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풍경 - 문자의 탄생과 변주에 담긴 예술과 상상력
이승훈 지음 / 사계절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자는 어렵다. 왜 어려울까. '외운다', '외워야 한다'는 압박이 있어서가 아닐까. 몇 년전 한자능력검정시험을 몇 차례 본 적이 있었다. 시험 결과는 참패였으나 시도를 한 것만으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무렵 대체 왜 한자에 꽂혔는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한국사를 공부하고 고문헌에 등장하는 수많은 한자를 사전을 찾지 않고도 읽어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겨서였던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이나 고려사 등 한국사의 기본적인 문헌들은 번역화되어 온라인에서 제공되고 있으나 고려 시대 이전의 역사일수록, 그리고 국가의 기록이 아닌 개인의 기록일수록 번역이 되어 있지 않거나 번역이 되어 있다고 해도 일부는 사전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근대 신문이나 기사 같은 경우에도 이미지만 제공되는 경우가 있어 한자를 모르면 읽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국의 '사서'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한자능력검정시험에서 고배를 마시고 회의가 찾아왔다. '내 수준이 이렇게 처참한가? 내가 너무 호기를 부렸나?' 그랬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역시 부담이 되기도 하고 내 스타일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때문에 공부 방식을 바꾸었다. 고전을 읽는 것을 목표로 한 뒤 한자의 원리와 부수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자소학, 추구, 명심보감, 천자문,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이렇게 공부를 이어간 것이다. 중용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중단하고 지금은 역사서인 통감절요를 읽고 있다.

이 책은 최초의 한자가 시작된 시기부터 한자가 지금의 문자로 오기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다. 제목을 보고 의아했다. 언뜻 생각하면 '한자의 역사' 또는 '한자의 기원' 이런 제목을 써도 무방한데 왜 '한자의 풍경'일까. 서문에 그 답이 있었다.

풍경(風景)은 한눈에 보이는 자연의 모습을 말한다. 여기에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 포함된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 경치에는 풍경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풍경이란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 그 자체를 나타내기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연 경치를 나타내는 이 단어에 風 자가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
갑골문 風 자를 보면 처음부터 바람을 나타내는 글자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風 자는 머리에 장식을 하고 깃털이 많은 봉황새의 모습이다. 지금의 봉 (鳳) 자와 같은 글자였다. 이 글자는 사방(四方)을 다스리는 바람신들이 데리고 다녔던 새를 표현한 것이다. 공기의 기압 차로 바람이 생기는 현상을 알 리 없었던 옛날 사람들은 바람이란 바로 이 바람신들이 불어서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신들이 데리고 다닌 새를 나타내는 鳳 자로 바람을 표현했다. 한자를 만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대상을 표현할 때 그것의 형태나 속성에 매몰되지 않고 발상의 전환을 통한 상상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지식이 늘어나고 바람신에 대한 숭배도 시들해지면서 글자 한가운데에 벌레 충 (蟲) 자가 들어간 지금의 초라한 風 자가 만들어졌다.
이런 사연을 가진 風 자는 그래서 자연 상태의 바람을 나타내기보다는 인간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는 데 더 많이 사용된다. (...) 풍경이란 바람 부는 날의 경치가 아니라,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 부지런히 다니던 신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이 된다. - P005~006

풍경은 사람의 시선이 포함된 단어다. 저자는 한자가 지금의 모습이 갖추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독자의 시선이 따라가며 이해하는 과정을 생각해 '풍경'이라는 단어를 고른 것 같다. 참 멋진 단어를 선택한 듯 싶다.

책에는 신석기 시대 토기에 새겨진 도형화된 무늬부터 거북이 등껍질 같은 동물의 뼈에 갑골문을 새긴 사람들, 청동기 시대 신에게 기도하고 제사를 위해 문자를 새기기 시작한 주나라 사람들, 최초의 행정적 문서 체계를 완성한 진나라 사람들, 목간과 죽간에 글자를 기록하다 종이라는 매체를 발명하여 기록하게 되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풍경처럼 펼쳐진다.

