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승화

얼마 전 '국립 서울현충원'에 대한 책을 읽고 난 뒤라 그런지 특히 이 챕터의 내용이 눈에 확 들어왔다.(현충원에도 무명용사탑이 있다.) 전사자에 대한 숭배는 예전 같으면 일상적으로 국민 의례를 행하면서, 지금은 현충일 같은 특정 기념일에 국가에 대한 충성을 바쳐 순국한 순교자로 대상화된다. 나는 이 과정이 정치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것이 민족주의(에 대한 숭배)를 끊임없이 끌어올리는 행위겠구나 하는 생각이 일었다. 의도치 않게 연결 읽기가 되고 있어서 더 의미가 있다.

[죽음의 민주화와 사자의 기억]
피해자=수동성, 희생자=능동성 or 주체성
비장한 선율에 숭고한 희생의 노랫말을 붙인 애국가요가 각종 국가 기념식에서 제창되는 것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를 놓고 벌어진 논쟁
국민국가의 의례 -> 고통의 기억을 동원하면서 공동체의 응집력을 극대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함께 나눈 고통이 기쁨보다 민족을 더 단결시키고, 민족적 기억을 위해서는 애도가 승리보다 나은 것이다."(by 에르네스트 르낭)
집단적 희생의 기억 - 정치 종교를 만들어내는 재료
전근대사회에서의 전사자 의례는 혼을 달래서 빨리 잠재워야 할 부정적인 존재 vs 근대 국가의 국민 의례는 전사를 위대한 행위로 간주하고 해석을 기록하여 후세가 추모하게 하는 숭배
근대 주체 -> 국민국가의 요청에 따라 다듬고 만들어진 주체. 명령에 복종하고 조국에 충성하고 군인의 미덕을 숭상하는 국민으로 프로그램화된 대중
17세기 영국의 휘그파는 고대 공화국의 시민과 자신을 동일시, 1750년대 프랑스 신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시민적 공화정을 이상적 공동체로 여겼음(공동 의지에 기초한 공동체,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시민, 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헌신)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고전적 민족주의와 다른 점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싸우다 죽은 전사자 뿐 아니라 억울하게 죽은 모든 이의 희생까지 민족의 이름으로 승화시킨다는 데 있다 - 죽음의 민주화

[숭고한 희생자와 순교의 국민화]
피해자와 희생자는 언어나 문화권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이거나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같은 언어에서도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반면 순교자는 언어권의 경계를 넘어 그 의미가 거의 일치한다. 순교자는 종교적 믿음이나 정치적 신념을 위해 모든 고난을 무릅쓰고 죽음까지 마다하지 않는 정치적 행위를 뜻한다.
"독재자는 죽는 순간 지배가 끝나지만, 순교자는 죽는 순간 지배가 시작된다."(by 쇠렌 키르케고르)
'이타적 자살'(by 에밀 뒤르켐): 자기 사회의 지배적 신념과 헤게모니적 가치체계를 체화한 구성원이 사회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자살을 결단함으로써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현상 -> ex) 이슬림 지하드 전사의 '자살 테러' or 팔레스타인 전사의 '자살 공격'
순교의 대중화 or 순교의 국민화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일상에 깊숙이 자리하게 돼 -> 무명용사의 숭배

[시민종교와 전사자 숭배]
진보주의 이데올로기는 삶의 우연성과 불멸성에 대한 숙명론적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민족주의는 민족의 영속적 삶이라는 관념을 통해 죽은 자와 태어나지 않은 자를 연결하고 죽은 자를 민족의 삶 속에서 부활시킨다고 주장
민족주의는 조국을 위해 죽어간 자들의 제사를 통해 영속된 운명공동체를 재확인
희생자에 대한 종교적 애도에서 중요한 것은 죽은 자의 관점이 아닌 살아서 애도하는 자의 관점. 애도의 주체가 산 자이기 때문.
1차 대전의 기억이 종교적 분위기를 부여하면서 순교와 부활이라는 믿음을 국가라는 시민종교에 투영
야스쿠니 신사의 전사자 숭배: '정치종교-시민종교-세속종교'
야스쿠니 신사가 정치종교의 성전이 된 기원
대한민국 전사자 의례는 제국 일본의 정치종교적 의례에서 기원한 것
강제 동원 희생자 집단의 복권 -> 기억의 지구화, 정치의 민주화로 가능해짐

[탈영병 기념비와 대항 기억]
전후 독일과 소련, 일본 사회는 탈영병의 존재를 사회적 기억에서 배제하면서 조국의 순교자 신화를 유지 가능했음. 따라서 탈영병의 존재는 오래도록 사회에서 잊힌 존재
정치종교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한계가 존재 - 조국을 위해 무모한 죽음보다는 전쟁에 반대하고 살아남는 게 애국이다라는 생각이 퍼지면서 정치종교의 세력이 약화된 것 -> 이는 현재 러시아 군인들의 강제징집 명령에 불복종, 포기하거나 탈출하는 현상과 오버랩됨.
탈영병을 위한 기념비(2014.10.24, in 오스트리아 빈): 나치 군사재판에 희생된 오스트리아 탈영병을 위한 기념비 - 정치종교의 전사자 숭배의례를 통해 고양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문화적 기억에 맞선 반헤게모니적 기억문화의 예
하인리히 뵐 - 2차 대전 당시 탈영병이자 투항자로서 비판을 많이 받았음
2007년 1월 새로 제정된 대한민국 국기법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 조항이 없지만 국기에 대한 충성서약은 행정자치부 시행령으로 존속.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피해자가 희생자로 넘어가는 담론적 승화 과정에서 출현한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억울하게 죽은 수동적 피해자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숭고한 희생자로 탈바꿈하는 순간,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로 가는 문이 열리는 것이다. 강제 폭력의 피해자가 자발적인 결단의 희생자로 미화되고, 의미없는 죽음이 의로운 죽음으로 신성화되고, 우연한 사고가 운명적 비극으로 신비화되고, 현실 속의 피해자가 기억 속의 희생자로 자리매김될때,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운명론적 초월성을 띠게 된다. 희생의 승화를 통해 조국, 민족, 혁명, 해방, 근대화 등을 꿈꾸는 세속의 이데올로기가 존재론적 운명의 차원으로 격상되는 것이다. - P113

