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믿음의 글들 9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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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80년이나 전에 저희보다도 더 큰 곤란을 무릅쓰면서 이 일본에 도착하려고 하셨던 성 프란체스코 자비에르 신부님의 일이 가슴에 되살아났습니다. 그분 역시도 이와 같은 폭풍의 습격이 지나간 다음날 아침에 우윳빛의 뿌연 하늘을 바라보셨을 게 틀림없습니다. 그 후 몇십 년 동안 수십 명의 선교사나 신학생들이 아프리카를 돌고 인도를 지나 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가 선교하려 했을 테지요. (...)

무엇이 그들에게 이 커다란 고통을 인내하게 했는지, 무엇이 그들에게 이 위대한 정열에 몸을 던지게 했는지 이제야 그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분들도 모두 이 우윳빛의 뿌연 구름과 동쪽으로 흘러가는 검은 구름을 바라보셨던 것입니다. 또 그들이 그때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것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38~39)


1637년 일본 규슈 북부의 시마바라에서 기독교인들이 대규모 민란을 일으킨다. 당시 영주는 가장 상위 계급으로 부락민들과 무사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졌고 무사는 영주를 호위하며 절대 충성했다. 부락민들은 해마다 세금을 바쳐야 했는데 세금을 내지 않으면 갖은 탄압과 형벌을 가했으므로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일본은 1549년 예수회 선교사인 프란치스코 사비에르가 가고시마에 도착한 뒤 가톨릭 포교가 시작되었다. 그 후 예수회, 프란치스코 수도회, 도미니코 수도회,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등의 로마 가톨릭 교회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1624년경에는 신자 수가 65만 명에 이르는 교세를 갖게 된다. 하지만 1587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기독교를 금지하는 명령(바테렌 추방령)이 내려지면서 기독교 탄압이 시작된 이래 1597년경 나가사키에 26명의 신도들과 수도자, 성직자들이 순교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636년 일본은 데지마 섬을 만들어 서양과의 교류 통로를 일원화시키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였는데 그 계기가 된 사건이 시마바라 난이다. 이 사건은 이렇게 기독교 박해 뿐 아니라 막부의 가혹한 세금 정책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시마바라의 난 이후, 영주는 잠복한 그리스도들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파견된 관리들은 부락을 돌아다니며 순찰을 하고 가택을 침입하기도 하며 수상한 자가 있으면 신고하도록 한다. 신고자들에게는 물질적인 혜택이 주어졌다. 사제가 지내는 곳을 보고하면 은 300냥, 수도사를 신고하면 은 200냥, 신도를 발견하면 은 100냥을 지급함으로써 가난한 농민이나 어부들에게는 참으로 유혹적인 조건을 내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수도사나 선교사들은 일본에 들어오기 어려워졌으며 들어오더라도 암암리에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침묵>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로마 교황청에 일본에 파견되었던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 혐의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다. 페레이라 신부는 그동안 일본의 가톨릭 탄압에 대한 끔찍한 실태를 지속하여 보고해왔기 때문에 교황청 사람들은 그가 배신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페레이라 신부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고 잠복 선교도 하기 위해서 세 명의 신부들(가르페, 마르타, 로드리고)이 출발한다. 그들은 페레이라 제자이기도 했다. 


그들은 험난한 파도를 뚫고 우여 곡절 끝에 일본 육지인 도모기라는 어촌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 신도를 만나고 신도들의 자체 조직이 있음을 알고 신부들은 놀란다. 고토라는 곳에서 신부들은 신도들에게 세례를 시행하고 고해성사를 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관헌들의 습격으로 나가사키에 취조를 받기 위해 기치지로가 선발되었으나 여기에 두 명의 사람이 자원하며 함께 간다. 기치지로는 가톨릭 신도였으나 이전에도 배교했다 한참 만에 마을로 돌아온 이력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배교하고 자취를 감춘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요?"

"신부님, 저희들은 나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P85)

"나는 약해요. 나는 모키치나 이치소우처럼 강한 자는 될 수 없어요." (P123)


기치지로의 행동은 사실로만 보면 비열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로드리고처럼 저 말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믿음이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말이다. 