대부분의 문자는 구체적인 사물을 형태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하여 복잡한 개념을 표현하는 것으로 발전해가지만 사물과 개념에 대응하는 글자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문자는 사물에 대응하는 표의기호에서 표음기호로 변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한자는 다른 문자와 달리 표음기호가 아닌 원래의 표의적 기능을 유지한 유일한 문자이다. 그래서 한자는 소리가 아닌 시각적인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개념을 글자화하기에 난관에 부딪힌다. 이미지화한 수많은 글자를 기억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화적(이미지)으로 구성된 한자에 표음적 기능이 추가된 형성자가 추가되었다.

최초의 한자 문자라 할 수 있는 갑골문은 사물의 형태를 나타내는 상형문자, 개념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표의문자, 음을 표시하는 형성문자로 구성된다. 오늘날의 한자의 구성 원리의 대부분을 담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상형자, 회의자, 형성자만으로 뜻을 표현할 수 없는 경우 가차자(대명사나 각종 부정사 같은 요소에 발음이 유사한 글자를 빌려와 사용)를 쓴다.
갑골문의 자획은 대부분 직선으로만 구성되며 곡선은 거의 찾기 어렵다. 당연하다. 뼈에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하여 글자를 새겨야 하니 곡선은 긋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죽간에 붓을 사용하여 글자를 새기기도 했으나 뼈나 돌에 새기는 것보다 오래 유지되지 못했기에 뼈나 돌이 더 많이 사용되었던 것 같다.


갑골문의 모양을 보면 한자가 쉽게 유추된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왜 현대의 한자는 갑골문과 달리 모습이 이렇게 달라졌을까. 서체의 발전에 따라 한자는 점차 간소화될 필요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예전의 기원을 찾기 어려워진 탓이다.
금문 시기까지만 해도 한자의 모양을 보고서 글자를 어느 정도는 유추 가능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자는 사실 한자 모양만 봐서는 쉽사리 유추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외워야 하는 압박이 생기는 것일까.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고 행정 체계를 갖추면서 많은 양의 문서가 생산되었다. 그런데 각 지역의 문자들이 달라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진시황은 통일된 서체를 개발하도록 명령한다. 승상 이사가 이전에 사용하던 주문이라는 글자체를 기반으로 좀 더 간략화된 문자인 소전(小篆)을 만든다. 이렇게 소전체는 한나라 초기까지 행정용 문서체로 사용되었다.
소전의 자형은 세로로 길쭉하고 모서리가 부드러우며 필획 두께가 일정하다. 또한 글자가 모두 균등한 크기로 질서 있게 배열되었다. 소전을 쓸 때는 모필의 한가운데 힘을 준 상태로 처음부터 끝까지 균등한 획을 긋는 중봉(中峯) 기법을 사용한다. 이처럼 각 획의 일정한 두께 덕분에도 도장을 새길 때 편리했다. - P407
소전체는 일정한 글자체로 대칭적이라 후대 전각이나 도장에 널리 사용된다.
그러나 붓을 잡은 손에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힘을 주어야 하는 중봉 기법은 많은 양의 문서 작성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이 때문에 공식적인 문서에는 소전체를 사용했으나 일반적으로는 예서체를 사용했다고 한다.
소전이 세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라면 예서는 옆으로 퍼져 가로로 넓은 직사각형 형태이다. 소전의 글자 모서리가 둥글다면 예서는 곧게 펴진다. 소전이 글자 전체를 감싸는 필세로 구성되었다면 예서는 글자의 마지막 부분이 독립적으로 갈라져 날아갈 듯한 파책이라는 독특한 삐침 양상을 보인다. - P420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의 특징은 예서에서 비롯되었다. 소전체는 이전의 회화적 요소가 남아 있으나 예서체는 오늘날의 한자처럼 완전히 기호화된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해서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서체이다.
해서의 가장 큰 특징은 파책으로 구현된다. 가로획의 오른쪽 끝이 위로 치켜 올라간 것이다. 세로획은 예서와 큰 차이가 없다. 예서는 좌우대칭을 원칙으로 하지만 해서는 오른쪽 파책을 강조하기 때문에 대칭이 무너진다. 전서와 예서는 붓을 곧추세우고 붓의 중심이 선획의 중심을 통과하는 중봉이라는 서법을 유지하지만, 예서에서는 가로획을 쓸 때는 파책을 강조하여 중봉이 흐트러지고 붓을 옆으로 대고 모나게 꺾는 잠두연미를 만들어낸다. 해서는 가로획의 오른쪽 끝을 오른쪽 위로 치켜 긋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잠두연미로 표현되는 예서의 오른쪽 끝부분과 차이가 난다.
해서의 대표 주자는 왕희지다. 왕희지 필법은 서예를 하는 사람 치고 모르는 이들이 없다. 그만큼 유명한데 정작 그의 해서체 예술작인 「난정서」는 원본이 없고 모사본만 존재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몇 차례 서예 전시를 가고 서예를 잠시 배우기도 하면서 한자의 수많은 글자체를 보며 매혹을 느꼈다. '전각'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다가 전시를 하나 둘 보면서 그 오묘한 세계에 빠져들기도 했었고(전각의 대가인 오세창, 김태석) 방학 기간 한달 동안 서예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一(한 일)'자만 미친 듯이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학우들과 선생님께서 쓴 글씨를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금석학의 대가였던 김정희를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중국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실력이었다고).