억울한 희생자의 고통과 고난을 민족적 기억의 주변에서 중심으로끌어올린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출현과 더불어, 희생자는 과거 민족영웅이 누렸던 권위를 공유했다. 지구적 기억 공간이 만들어지고 피억압자의 인권 감수성이 예민해지면서 폭력의 희생자가 바로 그 희생때문에 도덕적 영웅이 된 것이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에서 피해자가희생자로 승화되는 양상은 순교 개념을 축으로 한 영웅 민족주의와는크게 다르다. 전사자와 민간인 희생자 사이의 위계를 지우고 군인 전사자에게 국한된 죽음의 민주화를 민간인 희생자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공감을 얻는 세속종교의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죽음의 민주화가 정치종교의 민주화·대중화·국민화를 낳은 것이다. - P120

‘희생자‘라는 단어 뒤에 굳이 ‘의식‘을붙여 ‘희생자의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첫째, 피해자를 희생자로 승화시키는 기억의 전이 과정을 담기 위해서다. 피해자에게 희생자의 숭고미학을 덧씌우는 수사법의 정치학을 설명할 때 희생자 ‘의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둘째, 실제 희생자가 아닌 ‘포스트 메모리‘ 세대가 가진 역사의식인 ‘세습적 희생자의식‘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도하다." - P124

순교자의 지배가 시작되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도 기지개를 켠다.
그러나 순교자 숭배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선택된 순교자에서 다수의 집단적 순교자가 필요하다. 순교의 대중화 또는 순교의 국민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몇몇 선택받은 사람만이아니라 국민 전체가 순교자가 될 때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추상의이데올로기를 넘어 일상에 깊이 뿌리박는다. ‘그들‘의 순교가 아니라
‘우리‘의 순교가 되는 것이다. 이름 없는 영웅이 귀족적 영웅을 대체하는 죽음의 민주화는 특히 무명용사 숭배에서 잘 드러난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 깊이 뿌리박은 전통종교의 형식이 필요한 것도 이 대목에서다. - P126

전사자 숭배는 국가라는 종교에 순교자를 제공했고, 죽은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는 국가적 경배의 신전이 되었다. 전사자를 어떻게 매장하고 추모할지, 전쟁기념물에 어떤 상징성을 투영할지 등 전사자 묘역의건설과 관리 문제는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 체계적으로 논의되고 의례도 더 정교해졌다. 전사자 숭배를 중심으로 구축된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억 문화의 회로판을 통과한 기독교의 순교 전통은 순국의 전통으로 탈바꿈했다. ‘신을 위해 죽는다(pro domino mori)‘는 가톨릭의 순교 정신이 ‘조국을 위해 죽는다(pro patria mori)‘는 순국의 정치적 도덕률로 바뀌면서 전사자 숭배는 근대 국민국가의 정치종교적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순교가 순국으로 탈바꿈하고, ‘의사(義士)‘ 또는 ‘열사(烈士)‘가 ‘순교 성인‘을 대체하며, 나라에 대한 충성으로 목숨 걸고 싸운 말단 병사들이 순교자와 같은 반열에 오를 때, 애국적 순교자의 지배가 시작되고 조국과 민족을 신성화하고 숭배하는 정치종교는한껏 고양된다. - P129

전사자들을 ‘영령(英靈)‘으로 호명해서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현창
‘하는 순간, 죽음은 민족의 영원한 삶 속에 스며들어 불멸의 지위를 얻는다. - P131

기독교의 종교적 기운과 결합할 때 전사자 숭배는 애도를 넘어 승화의 경지에 이르기 쉽다. 특히 세속적 진보의 비전을 잃어버린 채 종교적 주술의 과거로 되돌아가는 근대의 재주술화 과정에서 ‘도덕적 자본‘의 헤게모니가 강해지면, 국가가 추구하는 공식적 기억은 점점 더 종교적 상징에 의존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먼저 발전한 전사자 숭배와 정치종교가 좋은 예다. 특히 ‘희생자의식‘은 개념적 신축성으로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상호침투와 모순적 결합을 더 손쉽게 만들어주는경향이 있었다." 궁극적으로 전쟁에 대한 집단 기억은 국가가 만들고퍼뜨리는 역사 정책의 도덕적 층위를 결정한다. 국가가 구성한 공식기억의 주인공은 전쟁의 공포가 아니라 영광이었고, 희생자가 아니라영웅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신성한 경험으로 구성된 전쟁의 기억은 국가에 전례 없이 종교적 분위기를 부여하고, 피에타(Pieta) 모티브를 통해 전사자를 기억하는 양상에서 보듯이 순교와 부활이라는 전통적인 믿음을 국가라는 전면적인 시민종교에 투영했다. - P133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태동하던 시절 해방공간의 한반도에서는
‘반공 영령‘이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전사자를 대신해 현창과 숭배의대상이 되었다. 신의주학생사건의 희생자들을 시작으로 좌우익 폭력충돌 과정에서 희생된 우익 측 경찰, 군인, 군속, 철도원, 의용소방대,
민간 반공단체 회원이 전사자 의례의 중심이 된 것이다. ‘반공 전사자‘
들의 현창은 1949년 개성전투에서 숨진 이른바 ‘육탄10용사‘ 장례식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명령에 따른 결사대‘였던 일본 제국의 육탄 3용사와 달리, 대한민국의 육탄10용사는 ‘자진하여 살신성인했다‘는신화를 전국에 퍼뜨렸다. ‘조국의 군신‘이자 ‘영원불멸의 정의의 봉화‘
인 반공 전사자 숭배 의례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 전몰장병 합동 추도식‘ 등을 거치며 발전을 거듭했다. 이들은 ‘애국지사‘, ‘순국열사‘ 등으로 호칭이 격상되어 독립투사와 같은 순교자의 위치로 올라갔다. 정작독립을 위해 무장 투쟁하다가 희생된 순국열사들은 국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잊혀갔다. - P144