기치지로는 배교를 감행함으로서 풀려났지만 두 사람은 바다에서 순교하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저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로드리고는 오두막에 피신해있다가 페레이라가 배교한 신부 중 하나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용서를 구하며 접근한 기치지로의 고발로 그는 감옥에 갇힌다. 


이후 로드리고는 온갖 회유로 배교를 강요 당한다. 게다가 다른 신도들이 자신으로 인해 탄압을 받는다는 사실에 괴로움은 커져간다. 그는 외친다. '하느님은 왜 침묵하십니까.' 


"나만 처벌해 주시오."

"당신 때문에 저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될지." (P135)


가톨릭 신도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다던 나가사키 부교오인 이노우에는 막상 온화한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 로드리고는 깜짝 놀라기도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악인이라고 해서 악인의 모습이기만 할까 생각했다. 어떤 사람도 천사 또는 악마는 아니며 여러 얼굴을 갖고 있을 것이니까. 


'주여, 이 이상 저를 버려 두지 마십시오.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태로 저를 버려 두지 마십시오. (...)

이윽고 내가 죽임을 당하는 날도 여전히 바깥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갈 것인가. (...) 

그렇게까지 영웅이 되고 싶은가. 네가 바라고 있는 것은 남모르게 죽는 참된 순교가 아니라 허영을 위한 죽음인가. 신도들에게 칭송받고 기도받고, 그리고 저 신부는 성자였다는 말을 듣고 싶기 때문인가.' (P187)


어쩌면 이 독백이 로드리고의 자신의 예견하는, 끝을 향한 고민이었을지. 


"밟아도 좋다. 네 발은 지금 아플 것이다. (...)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하니까."


이 책의 로드리고라는 인물은 이름과 출신은 다르지만 실존 인물이다. 실제는 '주세페 키아라'라는 시칠리아 출신의 신부로 1643년 일본에 들어갔다 체포되어 1685년까지 살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선악이란 이분법이 존재할까.' '진리라는 것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 온갖 방법으로 '배교'를 강요당하는 신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상황은 다르지만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들에게 배신을 강요하던 앞잡이들과 민주주의 운동가들에게 탄압을 가하던 경찰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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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19 14: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분법보다는 각자의 양심이 가리키는 지침은 있을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런 때가 오면 나는 그 양심에 정직하게 반응하게 될까? 하는 생각도!

거리의화가 2024-02-20 09:13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자목련 2024-02-19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다는 평이 많고, 종교가 있어 궁금하기도 한 소설이에요.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고 싶은데..

거리의화가 2024-02-20 09:14   좋아요 0 | URL
종교가 있으시니 더 울림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아마도 도서관에도 있지 않을까요?ㅎㅎ

새파랑 2024-02-21 0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을 로드리고 신부에 감정이입해서 심각하게 읽었었는데...

제가 저 입장이었더라면 아마 초반(?)에 배교 했을거 같아요 ㅋㅋ

믿음의 힘이라는게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을 한참 했었습니다~~ 믿음의 정도라는 것도 보여지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안될거 같고~~

거리의화가 2024-02-21 17:21   좋아요 1 | URL
저는 오히려 기치지로의 입장과 마음이 더 와 닿았다고 해야 할까 그랬습니다^^; 믿음이라는 문제가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종교가 있었다면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아무튼 새파랑님 덕분에 좋은 책 잘 읽었네요. 감사드립니다^^
 
[eBook]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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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의 생존 장병들은 군대에서는 실패자로, 사회에서는 음모론과 악성 댓글에 노출되었다. 또 한쪽에서는 이용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외면하던 현실에서 좌절하기도 했다. 사건을 올바르게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한국 사회의 태도가 당파성을 넘어서야 함을 외치는 저자의 말에 공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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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력 운동의 과학 - 근육과 뼈를 강화하는 해부학과 생리학의 원리 DK 운동의 과학
오스틴 커런트 지음, 권기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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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력 운동 왕초보자에게 적당한 책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근육의 위치와 쓰임새를 잘 알 수 있도록 한다. 헬스장 등에서 하는 기구 운동과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함께 실어 두어 적당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잘못된 자세를 알려 주어 부상의 위험을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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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2-15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근력 운동 시작하셨습니까!!

