아요. 흘려들어도 괜찮습니다. 스토리만 대충 알아먹으면 되지요~ㅋㅋ 저도 거의 다 들어갑니다. 14권 막바지 남아 있어요! 괭님도 남은 권들 화이팅입니다!

독서괭 2023-03-25 10:01   좋아요 2 | URL
화이팅~ 몇년도 이야기까지 나오는 건지 궁금해요. 일부러 안 찾아보고 있어요ㅋ

새파랑 2023-03-25 11: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토지는 도대체 몇권짜리 책인가요? ㅋ 역시 꾸준한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3-03-25 11:31   좋아요 3 | URL
ㅎㅎ 20권입니다 새파랑님ㅋㅋ 요즘 자주 안 보이셔서 슬픕니다ㅠㅠ 바쁘더라도 건강 잘 챙기시길!
 

지금 우리가 나날이 미루는 것은 우리의 이별이 야기하는 그 견딜 수 없는 불안의 끝이 아니라, 어떤 돌파구도 없는 감동이 재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 P339

더이상 사랑하지 않을 때는, 망각이, 어쩌면 아련한 추억마저 불행한 사랑만큼 많은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걸 우리 모두는 안다. 스스로 인정한 적은 없으나, 내가 좋아한 것은 바로 미리 행해진 이런 망각, 그 아늑한 부드러움이었다. - P340

많은 경우 우리는 전력을 다해 노력하고 얼마 동안은 희망을 안고 산다. 그러나 행복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몇몇 상황을 극복하고 물리친다 해도, 자연은 이 투쟁을 밖에서 안으로 옮겨 와 우리 마음을 변하게 하며, 그리하여 이제 막 소유하려는 것과는 다른것을 욕망하게 한다. 또 사태가 너무 급변해서 우리 마음이 변할 시간이 없다 해도, 자연은 그 일로 우리를 물리치려는 희망 - P344

을 버리지 않고, 조금 뒤늦게라도 보다 정교하고 보다 효과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정복하려 한다. 그러므로 행복의 소유를 박탈당하는 것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이며, 아니, 오히려 자연이 어떤 악마적인 속임수를 통해 이런 소유 자체에 우리 행복을 파괴하는 임무를 맡겼는지도 모른다. 사건이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패한 후에 자연이 만드는 것은 최후의 불가능성, 즉 행복의 심리적 불가능성이다. 행복이란 현상은 일어나지 않거나 아니면 가장 비참한 반응을 자아낸다. - P3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 관.채 세가
6. 진.기 세가

무왕이 죽고 나서, 성왕의 나이가 어렸으므로 주공 단이 왕실을좌지우지했다. 관숙과 채숙은 주공의 행위가 성왕에게 불리하게 될까 의심하여 즉시 무경을 끼고 반란을 일으켰다. 주공 단은 성왕의명을 이어받아 무경을 쳐서 주살하고 관숙도 죽였으며, 채숙을 쫓아내어 그를 옮겨 살게 하면서 전차 열 대와 종 일흔 명을 주었다. 그리고 은나라 유민들을 두 부류로 나누었으니 그중 하나인 미자 계를송에 봉하여 은나라의 제사를 이어나가게 하고, 다른 하나인 강숙을 봉하여 위衛나라 임금으로 삼았으니 이 사람이 위 강숙衛康叔이다. 계 재를 염冉 땅에 봉했다. 염계와 강숙은 모두 좋은 품행을 가지고 있어서 이에 주공은 강숙을 천거하여 주나라 사구司형법과 규찰담당관로 임명하였고, 염계를 주나라의 토목공사 등 담당관으로 삼아 성왕이 다스리는 것을 돕게 하니 그들은 모두 천하에 아름다운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 P180

애후 11년, 당초 애후가 진나라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식후息侯식나라의 제후 또한 진나라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식 부인息夫ㅅ이 시집가는 길에 채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애후가 불경스럽게 대했다. 식후는 노여워하며 초나라 문왕文王에게 청하여 말했다.
"우리나라를 공격해 오는 척하여 내가 채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하면 나라가 반드시 올 테니 초나라가 이 틈을 타 그들을 공격하면공을 세울 수 있습니다."
초나라 문왕은 그의 말에 따랐고 채나라 애후를 사로잡아 귀국했다. 예후는 초나라에 구 년간 억류되어 있다가 초나라에서 세상을떠났다. 애후는 모두 이십 년 동안 자리에 있다가 죽었다. - P182