제국 일본의 전사자 숭배와 정치종교의 의례는 제국이 해체된 이후에도 동아시아 각국에서 살아남았다. 미군의 점령 아래 제국의 유산과총력전 체제를 부정해야만 했던 일본보다 국가 건설이 절실했던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에서 의례는 더 잘 보존되었다. - P141

매일매일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는 게 죽는 것보다 어렵다. 비겁한 일상 대신 영웅적 죽음을 강변했던 이들은 생존의 어려움과 직면할 용기를 갖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영웅적 비겁함과 일상의 용기가 대비되는 대목이다. 영웅주의적 민족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민족 담론으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웅처럼 장렬하게 산화한 자들이 아니라 억울하게 희생된 자들이나 비루하게 살아남은 자들을 고귀하고 초월적인 추상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푸는가에 따라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천차만별의 모습을 띤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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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산문 속에서 입 다물기

<노생거 사원>에 대한 이야기

제인 오스틴 작품 중 최근에 읽은 것은 <이성과 감성>, <맨스필드 파크>, <노생거 사원>이었다. <오만과 편견>은 오래 전에 읽었고.
그녀의 작품들 중에는 스토리의 탄탄함으로서는 <맨스필드 파크>나 <오만과 편견>을 골라야 겠지만 이상하게 끌리는 작품은 <노생거 사원>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오스틴의 자기 의식이 가장 돋보이는 소설이라고 평가한다.
그 부분은 내가 오스틴의 자기 의식을 뭐라 정의내리기 어려워서 넘어가야 할 것 같고 개인적으로 일단 다른 장편 소설들과 확연히 느낌이 달랐다.
노생거 사원의 방문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르지만 노생거 사원을 방문하기 전 이미 충분히 어떤 일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짐작케 하는 장치들이 숨어 있어 그런 것들을 찾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또 소설에 대한 토론이나 역사적 의식, 남성 권위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속이 시원했다.

『노생거 사원(1818)은 교양소설과 해학극이라는 두 장르의틀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면서 오스틴이 암호화, 숨기기, 의중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기에 그토록 매혹당한 한 가지 이유를공한다. 『노생거 사원』은 겉으로 보면 재미있고 거슬리지 않지만 결국 오스틴의 시대에는 적절하지도 않고 허용되지도 않았던 가부장제에 대한 고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초기 작품이(생전에는 이 작품을 출판해줄 출판사를 찾을 수 없었기에) 오 - P266

스틴 사후에 출간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가부장에 대한 가혹한묘사 때문에 아주 불편해했다. - P267

여자 주인공들은 인간처럼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괴물처럼 만들어지는듯 보인다. 또한 그들은 괴물처럼 자기 파괴의 길로 가는 운명을 짊어진 듯하다. 따라서 『노생거 사원』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찾는 한 소녀가 자신이 자신의 중요성을 박탈하는 괴물 같 - P268

은 허구의 덫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을 정확하게 묘사해나간다. - P269

오스틴은 소설이 신분을 박탈당한 장르임을 암시한다. 소설은 신분을 박탈당한 젠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소설을 열등한 문학으로 간주하는데, 소설이 이미 여성 작가와 빠르게 확산되는 여성 독자의 영역이 되었기 때문이 - P272

다. 우리는 소설이 캐서린을 잘못 교육하는 양상을 반복해서 보게 된다. 즉 소설은 부풀려지고 과장된 상투어로 말하도록 캐서린을 가르치고,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동기가 훨씬 복잡한 사람들에게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만큼 악하거나 선한 행동을 기대하게 만들며, 캐서린으로 하여금 동시대인의 세속적인 이기심을 판단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오스틴은 소설가들이 ‘상처받은 집단‘이었음을 선언하고, ‘오만, 무지, 유행‘ [1부 5장] 같은말로 부당하게 비난받아온 작가라는 종을 명백하게 옹호해나간다. - P273

오스틴은 생애 후기에 존엄한 코부르 집안의 역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오스틴은 역사적 ‘실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거부하고, 자신은 서사시를 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역사적 로맨스도 쓸 수 없다고 선언했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이나 사람들을 편하게 조롱하지 못하는 소설을 계속해서 써야 한다면, 첫 장을 끝내기도 전에 틀림없이 나가떨어질 거예요. - P275

역사상 남자의 정치적 경제적 활동을 무시하면서 오스틴은역사란 남성의 가식으로 구성된 한결같은 드라마인 동시에 고딕적인 로맨스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허구(그것도 매우 해로울수 있는 허구)일 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여성이 역사에참여할 수도 없고 역사의 장에 거의 완전히 부재해왔기 때문에, 이 역사라는 허구는 결국 여자에게 무관심한 문제일 뿐임을 오스틴은 암시하고 있다.

