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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 미투 운동에서 기후위기까지
리베카 솔닛 지음, 노지양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평점 :
"당신이 깨어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건 누군가가 당신을 깨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인간 자명종에게 고마워합시다" - P12
우리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최근 백래시 바람이 불기는 했어도 과거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적어도 차별과 배제임을 모르고 당하는 시대는 지나왔다고 생각한다. 인종, 젠더, 계급, 이제는 기후 문제까지 더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솔닛은 '과거에 감사하고 미래를 준비하자' 이야기한다. 그녀의 메시지는 참 희망적이고 긍정적이어서 좋다.
모든 세상이 조명이 비치는 무대인 건 아니다. 백스테이지와 극장 밖도 여전히 사람이 활동하는 영역이다. 조명 밖에서, 공식 규칙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각각 다른 수준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행동하고 활동한다. 아랫사람들에게 이 공간은 그들을 억압하는 제도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자유를 의미한다. 권력자들에게 이 장소는 위선이 허가되는 곳이다. 때로 그들은 옆에 사람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거나 여기서 무슨 말을 하건 자신의 평판에 금이 갈 일이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중요한 것은 그 정보 자체가 아니고 누가 아는지, 누가 가진 지식과 정보인지다. 권력자들이 그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할 때, 그들의 행동은 노바디에게만 목격되었음을 뜻한다. 노바디들은 실은 알고 있다. - P48
'노바디'는 없는 취급을 당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권력자와 지위가 있는 소수의 사람은 자신들의 돈과 힘으로 다수를 현대판 노예로 취급한다. 폭력은 여기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그들은 '노바디'가 감히 자신을 고발할 수 없을 것을 것이라 여긴다. 정치계 뿐 아니라 문화 예술계에도 이런 일은 너무 흔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쉽사리 권력자를 공격할 수 없어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들이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 같아서 분노가 인다. 시스템도 바뀌어야 하고 개인도 바뀌어야 해서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유권자 위협, 다른 말로 '투표권 도둑질'이라 부를 수 있는 많은 방식이 있고, 이 사례 또한 속속들이 퍼져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유권자 위협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아내를 협박하고 조종하고 침묵시키는 남편들이다. 집집이 문을 두드려 직접 유권자들을 만나는 전국의 방문 선거 운동원들에게 여러 차례 들은 이야기가 있다. 아내는 이번에 우리 부부가 누구를 뽑아야 하느냐고 남편에게 직접 묻기도 한다. 그 말을 하는 이들은 대체로 겁을 먹은 얼굴이다. 때로 남편이 먼저 문을 열었을 때는 선거 운동원이 아내를 만나지 못하게 차단한다. 혹은 말을 막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아내가 민주당 당원임을 알면서도 우리 집사람은 당연히 공화당 후보를 뽑을 거라고 큰소리를 친다. 혹은 우리 집안에 민주당은 없다고 말하는데 아내가 남편에게 민주당원이라는 사실을 숨겨서다. - P86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정치 때문에 항상 문제가 되었다. 결혼 후에도 초반에 집에 갈 때마다 정치 이야기로 싸움이 나서 그 이후에는 평화를 위해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다.
아버지는 열성적인 보수파에 가깝다. 그래서 특히나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집권기에는 하루가 멀다 않고 비난과 성토가 이어졌다. 어머니도 분명 의견이 있으실 것인데 아버지의 호통에 맥을 못추실 때는 답답함이 컸다. 지방 선거 등 투표일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어차피 비밀 투표니까 나는 소신껏 투표하고 투표장을 나오고는 했다. 투표권은 엄연한 성인의 권리인데 누구의 강요를 받아 몰표를 찍게 하거나 하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추방되어야 할 침입자들이라는 주장과 함께 역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불법 이민자라는 개념은 국가의 개념을 몸으로 보고 외국인의 몸으로 인해 순수함이 오염되며, 국경선이란 봉인할 수 있고 봉인해야 한다고 말하는 개념이다. 그들이 꿈꾸는 국가란 자율적이고, 오염되지 않고, 통과할 수 없는 재료로 만들어진 단단한 벽돌이다. 그러한 꿈을 꾸고 있는 이들은 공기가 순환하고 물이 흐르고 상품이 움직이고 동물이 이동하는 현실을 부정한다. 또한 국경선이 지금과 달랐던 역사, 어떤 국경선도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 우리 중 많은 이가 수많은 국경선을 넘어 여기에 와서 살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한다. 이러한 안전에 대한 환상은 자아와 타자가 별개이고 타자는 얼마든지 추방할 수 있다고 믿으며 우리가 누구이고 그들이 누구이냐는 질문을 거절한다. - P212~213
기후변화 이전에는 보통 얼음이 녹으며 봄이 오는 날짜가 일정했고 동식물의 멸종 위기를 예측할 수 있는 개체 숫자가 있었다. 과학자이자 영화 감독인 랜디 올슨Randy Olson은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우리가 생태계의 기준선만 안다면 회복을 위한 작업을 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미처 기록하고 확인하기도 전에 기준선이 이동하면 이 타락한 상태를 정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때로는 개선되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 원칙이 생태계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역사와 세대 간 기억은 우리에게 사회적·정치적 기준선을 제공하지만, 기억을 잃으면 우리가 경험하는 현재는 절대 피할 수 없고, 바꿀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로 느끼게 된다. 기억에는 힘과 가능성이 있다. 호황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사회 운동이 한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과거에는 인종, 젠더, 어린이, 연령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P250~251
두 인용문은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단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민이나 유학, 난민 등의 형태로 한국에 들어오는데도 불구하고 국경은 너무나 철벽 같고 한국인들은 다른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식민지, 전쟁 등 어려운 시절을 겪고 성장한 국가인 만큼 이제는 한국인들도 포용력을 넓혀나가야 하지 않을까.
기후 변화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기후는 변화나 위기가 아니라 문제로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 아침 기사를 보다가 때이른 고온 현상으로 올해 각 지역 꽃 축제들의 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물론 서울의 '벚꽃 축제'도 꽃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빼고 그냥 '꽃 축제' 이런 식으로 변경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재난이 아니라 일상이 될 것 같아 답답해진다.
솔닛의 세 번째 에세이를 만났다. 사둔 지는 2년이 다 되었는데 이제야 다 읽었다. 번역본으로 출간된 것이 2021년인데 구입하고 바로 읽었다면 더 현장감 있게 읽을 수 있었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나간 시간을 탓할 수는 없고 이제라도 읽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역시나 이번 책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