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부정주의처럼 담화를 짓누르는 무정부주의나 허무주의는 이제 전복되어 하나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증오하는 동시에 욕망하는 위협과 공격성, 선망하면서 동시에 혐오하는 대상으로. - P270

‘타자‘에 대해서처럼 단일성(Un)에 겁먹고 거부된 욕망은 ‘타자‘와 단일성에 대한 전멸자로서의 증오를 만들어 낸다.
이때 유대인의 모습은 거부된 사랑이 지배력에 대한 증오로 변하는 상태에 집중될 것이다. 유대인의 형상은 또한 지배력에 대한증오와 결합하여 지배력이 제거해 버린 나약함이나 희열에 찬 실체, 여성성이나 죽음으로 채색된 성(性)에 대한 욕망에 집중될 것이다…………….
유희인 만큼 환상적이고 양가성을 지닌 대상을 창조하는 셀린의유대인 배격주의는 일종의 유사 종교의 형성 과정이다. 그것은 비신도(非信徒)의 아브젝시옹을 체험하기 위한 역사 속에 담지된 사회학적 소름 끼침에 다름 아니다. 이때 사회적이거나 상징적인 약호가 아브젝시옹 앞에서 스스로의 취약성을 느낄수록 유대인 배격주의가 보다 과격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 P273

유대인은 지배자로 승격되고 여성이 된다. 양가적이고 자기와 타자, 주체와 객체, 좀더 깊이는 안과 밖 사이의 완고한 한계를 잃어버린경계선, 변질된 지배자로서의 여성 말이다. 공포와 매혹의 대상, 아브젝트 자체인 여성이 되는 것이다. 유대인은 아브젝트하다. 더럽게 오염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그와 동일시하려는 것이다. - P281

구어체의 글쓰기로 셀린은 그가 표명하는 주제나 이념적인 참여를 논리와 문법에 복종해야 하는 수사학적 작용, 즉 문어체 언어속에 중첩시킴으로써 이념을 언어 속에 새기는 대귀환(기호학자의말을 빌리면, ‘제2차 모델화 체계‘ )을 완성시킨다. - P292

스피처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대립되는 두 힘인 정보와 반복 상기는 작가의 분할된문장 속에서 끊임없이 싸움을 벌인다. 그것은 곧 작가 자신에 대한 확인이자 허무주의를 스스로 고찰하는 방편인 것이다." - P296

때문에 문장을 분할하고 자꾸 반복해서 상기시킴으로써 명료성을 더하려는 것은, 타자의 존재에대한 작가 의식의 흐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말하는 주체는 문장의 유형별로 두 곳의 장소를 차지할 것이다. 하나는 고유의 동일성 자리(그곳, 평언의, 정보가 권리를 갖는 곳)이고, 또 하나는 타인을 위한 객관적인 표현의 자리(다시 말하고, 덧붙이고, 명백히 할 때의)이다. - P297

글쓰기에 대한 몰두, 각고의 자제력, 추상성의 제거와 말없음 덕에 셀린의 언어는 충동에 보다 가까운 정서로 매혹의 아브젝시옹이 내는 소리와 비명 속에서 파열한다………… - P307

셀린의 묵시록적인 언술이나 예언 자체는 공포의 언술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언술은 판단이나 탄식 · 단죄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안쪽에 위치한 셀린은 위협을 바깥으로 발설하지도 않고, 게다가 그것에 방어할 도덕도 가지고 있지 않다.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할까? 그때 정면에서 아브젝시옹의 웃음이 터진다. 언제나 같은 원천인 그것은, 프로이트가어렴풋이 짐작한 바 성적이거나 억압된 죽음의 침입, 또는 억압된무의식의 난입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만약 난입이 있다면, 그것은어떠한 것으로부터 유래한 것도, 확실한 것도, 숭고한 것도, 미리준비된 조화가 주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벌거벗고 고뇌에 찬, 공포스러운 만큼 매혹적인 어떤 것이다. - P310

좀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든 문학이란 묵시록의 비전인 것이다. 이 묵시록은 사회 역사적인 조건들과 관계를 맺고 있을지라도,
변형된 나약한 경계선상(경계례)에서 결국 다소간은 동일성주체/대상 등)이 중첩되어 있거나, 한계가 모호하거나 이질적이거나 동물적인, 변모된 아브젝트한 대상이다. - P313