간략하게 책 소개를 이 정도로 마치고자 한다.

이 책은 놀랍도록 재밌는 책이다. 5백여페이지가 순삭되는 체험을 했다고나 할까. 뒷페이지가 궁금해서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들 정도였다. 보통 인문 책의 내용 특성상 어렵게 쓰기는 쉬워도 쉽게 쓰기는 참 어렵다. 그런데 저자의 내공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술술 잘 읽히는 책이다. 읽는 내내 즐거웠고 마지막까지 흡족했던 책이었다. 아마도 이 책은 올해의 책에 반드시 들어갈 것 같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3-05-30 0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왓 벌써 완독하시다니!! 아침에 저도 잠시 이 책을 읽다가, 혹시 화가님은 연휴에 이 책을 폭풍독서 하신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말이예요!!
화가님 역시 재밌어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문공부 역사가 깊으시군요. 역시 성실의 아이콘👍

거리의화가 2023-05-30 11:31   좋아요 2 | URL
네. 어제 집어들었는데 술술 읽혀서 하루만에 완독했습니다^^ 연휴에는 폭풍독서죠! 비도 추적추적 와서 어디 나가기가 귀찮기도 하고ㅎㅎ
읽기 참 잘한 책입니다. 재밌고 유익하고 두 마리 토끼 다 잡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흐흐. 한문공부 본격적으로 한 것은 얼마 안됩니다. 헌데 여전히 아는 글자는 몇 안되는 듯요. 자주 나오는 글자만 익숙해지는 정도요. 휴... 반복만이 살길이다! 이런 생각으로^^;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3-05-30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물이나 자연의 모양으로 글자 하나하나를 만들어 내는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 한자 획수와 부수로만 외우는 공부가 싫었는데 이런 책을 통해 공부하면 재미 있을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님께서는 언제나 폭풍독서를 실천하시네요^^

거리의화가 2023-05-31 09:43   좋아요 1 | URL
사실 외우는 입장에서는 모양을 따 와서 한자로 만든 글자가 이해하기에는 훨씬 수월하지만 역시 모든 개념과 사물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죠. 한자도 그래서 상형자는 몇 개 되지 않고 형성자, 회의자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게 된 이유인 듯 합니다. 이 책은 재미가 있어서 읽는 데 부담이 없었어요. 저도 외우는 게 싫어서 한자 공부가 싫었었던 것 같아요. 이제야 조금씩 저만의 공부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레이스 2023-05-30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한자의 역사와 비교해 보고 사려구요.
좋다 하시니 사는 쪽으로!

