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왕이 죽고 나서, 성왕의 나이가 어렸으므로 주공 단이 왕실을좌지우지했다. 관숙과 채숙은 주공의 행위가 성왕에게 불리하게 될까 의심하여 즉시 무경을 끼고 반란을 일으켰다. 주공 단은 성왕의명을 이어받아 무경을 쳐서 주살하고 관숙도 죽였으며, 채숙을 쫓아내어 그를 옮겨 살게 하면서 전차 열 대와 종 일흔 명을 주었다. 그리고 은나라 유민들을 두 부류로 나누었으니 그중 하나인 미자 계를송에 봉하여 은나라의 제사를 이어나가게 하고, 다른 하나인 강숙을 봉하여 위衛나라 임금으로 삼았으니 이 사람이 위 강숙衛康叔이다. 계 재를 염冉 땅에 봉했다. 염계와 강숙은 모두 좋은 품행을 가지고 있어서 이에 주공은 강숙을 천거하여 주나라 사구司형법과 규찰담당관로 임명하였고, 염계를 주나라의 토목공사 등 담당관으로 삼아 성왕이 다스리는 것을 돕게 하니 그들은 모두 천하에 아름다운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 P180
애후 11년, 당초 애후가 진나라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식후息侯식나라의 제후 또한 진나라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식 부인息夫ㅅ이 시집가는 길에 채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애후가 불경스럽게 대했다. 식후는 노여워하며 초나라 문왕文王에게 청하여 말했다. "우리나라를 공격해 오는 척하여 내가 채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하면 나라가 반드시 올 테니 초나라가 이 틈을 타 그들을 공격하면공을 세울 수 있습니다." 초나라 문왕은 그의 말에 따랐고 채나라 애후를 사로잡아 귀국했다. 예후는 초나라에 구 년간 억류되어 있다가 초나라에서 세상을떠났다. 애후는 모두 이십 년 동안 자리에 있다가 죽었다. - P182
목후는 그의 여동생을 제나라 환공에게 시집보냈다. [목후] 18년, 제나라 환공이 채희와 뱃놀이를 하는데 부인채희이 배를 흔들자 환공이 그만두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멈추지 않자 환공이 노여워하여 채희를 돌려보냈는데 관계를 끊지는 않았다. 채후목후가 여동생이 돌아온 것을 보고] 화가 나 그의 여동생을 다른 곳에 시집보내버렸다. 제나라 환공은 노여워하며 채나라를 쳤다. 채나라는 무너져마침내 목후가 사로잡혔고, 제나라는 다시 남쪽 초나라 소릉까지 이르렀다. 얼마 있다가 제후들이 채나라를 위하여 제나라 환공에게 사죄하자 제나라 환공은 채후를 채나라로 돌아가게 했다. - P183
〔영후] 12년, 초나라 영왕이 영후로 하여금 그의 아버지를 시해하게 하고는 채 영후를 신초나라의 읍 이름 땅까지 꾀어내, 병사들을매복시켜 놓고 그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다음 그를 죽이고, 그의사졸 일흔 명도 함께 죽였다. 공자 기질로 하여금 채나라를 포위하도록 했다. 11월, 채나라를 멸망시키고 기질을 채공蔡公채현蔡縣의 현령이란 의미으로 삼았다. - P184
태사공은 말한다. "숙과 채숙이 반란을 일으킨 일은 기록해 둘 만하기에 충분치않다. 그런데 주나라 무왕이 붕어하고 [뒤이은] 성왕은 어렸으므로천하 사람들이 의심하게 되자 동복동생인 성숙과 염계와 같은 무리여남은 명이 보필하였다. 이로 인하여 제후들이 결국 주나라를 받들게 되었으므로 그들의 사적을 세가』속에 덧붙여 두기로 한다." - P188
공공 16년, 진나라의 공자 중이가 달아나는 길에 조曹나라에 들렀는데, 조나라 왕이 예의 없이 대하니 중이는 기회를 보아 그의 갈비뼈를 부러뜨리려고 했다. 희부기釐負羈가 [조나라 왕에게] 간언했으나 듣지 않자 중이에게 사사로이 잘 대해 주었다. [공공] 21년, 진나라 문공 중이가 조나라를 정벌하여 공공을 붙잡아 귀국하면서 군사들로 하여금 희부기의 종족이 살고 있는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도록 했다. 어떤 사람이 진나라 문공을 설득하여 말했다. "예전에 제나라 환공이 제후들을 모았을 때 다른 성씨의 나라들도 회복시켜 주었는데, 지금 군주께서는 조나라 임금을 가두고 같은성씨의 제후를 없애려 하니 어찌 제후들에게 명을 내리실 수 있겠습니까?" - P190