페미니즘은 권력에 대한 항변으로 명멸했던 수많은 이념들 가운데 마지막이 될 것이다. 또한 성적인 동일성을 포함한 모든 상상적 동일성의 파괴자인 동시에 나르시시즘의 파괴자인 예술가와는 달리 여성주의는 자기의 권리를 침해하는 세력만을 탄핵한다.
**************************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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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1-23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화가님 존경스럽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01-23 16:36   좋아요 0 | URL
수하님 존경이라니...^^; 11장까지 다 읽기는 했는데 1장 다시 한 번 더 읽고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수하 님도 응원해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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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내 경험에 따라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일은 고 황현산 선생님의 책 제목처럼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고 자기 경험치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전선은 하나가 아니다. 


타인을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다고 착각하여 상처를 주거나 아예 물러서서 뒷걸음질치기도 한다. 갈수록 나는 후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렇다 해도 타인, 특히 소수자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들의 절박함을 들어줄 이는 어디 있을까. 


합리성은 종종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얼마만큼 있는가로 결정되기에, 기득권은 사회의 모든 갈등에서 더 ‘합리적인’ 주장을 하기 쉽습니다. 근거는 지식의 형태로 존재하고,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자원과 시간이 투여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지만 선거철이 지나면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쁠 뿐 공약을 이행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차별 금지법도 몇 년째 지지부진하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가장 뜨끔했던 말은 '피해자는 ~~~해야 한다.'라는 고정 관념에 대한 것이었다. 나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피해자도 일상을 유지해야 하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피해자라고 해서 주눅들어 생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는 것은 시간(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도 재인식하게 된다. 어떤 사람도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선과 악으로 구분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 말이다. 


솔직히 천안함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도 관련 책을 저술할 때 무척 두려웠음을 고백했다. 한편으로는 세월호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천안함이 있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싶어 반성하기도 했다. 특히나 두 사건은 정치적인 색깔이 덧입혀져 사건의 본질적인 이해에는 가닿기 어려웠던 측면이 존재했다. 가까운 시일 내 주저했던 이 책을 이제야말로 읽어보려고 한다. 


저자의 시선은 논리적이고 냉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알 수 없지만 실망하지 말자고 한다. 고통에 응답하려는 관심과 노력이 중요하다. 


고통이라고 하는 건 개인의 몸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그 고통은 전달되지 않아요. 그래서 누구나 외롭고 힘든 면이 있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다는 것이 실제로는 그렇게 놀랍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걸 전제로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자꾸 실망하게 되고 세상을 경멸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한 개인의 몸 안에 있는 고통, 슬픔이라고 하는 것들이 사회적 고통이 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고통에 누군가가 응답하기 시작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 응답을 잘해낼수록, 많은 사람이 함께할수록 그 고통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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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1-23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책 읽으려면 쉼호흡을 하게 되죠. 삶이 뒤따라주지 않는 제 자신을 비춰보게 되서 괴롭거든요.

거리의화가 2024-01-23 11:03   좋아요 1 | URL
피하고 외면하고 싶은 게 어쩌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어요^^; 제 자신을 반성하고, 움츠렸던 기지개를 펴고 행동할 동력을 찾고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간다고 믿고 싶습니다.

잠자냥 2024-01-23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퀴즈 내놓고 곳통스러워하는 사람들 보면서 낄낄대고 있던 제가 조금 ㅋㅋㅋ 반성했습니다....(아주 잠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가 님 꼭 받으세요!!!!

거리의화가 2024-01-23 11:1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퀴즈 난이도 때문에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듯한데! 이번에는 한 번 참여해볼까 고민중입니다. 그래도 한 두문제는 맞추겠죠?ㅎㅎ

희선 2024-01-24 0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다 어떤 경우에 소수자가 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자신은 그런 일 없을 거다 생각할 때가 더 많을 것 같네요 자신은 장애인이 될 리 없다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군요 다 알지 못하겠지만 조금은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보기라도 하면 좋을 듯합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4-01-24 09:25   좋아요 1 | URL
그러네요. 희선님 말씀처럼 자신은 그런 일이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없지요. 내 의지로 된 것이 아닌데도 일상에 불편함을 느껴야 하고 다른 사람들 눈을 의식해야 한다면 발 붙일 곳은 어디인가 곱씹게 됩니다. 희선님 좋은 댓글 감사해요^^
 