목후는 그의 여동생을 제나라 환공에게 시집보냈다. [목후] 18년,
제나라 환공이 채희와 뱃놀이를 하는데 부인채희이 배를 흔들자 환공이 그만두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멈추지 않자 환공이 노여워하여 채희를 돌려보냈는데 관계를 끊지는 않았다. 채후목후가 여동생이 돌아온 것을 보고] 화가 나 그의 여동생을 다른 곳에 시집보내버렸다. 제나라 환공은 노여워하며 채나라를 쳤다. 채나라는 무너져마침내 목후가 사로잡혔고, 제나라는 다시 남쪽 초나라 소릉까지 이르렀다. 얼마 있다가 제후들이 채나라를 위하여 제나라 환공에게 사죄하자 제나라 환공은 채후를 채나라로 돌아가게 했다. - P183

〔영후] 12년, 초나라 영왕이 영후로 하여금 그의 아버지를 시해하게 하고는 채 영후를 신초나라의 읍 이름 땅까지 꾀어내, 병사들을매복시켜 놓고 그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다음 그를 죽이고, 그의사졸 일흔 명도 함께 죽였다. 공자 기질로 하여금 채나라를 포위하도록 했다. 11월, 채나라를 멸망시키고 기질을 채공蔡公채현蔡縣의 현령이란 의미으로 삼았다. - P184

태사공은 말한다.
"숙과 채숙이 반란을 일으킨 일은 기록해 둘 만하기에 충분치않다. 그런데 주나라 무왕이 붕어하고 [뒤이은] 성왕은 어렸으므로천하 사람들이 의심하게 되자 동복동생인 성숙과 염계와 같은 무리여남은 명이 보필하였다. 이로 인하여 제후들이 결국 주나라를 받들게 되었으므로 그들의 사적을 세가』속에 덧붙여 두기로 한다." - P188

공공 16년, 진나라의 공자 중이가 달아나는 길에 조曹나라에 들렀는데, 조나라 왕이 예의 없이 대하니 중이는 기회를 보아 그의 갈비뼈를 부러뜨리려고 했다. 희부기釐負羈가 [조나라 왕에게] 간언했으나 듣지 않자 중이에게 사사로이 잘 대해 주었다.
[공공] 21년, 진나라 문공 중이가 조나라를 정벌하여 공공을 붙잡아 귀국하면서 군사들로 하여금 희부기의 종족이 살고 있는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도록 했다.
어떤 사람이 진나라 문공을 설득하여 말했다.
"예전에 제나라 환공이 제후들을 모았을 때 다른 성씨의 나라들도 회복시켜 주었는데, 지금 군주께서는 조나라 임금을 가두고 같은성씨의 제후를 없애려 하니 어찌 제후들에게 명을 내리실 수 있겠습니까?" - P190

백양 3년, 나라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많은 무리들이 사궁宮사직의 토지 신에게 제사 지내는 묘당에 모여 조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모의하고 있으려니 조숙 진탁이 제지하면서 공손강이 정치를 할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청하자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다. 아침이 되어조나라에서 찾아보았지만 이런 사람은 없었다. 꿈을 꾼 자가 자신의아들에게 경계하여 말했다.
"내가 죽고 나서 네가 공손강이 정치하게 된다는 소문을 듣거든 반드시 조나라를 벗어나 조나라의 재난을 만나는 일이 없도록해라!"
백양은 자리에 오른 뒤에 사냥하는 일을 즐겼다. [백양] 6년, 조나라의 벼슬하지 않은 사람 공손강도 사냥을 좋아하여, 흰 기러기를잡아 백양에게 바치고는 사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에게이 틈에 정치적인 일을 말했다. 백양은 매우 기뻐하면서 그를 총애하게 되어 그에게 사성司이라는 자리를 주어 정치에 관한 일을들었다. 꿈을 꾸었던 사람의 아들은 즉시 [조나라에서) 달아났다. - P192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조나라의 공공이 희부기를 등용하지 않고, 〔대부大夫들이타는 수레에 미녀 삼백 명을 태웠다는 것을 검토해 보니 오직 덕이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탁이 꿈에 나타난 것은 어찌 조나라의 제사를 보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만일 공손강이 그의 정치를 제대로 닦지 아니하였다면 숙 탁의 제사가 소홀하게 되었을 것인저!" - P193

