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 미투 운동에서 기후위기까지
리베카 솔닛 지음, 노지양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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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깨어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건 누군가가 당신을 깨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인간 자명종에게 고마워합시다" - P12


우리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최근 백래시 바람이 불기는 했어도 과거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적어도 차별과 배제임을 모르고 당하는 시대는 지나왔다고 생각한다. 인종, 젠더, 계급, 이제는 기후 문제까지 더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솔닛은 '과거에 감사하고 미래를 준비하자' 이야기한다. 그녀의 메시지는 참 희망적이고 긍정적이어서 좋다. 


모든 세상이 조명이 비치는 무대인 건 아니다. 백스테이지와 극장 밖도 여전히 사람이 활동하는 영역이다. 조명 밖에서, 공식 규칙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각각 다른 수준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행동하고 활동한다. 아랫사람들에게 이 공간은 그들을 억압하는 제도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자유를 의미한다. 권력자들에게 이 장소는 위선이 허가되는 곳이다. 때로 그들은 옆에 사람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거나 여기서 무슨 말을 하건 자신의 평판에 금이 갈 일이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중요한 것은 그 정보 자체가 아니고 누가 아는지, 누가 가진 지식과 정보인지다. 권력자들이 그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할 때, 그들의 행동은 노바디에게만 목격되었음을 뜻한다. 노바디들은 실은 알고 있다. - P48


'노바디'는 없는 취급을 당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권력자와 지위가 있는 소수의 사람은 자신들의 돈과 힘으로 다수를 현대판 노예로 취급한다. 폭력은 여기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그들은 '노바디'가 감히 자신을 고발할 수 없을 것을 것이라 여긴다. 정치계 뿐 아니라 문화 예술계에도 이런 일은 너무 흔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쉽사리 권력자를 공격할 수 없어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들이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 같아서 분노가 인다. 시스템도 바뀌어야 하고 개인도 바뀌어야 해서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유권자 위협, 다른 말로 '투표권 도둑질'이라 부를 수 있는 많은 방식이 있고, 이 사례 또한 속속들이 퍼져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유권자 위협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아내를 협박하고 조종하고 침묵시키는 남편들이다. 집집이 문을 두드려 직접 유권자들을 만나는 전국의 방문 선거 운동원들에게 여러 차례 들은 이야기가 있다. 아내는 이번에 우리 부부가 누구를 뽑아야 하느냐고 남편에게 직접 묻기도 한다. 그 말을 하는 이들은 대체로 겁을 먹은 얼굴이다. 때로 남편이 먼저 문을 열었을 때는 선거 운동원이 아내를 만나지 못하게 차단한다. 혹은 말을 막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아내가 민주당 당원임을 알면서도 우리 집사람은 당연히 공화당 후보를 뽑을 거라고 큰소리를 친다. 혹은 우리 집안에 민주당은 없다고 말하는데 아내가 남편에게 민주당원이라는 사실을 숨겨서다. - P86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정치 때문에 항상 문제가 되었다. 결혼 후에도 초반에 집에 갈 때마다 정치 이야기로 싸움이 나서 그 이후에는 평화를 위해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다. 

아버지는 열성적인 보수파에 가깝다. 그래서 특히나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집권기에는 하루가 멀다 않고 비난과 성토가 이어졌다. 어머니도 분명 의견이 있으실 것인데 아버지의 호통에 맥을 못추실 때는 답답함이 컸다. 지방 선거 등 투표일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어차피 비밀 투표니까 나는 소신껏 투표하고 투표장을 나오고는 했다. 투표권은 엄연한 성인의 권리인데 누구의 강요를 받아 몰표를 찍게 하거나 하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추방되어야 할 침입자들이라는 주장과 함께 역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불법 이민자라는 개념은 국가의 개념을 몸으로 보고 외국인의 몸으로 인해 순수함이 오염되며, 국경선이란 봉인할 수 있고 봉인해야 한다고 말하는 개념이다. 그들이 꿈꾸는 국가란 자율적이고, 오염되지 않고, 통과할 수 없는 재료로 만들어진 단단한 벽돌이다. 그러한 꿈을 꾸고 있는 이들은 공기가 순환하고 물이 흐르고 상품이 움직이고 동물이 이동하는 현실을 부정한다. 또한 국경선이 지금과 달랐던 역사, 어떤 국경선도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 우리 중 많은 이가 수많은 국경선을 넘어 여기에 와서 살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한다. 이러한 안전에 대한 환상은 자아와 타자가 별개이고 타자는 얼마든지 추방할 수 있다고 믿으며 우리가 누구이고 그들이 누구이냐는 질문을 거절한다. - P212~213