갑골문자 - 중국의 시간을 찾아서 걸작 논픽션 27
피터 헤슬러 지음, 조성환.조재희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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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밤이었다. 날씨는 아직 덥지 않았지만 나무가 무성해져 잎이 가로 위로 늘어졌다. 난징에는 옛 성벽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이따금 저 멀리 어두운 윤곽이 보일락 말락 했다. 도처에 사람들이 인도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공안은 네거리에 서서 일정한 운율에 맞춰 조금씩 움직이는 시위대를 지켜보았다. 리더의 구호, 짧은 정적, 따라 고함치는 군중 소리. 구호, 정적, 궁중 소리. 우리는 걷다가 갑자기 빨리 뒤고 또 다시 걸었다. - P35


때는 1999년 5월 8일, 중국 도처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문화 대혁명 이래 가장 격렬했던 항의 행동이었다. 군중이 분노한 이유는 알바니아 종족의 역경이 빌미가 되어 발생한 나토의 폭격 행동 때문이었다. 거리에는 세 구호가 반복되어 나왔다. “미제를 타도하자, 나토를 타도하자. 켄터키를 먹지 말자.” 

한국도 5.18 이후 미국의 이중적인 행태가 드러나자 대학생들의 시위가 줄곧 이어졌다. 이는 1987년 민주 항쟁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군의 장갑차로 여중생들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고 미국산 소고기 문제도 있었다. ‘미제’라는 단어는 지금 들으면 거부감이 이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으나 당시 한국에서도 미국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쓰여진 것으로 알고 있다. 미소의 냉전기 때도, 탈냉전 때도 미국은 패권을 놓으려고 한 적이 없다. 

알바니아는 발칸 반도에 있는 국가로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1991년이 되어서야 수교한 국가다. 1989년 밀로셰비치 대통령 집권 후 코소보가 세르비아인의 성지라는 이유로 자치권을 박탈한다. 이에 알바니아 계 코소보인들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면서 유고슬라비아 vs 코소보 해방군 세력 간에 전쟁이 발발한다. 코소보 전쟁에 나토와 미군이 참전하면서 사태는 악화 일로를 겪었다. 


이 책은 1999~2004년 사이 집필되었다. 이 기간 중 중국에서 벌어진 몇몇 사건을 종결 지점까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중국의 신장 지구, 타이완 등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였으며 시간 순으로 배치하여 중미 관계, 북중 관계 등 당시 사회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중국에 보도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다양한 인물들을 만난 경험을 쏟아낸다. ‘폴라트’를 제외하고는 등장 인물이 모두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마치 사건을 지금 만나듯 박진감 있게 느낄 수 있다.


나는 크게 세 개의 사건에 주목했다. 첫 번째는 이미 언급했고 두 번째는 미국과 중국의 군용기 충돌 사건, 세 번째는 9.11 테러 사건이다.


2001년 4월 1일 아침 두 대의 군용기가 남중국해 해상의 국제 영공에서 서로 충돌했다. 한 대는 미국, 다른 한대는 중국의 것이다. 중국 군용기는 전투기로 심하게 부서졌다. 미국 정찰기는 부딪치자 곧바로 2.4킬로미터 추락했다가 통제를 회복한 뒤 중국의 하이난섬에 긴급 착륙할 것을 요청했다. 비행장 관제탑에서는 회신을 주지 않았으나, 미 군용기는 착륙했다. 비행기의 남녀 승무원 스물네 명은 즉각 인민해방군에 의해 구금되었다.

이 사건 중 어느 것도 독자적이고 비군사적인 관찰자에게 목격되지 않았다. - P476


당시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미국과 중국 모두 입장을 발표했으나 서로 다른 말을 한다. 4월 9일, 당시 미 대통령인 부시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장은 “미국은 반드시 중국에 사과하고, 아울러 유사 사건의 재발을 방지할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양국의 언론은 완전히 다른 논리로 이 사건을 계속하여 이끌고 갔다. 중국은 미국 비행기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비행기끼리 충돌했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은 중국의 소형 비행기가 먼저 도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미국은 그 전부터 중국 비행기가 그들의 정찰기에 접근했기 때문에 도발할 의도가 있다 말한 것이다. 