백양 3년, 나라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많은 무리들이 사궁宮사직의 토지 신에게 제사 지내는 묘당에 모여 조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모의하고 있으려니 조숙 진탁이 제지하면서 공손강이 정치를 할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청하자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다. 아침이 되어조나라에서 찾아보았지만 이런 사람은 없었다. 꿈을 꾼 자가 자신의아들에게 경계하여 말했다. "내가 죽고 나서 네가 공손강이 정치하게 된다는 소문을 듣거든 반드시 조나라를 벗어나 조나라의 재난을 만나는 일이 없도록해라!" 백양은 자리에 오른 뒤에 사냥하는 일을 즐겼다. [백양] 6년, 조나라의 벼슬하지 않은 사람 공손강도 사냥을 좋아하여, 흰 기러기를잡아 백양에게 바치고는 사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에게이 틈에 정치적인 일을 말했다. 백양은 매우 기뻐하면서 그를 총애하게 되어 그에게 사성司이라는 자리를 주어 정치에 관한 일을들었다. 꿈을 꾸었던 사람의 아들은 즉시 [조나라에서) 달아났다. - P192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조나라의 공공이 희부기를 등용하지 않고, 〔대부大夫들이타는 수레에 미녀 삼백 명을 태웠다는 것을 검토해 보니 오직 덕이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탁이 꿈에 나타난 것은 어찌 조나라의 제사를 보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만일 공손강이 그의 정치를 제대로 닦지 아니하였다면 숙 탁의 제사가 소홀하게 되었을 것인저!" - P193
진陳나라의 호공 만滿은 우나라 임금 순舜의 후예다. 옛날에 순임금이 서민이었을 때 요堯임금이 두 딸을 그에게 아내로 주어규예嬀訥에서 살도록 했다. 그의 후손들이 그것을 성씨로 삼았으므로 규씨嬀氏를 성으로 삼은 것이다. 순임금이 붕어하고 나서 천하를 우禹임금에게 전해 주었고, 순임금의 아들 상균에게 나라를봉해 주었다. 하후夏后의 시대에 [순임금의 후손들 중에 어떤 사람은 [봉국을] 잃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계속 이어나가기도 했다.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 주왕을 멸망시키고 나서 비로소 순임금의 후예들을 찾다가 규만을 얻게 되자, 그를 진陳 땅에 봉하여 순임금의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으니 이 사람이 호공이다. - P197
여공은 나라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 여자가 채나라 사람과 음란한 짓을 하였고 여공도 여러 차례 채나라에 가서 음란한짓을 했다. [여공] 7년, 여공에 의해 피살된 환공의 태자 면의 세 형제는 장남을 약躍이라 하고, 가운데를 임林이라 하고, 막내를 저구杵臼라 한다. (그들] 모두 채나라 여인으로 하여금 여공을 유혹하게 하여 그여자를 좋아하게 하고는 나라 사람들과 함께 여공을 죽이고 약을자리에 오르게 했으니, 이 사람이 이공이다. - P199
[선공] 21년, 선공은 나중에 애첩을 두었는데 그녀가 아들 관봤을낳자, 그를 자리에 오르게 하고 싶어 곧 그의 태자 어구御寇를 죽였다. 어구는 평소에 여공의 아들인 완完을 아꼈는데, 완은 화가 자기에게까지 미칠까 두려워 곧바로 제나라로 달아났다. 제나라 환공이진陳나라 완으로 하여금 경이 되게 하려고 하자, 완이 말했다. "이리저리 떠도는 신하인 제가 다행히 화를 면하게 된 것은 당신의 은혜 덕분이니, 감히 높은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환공은 그를 공정백공의 관직을 총괄함으로 삼았다. 제나라의중懿仲대부 이름이 진경중을 사위로 맞고 싶어서 점을 쳤더니점치는 자가 말했다. "이는 봉황 두 마리가 날며 함께 우는 소리가 대단한 것이로다. 씨 성의 후손은 강씨 성의 나라에서 성장하게 될 것이다."(그의)오 대 자손들은 창성하여 정경正卿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며, 팔대 이후에는 그보다 높은 자리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 P200
[영공] 14년, 영공은 그의 대부大夫인 공녕孔寧, 의행보儀行父와함께 하희夏나라 목공의 딸이며 진나라 대부 어숙御叔의 아내와 사통하고는 그녀의 옷을 입고 조정에서 희롱했다. 설야(진陳나라 대부)가 간하여 말했다. "임금과 신하가 음란하니 백성들이 무엇을 본받겠습니까?" - P201