기후변화 이전에는 보통 얼음이 녹으며 봄이 오는 날짜가 일정했고 동식물의 멸종 위기를 예측할 수 있는 개체 숫자가 있었다. 과학자이자 영화 감독인 랜디 올슨Randy Olson은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우리가 생태계의 기준선만 안다면 회복을 위한 작업을 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미처 기록하고 확인하기도 전에 기준선이 이동하면 이 타락한 상태를 정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때로는 개선되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 원칙이 생태계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역사와 세대 간 기억은 우리에게 사회적·정치적 기준선을 제공하지만, 기억을 잃으면 우리가 경험하는 현재는 절대 피할 수 없고, 바꿀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로 느끼게 된다. 기억에는 힘과 가능성이 있다. 호황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사회 운동이 한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과거에는 인종, 젠더, 어린이, 연령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P250~251


두 인용문은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단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민이나 유학, 난민 등의 형태로 한국에 들어오는데도 불구하고 국경은 너무나 철벽 같고 한국인들은 다른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식민지, 전쟁 등 어려운 시절을 겪고 성장한 국가인 만큼 이제는 한국인들도 포용력을 넓혀나가야 하지 않을까. 


기후 변화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기후는 변화나 위기가 아니라 문제로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 아침 기사를 보다가 때이른 고온 현상으로 올해 각 지역 꽃 축제들의 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물론 서울의 '벚꽃 축제'도 꽃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빼고 그냥 '꽃 축제' 이런 식으로 변경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재난이 아니라 일상이 될 것 같아 답답해진다. 



솔닛의 세 번째 에세이를 만났다. 사둔 지는 2년이 다 되었는데 이제야 다 읽었다. 번역본으로 출간된 것이 2021년인데 구입하고 바로 읽었다면 더 현장감 있게 읽을 수 있었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나간 시간을 탓할 수는 없고 이제라도 읽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역시나 이번 책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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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2-21 0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투표는 자기 마음대로 해야 할 텐데... 지금은 그렇게 해도 예전엔 강요에 못 이겨 자신이 하고 싶지 않는 데 찍었을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그런 일 적겠지요

이번 겨울 추운 날 조금 있었지만, 거의 춥지 않았네요 덜 추워서 지내기는 좀 나았다 해도 앞으로 올 날이 걱정입니다 이번 봄엔 꽃이 빨리 피는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2-21 17:08   좋아요 1 | URL
지금은 예전 같지는 않겠지요. 부부 간, 자식 간에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대화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기후 문제가 참... 겨울이 보통 건조한데 올 겨울은 눈, 비가 반복되다 끝나는 느낌이에요. 이번주도 무슨 장마처럼 비가 계속 내리네요^^;;;

자목련 2024-02-21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도 좋을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4-02-21 17:10   좋아요 0 | URL
미국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솔닛의 견해를 담은 이야기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삼화령 2024-02-24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네요. 양팔이 있어야 균형감각을 유지하기가 쉽듯이 정치 또한 견제세력이 있어야 더욱 투명해지고 서민을 위한 정책이 나올텐데...갈수록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며 갈등하게 만드니 참 수상한 시절입니다.

거리의화가 2024-02-25 08:32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 갈수록 현실의 정치가 이 사회를 받쳐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민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에 급급한 모습에 실망만 늘어갑니다. 이것이 정치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드네요.
 