추후 주중 미국 대사는 서한에서 “우리가 구두 허가를 거치지 않고 중국 영공에 들어가 착륙한 대 대해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고, 승무원의 안전한 착륙에 대해 매우 위안을 느낍니다. …”라고 표현했으나 콜린 파월은 발표 후 기자에게 말하길 “사과할 만한 것은 없다. 우리가 잘못을 하지도 않았는데 사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튿날 베이징신보 1면 헤드라인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이 끝내 사과하다’

1999년 중국의 나토&미국 항의 시위 이후 이것이 두 번째 외교 최대 사건이었다. 그런데 중국도, 미국도 서로 다르긴 해도 결국 자국의 기호에 맞게 해석하는 모습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아서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중국의 뉴스를 보고 미국을 욕했을 것이고, 미국인들은 미국의 뉴스를 보고 중국을 욕할 것 아닌가. 언론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준다. 뉴스코퍼레이션은 똑같은 화면으로 미국과 중국에서 애국주의를 판매한다. 두 곳의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사들인다. 


뉴스 보도에서 두 단어, 즉 ‘스모크’와 ‘펜타곤’을 알아들었다. 조선족이 폴라트에게 테러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들은 함께 스시 식당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무너지는 빌딩, 화재에 휩싸인 펜타곤. 뉴스 보도에서 공격은 이슬람교 근본주의자들의 행위이고, 더 많은 폭력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추측했다. 전국의 비행기가 운항을 중단했다. - P499~500

웨칭의 비디오 가게에서 테러리스트 공격의 해적판 영상을 팔았다. 가게 주인은 최초의 해적판 영상이 공격한 지 3일 만에 나왔다고 말해줬다. 9.11 비디오는 저가의 진열대에 들어본 적도 없는 미국 영화와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 “인류에게 크나큰 재난을 가져다준 미세 곤충” 그 뒤에 9.11 비디오가 있었다. 모든 9.11 비디오는 할리우드 영화와 유사한 모양으로 포장되었다. 세기의 대참사란 이름의 DVD는 겉면에 오사마 빈라덴과 조지 W. 부시 사진이 붙었고, 배경은 불타는 쌍둥이빌딩이었으며, 밑에는 폭력성과 불건전성의 정도에 따라 ‘R’ 등급이 매겨졌다고 표시한 작은 아이콘이 있었다. - P504


9.11 테러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가져다 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이슬람과 무슬림인에 대한 공포로 확산되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견고한 무기 체제(핵무기 등)로 방비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도 유효한 사건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당시 중국은 녹화 영상이 해적판 비디오로 길거리에서 팔렸다니 무어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건물이 파괴되는 사고였는데… 수요가 있을 거라 여기고 급히 만들었을거란 짐작 뿐이다. 얼마나 팔렸는지는 알 수 없다. 

해적판 비디오 하니 과거에는 한국에도 해적판 비디오가 많이 생산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보지 않았거나 봤다고 해도 인상적인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당시 중국은 한국의 산업화 시절의 향수를 불러오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이 겪었던 것을 비슷하게 경험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선전 등 경제 특구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많은 인구들이 유입된 것, 텔레비전 리모컨을 두고 가족 간에 기싸움을 벌이는 일, 세대 갈등, 열악한 노동자들의 상황, 미국에 대한 환상을 품고 떠난 이민자들, 영어 의무 교육 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유 시장 경제로 바뀌었어도 사회주의 국가임은 마찬가지였고 중국의 정치는 오히려 내부 단결의 기치로 이어졌다. 

따라서 중국 정부의 위구르 탄압과 이용(특히 신장 지역), 타이완의 정권 교체에 따른 정치외교군사적 마찰, 위구르족을 탄압하기 위한 미국 정부에 대한 로비 등이 진행되었다.