거리의화가 2024-02-15 09:05   좋아요 1 | URL
시작이 반이겠지요^^; 지속성을 갖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역사비평 145호 - 2023.겨울
역사문제연구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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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는 흥미로운 기획과 특집들이 실려 있어 특히나 재미 있게 읽었다. 


특집에서는 기존 냉전사 연구에서 나아가 새로운 냉전사 연구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글들이 실려 있다. 그 중 나는 냉전기 미국의 정치와 종교가 결탁하여 복음주의적 색채를 띄게 되었다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미국 보수주의의 큰 축인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은 냉전기 소련을 악으로 규정했다. 문제는 이것이 대외적으로만이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국민을 선동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은 기독교 복음주의자들과 결탁함으로써 이득을 얻었다. 

20세기 전반 미국에서는 기독교적 갱생에 의해 사회가 진보한다는 믿음이 퍼졌는데 정치권에서는 이를 대외관계에까지 확장시키려고 노력했다. 트루먼은 교황에게 보낸 서신에서 공산주의를 "인류의 희망과 이상을 짓밟는 악하고, 거추장스러운 세력"으로 규탄하며 범기독교 세계가 단결해야 함을 외쳤다. 트루먼에게 봉쇄란 무신론의 확산을 막아내는 힘을 의미했다. 트루먼의 뒤를 이은 아이젠하워도 마찬가지다. 그는 미국의 종교적 정체성을 공식적으로 입법화하려는 운동을 지원한 결과 1954년 「국기에 대한 경례문」에 "하나님 아래서 하나 된 나라(one nation under God)"라는 문구를 집어 넣었다. 이듬해에는 "하나님 안에서 신뢰하며(in God we trust)"라는 문구를 화폐 도안에 넣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냉전 초기 미국의 외교사가들이 내놓은 정책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공유했고 이런 바탕에서 봉쇄 지형을 굳건히 다졌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기독교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취하며 형식적으로는 시민종교의 외형을 갖추기를 원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런 정치학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뿐 아니라 기독교 내에서도 관련하여 자유주의적 교단과 근본주의 교단 간에 갈등이 심화되었다. 그럼에도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냉전을 반공주의 기치 아래 집결시키며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했다. 남부로 간 백인들이 정치적 목소리와 함께 종교관도 함께 가져갔는데 이 지역이 전후 보수주의 운동을 견인했음은 의미심장하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은 시민종교의 강화로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복음주의의 부흥으로 귀결됐다. 또한 미소 관계의 이분법적 사고가 복음주의의 이론론적 세계관과 뒤섞이면서 국가는 종교의 후원자인 동시에 그 적이 되어버리는 사태도 나타났다. 바로 이 지점에서 냉전의 성전화는 역사적인 패러독스를 수반했다. 다름 아니라 냉전을 성전으로 포고한 국가 덕분에 부흥한 복음주의가 대내적 성전의 대상으로 바로 국가를 조준했던 것이다. 

냉전의 성전화는 복음주의 운동의 또 다른 모순도 담고 있었다. 복음주의자들은 자유기업 이념에 따라 작은 정부를 외쳤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연방정부의 경제적 수혜를 그 누구 못지않게 누렸다. 

복음주의는 미국 보수주의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고, 복음주의자들은 냉전 이후에도 성전을 이어가고 있다. - P75~76


관동 대지진 100주년 관련한 기획도 다루어졌다. 작년에 페이퍼에도 다룬 바 있었지만 2023년은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지 꼭 100년이 되던 해였다. 그동안 밝혀진 진실들과 더불어 관련하여 많은 행사들이 열리고 저작물들이 출간되면서 비교적 많은 진상들이 규명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해명되지 않은 과제들이 남아 있음은 은폐된 사실들이 존재하고 입장에 따른 다양한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진의 원인과 사건 전개 과정을 다룬 글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지만 나는 일본 사회에서 조선인 폭동설을 주장하는 근거와 이유를 다룬 글이 더욱 도움이 되었다. 