푸리에는 자신이 구상한 공동체의 건축학적 규준을 파사주에서 보았다. 파사주를 반동적인 방식으로 변형한 것, 이것이 푸리에 관점의특징이다. 즉 파사주들은 원래 상업의 목적에 기여하는 것인데, 푸리에는 이것을 거주지로 변형한다. 그의 공동체는 파사주들로 이루어진도시이다. 푸리에는 제정의 엄격한 형식세계에서 비더마이어의 다채로운 목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P188

파노라마에서 자연을 모방하여 그릴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친다. 파노라마는 자연을 묘사하면서 그 변화의 모습들을 실제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하게 만들어내려고 함으로써 스스로 사진을 넘어 무성영화와 유성영화를 예시(示)하게 된다. - P190

회화는 우선 색의 요소들을 강조함으로써 사진에대응하기 시작한다. 인상파가 입체파에 자리를 내주면서 회화는 사진이 당분간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을 개발하였다. 사진은 사진대로 고객이 전혀 이용할 수 없었거나 단지 그림으로만 이용할 수 있었던 형상, 풍경, 사건을 무제한으로 시장에 쏟아냄으로써 19세기 중엽부터 상품경제의 영역을 엄청나게 확대해나갔다. 판매를 확대하기 위해 사진은 촬영기술을 유행에 맞게 변형함으로써 대상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이후 사진의 역사를 결정짓게 된다. - P193

만국박람회는 상품들의 우주를 구축한다. 그랑빌의 상상들은 상품적 성격을 우주로 확산시킨다. 그의 상상들은 우주를 현대화한다.

유행은 상품이라는 물신이 경배받고자 하는 의식(儀式)을 규정해준다.
그랑빌은 유행이 일용품에 대해 갖는 요구를 거의 우주에까지 확대한다. 그는 유행을 극단에 이르기까지 추구함으로써 유행의 본성을 드러내게 된다. - P197

사적 개인에게 처음으로 거주 공간이 작업장과 대립된 위치에 서게 된다. 거주 공간은 실내(Interior)에서 형성된다. 사무실은 그 실내의 보충물이 된다. 사무실에서 현실의 일들을 처리하는 사적 개인은실내에서 자신의 환상들을 즐길 수 있기를 요구한다. - P199

신상품들을 파는 상점들에 발맞추어 신문들이 등장한다. 언론은 정신적 가치들의 시장을 조직하기 시작하고 이 시장은우선 호황을 누린다. 비타협주의자들은 예술을 시장에 내다 파는 데저항한다. 그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art pour l‘art)의 기치 아래 모여든다. 이 구호에서 종합예술작품(das Gesamtkunstwerk)이라는 구상이생겨난다. 종합예술작품은 기술의 발전에 맞서 예술을 밀폐시키고자한다. 종합예술작품을 기념하는 예식은 상품을 미화하는 기분 전환과짝을 이룬다. 둘 다 인간의 사회적 현존을 사상(象)해버린다. 보들레르는 바그너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 P206

푸리에는 공동체를 위해서 미덕을 믿는 대신 열정을 추진력으로삼는 사회의 효율적인 기능을 믿으려 한다. 열정을 동력장치로 삼아서, 즉 기계론적 열정과 비교(秘敎)적 열정의 정교한 조합을 통해 그는 시계의 메커니즘과 비슷한 집단심리학을 상상한다. 푸리에적 조화는 이러한 조합의 유희가 낳은 필수적인 산물이다. - P227

그랑빌의 판타지는 이러한 유행의 정신에 상응하는데 아폴리네르는 후에 유행의 이미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이제는 자연의 여러 영역에서나온 모든 물질이 여성 의복을 제작하는 데 도입될 수 있다. 나는 코르크 마개로 만들어진 매혹적인 드레스를 보았다. [……… 자기, 사암, 도기(陶器)가 갑자기 의상예술에 나타났다. (………) 사람들은 베니스의 유리로 구두를 만들고 바카라의 크리스털로 모자를 만들고 있다." - P233