영공이 간통한 두 대부에게 [설야의 간언을 밀고하자 두 대부는 설야를 죽일 것이니 영공은 말리지 말라고 하고는 마침내 설야를죽였다. 〔영공] 15년, 영공은 두 사람공녕과 의행보과 하씨夏氏 집에서 술을마셨다. 영공이 두 대부를 놀리며 말했다. "징서희의 아들가 그대를 닮았소이다!" 두 대부는 대답했다. "또한 공을 닮기도 했지요." 징서는 노여워했다. 영공이 술자리를 끝내고 나올 때 징서가 마구간 문에 쇠뇌를 숨기고 있다가 영공을 쏘아 죽였다. 공녕과 의행보는 모두 초나라로 달아났고, 영공의 태자 오는 진나라로 달아났다. 징서가 스스로 자리에 올라 진후陳侯가 되었다. 징서는 본래 진陳나라의 대부大夫였다. 하희는 어숙御叔의 아내이며, 징서의 어머니이다. - P202
[애공] 34년, 당초에 애공은 정나라의 여자들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큰부인이 도태자를 낳고, 작은부인이 언偃을 낳았다. 두 애첩도 있었으니, 큰첩이 유留를 낳았고, 작은첩이 승勝을 낳았다. 유는 애공에게 유독 총애를 받았는데 애공은 그의 동생 사도徒 초招에게 유를 부탁했다. 애공이 병이 들자, 이해 3월에 초는 도태자를 죽이고, 유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애공이 노여워하여 초를죽이려고 하자 초가 군대를 일으켜 애공을 포위하니 애공은 스스로목을 매어 죽었다. 초는 드디어 유를 세워진陳나라 임금으로 삼았다. 4월에 진陳나라가 초나라에 사신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초나라 영왕은 진나라에 난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는 진나라 사자를 죽이고 공자 기질로 하여금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치게 하니, 진나라군주 유는 정나라로 달아났다. 9월에 초나라가 진나라를 포위했다. 11월에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기질로 하여금 진공으로 삼았다. 초가 도태자를 죽였을 때, 태자의 아들은 이름이 오吳였는데 진晉나라로 달아났다. - P204
초나라 영왕이 진나라를 멸망시킨 지 오년 만에 초나라 공자 기질이 영왕을 시해하고 대신 왕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 사람이 평왕이다. 평왕이 막 [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 제후들과 잘 지내려고 옛날 진陳나라 도태자 사의 아들 오를 찾아내 그를 진후陳侯로 세웠으니, 이 사람이 혜공이다. 혜공이 자리에 올라 애공이 죽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 이어받아 그해를 원년으로 삼았으니 비어 있는 기록이 오년이나 된다. - P205
기나라의 동루공東樓公은 하후夏后 우禹의 후손이었다. 은나라때에 때로는 제후에 봉해지기도 하였고, 때로는 끊어지기도 했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멸망시키고 나서 우임금의 후손을 찾아내 동루공을 얻게 되어 [무왕은 그를 기로 땅에 봉하고는 하후씨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 P207
주나라 무왕 때에는 후백侯伯에 봉해진 자들이 거의 일천 명이 넘는다. 유왕과 여왕 이후에 이르러 제후들이 무력으로 공격하면서 서로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 강江, 황黃, 호胡, 침沈과 같은 국가들은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 채집하여 전에 기록하지 않는다. 태사공은 말한다. "순의 덕행은 지극하다고 말할 만하구나! 하우에게 제위를 양보했지만, 후손들이 제사를 지킨 것이 삼대하, 은, 주를 거치면서어졌다. 초나라가 진나라를 멸망시키자, 전상이 제나라에서 정권을 장악하여 마침내 나라를 세우게 되었고 백 대代에 이르도록 끊어짐이 없었고 자손들도 수가 많았으며, 봉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우禹에 이르러 주대周代 때 오로지 기나라만이 너무나 작은 나라여서 그것을 헤아릴 수도 없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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