오스틴은 자신이 풍자하는 고딕적 관습을 거부하기보다 그것에 권위를 다시 부여하기 위해 여성적 고닥을 매우 분명하게 비판한다. - P277

오스틴은 여성의 상처받기 쉬운 속성을 묘사하는 로맨스 작가들이 틀렸다기보다는 단순했다고 넌지시 내비친다. 그녀 스스로 고백한 무지 또는 실제 무지에도 불구하고, 오스틴은 이국적이고 멀리 떨어진 고딕적 장소의 악한을 당대 영국에 훌륭하게 재배치해냈다. - P279

오스틴은 자신의 모든 소설에서 재정 압박 때문에 결혼할 수밖에없는 여성의 무력함, 불공평한 상속법,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못한 여성들의 무지, 상속녀 과부의 심리적인 취약성, 이용당하는 독신녀의 의존 상태, 몰두할 일이 없는 여성의 권태를 탐색한다. - P280

여자 주인공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허구에 부자연스럽지만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여자 주인공이 되는 소녀는 미치지는 않더라도 병들 것이라고 오스틴은 암시한다. - P287

메리 셸리의 괴물처럼 캐서린은 마침내 누군가가 만들어낸 창조물로, 즉 마음에 들지 않은 플롯 안에 갇혀 있는 인물로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메리 셸리의 괴물처럼 캐서린은 자신이 속한 문화의 기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캐서린의 좌절은 부분적으로 자신이 만들어낸 굶주리고 고통받는 틸니 부인에게반영되어 있다. 자신이 이 여성 수인을 해방시켜준다는 것도 망상의 일부분일 뿐이다. - P288

오스틴의 초기 패러디물은 모두 독자들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에게 과중하게 의존함으로써 그녀의 후기 소설에 나타나는 여성의 상상력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시사한다. 해럴드블룸은 (자신을 여성으로, 그리하여 이류로 정의한 것과 불가분하게 관련되어 있는 말)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했지만 오스틴이 자신의 의식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준 작품은 『노생거사원』이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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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09 21: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노생거사원 좀 어슬퍼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별로였는데, 제인 오스틴의 자기의식이 돋보인다는 평가는 잘 모르겟네요. 제가 똑바로 안 읽어서 그럴까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11-10 09:26   좋아요 2 | URL
저는 어설퍼서 더 신선했던 것 같아요^^; 기존의 오스틴 소설들에서 느낄 수 없는 재미들이었거든요. 그리고 자기의식 평가는 저도 오스틴의 자기의식이라는 것 자체가 난해해서요ㅎㅎㅎ 그리고 저도 작가가 저렇게까지 분석을 하는데 저는 그렇게까지는 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 부분도 있어요^^;

다락방 2022-11-10 07: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노생거 사원을 읽은지 오래되어 내용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제인 오스틴의 자기 의식‘이라 하니 퍼뜩 책에 대해 등장인물이 주장을 펼치던 장면이 생각나네요. 아니, 다른 분들 다 읽고 계시는데.. 저는 어쩌죠?

저는 오늘 실낙원 읽으려고 꺼내왔다가 야.. 이거 못읽겠다 싶어서 한 열 장 읽고 덮었습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2-11-10 09:28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이 책에서 노생거 사원에 대한 이야기의 분량이 제법 길더군요^^ 읽어두길 잘했다 생각했습니다. 오스틴의 자기의식은 아직 와닿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저 몇개의 소설을 읽은 것만으로 오스틴 소설의 스타일을 어느 정도 파악한 것일뿐이라서요.

실낙원 저도 구매는 해두었는데 읽을 시간이 없네요ㅎㅎㅎ 다락방님이 덮으셨다는 건 왜일까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scott 2022-11-10 16: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노생거 사원이 오스틴 작품 중 의외로 재밌고
나머지 주요 작품들 중심이 결혼과 사랑 그리고 돈, 재산 문제여서 ㅎㅎ

학계에서는 <이성과 감성>을 최고작으로
문학인들은 <엠마>,
나보코프는 <맨스필드 파크>

그리고 제 개인적인 기준으로 마지막 작품인 <설득>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11-10 17:38   좋아요 3 | URL
저도 노생거 사원이 그래서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엠마랑 설득은 아직 읽지를 못해서 평가가 어렵습니다만 설득이 마지막 작품이니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예상은 해봅니다^^

레삭매냐 2022-11-10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인 오스틴의 소설 6편 중
에 만난 건 <설득> 꼴랑 하나
네요.

예전에 일본 여행 가서 그 책
을 들고 다니면서 읽을 것으로.

<오만과 편견>이랑 다른 책도
수배해 두긴 했는데...

거리의화가 2022-11-10 17:43   좋아요 2 | URL
매냐님 저는 설득하고 엠마만 못 읽었어요. 사실 문학소설은 잠시 그만 읽고 다른 책들을 읽고 싶어서 쉬는 중입니다ㅎㅎ 저는 결혼과 남편감 찾는 이야기가 지루해서 이입하기가 어렵더라구요ㅠ

mini74 2022-11-14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적엔 그냥저냥 재미나고 말 많고 귀에서 피나게 만드는 연애소설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다미여 읽으면서 오스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거 같아요.. 노생거 사원 저도 읽어야 하는데...