거리산보자는 군중 속에서 은신처를 발견한다. 거리산보자에게 군중은 베일이 되는데 그에게 친숙한 도시가 그 베일을 통해 판타스마고리아로 변한다. 이 판타스마고리아 속에서 도시는 때로는 풍경이, 때로는 방이 된다. 나중에 백화점의 장식은 도시가 풍경 혹은 방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환상에서 영감을 얻게 되고 그렇게 해서 백화점은 거리산보자마저 상품 판매고를 높이는 데 기여하게 만든다. 아무튼 백화점은 거리 산보가 이루어지는 마지막 구역이다. - P238

보들레르에게서 알레고리적 형식의 핵심은 상품이 가격 때문에 갖게 되는 특수한 의미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17세기의 알레고리에서는 이른바 사물들에 의미가 부여됨으로써 사물들 그 자체의 가치는 하락하는데, 이러한 알레고리의 특징은 상품화된 사물에 가격이매겨짐으로써 일어나는 특이한 가치 하락에 상응한다. 상품으로 가격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인해 사물이 겪는 이러한 가치 하락은 보들레르에게서는 새로움의 측정 불가능한 가치에 의해 상쇄된다. 새로움은더는 어떠한 해석도, 또 어떠한 비교도 허용하지 않는 그러한 절대적인 것을 표상한다. 새로움은 예술의 궁극적인 참호가 되었다. - P241

오스망은 스스로 자신을 ‘파괴의 예술가라고 불렀다. 그는 그가 기획했던 일에 대해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회상록"에서 그점을 강조한다. 중앙 시장들은 오스망이 건설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데, 여기에 흥미로운 징후가 있다. 사람들은 파리 시의 발원지가 된 시테 섬>에 대해 오스망이 지나간 곳에는 오로지 교회 하나, - P243

병원 하나, 공공건물 하나, 서민 아파트 한 동만이 남는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위고와 메리메는 오스망에 의한 파리의 변형이 파리 시민들에게 얼마만큼 나폴레옹 폭정의 기념물로 보였는지를 암시한다. 파리시민들은 도시에서 더는 안락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은 대도시의 비인간적 성격을 의식하게 된 것이다. 막심 뒤 캉의 기념비적작품 파리가 탄생한 것은 이러한 의식에서였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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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2-20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읽어내셨군요...!!
 

가을에 蕭王이 銅馬를 鄭縣에서 공격할 때에 吳漢이 突하였다. 銅馬가騎를 거느리고 淸陽으로 와서 모이니, 군사와 말이 매우양식이 다하여 밤에 도망하자, 蕭王이 관도에서 추격해서 모두 격파하여 항복시키고 큰 우두머리를 봉하여 列侯로 삼았다. 諸將들도 믿지 못하고 항복한 자들도 스스로 안심하지 못하였는데, 蕭王이 그 뜻을 알고는 칙령을 내려 항복한 자들로 하여금 각각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 무장하게 한 다음 직접 경무장한 기마를 타고서 部隊와陣營을 순행하니, 항복한 자들이 번갈아 서로말하기를 "이 眞心을 미루어 사람의 뱃속에 넣어 두니, 어찌 목숨을 바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는 이로 말미암아 모두 복종하였다. 이에 항복한 사람을 여러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어 배속시키니, 무리가 마침내 수십만이었다. 그러므로 關西지방에서는 劉秀를 이름하여 銅馬帝라 하였다. - ≪後漢書吳漢傳≫에 나옴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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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믿음의 글들 9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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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80년이나 전에 저희보다도 더 큰 곤란을 무릅쓰면서 이 일본에 도착하려고 하셨던 성 프란체스코 자비에르 신부님의 일이 가슴에 되살아났습니다. 그분 역시도 이와 같은 폭풍의 습격이 지나간 다음날 아침에 우윳빛의 뿌연 하늘을 바라보셨을 게 틀림없습니다. 그 후 몇십 년 동안 수십 명의 선교사나 신학생들이 아프리카를 돌고 인도를 지나 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가 선교하려 했을 테지요. (...)