진陳나라의 호공 만滿은 우나라 임금 순舜의 후예다. 옛날에 순임금이 서민이었을 때 요堯임금이 두 딸을 그에게 아내로 주어규예嬀訥에서 살도록 했다. 그의 후손들이 그것을 성씨로 삼았으므로 규씨嬀氏를 성으로 삼은 것이다. 순임금이 붕어하고 나서 천하를 우禹임금에게 전해 주었고, 순임금의 아들 상균에게 나라를봉해 주었다. 하후夏后의 시대에 [순임금의 후손들 중에 어떤 사람은 [봉국을] 잃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계속 이어나가기도 했다.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 주왕을 멸망시키고 나서 비로소 순임금의 후예들을 찾다가 규만을 얻게 되자, 그를 진陳 땅에 봉하여 순임금의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으니 이 사람이 호공이다. - P197

여공은 나라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 여자가 채나라 사람과 음란한 짓을 하였고 여공도 여러 차례 채나라에 가서 음란한짓을 했다.
[여공] 7년, 여공에 의해 피살된 환공의 태자 면의 세 형제는 장남을 약躍이라 하고, 가운데를 임林이라 하고, 막내를 저구杵臼라 한다. (그들] 모두 채나라 여인으로 하여금 여공을 유혹하게 하여 그여자를 좋아하게 하고는 나라 사람들과 함께 여공을 죽이고 약을자리에 오르게 했으니, 이 사람이 이공이다. - P199

[선공] 21년, 선공은 나중에 애첩을 두었는데 그녀가 아들 관봤을낳자, 그를 자리에 오르게 하고 싶어 곧 그의 태자 어구御寇를 죽였다. 어구는 평소에 여공의 아들인 완完을 아꼈는데, 완은 화가 자기에게까지 미칠까 두려워 곧바로 제나라로 달아났다. 제나라 환공이진陳나라 완으로 하여금 경이 되게 하려고 하자, 완이 말했다.
"이리저리 떠도는 신하인 제가 다행히 화를 면하게 된 것은 당신의 은혜 덕분이니, 감히 높은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환공은 그를 공정백공의 관직을 총괄함으로 삼았다. 제나라의중懿仲대부 이름이 진경중을 사위로 맞고 싶어서 점을 쳤더니점치는 자가 말했다.
"이는 봉황 두 마리가 날며 함께 우는 소리가 대단한 것이로다.
씨 성의 후손은 강씨 성의 나라에서 성장하게 될 것이다."(그의)오 대 자손들은 창성하여 정경正卿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며, 팔대 이후에는 그보다 높은 자리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 P200

[영공] 14년, 영공은 그의 대부大夫인 공녕孔寧, 의행보儀行父와함께 하희夏나라 목공의 딸이며 진나라 대부 어숙御叔의 아내와 사통하고는 그녀의 옷을 입고 조정에서 희롱했다. 설야(진陳나라 대부)가 간하여 말했다.
"임금과 신하가 음란하니 백성들이 무엇을 본받겠습니까?" - P201

영공이 간통한 두 대부에게 [설야의 간언을 밀고하자 두 대부는 설야를 죽일 것이니 영공은 말리지 말라고 하고는 마침내 설야를죽였다.
〔영공] 15년, 영공은 두 사람공녕과 의행보과 하씨夏氏 집에서 술을마셨다. 영공이 두 대부를 놀리며 말했다.
"징서희의 아들가 그대를 닮았소이다!"
두 대부는 대답했다.
"또한 공을 닮기도 했지요."
징서는 노여워했다. 영공이 술자리를 끝내고 나올 때 징서가 마구간 문에 쇠뇌를 숨기고 있다가 영공을 쏘아 죽였다. 공녕과 의행보는 모두 초나라로 달아났고, 영공의 태자 오는 진나라로 달아났다. 징서가 스스로 자리에 올라 진후陳侯가 되었다. 징서는 본래 진陳나라의 대부大夫였다. 하희는 어숙御叔의 아내이며, 징서의 어머니이다. - P202