거리의화가 2022-11-14 17:3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저는 연애소설을 진짜 간지럽기도 하고 그래서 외면했거든요. 그래서 제인 오스틴에 대한 편견이 좀 심했는데 이번에 여러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편견에서 좀 벗어날 수 있게된 것 같습니다. 노생거 사원 저는 재밌었어요ㅎㅎ

독서괭 2022-11-18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저 4장 읽다보니 <노생거 사원> 미리 안 읽은 게 몹시 후회가 됩니다ㅠㅠ 12월에라도 구매해서 읽어야봐야겠어요. <빌레뜨> 사놔서 읽어야하는데 말이예요..!!

거리의화가 2022-11-20 19:18   좋아요 1 | URL
저는 오스틴은 일단 올해까지 <설득>만 읽어볼까 싶은데 소설은 잠시 쉬고 싶어서... 손놓고 있습니다. 3부 앞에서 멈춰서있는데 하필 밀턴이라 <실낙원> 잠시 읽어보니 역시 제 스타일이 아니네요ㅋㅋㅋ 아무래도 이건 도전못할 것 같아요. <노생거 사원>은 다미여에서 분량도 제법 되고 막상 읽어보니 재밌게 읽었었거든요. 아마 괭님도 나중에라도 읽으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Ⅱ. 계보

[도덕적 원죄와 희생의 그늘]
<가련한 폴란드인 게토를 바라보네>(얀 브원스키, 1987.1.17) 에세이 발표하자마자 논란의 중심에 서 - 2차 대전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 이웃에 대한 폴란드인의 숨겨진 죄의식(유대계 이웃이 나치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또는 고소하게 지켜본 폴란드인의 죄의식)을 들추어냈기 때문 -> 방관자 or 동조자 <-> 전후 폴란드의 기억 문화는 나치즘의 희생을 강조하는 당의 공식 입장과 스탈린주의의 희생을 강조하는 민중 입장의 두 축으로 구성

영화 <쇼아>(클로드 란츠만 감독, 1985) - 폴란드 국내에서 상영이 금지. 폴란드인이 홀로코스트 공범자인양 잘못된 이미지를 전달한다 보았기 때문. 이는 폴란드 공산당의 공식 입장(민족주의)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 -> 현실사회주의는 인종주의적 민족주의를 부추기면서 체제 위기를 넘어서려 했고, 반유대주의는 가장 손쉽게 동원 가능한 기제

숫자의 정치학 - 폴란드의 막대한 피해

폴란드 공산당은 2차 대전 이후 최초의 단일민족국가 수립을 당의 치적으로 선전했으나 폴란드인 대부분도 ‘유대인 없는 폴란드‘라는 새로운 국가 구성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당당함과 부끄러움 사이]
<가련한 폴란드인 게토를 바라보네>(얀 브원스키, 1987.1.17) 에세이는 1980년 체스와프 미워시의 시 <피오리 광장>(1943) 인용 - 1600년 2월 이단으로 몰려 로마의 피오리 광장에서 화형당하는 르네상스 휴머니스트 조르다노 브루노와 그의 고통에도 아랑곳없이 흥겨운 일상을 즐기는 로마 시민들을 묘사

폴란드인의 반응은 변명과 성찰
변명: 서방 언론의 왜곡으로 일부 폴란드 농민과 프티 부르주아의 반유대주의 행위를 지나치게 일반화하여 부정적 여론 초래
성찰: 나치의 압도적 폭력 앞서 유대인 이웃의 죽음은 막을 수 없었어도 죽게 내버려둔 데는 폴란드 이웃의 책임이 존재

[예드바브네 학살과 카인의 후예]
《이웃들 》(얀 그로스, 2000)은 홀로코스트 당시 폴란드인과 유대인 이웃의 관계가 도덕이나 양심, 부끄러움의 문제를 넘어 범죄의 문제임을 드러내 - 예드바브네라는 마을에서 폴란드 이웃들이 유대인 학살의 주역이자 공범자였다는 범죄행위가 드러남 -> 홀로코스트 방관자에서 가해자로 논의점이 변경됨

영화 <이다(Ida)>(파배우 파블리코프스키, 2013): 나치 점령 당시 부모를 죽인 폴란드 이웃 농민들에 의해 수녀원으로 넘겨져 가톨릭 수녀로 교육받은 이다가 이모와 함께 자신의 고향이자 부모의 주검이 묻힌 곳을 찾아가는 로드 무비 -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에 비판 시달려

1990년대 폴란드는 나치 독일의 점령과 스탈린의 소련이 강요한 공산주의에 이중으로 희생된 자신들의 고통을 국제사회가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다는 담론이 지배적. 따라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폴란드인의 죄의식이나 역사적 책임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음

민족주의적 변호론의 급진적 분파는 폴란드인이 유대인의 희생자였다고 강조. 독소전쟁 기간 소련군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유대인 빨갱이가 폴란드의 반공주의적이고 반러시아적인 애국자를 소련의 비밀경찰에 밀고하여 중앙아시아나 시베리아로 쫓겨나게 하는데 앞장섰다는 것. ->유대인은 배반자고 유대인이 받은 박해는 인과응보이다 주장.