무엇이 그들에게 이 커다란 고통을 인내하게 했는지, 무엇이 그들에게 이 위대한 정열에 몸을 던지게 했는지 이제야 그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분들도 모두 이 우윳빛의 뿌연 구름과 동쪽으로 흘러가는 검은 구름을 바라보셨던 것입니다. 또 그들이 그때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것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38~39)


1637년 일본 규슈 북부의 시마바라에서 기독교인들이 대규모 민란을 일으킨다. 당시 영주는 가장 상위 계급으로 부락민들과 무사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졌고 무사는 영주를 호위하며 절대 충성했다. 부락민들은 해마다 세금을 바쳐야 했는데 세금을 내지 않으면 갖은 탄압과 형벌을 가했으므로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일본은 1549년 예수회 선교사인 프란치스코 사비에르가 가고시마에 도착한 뒤 가톨릭 포교가 시작되었다. 그 후 예수회, 프란치스코 수도회, 도미니코 수도회,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등의 로마 가톨릭 교회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1624년경에는 신자 수가 65만 명에 이르는 교세를 갖게 된다. 하지만 1587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기독교를 금지하는 명령(바테렌 추방령)이 내려지면서 기독교 탄압이 시작된 이래 1597년경 나가사키에 26명의 신도들과 수도자, 성직자들이 순교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636년 일본은 데지마 섬을 만들어 서양과의 교류 통로를 일원화시키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였는데 그 계기가 된 사건이 시마바라 난이다. 이 사건은 이렇게 기독교 박해 뿐 아니라 막부의 가혹한 세금 정책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시마바라의 난 이후, 영주는 잠복한 그리스도들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파견된 관리들은 부락을 돌아다니며 순찰을 하고 가택을 침입하기도 하며 수상한 자가 있으면 신고하도록 한다. 신고자들에게는 물질적인 혜택이 주어졌다. 사제가 지내는 곳을 보고하면 은 300냥, 수도사를 신고하면 은 200냥, 신도를 발견하면 은 100냥을 지급함으로써 가난한 농민이나 어부들에게는 참으로 유혹적인 조건을 내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수도사나 선교사들은 일본에 들어오기 어려워졌으며 들어오더라도 암암리에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침묵>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로마 교황청에 일본에 파견되었던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 혐의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다. 페레이라 신부는 그동안 일본의 가톨릭 탄압에 대한 끔찍한 실태를 지속하여 보고해왔기 때문에 교황청 사람들은 그가 배신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페레이라 신부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고 잠복 선교도 하기 위해서 세 명의 신부들(가르페, 마르타, 로드리고)이 출발한다. 그들은 페레이라 제자이기도 했다. 


그들은 험난한 파도를 뚫고 우여 곡절 끝에 일본 육지인 도모기라는 어촌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 신도를 만나고 신도들의 자체 조직이 있음을 알고 신부들은 놀란다. 고토라는 곳에서 신부들은 신도들에게 세례를 시행하고 고해성사를 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관헌들의 습격으로 나가사키에 취조를 받기 위해 기치지로가 선발되었으나 여기에 두 명의 사람이 자원하며 함께 간다. 기치지로는 가톨릭 신도였으나 이전에도 배교했다 한참 만에 마을로 돌아온 이력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배교하고 자취를 감춘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요?"

"신부님, 저희들은 나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P85)

"나는 약해요. 나는 모키치나 이치소우처럼 강한 자는 될 수 없어요." (P123)


기치지로의 행동은 사실로만 보면 비열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로드리고처럼 저 말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믿음이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말이다. 


기치지로는 배교를 감행함으로서 풀려났지만 두 사람은 바다에서 순교하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저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로드리고는 오두막에 피신해있다가 페레이라가 배교한 신부 중 하나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용서를 구하며 접근한 기치지로의 고발로 그는 감옥에 갇힌다. 


이후 로드리고는 온갖 회유로 배교를 강요 당한다. 게다가 다른 신도들이 자신으로 인해 탄압을 받는다는 사실에 괴로움은 커져간다. 그는 외친다. '하느님은 왜 침묵하십니까.' 


"나만 처벌해 주시오."

