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근황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느라 기진맥진한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팀장이 나간 뒤로 팀에 큰 공백이 생겼다. 이 때문에 결정을 내가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무래도 그것 자체가 부담이 되는 데다가 다른 사람에게 내가 전하는 말이 오해가 되지 않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어려움을 갖게 한다.
몇 번이나 그만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할 정도로 최근에는 어려움이 컸다.
최근 들어 두통이 잦았고 도무지 안 되겠어서 오늘 휴가를 내고 쉬고 있다.
하루 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밀린 리뷰도 쓰고 가벼운 책을 읽고 그랬다. 참! 달리기도 했다.
걷기와 달리기는 차원이 다른 운동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1분 뛰는 것과 1분 30초를 뛰는 것이 왜 이리 간격이 큰 것인지... 이제 4번째 진행했는데 하다가 막판에 좌절할 뻔했다. 내 체력이 얼마나 저질인지 새삼 느꼈다.
어쨌든 체력이 되어야 머리도 굴리고 책도 읽고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다 생각하니 힘을 내보기로 했다.
어제 북플에 접속했다가 친구분들의 '인생네권'을 확인하고 나도 부랴부랴 했다.
좀 고민하기는 했지만 더 고민한다고 크게 달라질 목록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곧장 생각나는 책으로 꼽았다.
<하워드 진, 역사의 힘>은 역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머리 두들겨 맞은 듯 강한 인상을 받았던 책이다. 아무래도 내 성정과 잘 맞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얼마 후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실제로 만나지 못했음이 그리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멀리 떨어져 살면서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나는 언젠가 그 분의 강연을 꼭 한 번 경험하고 싶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의 책은 그래도 남아 있으니 계속 읽어봐야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기원>은 한국 전쟁사를 제대로 읽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책이다. 그의 저작 이전과 이후가 나뉘어진다고 할 정도로 국내 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내게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에 특히 인민위원회의 역할과 한계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사실 박명림 선생님의 책이나 정병준 선생님 등의 책도 인상 깊게 읽었지만 이 책의 비중을 더 높게 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해방 일기> 시리즈는 김기협 선생님의 저작을 본격적으로 파게 된 계기였다. 민족주의적 시각에 경도되어 있던 나는 이 책을 계기로 균형 잡힌 역사 서술과 좌우파를 넘어선 시각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재밌고 흡입력이 좋다. 1권을 읽다 보면 2권을 읽고, 이후 10권까지 쭉 달리게 된다. 또 이 책 덕분에 내가 해방 후 3년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에 인생책으로 꼽을 수밖에 없다.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는 어른이 아이에게 이야기 식으로 한국사를 재밌게 들려주는 방식이라 잘 읽히고 친근하다. 이 책을 꼽은 것은 그가 역사학자로서 걸어온 발자취에 대한 존경이 어느 정도 작용했기도 하다. 1980년대 이후 시기 앞선 세대와는 달리 주류적 시각이 아니라 역사에서 숨은 민중의 목소리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셨고 그랬기 때문인지 민중사가 강세를 이룬 때도 있었다. 지금은 다변화되었지만. 그 중 18권을 고른 것은 그의 동학농민혁명사 연구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철쭉이 피고 알록달록해진 세상을 보는 것이 그나마 즐거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