그럼 일본의 조선인 폭동설의 기원과 출처는 어디인가. 구도 미요코의 저작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실』에서는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대지진 당시 실제로 조선인은 "섭정궁(나중에 쇼와천황이 되는 인물)을 암살하려고까지 했고," "국난을 회피하기 위한 계엄령이었기에 자위권 행사라고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를 '학살 당했다'고 하지 않는 것이 계엄령하의 국제 상식"이라고 단정한다. 2009년 출간된 이 책은 저자 이름을 바꾸고 2014년 재간행되었으며 일본 사회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미쳐왔다. 2017년 도교도지사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 식전 추도문 송부를 중지한 이후 계속해서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있다. 이유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실』의 근거에 따라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의 "잘못된 책동과 유언비어 때문에 6,000여 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고귀한 생명을 빼앗겼습니다"라는 비문을 문제시한 것이다. 이 숫자는 "근거가 희박한 숫자"이고 조선인들은 "훗날의 쇼와천황의 혼례에 맞춰 위해행위를 준비"했으므로 추도비는 사실이 아닌 내용이 적혀 있다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 책이 주장하는 바의 내용을 비판한 저작은 없을까. 이미 야마다 쇼지와 가토 나오키가 면밀히 검증을 시도한 바 있다. 이들은 유언비사를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신문기사를 비판 없이 사실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고, 사료의 해석과 인용에서도 최소한의 학술적인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 말한다. 또 책에서는 사건에 관한 영국 외교문서로 영국국립공문서관 소장 외교문서 일부를 사료로 삼는다. 


  요코하마의 황폐를 관찰한 후 두 사람은 도쿄로 향해, 오후 7시에는 시나가와에 도착했다. 여기서 4마일 앞에 있는 제국호텔까지 가줄 택시를 잡았다.

  '조선인'과 '빨갱이'에 대해서는 설명할 가치가 있다. 과거 수년 사이에 다수의 조선인이 노동력으로 일본에 유입되었다. 또 일본 군대에는 시베리아에서 귀국하여 볼셰비키의 영향을 받은 병사들도 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중략]

  3일, 월요일 밤 10시 20분경 호텔 관리부에서 모든 객실의 불(작은 양초였다)을 끄라는 연락이 군부에서 왔다고 전했다. 

  조선인과 빨갱이가 10분 이내에 습격해 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호텔에서 야영하고 있던 여러 부대는 머신건을 보급받았다.

  - 존 W.도티의 보고서

  

이 문서는 요코하마 주재 영국총영사관 문서의 Micellaneous 중의 지진보고에 수록되어 있다. 도티는 뉴욕에 본사를 둔 파운데이션 컴퍼니의 사장이었다. 도티는 1923년 8월 중순 도쿄지하철주식회사와의 투자 약속을 위해 일본에 들어왔다. 그는 당시 지하철 설계자로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는 9월 3일 기술자 존스턴과 함께 도쿄로 가는데 미국 대사로부터 국무장관에게 피해 상황을 보고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10월 10일 송부했다. 


도티와 존스턴은 항구에 내렸을 때 총으로 무장한 자경단으로부터 "조선인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오른팔에 흰색이나 녹색 밴드를 두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후 시나가와역까지 이동하여 택시를 잡은 두 사람은 제국호텔로 향하던 중 다음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택시에 타고 있는 사이에 우리는 몇 차례나 자위단이나 자경단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정지당했다. 이 사람들은 주로 칼이나 죽창, 혹은 머스킷 총으로 무장한 매우 흥분하여 공포에 가득 찬 젊은이들이었다. 이들 집단에는 어떤 리더나 규율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각자가 개인적으로 면식이 없는 통행인들에게 한껏 성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 사이 한 번은 그들이 우리 차에 올라타 계속 "조선인이다"라고 외치며 혼신의 힘을 다하여 운전기사를 끌어내려고 했다. 


두 사람은 밖에서는 자경단이나 병사에 의해 정지당해 검문을 받고 호텔에 들어오자 호텔 지배인으로부터 조선인의 침입이 있을지 모르니 불을 끄라는 요청을 받았다.


구도는 9월 3일 요코하마와 도쿄에서 두 사람이 겪은 자경단의 행동이 거의 빠져 있다. 구도는 이 일기를 조선인으로 인한 '공포체험기'로 해석했으나 도티와 존스턴이 본 것은 일본인의 패닉이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자경단이 왜 패닉에 빠졌는지, 조선인의 박해의 기원은 무엇인지를 생략했다는 점이다. 도티의 일기는 조선인이 혼란이나 잔학행위를 조선인이나 사회주의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재난 지역에서 황당무계한 소문이 유포되고 무고한 조선인이 살해되었음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구도는 책에서 "조선인과 빨갱이에 관한 패닉"중 ~에 관한 패닉이라는 글자를 아예 삭제함으로써 주체자를 지워버렸다. 