바우만: ‘세습적 희생자의식(hereditary victimhood)‘ -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1968년 폴란드 공산당 민족주의 파르티잔파의 반시온주의 표적이 되어 이스라엘로 망명. 이스라엘에서 바우만은 공격적 시온주의(히브리어: ציונות, 영어: Zionism 시오니즘) 또는 유대주의, 유태주의(猶太主義, 문화어: 유태복고주의猶太復古主義)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의식을 자기 정당화의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목격. -> 전후 폴란드와 이스라엘 전후 세대가 자신들을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의식에 문제 제기

세습적 희생자라는 사회적 기억의 이면에는 또 다시 식민주의의 희생자가 되지 않겠다는 문제의식이 들어있다.

[원거리 민족주의]
《요코 이야기》: 일본인 작가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가전적 이야기로 2차 대전 일본이 패할 당시 11세 소녀인 작가와 가족이 생명의 위협, 기아, 성폭력의 공포 등을 겪으며 함경도 나남에서 일본으로 귀환할 때 겪은 경험을 그렸음. 1986년 미국에서 간행된 책은 2005년 4월 한국어로 번역되었음. - 2006년 9월 보스턴과 뉴욕의 한국계 미국인 학부모들이 학생을 위한 독서목록에 이 책이 포함되었다는 것에 문제 제기하면서 논쟁이 시작됨. 이들은 식민주의와 전쟁의 피해자인 한국인을 가해자로 묘사하고, 가해자인 일본인은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어 미국의 학생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이유.(민족주의적 사유)
실제 이 책은 개인적 고통은 담겨 있으나 역사적 맥락은 생략되어 있어 문제는 있지만 패전 일본인의 민간인은 실제로 위험에 노출된 집단이었다.
‘사이버외교사절단반크‘가 펴낸 만화책에서 요코 이야기의 거짓말을 밝히는 것에 주목적을 둠으로써 한국인의 존재론적 불안감을 드러냄 - <안네의 일기>와의 비교, 731부대의 만행, 미국의 수업 중단 요구와 출판사의 출판 중단 요구 등 -> 이런 과잉 반응으로 일본의 우익 성향 출판사에서 일본어로 출간되기에 이름. 2013년 출간되었으나 이후 일본 아마존 전쟁 수기 장르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인기 차지

폴란드 공산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역사상 최초의 단일민족국가 수립을 당의 치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로 전체 유대계 인구의 90%인 300만 명을 잃고, 강제 이주 정책을 통해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독일인 등을 추방했다는 사실은 선전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당의 공식 정책과는 별도로 폴란드인 대부분도 ‘유대인 없는 폴란드‘라는 새로운 국가 구성에 암묵적으로 찬성하고 있었다.
마 안 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집을 점유하고 있던 폴란드 이웃의 반응은 "아직도 살아 있냐?"는 것이었다."
자기가 머무는 집의 원주인인 유대인 이웃이 살아 돌아온 게 전혀갑지 않다는 투였다. 대중적 지지 기반이 취약한 폴란드 공산당은 공 - P76

장, 주택, 토지 등 유대인의 부동산을 점거한 폴란드인과의 갈등을 원치 않았다. 폴란드 이웃이 홀로코스트 희생자인 유대인의 재산을 나치의 패망 이후에도 불법 점유할 수 있었던 데는, 폴란드 공산당과 국민사이에 암묵적이지만 공공연한 공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 P77

나치가 만든 극히 비인간적인 이 세계에서 이성은 도덕의 적이었고, 합리성과 인간성은 충돌했다. 나치는 생존의 합리성에 비추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도덕성이 비합리적으로 보이게끔 인간의 법칙을 비틀었다. 이성적 판단은 나치 범죄에 동의하도록 강요했고 이웃의죽음에 눈을 감게 만들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홀로코스트라는 악령을 쫓아내는 데 ‘부끄러움의 해방적 역할‘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문제의 핵심은 변호론자가 주장하는 영웅적 투쟁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과 성찰론자가 자책하듯이 더 많이 구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바우만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부끄러움을 느낌으로써 도덕적 정화를 시도했다는 자부심"과 "자부심에 취함으로써 도덕적 타락을 자초했다는 부끄러움 중 어느 쪽을선택하는가의 문제였다." - P88

일본 식민주의의 ‘세습적 희생자‘라는 자기규정에 갇혀 있는 한 잠재적 식민주의에 대한 내부 비판은 좀처럼 기대하기 힘들다. 세습적 희생자라는 사회적기억의 빗장을 풀고 슬쩍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하면 또다시 식민주의의 희생자가 되지 않을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숨어 있다. 그것은 식민주의가 강요한 제국-식민지의 지배 구도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사고방식이 아니다. 그 밑에는 제국으로 우뚝 서지 못하고 식민 - P95

지로 전락한 역사에 대한 회한이 자리 잡고 있다. 식민주의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제국이 되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한 것이 문제라는 사고방식이다. 분명한 반식민주의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세습적 희생자의식은 탈식민주의적 성찰을 가로막는다. - P96

원거리 민족주의는 대개 이민당시의 낡지만 강력한 민족주의 기풍을 그대로 간직해서 그동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온 본국의 민족주의보다 더 엄격하고 본질주의적인경향이 강하다. 본국의 민족주의는 역사적 조건과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데, 이들의 민족주의는 이민을 떠날 당시의모습 그대로 박제화되어 있다. 민족의 기억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한국계 미국인의 원거리 민족주의도 예외는 아니었다. SET미국이라는 인종차별적 다문화 공간에서 날카로워진 한국계 미국인의 원거리 민족주의가 본국으로 역수입되어 한국의 민족주의적 기억 문화를 강화하는 이 경험은 민족주의가 트랜스내셔널한 현상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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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소설의 집 안에서
제인 오스틴, 가능성의 거주자들