"당신 때문에 저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될지." (P135)


가톨릭 신도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다던 나가사키 부교오인 이노우에는 막상 온화한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 로드리고는 깜짝 놀라기도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악인이라고 해서 악인의 모습이기만 할까 생각했다. 어떤 사람도 천사 또는 악마는 아니며 여러 얼굴을 갖고 있을 것이니까. 


'주여, 이 이상 저를 버려 두지 마십시오.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태로 저를 버려 두지 마십시오. (...)

이윽고 내가 죽임을 당하는 날도 여전히 바깥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갈 것인가. (...) 

그렇게까지 영웅이 되고 싶은가. 네가 바라고 있는 것은 남모르게 죽는 참된 순교가 아니라 허영을 위한 죽음인가. 신도들에게 칭송받고 기도받고, 그리고 저 신부는 성자였다는 말을 듣고 싶기 때문인가.' (P187)


어쩌면 이 독백이 로드리고의 자신의 예견하는, 끝을 향한 고민이었을지. 


"밟아도 좋다. 네 발은 지금 아플 것이다. (...)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하니까."


이 책의 로드리고라는 인물은 이름과 출신은 다르지만 실존 인물이다. 실제는 '주세페 키아라'라는 시칠리아 출신의 신부로 1643년 일본에 들어갔다 체포되어 1685년까지 살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선악이란 이분법이 존재할까.' '진리라는 것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 온갖 방법으로 '배교'를 강요당하는 신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상황은 다르지만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들에게 배신을 강요하던 앞잡이들과 민주주의 운동가들에게 탄압을 가하던 경찰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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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19 14: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분법보다는 각자의 양심이 가리키는 지침은 있을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런 때가 오면 나는 그 양심에 정직하게 반응하게 될까? 하는 생각도!

거리의화가 2024-02-20 09:13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자목련 2024-02-19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다는 평이 많고, 종교가 있어 궁금하기도 한 소설이에요.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고 싶은데..

거리의화가 2024-02-20 09:14   좋아요 0 | URL
종교가 있으시니 더 울림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아마도 도서관에도 있지 않을까요?ㅎㅎ

새파랑 2024-02-21 0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을 로드리고 신부에 감정이입해서 심각하게 읽었었는데...

제가 저 입장이었더라면 아마 초반(?)에 배교 했을거 같아요 ㅋㅋ

믿음의 힘이라는게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을 한참 했었습니다~~ 믿음의 정도라는 것도 보여지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안될거 같고~~

거리의화가 2024-02-21 17:21   좋아요 1 | URL
저는 오히려 기치지로의 입장과 마음이 더 와 닿았다고 해야 할까 그랬습니다^^; 믿음이라는 문제가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종교가 있었다면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아무튼 새파랑님 덕분에 좋은 책 잘 읽었네요. 감사드립니다^^
 

자본주의는 순전히 제의로만 이루어진, 교리도 없는 종교이다.
자본주의는 칼뱅주의에서뿐만 아니라 나머지 정통 기독교 교파들에서도 입증되어야 할 테지만 서구에서 기독교에 기생하여, 종국에는 기독교의 역사가 그것의 기생충인 자본주의의 역사가 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 P124

걱정들(Die Sorgen)은 자본주의 시대에 고유한 정신병이다. 빈곤,
떠돌이걸인-탁발승적 행각에서 정신적(물질적이 아닌) 탈출구 없음. 그처럼 탈출할 길이 없는 상태는 죄를 지우는 상태이다. ‘걱정들‘
은 이 탈출구 없음의 죄의식을 나타내는 지표다. ‘걱정들‘은 개인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다는 불안에서 생겨난다. - P125

"초현실주의는 그 본질적인 진실의 측면에서 대화를 재건한다는 사명을 갖고 나왔다. 파트너들은 예의범절의 강박에서 해방되었다. 말하는 자는 어떤 명제도 연역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답은 원칙상 말한 사람의자기애를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과 이미지들은 듣는 자의 정신에게는 디딤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 P137