이 책이 독특한 지점은 기자의 시선에 따른 논픽션 이야기들 사이에 중국 유물들을 설명하고 파헤치는 코너다. 문자의 세계부터 성벽, 청동 두상, 책, 뼈, 글자, 말 등을 싣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 간자체가 만들어진 과정이 나온다. 중국의 말 문화는 세월을 거듭하여 달라졌어도 글말은 계속 하나로 고수되었기 때문에 한자는 안정적으로 오래 유지될 수 있었다. 물론 제국의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도 글말의 유지는 중요했다. 그러나 중국은 서양에 거듭 패배를 경험하고 나서 지식인들 내부에 교육 혁신과 언어 현대화의 요구가 끊이지를 않았다. 이에 문언문을 폐지하고 각지의 방언에 한자를 적용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지금의 중국 간자체는 마오쩌둥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문화 대혁명 때 번체를 옹호하며 소신 발언을 한 이는 우파로 몰려 자살을 하고 정권에 아부한 이는 이후 하상주단 대공정(중국의 고대 역사를 앞당기는 프로젝트)의 리더를 맡으며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간자체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을까?


“물론 공산당은 1940년대부터 라틴화한 자모를 사용하기 시작했죠. 그들은 변혁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권력을 장악하자, 더 신중해졌습니다. 그들에게 해결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많았는데, 그것이 개혁이 지체된 원인 가운데 하나이지요.

그러나 매우 중요한 다른 요소는 1949년 마오쩌둥의 첫 소련 방문입니다. 당시 마오쩌둥은 스탈린을 전 세계 공산주의의 영수로 존중했으며, 그는 중국이 문자 개혁에 착수하고 있다며 스탈린의 조언을 구했답니다. 스탈린은 그에게 ‘당신들은 대국이므로 자신의 중문 서사 방식을 가져야 하며 라틴 자모 계통을 단순히 써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지요. 그것이 바로 마오쩌둥이 전국적으로 통일한 자모 계통을 바랐던 이유입니다.” -P673


스탈린이 문자 개혁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주었다니 참으로 당황스러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중국어 간자체와 번자체가 나누어짐으로 인해 공부하기 더욱 복잡해진 면이 있다. 성조도 어려운데 한자가 우리가 예전에 배웠던 한자(번자체)와 달라서 이중고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간략한 한자’라고 해서 만든 간자체가 오히려 국민들을 더 피곤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신장의 현대사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신장의 역사를 공부할 때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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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1-23 0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갑골문자》여서 중국 글자 이야기인가 했어요 중국 역사군요 그것도 다른 나라 사람이, 서양 사람이라 해야겠네요 삼부작으로 썼다는 말이 있군요 한국사도 다른 나라 사람이 쓴 거 있네요 갑골문자에서 여러 글자가 생기고 간자체로 이어지는군요 중국어 배우는 데 간자체를 다시 공부해야 해서 조금 힘들겠습니다 그래도 공부 오래 하시고 여전히 하시는군요 즐거워서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4-01-23 10:55   좋아요 1 | URL
유물 코너 이외에는 사실 중국의 현대사 이야기입니다. 한자의 시작인 갑골문부터 시작하여 중국의 갖가지 고대 유물을 소개하고 간자체의 탄생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맞아요^^ 중국어는 어려워도 즐거워서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8

어머니의 ‘한쪽은 짧고 한쪽은 긴 다리‘ 이렇듯 셀린은쇼아줄 골목을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곳으로 그린다." 무슨 목적으로 그는 어머니를 흉한 거세의 화신으로 그리려 하는가? 그것은영원한 힐책의 이미지, 아니면철이른 나르시시즘의 상처를 위로받기 위한 이미지인가? 아니면 나약한 존재만이 사랑에 빠지지 않고 아무런 위협 없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방법인가?
이같은 양면성을 지닌 어머니에 대한 주제는 삶이 죽음을 향하게 하는 여성들의 불길한 위력에 대한 표상이 될 것이다. - P241

셀린의 세계는 이분법적인 채로 남아 있다. 제삼의 것이 부재하기 때문에, 아니면 그 성이 쇠락해서인지 두 개의 말이 맞대어`개되는 것이다. 여성과 연인, 성(性)과 시체, 산모와 의사, 죽음과 말, 지옥과 작가, 불가능과 문제처럼… - P243

작가란 의사 이상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는 분리하는 아버지의 역할로, 동시에 아들과 연인으로, 결국 어머니의 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는 존재로서 말이다. 그는 유일신도 ‘타자‘ 도아니므로 이탈된 자이다. - P244

여성이 어린애다움과 다른 ‘성(性)‘이 부재하는 여성성의 베일을 벗어 버리면, 그녀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셀린의 시선을 만족시 - P252