4장 산문 속에서 입 다물기
오스틴의 초기 작품에 나타난 젠더와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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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머슨이 한 오스틴에 대한 평가(237p). 솔직히 오스틴에 대한 편견이 이와 같이 있었다. 그의 작품을 읽고 나서도 삶에 대한 어려움과 힘겨움이 엿보이지 않았고 주제가 결혼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것에 동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그녀의 환경의 영향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을 지금은 좀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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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작인 <사랑과 우정>을 보면서 이전에 읽었던 <오만과 편견> 등의 흐름을 생각했다가 놀라서 뒷걸음쳤던 생각이 난다. 근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인용문에 잔뜩 나오고 있다. ‘아하 그게 그런 거였어?’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고 인물이 갑작스레 사라지고 죽는 설정들이 나온다. 이 작품은 리어왕의 변형의 방식을 채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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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 소설 속에 결혼은 중요하다. 다른 문제가 없는 것은 그만큼 당시 그녀를 둘러싼 환경과 여성들이 다른 문제에 여력을 쓸 수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 같다.

실로 최근까지 심하게 평가절하된 여성 예술과 관련해 오스틴은 자신의 예술을 자신의 비평가들처럼 은유적으로 보았던 데다 (작은 상아조각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취미 활동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그런 작은 공간에서는 편안하게 거주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규정한 소설가의 한계를 헤쳐가며 안전한 장소를 정의하려고 했다. 감금당한 상태가얼마나 답답하든, 오스틴이 보기에 그 속박 안에서 순종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세계 전반에서 너무나 상처받기 쉬운) 여자들이었다. - P235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의 논평은 (오스틴은 나름대로 훌륭하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거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대표적이며,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 오스틴의 소설을 ‘나름대로 완벽하다. 그것은 확실하다. 다만 멀리 나아가지 않을 뿐’이라고 가볍게 묘사한 것도 마찬가지다. 에머슨이 오스틴의 이야기의 사소함과 하찮은 가정사에 혐오감을 느끼며 ‘왜 사람들이 오스틴의 소설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 P236

삶이 심각하게 위축되거나 힘겨웠던 적도없다. 내가 읽은 두 작품 『설득』과 『오만과 편견』에 드러난 작가마음속의 문제는 오직 결혼할 수 있느냐다. 소설 속 인물들의모든 관심은 오로지 그 한 가지 문제, 그(또는 그녀)에게 결혼할 돈과 적합한 조건이 있느냐다. - P237

제인의 추종자들은 남성 문화가 오스틴 숭배를 소재로 삼은 일의 패러디일 뿐만 아니라 오스틴을 향한 찬사였다. - P240

‘우리가 좁은 곳에 있을 때, 제인을 필적할 만한 자는 아무도 없다.‘ 험버스톨과 그 무리는 오스틴 덕분에 그들 자신의갑갑한 삶을 이해할 사회적 인습을 분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좁은 장소에서 우아하고 지적으로 살 수 있는 본보기까지 배우고 있는 셈이다.
(…)
그러나 오스틴이 한계나 경계선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깔보는 태도를 취하거나 혹평하는 비평가들은 오스틴의 초기 작품들에서부터 나타나는 전복적 특빌을 간과하고 있다. - P241

오스틴은 문화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녀가 끈질기게 보여준자신이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에 대한 불편함, 특히 가부장제가여성에게 부여한 협소한 위치에 대한 불만, 성적 착취의 경제학에 대한 분석은 지금도 충격적이다. 동시에 오스틴은 처음부터자신에게는 좁은 장소 이외의 다른 어떤 곳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의 패러디 전략은 부적절하지만 피할 수 없는 구조에대항한 자신의 싸움에 대한 증언이다. - P242

말하자면 오스틴의 초기 작품은 작가의 표현을 깎아내리는 잘못된 문학적 인습을 조롱함으로써 특히 여성 독자의 기대치를위험이 따를 정도까지 저버리고, 나아가 그런 인습이 바로 여성의 삶을 결정했다는 인식을 드러내기 때문에 중요하다.
(…)
『사랑과 우정』은 오스틴의 다른 어떤 소설보다 완전하게 극화된 태도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다. ‘확실한 이성[분별력]‘이(나중에 오스틴의 소설은 이 이성으로 유명해진다) 두드러지게 부족한 오스틴의 청소년기 소설은 우리가 애초에 기대한 것보다 더 큰 ‘삶의 조각‘을 품고 있다. - P244

오스틴식 패러디의 핵심은 로라같은 여자 주인공을(그리고 사랑과 우정』같은 이야기를) 현실의 모델로 진지하게 제시하는 소설이 위험한 속임수임을 보여주는 데 있다. 오스틴은 우스꽝스러운 문학적 인습을 조롱하 - P245

면서 낭만적 이야기가 터무니없이 잘못된 생각을 불러일으킨다고 암시한다.
(…)
로라 같은 여자 주인공이 거치는 광범위한 여정은 소망을충족하는 이야기일 뿐이며, 가정의 영역에 얽매여 살아가는 여성에게 특히 매혹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단서다. - P246

『사랑과 우정』이 보여주는 기묘한 효과의대부분은 여자 주인공들에 대한 지속적인 조롱과 그녀들의 생기발랄함, 즉 기꺼이 여정을 지속하며 다음 마차를 잡아탄다는것 사이의 모순에서 기인한다. - P247

18세기 소설에 등장하는여성 돈키호테들은 여성 방종의 위험과 순종의 필요성을 보여주면서, 로맨스 소설과 여성의 자기주장이 지닌 악을 전형적으로 예증한다. - P248