[애공] 34년, 당초에 애공은 정나라의 여자들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큰부인이 도태자를 낳고, 작은부인이 언偃을 낳았다. 두 애첩도 있었으니, 큰첩이 유留를 낳았고, 작은첩이 승勝을 낳았다. 유는 애공에게 유독 총애를 받았는데 애공은 그의 동생 사도徒 초招에게 유를 부탁했다. 애공이 병이 들자, 이해 3월에 초는 도태자를 죽이고, 유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애공이 노여워하여 초를죽이려고 하자 초가 군대를 일으켜 애공을 포위하니 애공은 스스로목을 매어 죽었다. 초는 드디어 유를 세워진陳나라 임금으로 삼았다. 4월에 진陳나라가 초나라에 사신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초나라 영왕은 진나라에 난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는 진나라 사자를 죽이고 공자 기질로 하여금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치게 하니, 진나라군주 유는 정나라로 달아났다. 9월에 초나라가 진나라를 포위했다.
11월에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기질로 하여금 진공으로 삼았다.
초가 도태자를 죽였을 때, 태자의 아들은 이름이 오吳였는데 진晉나라로 달아났다. - P204

초나라 영왕이 진나라를 멸망시킨 지 오년 만에 초나라 공자 기질이 영왕을 시해하고 대신 왕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 사람이 평왕이다. 평왕이 막 [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 제후들과 잘 지내려고 옛날 진陳나라 도태자 사의 아들 오를 찾아내 그를 진후陳侯로 세웠으니, 이 사람이 혜공이다. 혜공이 자리에 올라 애공이 죽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 이어받아 그해를 원년으로 삼았으니 비어 있는 기록이 오년이나 된다. - P205

기나라의 동루공東樓公은 하후夏后 우禹의 후손이었다. 은나라때에 때로는 제후에 봉해지기도 하였고, 때로는 끊어지기도 했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멸망시키고 나서 우임금의 후손을 찾아내 동루공을 얻게 되어 [무왕은 그를 기로 땅에 봉하고는 하후씨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 P207

주나라 무왕 때에는 후백侯伯에 봉해진 자들이 거의 일천 명이 넘는다. 유왕과 여왕 이후에 이르러 제후들이 무력으로 공격하면서 서로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 강江, 황黃, 호胡, 침沈과 같은 국가들은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 채집하여 전에 기록하지 않는다.
태사공은 말한다.
"순의 덕행은 지극하다고 말할 만하구나! 하우에게 제위를 양보했지만, 후손들이 제사를 지킨 것이 삼대하, 은, 주를 거치면서어졌다. 초나라가 진나라를 멸망시키자, 전상이 제나라에서 정권을 장악하여 마침내 나라를 세우게 되었고 백 대代에 이르도록 끊어짐이 없었고 자손들도 수가 많았으며, 봉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우禹에 이르러 주대周代 때 오로지 기나라만이 너무나 작은 나라여서 그것을 헤아릴 수도 없다." - P2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十一月 過魯 以太牢 祠孔子 上還過沛宮 置酒 悉召故人父老 酒酣 上自爲歌起舞 泣謂沛父兄曰 游子悲故鄕 朕自沛公 以誅暴逆 遂有天下 其以沛 爲朕湯沐邑〈出史本紀〉

황제가 고향을 지나 주연을 베풀어 옛 친구와 웃어른들을 불러 모아 놓고 술이 취하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가 부른 노래가 대풍가다.

< 대풍가 > - by 유방
大風起兮雲飛揚
威加海內兮歸故鄉
安得猛士兮守四方
대풍(大風 -> 본인을 말함)이 일어나서 구름을 날렸도다.
해내(海內)에 위엄을 떨치고 고향으로 왔도다!
이에 용맹한 장사를 얻어서 사방(四方)을 지키리라!

○ 上從破布歸 疾益甚 愈欲易太子 張良諫不聽 叔孫通 諫曰 晉獻公 以驪姬之故 廢太子 立奚齊 晉國亂者數十年 秦以不蚤(早)定扶蘇 令趙高 得以詐立胡亥 自使滅祀 此陛下所親見 今太子仁孝 天下皆聞之 陛下必欲廢適(嫡)而立少 臣願先伏誅 以頸血汙地 帝曰 吾直戲耳 叔孫通曰 太子天下本 本一搖 天下震動 奈何以天下戲乎 時大臣固爭者多 上知群臣心 皆不附趙王 乃止不立 〈出史叔孫通傳〉

한 고조가 병이 심해져서 태자를 바꾸고자 하였다. 장량이 간했으나 듣지 않았고 숙손통이 뼈 때리는 말로 간언(태자가 효성스러운데 굳이 적자를 폐하고 태자를 교체한다면 자신은 죽어 목의 피로써 땅을 더럽히겠다)하니 그제서야 자신이 한 말은 농담이었을 뿐이라며 물러선다. 이제 태자 교체책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