거리의화가 2023-05-31 09:44   좋아요 1 | URL
ㅎㅎ 네. 잘하셨어요^^ 뭐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죠. 제 생각에는 그레이스님도 흥미롭게 읽으실 책일 듯 싶습니다^^

희선 2023-05-31 0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예를 배우기도 했군요 저는 학교 미술 시간에 잠깐 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다시 생각하니 미술 시간 맞는지 모르겠네요 한문, 그런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벼루 먹 붓 그런 것도 다 샀던 게 생각납니다 시험 보려고 하는 공부보다 알고 싶은 걸 알아가는 게 더 재미있죠 그래도 공부한 게 아주 도움이 안 된 건 아닐 것 같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5-31 09:46   좋아요 0 | URL
서예가 미술의 한 분과라고 생각한다면 서예 빼고는 관심 가는 게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나마 서예는 글자를 쓰는 것인데다가 다양한 글자체를 보는 재미도 있어서 좋아했네요. 다만 이제는 붓을 놓아서 방법도 다 까먹어 하려면 다시 시작해야할 듯합니다ㅋㅋ 뭐든 알고 시작하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은오 2023-05-31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초등학생때 자녀가 한자 급수 따게 하는 게 약간 부모님들한테 유행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부모님의 권유(?) 강요(?)로 문제집 풀고 87654급까지 땄는데 말입니다.... 다 까먹더라고요 ㅋㅋㅋㅋ 고등학교때 한문시간에 하나도 기억이 안나서 내가 초딩때 한건 무엇이었던가!! 하면서 허탈했던 기억이 ㅠㅠ

거리의화가 2023-06-01 09:46   좋아요 1 | URL
앗 진짜요?ㅋㅋㅋ 한자 급수따기 유행이 있었다니 몰랐네요! 음. 역시 급수따기로는 한자가 늘 것 같지 않아요. 시험 치고 땡 아닌가요 솔직히? 그래서 금방 잊어버리는 듯. 언어는 계속 공부해야 하더라구요. 쉬면 도루묵되버리는 듯합니다.
 
한자의 풍경 - 문자의 탄생과 변주에 담긴 예술과 상상력
이승훈 지음 / 사계절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자 기록 재료의 역사부터 한자 서체의 역사까지 확인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유용한데 재미도 있으면서 설명까지 친절해서 만족도가 무척 높았다. 문자를 사랑하고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강추할 만한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3-05-29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을 읽으셨네요. 뻔하지 않을 것 같은 책이고, 게다가 두꺼운 책을 읽으셔서 뿌듯하셨을 것 같습니다.
경험의 폭을 넑혀 줄 책인 듯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5-30 09:08   좋아요 1 | URL
페크님 정말 멋진 책입니다^^ 두꺼운 책인데 술술 읽혀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분자 조각가들 - 타이레놀부터 코로나19 백신까지 신약을 만드는 현대의 화학자들
백승만 지음 / 해나무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학 기호식이 오랜만인데도 반가웠다. 화학자들이 지금껏 해온 노력들에 주목해서 읽을수도 있지만 나처럼 약의 역사로 읽을 수도 있겠다. 수면제 계열로 쓰인 바르비탈계 화합물이 탈리도마이드를 만들어 임산부에게 피해를 준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약은 독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되새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국의 소녀들 -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생의 식민지 경험
히로세 레이코 지음, 서재길.송혜경 옮김 / 소명출판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가하라 요코는 '식민지 책임론'을 "식민지주의의 역사에 대해 그 유산이자 지속을 극복하려는 입장에서 다루게 될 문제 영역"이라고 명확히 정의했다. 나아가 '평시의 식민지주의'라는 개념도 제기했다. '평시의 식민지주의'에 대응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전시의 식민지주의'가 아닐까 한다. 어쨌든 그 함의는 '일상화한 체제로서의 식민지주의'라는 말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P17).

여성사 연구는 '전쟁 책임'을 바라보는 관점을 일국적 시야에서 벗어나도록 하여 식민지에서의 전쟁 책임, 그리고 식민지 책임이라는 관점,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P22).

여성의 '식민지 책임' 특히 일본 여성의 '식민지 책임'을 논의함에 있어 저자의 생각을 말하려 한다. 첫 번째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식민지 책임'과 관련하여 개개의 여성이 같은 무게의 죄를 짊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P23).

엘리트 여성이 어떤 논리로 식민지 지배에 가담하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연구성과가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로 건너가 식민자로서 그곳에서 생활한 여성이나 식민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식민자 2세에 대해서는 많은 공백이 남아 있다. 여성단체나 식민자의 일상생활에 관한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P24).