『사랑과 우정』은 오스틴이 자기가 사는 문화에서(특히 여성을 규정하고 제한하는 문화에서)느끼던 심한 낯설음을 최초로 암시한 글이다. 로맨스에 반대하는 18세기 문학은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착실하게 살고 가정의 속박에 순종하 - P249

라고 호소하지만, 『사랑과 우정』은 여성의 자기주장을 하찮게여기는 사회를 공격한다. 그 공격은 매우 어리석고 비생산적인행동 양식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소피아와 로라는 이 세계에서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감정에만 매달려 있다. 오스틴의 풍자적인 초기 작품의 다른 여자 주인공들처럼 소피아와 로라는수동적으로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것은 마치 시몬 드 보부아르가 ‘우울하고 낭만적인 백일몽에 빠져 있다‘고 묘사한 권태로워하는 소녀의 전조인 듯하다.

무시당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그들은 자기도취적인 환상에서 위안을 구한다. 그들은 자화자찬과 자기 연민에 빠져 자신을소설의 낭만적인 여자 주인공으로 여긴다. 따라서 그들이 멋을부리고 연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이런 결함은 사춘기에 더욱더 두드러진다. 그들의 불안은 참을성 없음,
울화, 눈물로 드러난다. 그들은 울기(많은 여성이 나이 들어서도 유지하는 기호)를 좋아하는데, 대부분이 희생자 역할을 하는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 어린 여자애들은 희생자 역할을한층 더 즐기기 위해 가끔 자신이 우는 모습을 거울로 들여다본다. - P250

로라와 소피아는 남자의 사랑을 이해하고 오직그것만 원하도록 격려받았기 때문에, 사랑받고 싶은 지칠 줄 모르는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에 강박적이고 무차별적으로 몰두한다. 반면 진정한 감정을 깨닫거나 다루는 능력은 없다. 그들은남자를 ‘잡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짓도 서슴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서슴지 않는다. 반면 무지를 가장하고 겸손해야 하며 성적인 정열에는 무관심한 척해야 한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말고는 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전통적인 생각에 대중적인 로맨스 소설이 어떻게 기여했으며, 여성에 대한 이런 억측이 ‘여성의’ 자기도취, 마조히즘, 망상의 뿌리에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가. 오스틴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 P251

오스틴이 패러디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이유는 여성을 직접적으로는 깎아내리지 않는상속된 문학적 구조들이 명백히도 부적절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따라서 오스틴이 『리어 왕』을 변형한 방식으로 『이성과 감성』을 시작할 때, 이 반전은 남성의 전통이란 여성의 관점에서재평가하고 재해석해야 함을 의미한다. - P254

오스틴의 문화는 시체 주변에 있는 부서진 돌조각이 아니다. 반대로 그 문화는 오스틴이 그 안에서 사는 것을 배워야 하는 튼튼하고 강력한 건물이다. - P255

오스틴소설 속 여자 주인공들의 문밖 나들이는 전적으로 더 부유한 가족이나 친구의 변덕에 의존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누구에게도자신의 여정을 스스로 만들 권력이 없으며, 누구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행복이 걸려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지 못한다. - P258

여자 주인공들이 직면하는 모든 하찮은 사교 사건이며 즐긴다기보다 견뎌야 하는 빈번한 방문을 보면, 여성들은 아주 제한적으로 움직일 때조차 사사건건 그들을 검열하고 비판하는 돈많은 과부의 은혜를 입거나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오스틴은 남동생들도자신들의 누나처럼 (예를 들면 배우자를 선택할 때 경제적으로) 제한을 받는다고 설명하지만, 항상 경제적 계급보다 성의 계급이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 P260

오스틴의 소설에 나오는 딸들에게는 실제로 비유적으로든어머니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남자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쉽게 납득한다. 그들의 어머니는 결혼이얼마나 사람을 쇠락하게 하는지 증명하는 본보기지만, 딸들은집에서 도망치기 위해 남편을 구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최근에(누군가의 어머니가 되는 공포인) ‘모성 공포증‘이라고 불렀던것이45 부모의 집을 도망쳐 나오는 또 하나의 동기를 제공한다. - P263

결혼은 매우 중요하다. 오스틴의 사회에서는 결혼만이 소녀들이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모든 문제에 대한 오스틴의 침묵은 그 자체로 일종의 진술이다. 오스틴 소설에 다른 문제들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소녀나 여자들의 삶이 얼마나 불충분한가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여성 작가인 오스틴 자신의 결핍을 증명한다. 오스틴은 사실상 자기 예술의 한계를 스스로 천명하고 수용하는바,
이것은 예술가이자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허용된 자기표현의 형태를 전복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다. 어리석은 문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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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08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의 여성들은 결혼이 아니면 당장 생존이 문제였으니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게 큰거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2-11-09 10:14   좋아요 2 | URL
상황상 이해가 됩니다. 결국 당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틀이 많이 제한적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그 안에서 오스틴만의 틀로 깨려는 노력을 한 것 같아요. 초기 작품들은 이후 작품에 비해서 좀 더 통통 튄다고 해야할까 파격적인 설정들이 더 많더라구요~ㅎㅎㅎ

라로 2022-11-09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도 이 책 시작하셨군요!! (괜히 마음 급해짐. 사 논 책이 있음;;;)

거리의화가 2022-11-09 13:45   좋아요 0 | URL
라로님. 좀 더 일찍 시작해야 나중에 편할 것 같아서요^^;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어느 시점부터인가 줄곧 나를,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된 일에 대해서 생각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기억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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