키치는 우리가 꿈속에서나 대화에서 사멸한 사물세계의 힘을 빨아들이기 위해 두르는 평범한 것의 마지막 마스크이다.
우리가 예술이라 불렀던 것은 신체에서 2미터 떨어진 곳에서 비로소 시작한다. 그런데 키치 속에서 사물세계는 사람의 몸에 닥쳐온다.
사물세계는 더듬는 그의 손에 몸을 맡기고 마침내 그 손아귀 내부에서 자신의 형상들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인간은 옛 형식들의 모든 정수를 자신 속에 지니고 있으며, 19세기 후반부에서 유래한 환경과의 갈등 속에서 ㅡ꿈들에서든 몇몇 예술가들의 문장과 이미지에서든ㅡ만들어지는 것은 "가구가 비치된 인간으로 부를 수 있을 어떤존재다. - P139

종교적 각성을 참되고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것은 결코 환각제를 통해서가 아니다. 그 극복은 범속한 각성(profane Erleuchtung), 유물론적이고 인간학적인 영감 속에서 이루어진다. - P147

혁명을 위한 도취의 힘을 얻기, 이것이 초현실주의의 모든 책과시도가 추구하는 목표이다. 초현실주의는 그것을 자신의 가장 고유한 - P162

과제라고 불러도 좋다. 이 과제를 성취하려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모든 혁명적 행위 속의 어떤 도취적 요소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는부족하다. 그 과제는 무정부주의적 과제와 동일하다. 그러나 강세를오로지 무정부주의적 과제에만 둔다는 것은 혁명을 방법과 기율 면에서 준비하는 일을 순전히 연습과 전야제 사이에서 휘청거리는 실천을위해 소홀히 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도취의 본질에 대한 너무 단순하고 비변증법적인 견해까지 추가된다.
오히려 우리는, 일상을 꿰뚫어 볼 수 없는 것으로, 그리고 꿰뚫어 볼 수 없는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변증법적 시각의 힘으로, 그 비밀을 일상 속에서 재발견하는 정도로만 그것을 꿰뚫을 수있다. - P163

혁명의전제조건은 어디에 있는가? 신념의 변화에 있는가 아니면 외적 환경의 변화에 있는가? 이것은 정치와 도덕의 관계를 규정짓고 어떠한 얼버무림도 용납하지 않는 핵심적 물음이다. 초현실주의는 그 물음에대한 공산주의적 답변에 더욱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은 전 - P164

방위적인 염세주의를 뜻한다. 절대적으로 그렇다. 문학의 운명을 불신하고 자유의 운명을 불신하고, 유럽의 인류의 운명을 불신하며, 무엇보다 계급 간의, 민족 간의, 개인 간의 모든 소통을 불신, 불신, 불신하기이다. - P165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면서 사람들 위에 전혀 새로운 빈곤이 덮쳤다. 그리고 점성술과 요가의 지혜, 크리스천 사이언스와 손금 보는 점술, 채식주의와 그노시스, 스콜라 철학과 심령주의를 가지고 사람들 사이로 파고든, 아니 오히려 사람들 위로 덮친, 답답하게널린 갖가지 이념들이 이러한 빈곤의 이면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진정한 부활이 아니라 갈바니(Galvani) 전기 작용이기 때문이다.
여기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우리가 겪고 있는 경험의 빈곤은 거대한 빈곤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 그 거대한 빈곤은 다시 중세 걸인의 얼굴과 같은 날카롭고 정확한 윤곽을 띤 얼굴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 P173

자연과 기술, 원시성과 안락함은 여기서 완전히 하나가 된다. 또한 끝없는 일상의 분규에 지쳐버렸고 삶의 목적이 수단들에 대한 무한한 원근법적시각에서의 가장 먼 소실점으로만 떠오르는 사람들의 눈앞에는 어느방향에서나 가장 단순하면서 동시에 가장 안락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충족시키는 삶이 구원의 빛처럼 나타난다. 그런 삶 속에서 자동차는 밀짚모자보다 더 무겁지도 않고, 나무에 열린 열매는 어떤 기구의풍선처럼 빠르게 둥그렇게 익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일단 거리를두고, 물러서려 한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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