그동안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연구는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식민 남성 주체 권력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은 많으나 그 밖의 책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 책은 식민자들의 관점에서 식민지가 어떠했는지 개인의 경험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식민지에서 살았던 여성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와 인터뷰, 이들의 저작을 자료를 기반으로 쓰여졌다. 특이한 점은 식민지에서만의 경험이 아니라 이들이 일본으로 귀환하고 현재까지의 시점을 역추적한다는 점이다.
설문조사에 응한 사람 21명, 인터뷰를 실시한 사람은 16명으로 식민지 시기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에 재학했던 이들이 그 대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조부모나 부모를 따라 경성에 들어왔다.

이들 대부분은 식민지 조선에서 풍요롭게 생활한 경우가 많았다. 부모가 식민지 관리인 경우 수당이 따로 있어서 내지에 비해 수입이 월등히 좋았고 자영업을 하는 경우에도 저렴한 임금으로 조선인을 고용하여 생활했기 때문이다. 고용인을 고유명사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기혼 여성은 오모니, 미혼 여성은 기지배라고 불렀다. '하나짱', '하나양'처럼 일본식 호칭을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인 고용인들의 생활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물론 소수의 고용인은 주인과 그 자녀들과 잘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고는 하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는 "청결, 정돈, 운동, 우애, 공검, 순종"등의 덕목을 강조했고(내지 교육의 연장) "그대들에게는 신부의 동포를 지도해야 할 큰 책임이 있다"라고 지도했다(피식민자 지도 역할). 불평등의 구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수신 시간에는 숙녀로서의 지성과 품격 있는 현모양처가 될 것, 정조관념을 가질 것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A씨). "따분한 시간(M씨)"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가 "천손강림 이야기에 대한 의문"을 교사에게 질문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S씨).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인 1938년에 입학한 35회 졸업생부터는 전쟁에 대한 협력, 필승의 신념(L씨), 국가에 진력할 것(U씨) 등이 강조되었다. 다만 개인이 받아들이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어서 10명은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P71~72)
역사와 지리 시간에 배운 것은 일본 신화를 시작으로 한 역사, 조선반도 지도를 중심으로 학습했다고 한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교실에 커다란 중국 지도가 걸려 있었고, 일본군이 점령한 지명에 히노마루 깃발을 세웠다고 한다(I, J씨). ...
여학교에서는 매일 일기를 써서 제출하는 것이 의무였다. 일기장은 「매일의 발걸음」이라는 제목이었는데, 1학년 때는 붓으로 쓰도록 지도받았다(P84). J씨는 이때의 교장에 대해 "군대에 물들어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M씨는 다른 어떤 교장에 대해 "자기 딸에게는 권하지 않으면서 생도에게는 종군간호부를 권했다"라고 기억했다(P85).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들이다.

교육 내용에서도 짐작이 되지만 이들이 받은 교육은 식민지 지배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식민지민들의 지도를 주문받고 시작한 곳이었으니 말이다.
3.1운동 후 일본은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일본인 여학생과 조선인 여학생 합동음악회 등이 열렸고, 만주사변 후에는 음악회에 <기미가요> 등 황국찬미의 색채가 강화되는 음악들과 고사기 신화 등을 기반으로 한 <조국> 음악이 울려퍼졌다. 전쟁이 심화될수록 군사 훈련 등이 강화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1942년 부여신궁 조영을 위해서 근로봉사가 할당되고 비행기 등에 들어가는 운모 깍기 작업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이들이 사는 곳은 조선인들이 사는 주거 지역과 엄연히 분리되어 있었다. 식민지에서 일본인의 격리된 집단주거=피식민자인 주민과의 거주지 구분에 의한 공간의 분할, 지배 언어와 피지배 언어라고 하는 언어의 분할 및 식민자의 모노링구얼한 언어상황은 타자와의 만남을 곤란하게 하는 것이었고, 황민화 정책은 만나야 할 타자 그 자체를 말살하려는 기획 그 자체였다(P124).
인포먼트(설문자+인터뷰인)는 조선인을 종속자의 입장으로 바라보았고, 일본어의 강제는 당연한 풍경으로 여겼으며 창씨 개명을 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특별한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이처럼 그들은 분명 조선이 식민지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한 일은 없었다.