이뿐만 아니라 구도는 조선인 학살을 사실로 인식한 "해외 영사관은 없었다"라고 주장했으나 마찬가지로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분량상 다 다루기는 어려워서 이쯤에서 줄이겠다.


한국 근대사 이해의 글로벌한 전환과 식민주의 비판에서는 기후변동에 따른 위기에 대응하여 역사 연구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함을 이해시킨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 지배에 대해 자신들이 행한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려는 욕망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은 나치에 의한 제노사이드 학살에 있어서만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할 뿐 아프리카의 식민 지배 및 제노사이드에 대해서는 2021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인정했을 뿐이다. 일본은 그마저도 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일의 책임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식민지 지배를 겪은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근대화를 거치며 서구 지향의 발전 지상주의를 따라왔다. 그 과정에서 환경, 인종(다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이 서구 지향을 그대로 따라나간다면 그들과 다를 게 무엇인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는 역사 인식이나 시대 상황과 과제의 변화에 따라 항상 새롭게 쓰일 수 있다. 또 역사 인식이나 특정한 과거사에 대한 이해는 인식 대상의 시공간적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매우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이러한 명제들을 받아들인다면 인류 모두의 삶에 대한 반성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기후 변동이나 글로벌화의 급격한 진행에 따른 삶과 인식의 공간적 변화, 그러한 위기나 변화들이 가져올 수도 있는 '미래'라는 시간에 대한 회의 등이 강력한 문제들로 대두된 지금이야말로 바로 역사 인식과 역사 이해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요청되는 바로 그런 때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물론 인류 전체가 새롭고 전례 없는 도전을 맞게 된 시대 상황과 관련하여, 한국 근대사 연구의 '반외세' 프레임, 그 한가운데 자리 잡은 '반일 내셔널리즘'에 대해서도 성찰과 재인식이 필요하다. - P321


얼마 전 1945년 조선의 현실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같은 저자의 글이 실려 있었다. 그것도 조선의 독립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는 카이로 회담에 관한 내용이다. 

카이로 회담에 모인 주체들은 자치능력이 없는 한국의 상황,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반영하여 국제신탁통치라는 합의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카이로회담의 주체였던 미국과 중국의 입장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는 반면 영국은 카이로 회담을 어떻게 인식했고 회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눈여겨보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  


카이로회담에서 중국은 '한국의 자유독립' 조항을 주장했으며, 이는 중국의 전통적인 대한 영향력 강조와 임시정부의 '외교'를 반영한 결과였다. 미국은 그것을 중국의 야심으로 판단했지만, 해당 조항을 카이로선언에 삽입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의 자유·독립과 신탁통치 실시는 상충하거나 대립적 개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카이로선언에 한국 조항을 삽입하는 것 자체에 반대했으나, 미국과 중국의 반대로 시도가 무산되자 가급적 모호하고 불명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 결과 카이로선언의 한국 조항은 외교적 술어로 기술된 불명확하고 모호한 내용이 되었다. 전체적인 기조에서 카이로선언의 한국 조항은 미국이 추구하던 일반론적인 대한 정책 기조를 반영하는 한편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가진 특정 강대국의 일방적 결정을 제지하는 '합의에 의한 공동정책'을 추구하는 결과물로 탄생했다. - P397


결국 카이로선언의 모호성은 삼국 간의 이해 관계를 반영했다고 보아야한다. 


올해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많은 대선들이 치뤄진다. 얼마 전에는 대만의 총통 선거가 있었고 그 결과 민진당의 라이칭 더 후보가 당선되었다. 미국은 일찌감치 대선 레이스에 들어간 상태인데 트럼프 당선이 우위에 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가 거꾸로 흘러가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게 한다. 며칠 전에는 그가 NATO 참가국에 방위비 분담을 동등하게 한다고 발언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만약 그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국방비 부담도 늘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이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국제주의보다는 국가주의적 태도로 접근하여 문제가 발생하는 사례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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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자면 맞춤법
박태하 지음 / 엑스북스(xbooks)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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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호기롭게 읽어 나가다도 두통과 고통을 비롯한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읽다 보면 건지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은 책이기도 하다. 