키지 않는다. 이제 사슬이 풀린 여자가 나타난다. 성과 권력에 대한 탐욕에 가득 차 있고, 살해의 야단법석에까지 이르는 강렬한 폭력 속에 하찮지만 적어도 그로테스크하고 비참한 희생자가 되는여성 말이다. - P253

자신의 성을 직업으로 삼아 이용할 때의 혐오스럽고 타락한 어두운 위력을 가진 여성은, 결혼하거나 직업을 가짐으로써 사회화되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효과를 지닌 두려운 존재가 된다. 그녀의 그같은 능력이 해체되었을 때는 음울한 계략이 되고, 히스테리의 최면 상태는 살해의 음모로 선회하며, 마조히스트의 비참은 상업적인 성공 속에서 살 길을 찾는다. 히스테리 환자가 도착성 속에서 교묘히 법칙을 지켜 나가려고 애쓰는 카니발의 꼭두각시에불과하다면, 편집증 환자는 법망 아래서 살해의 사회 현상을 표현해낸다. - P254

셀린에게서 나타난 아브젝시옹의 원천 중의 하나는 이같은 아버지의 몰락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괴물 같은 아들은, 셀린의 눈에는 유일한 진실로 보이는 무한성이 고갈된 세상에 대해 아버지의 권력을 빼앗기에 충분한 만큼의 권력을 가장하고 나타난다. 아들이자 작가는 오귀스트가 질병에까지 이르는 비명·악몽 · 기진맥진·착란, 머리 주변의 찬 수건의 상태로 이해되도록 한다. 그리고 독자는 이같은 지옥이 페르디낭에게도 공통적이라는사실을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한편 처음부터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아이와 우스꽝스런 남자다움이 혼합되어 그려진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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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기쁨 - 그날 이후 열 달, 몸-책-영화의 기록
배혜경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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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진실보다 더 근사한 예술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이란게 어쩌면 실체가 없는 것이다.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각자의 사실만 있을 뿐. 바로 그 사실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 P139


작가의 문체는 담담한데 감정을 울려서 자주 멈추고 읽어야 했다. 책을 읽기 전에도 생각했지만 어쩜 이렇게 책 표지의 사진이며 제목이며 잘 나왔을까... '고독한 기쁨' 제목이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작가가 뜻밖의 사고로 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되었을 때에도 멈추지 않고 몸을 단련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본 기록을 담은 글이다. 2017년 즈음이었나.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움직이고 싶어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답답함과 찌릿한 고통에 대하여 정말 동감했다. 나는 한강 변에 놀러 나갔다가 자빠져서 그리 되었던 것인데 작가는 그 와중에도 이전의 생활처럼 책과 영화로 견뎌냈다고 하는 것에 존경이 일었다. 나는 그저 다인실에서의 불편함(커튼을 저절로 치게 되는 경험)과 얼른 빨리 붕대를 풀고 나서고 싶다는 생각, 괴롭고 힘들어서 이어폰과 음악으로 단절한 채 오롯이 보냈던 기억이 난다. 움직임이 가능해져 비로소 걷기를 할 수 있었을 때 문 밖을 나설 수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었다. 비록 발목은 괴사한 흔적으로 영구히 남았지만 이제는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괜찮아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아픔의 무게가 조금은 나아진다는 것은 신기하고 놀라운 과정이다. 그 과정을 나도 함께 하면서 덩달아 위로받는다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작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여러 번 무너지게 했다. 과거의 사진 속 아빠의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했을 것이다. 작가가 아빠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제 자주 아프신 나의 아버지도 언젠가 내가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 때가 충격이었다고 고백하는 솔직함에 나도 그럴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봄은 다시 오지 못한다고, 가족이 있어 힘든 날들을 다 이겨 낼 수 있었다고, 사랑한다고. 오래 전에 나는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늘 있다고 썼다. - P58


매년 오는 봄이 달리 보이는 것은 이제 어느덧 나이듦을 인식하게 되어서인지도 모른다. 매 해 무겁게 느껴지는 몸과 칙칙한 얼굴은 나를 가라앉게 한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이 계절을 오롯히 살아내고자 생각하기도 한다. '걷기'와 '여행'을 예찬하는 작가의 태도는 나도 비슷하게 공명하는 부분이 많았다. 우스갯소리로 함께 사는 사람에게 말하곤 한다. "2023년의 봄이야." 그럼 돌아오는 것은 "또 같은 봄이지." 하지만 내겐 분명 다른 봄이다. 