그런 그들은 1945년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뒤 충격과 혼란을 겪는다.
"학교는 청진에서 온 피난민과 군인들로 가득차 있었고 직원실은 몹시 혼잡했다. (...) 재학증명서를 받고 마지막으로 교장실과 직원실의 당번을 했다. 그 다음에 각 교실에 걸려 있는 '청소년 학생에게 내리는 칙어' 및 '황국신민의 서사', 후지산 액자, 그 외 전쟁에 관한 이러저러한 사진, 그리고 '특공혼으로 임무완수'라 적힌 종이 등을 모두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장실에 있는, 행사 때마다 봉독되던 여러 종류의 칙어도 일동이 큰절을 하는 가운데 소각해 드렸다. 선생님들과도 이루 다할 수 없는 이별을 고하고,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봉안전을 받들어 깊고도 깊게 길고도 길게 큰절을 한 뒤 하교했다(P156).

한반도에 미군이 들어오고 위험을 인지한 이들은 인양(=일본으로의 귀환)을 재촉하게 된다. 그러나 식민자 2세로서 조선에서 태어난 이들은 인양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에 곤란을 느꼈던 것 같다. 일본은 다른 나라였던 것이다. 이들은 조선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일본에 가본 적이 거의 없다. "어째서 인양해야 하는 걸까, 어디로 인양해야 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던 Q씨. "조선인이 되어도 좋으니까 경성에 남고 싶었다"는 O씨. 그러나 이들은 인양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조선인들 사이에서 폭발했기 때문이다. 막상 일본에 도착한 이들은 "침략자인 너희들이 돌아와서 우리가 굶주린다"라고 쓰인 벽보를 맞닥뜨린다(T씨).

인양을 했더니 이번에는 '인양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이 말은 규슈의 치쿠고 부근에서는 차별어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입장이 뒤바뀌어 이번에는 조국의 사람들로부터 '인양자'라고 차별을 당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집이 없고, 땅이 없다는 두 가지 이유로 '인양자, 인양자'라고 불렸다. 견뎌내기 힘든 어려움을 겪었다. 이처럼 '인양자'라는 차별어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이후 내 속에는 늘 일본인이면서도 '재일 일본인'이라는 의식이 있었다(P174~175). 이들은 기존에 자신들이 가졌던 인식을 전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이들의 인양자로서의 차별의 경험을 지켜보면서 조선인이 식민지에서 겪었던 차별, 그리고 재일조선인이 일본에서 겪었던 차별(ex: 파친코) 등을 떠올렸다.

일본에 우여곡절 끝에 정착한 뒤 1965년 한일국교 수립이 이루어지고 나서 이들은 여러 가지로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대부분은 조선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고, 일부는 불편한 마음, 아무 것도 몰랐던 것에 대한 고통과 미안함을 느꼈고 소수지만 식민지 책임에 대한 자각까지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자신의 체험을 수기로 남기기도 하고 소설을 쓰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표명을 하기도 했다.

L씨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빈부의 차이는 왜 생겼을까?"라는 의문에 대해 한 권의 책(노로 에이타로의 『일본자본주의발달사』)과의 만남으로 해결되었다고 한다.

일본과 조선의 관계가 식민지 지배에 의한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관계였다는 사실을 마치 구름 낀 하늘이 맑아지는 것처럼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 식민지 지배라고 한마디로 말하지만, 그 내용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경찰 등 다방면에 걸쳐 모든 분야에서 지배와 압력이 가해졌다는 것, 그 때문에 조선인은 35년 동안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맛보아야만 했다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 우리 가족의 생활-그것이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했던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결과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놀라움은 아주 컸다. 아버지와 오빠들이 범한 일본인의 죄를, 내가 어리고 또 아주 무지했다 하더라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일생 짊어지고 살아가야만 하지 않을까,라고."(P200)