1장은 띄어쓰기, 2장은 한글 맞춤법, 3장은 외래어 규칙이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띄어쓰기에 대한 공포가 커서 2장, 3장을 차례로 읽고 1장을 최후에 읽었다. 


저자는 띄어쓰기는 어느 정도 요령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결국 기본적인 규칙은 외우고(기본적으로 다 뗀다) 나머지는 필요할 때 사전을 찾아보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것도 다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때문에 문장에서 그 단어가 어떤 품사로 쓰이는지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뭐는 붙이고 뭐는 뗀다” 식으로 구분해서 생각하기보다는 “띄어 쓸 수 있는 건 다 띄어 쓴다”라고 생각하는 쪽이 실제로 적용하기 편하거든요. 모든 단어는 띄어 쓴다는 큰 틀하에서 붙여서밖에 쓸 수 없는 조사, 접사, 어미 등을 익혀 두는 거죠. 즉, ‘띄어 쓴다’를 초기값(디폴트)으로 사고 회로를 바꾸는 겁니다. - P99


대부분의 틀린 맞춤법들은 “소리 나는 대로”, 하지만 “어법에 맞지 않게” 쓰는 데서 기인합니다. 게다가 우리가 발음을 항상 정확히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소리’라는 것도 제멋대로이기 일쑤죠. 일단은 평소에 발음을 똑바로 하는 버릇이 중요하겠습니다. - P141


평소 내가 잘못 쓰고 있는 맞춤법이 뭐가 있는지 세어 나가다가 너무 많아서 중간에 적는 것을 포기했다. 

시답잖다(시덥잖다 X)

욱여넣다(우겨넣다 X)

해쓱하다(헬쓱하다 X)

예스럽다(옛스럽다 X)

퀴퀴하다(퀘퀘하다 X)

구시렁대다/구시렁거리다(궁시렁거리다 X)

면발이/몸무게가 붇다(불다 X)

흐리멍덩하다(흐리멍텅하다 X)

양말을 빪(빰 X)

그러고 나서/그러는(그리고 나서 X)

염치 불고(염치 불구 X)


학습서나 번역서 등을 많이 보면 이중 피동을 사용하는 것에 쉽게 노출된다. 평소 이중 피동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는데 이 습관만 줄여도 문장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록에는 보조용언(본용언을 보충해주는 역할)과 합성어들, 외래어 표기, 외국 인명과 지명을 실려 있다. 이 책이 눈 앞에 있다면 활용할 수 있겠지만 결국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온라인 사전을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애매할 때는 무조건 검색하기, 단 ‘기본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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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4-02-13 0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엄청 빨리 읽으셨네요?! 두통과 고통 매우 공감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결론은 저도 “사전”이었지만 큰 틀에서 규칙을 알게된 데 의의가 있었던 것 같아요! ㅋㅋㅋㅋ 자주 틀리는 맞춤법도 눈에 익혀둘 수 있었고요(지금 또 많이 까먹은 것 같지만....). 고생하셨습니다 화가님! 완독 축하드려요 😍

거리의화가 2024-02-13 08:59   좋아요 2 | URL
오래 붙잡고 있을수록 힘들 듯하여ㅎㅎ 마음 단단히 먹고 들어갔지만 역시 갈수록 피로감이 몰려들더라구요. 두달 정도만에 본 것 같은데 기억에서 사라진 것들이 많았습니다. 평소 제가 쓰는 잘못된 맞춤법도 다시 한번 체크해보는 시간을 가졌네요. 띄어쓰기 연습 문제 꽤나 틀려서 또 한번 충격이!ㅋㅋ 은오 님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자목련 2024-02-14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다 읽으면 왠지 든든한 기분이 들 것 같아요. 포털 검색이나 사전이 아니라 이 책을 찾아 맞춤법을 확인할 것 같기도 하고요^^

거리의화가 2024-02-15 09:04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옆에 있다면 바로 찾아볼 수 있겠죠. 든든하다는 말에 공감해요ㅎㅎ

자목련 2024-02-15 11:56   좋아요 1 | URL
그러니 책을 읽은 은오 님과 화가 님은 정말 대단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