소개된 책은 그래도 본 것이 몇 권 있었는데 영화는 역시나 본 게 전혀 없었다. 평소 영화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지라... 그나마 드라마는 보지만. 그래도 작가의 수려한 글솜씨와 아름다운 문체에 반해 읽어 내려가다보면 영화의 장면이 상상이 되었다. 


영화 중에서는 <완벽한 가족>이 기억에 남는다. 가족과의 이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있다면 나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내 의지대로 선택하는 일에는 용기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만큼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소개된 책들 중에서 읽고 싶은 책들이 수두룩하다.


오르한 파묵의 <하얀성>에 대한 이야기인데 도무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문장이다. 서로 닮은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바꾼 이야기라고 한다. '하얀 성'이라는 것이 높고 아득하다는 것을 보면 저 멀리에 붙잡히지 않는 상상력의 공간 같게도 느껴진다. 어쨌든 직접 읽어보고 싶은 이야기다.

 

나는 무엇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무슨 일을 하는가이다. 행복은 높고 아득한 하얀 성에 있지 않고 바로 저 창문 밖, 살랑바람 불어 대는 나무 아래서 그네를 타며 손짓한다. - P148


<화씨 451>은 책이 사람의 인생에 왜 중요한가를 느끼게 한다. 


나는 유튜브를 정말 잘 안 보는 편에 속하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봤더니 한 번에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편리함은 있지만 누가 전달하는 정보에 대한 의구심이랄까 그런 것이 있어서인 것 같다. 영상은 시청자에게 수용만을 강요하는 매체이니까 말이다. 책은 그런 면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책의 보관에도 신경써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쌓아둔 책이 불타거나 없어지는 상상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원래도 읽으려고 생각했던 책이었거나 기존에 보관함에 담아둔 책들도 많았다. 


<우리에게도 예쁜 것들이 있다>, <지옥(단테)>, <침묵>, <산해경> 등.


<우리에게도 예쁜 것들이 있다>에서는 기계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내는 수공업 제품의 가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지옥>은 사유하지 않는 인간, 인간의 나약함과 허약성에 대해서 꼬집는다.

<침묵>은 사둔 것은 옛날인데 아직도 묵히고 있네. 진짜 이것부터 읽는 것으로... 신이 있다면 왜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신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가 예전부터 궁금했다.


앞날은 알 수 없다. 때론 넘어지거나 다치더라도 '잃어버리는 삶이란 없다'는 말은 그것이 몸의 경험으로, 삶의 경험으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작가의 삶과 사유를 녹여낸 글을 꾸준히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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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1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2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01-22 0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다쳐서 병원에 있었던 적 있군요 여러 사람이 있는 병실... 그런 데서도 잘 지내는 사람 있는 듯해요 저는 다른 사람 때문에 병원에 갔지만...

보고 싶은 영화와 보고 싶은 책이 있기도 했군요 살면서 일어나는 일을 잘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안 좋은 일은 그게 조금 어렵기도 하네요 시간이 가면 그게 좀 나아지겠지요 그때는 힘들다 해도...


희선

거리의화가 2024-01-22 09:12   좋아요 2 | URL
네. 6개월에서 1년 정도 고생했던 것 같아요. 다인실이 무척 힘들더라구요. 안 그래도 말이 많은 편이 아닌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강제로 듣는 일은 굉장히 힘들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_-
사실 어떤 일이 생길지 우리는 모르고 살죠. 닥치기 전에 조심하자 생각하며 살지만 살다 보면 또 그렇지가 않으니까요ㅎㅎ 희선님 맹추위가 왔네요.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한 한주 보내세요^^

청아 2024-01-22 19: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병원에서 방문객들 때문에 정작 환자들이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음, 시정되어야합니다. 요즘은 방문객이 1인으로 제한되었다는데 또 모르죠. 화가님 오랫동안 고생하셨군요.
오늘도 읽고싶은 책 한 아름 담아가요ㅎㅎ

거리의화가 2024-01-23 10:52   좋아요 1 | URL
듣고 싶지 않은 말도 들어야 하니까 그런 것이 좀 고달프더군요^^;
읽고 싶은 책들 많이 담으셨다니 저도 좋습니다. 서재 둘러보다보면 보관함에 책이 가득!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