이케다 마사에는 전후 앰네스티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조선에서 성장한 것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엠네스티 회원이 되어 남아프리카에서 자행되는 심각한 차별을 보고 아연실색했던 날, 생각해보니 우리들이 식민자로 같은 일을 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린아이를 집에 남겨둔 채 일하러 온 중년 부인에게, 그녀의 이름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오모니'라고 부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허드렛일을 시켰던 일,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조선어를 금지하고 일본 역사를 가르치면서도 조선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험 아동이라고 낙인찍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일본인에게는 6할의 수당이 붙었습니다. TV 화면을 통해서 "나는 흑인을 차별한 적은 없습니다"라고 외치는 백인 소녀의 모습, 그것은 우리들 그 자체였습니다. 무지했습니다. 과거 제자들이 서울에서 정신대, 즉 위안부였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고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입니다만, 종군위안부 문제에도 참여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지하갱도에서 일했던 사람도 강제 연행된 조선 분들입니다. 그 사실에 대한 목소리를 이제 겨우 내기 시작했습니다."(P202)

오다 미노루는 글에서 "자기 안에 있는 가해자 체험(혹은 그 가능성)을 자각하고 그것을 타자의 가해자 체험과 동시에 집요하게 고발해 가는 태도가 요구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소수지만 식민지 책임을 자각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이들이 있음에 다행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것은 역시 마음이 찜찜하고 불편하다. 이들의 다수는 여전히 당시의 조선을 모르고 조선인을 모르고 있으며 그들이 권력자인 동시에 가해자임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식민지에서 겪은 체험만 이야기했다면 실망했을텐데 일본에 귀환한 후 그들의 생활이 어떻게 되었고, 어떤 감정을 겪었는지 알게 되어서 그래도 수확이 있었다. 그리고 식민자 2세, 그것도 여성의 이야기는 희소성이 있어서 더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관련 연구가 나오길 희망해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3-05-31 0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는 잘 모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어쩐지... 일본 사람은 자기들이 전쟁에서 질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전쟁을 반대한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주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더 모르지 않을까 싶어요 독도 문제는 여전하고...


희선

거리의화가 2023-05-31 09:51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었을텐데 뭘 알았겠습니까. 보고 배우는 환경이 그런 것도 있었고(부모, 국가의 영향 등) 갈수록 전쟁이 심화되면서 배우는 교육도 전쟁필패를 외치니 끌려들어갈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돌아가서라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고민해보는 일은 필요했을텐데 대부분은 조선에 살았던 시기를 ‘좋았던 시기, 향수‘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 아쉽죠^^;;;
 
小王子(精美典藏版) (精裝, 第1版)
天津人民出版社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어 원서로 내가 어린 왕자를 읽게 될 줄이야. 한글 번역본과 비교했을 때 중국어 문장이 간단하게 표현되기도 하고 더 길어지는 경우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재미있었다. 초보자 원서로 많이들 권하나 결코 쉽지 않은 수준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3-05-26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왕자라는 말은, only child, spoiled child에 쓰는 말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어린왕자와 같은 한자어인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중국어로 읽으시다니 화가님 정말 대단하세요

거리의화가 2023-05-26 10:18   좋아요 2 | URL
알라님 어린 왕자는 중국어(간자체), 한자 동일합니다^^ 말 그대로 직역했다는 생각이에요. ‘어린‘ + ‘왕자‘ 이렇게. 말 그대로 어린 아이라고 표현하려면 ‘小孩子‘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말이죠.
간자체라 읽기 쉽지 않았어요. 2월달부터 읽었으니 거의 4달 소요되었네요! 막판에는 대강 읽은 느낌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완독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3-05-26 1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저는 ‘간자체‘가 뭔지도 모르는 그런...까막눈입니다^^;; 4개월간 열독, 이제 완독까지 따블로 축하드려요~~

다락방 2023-05-26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거리의화가 님 너무 멋져요! 완전 짱멋져 짱 근사해요!! 거리의화가 님 삶에 축복 있으라!!

거리의화가 2023-05-26 13:07   좋아요 1 | URL
ㅎㅎㅎ 다락방님 과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페넬로페 2023-05-26 1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국어로 어린왕자 읽으시다니👍👍
외국어는 뭐니뭐니해도 꾸준한게 최고인 것 같습니다.
거리의화가님!
멋져용^^

거리의화가 2023-05-26 13:07   좋아요 2 | URL
네. 4개월동안 정말 느리지만 꾸준히 읽었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 한 페이지 읽고 어떤 날은 좀 더 읽기도 하고...ㅎㅎ 그러다보니 읽게 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