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비평 138호 - 2022.봄
역사문제연구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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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는 기획으로 비동맹주의의 실험과 유산을 다루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 질서와 평화를 모색하기 위한 방향으로 아시아 각국의 비동맹주의에 대한 것이다. 해당 글들은 1961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렸던 제1차 비동맹회의 이후 60년이 지난 2021년 한국냉전학회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것들이다. 인도 총리 네루는 냉전의 세계화에 맞선 비동맹운동으로서 아시아지역화를 통한 신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전쟁이 국제전으로 비화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 전쟁 종식을 위한 한국과 중국 간 중재 노력과 UN을 통한 평화를 주장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미얀마 지도자 우 누는 냉전 이후 양극화하는 지역 질서 속에서 사회안정에 나서기 시작한 지역의 약소국들이 편 가르기에 맞선 강대국 정치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가 주장한 중립주의와 비동맹주의는 탈식민 국가와 민족이 생존을 위해서 유일한 길로 택한 것이었는데 그 길목에 있던 한국전쟁은 인민들이 폭력과 생명파괴를 겪은 현장 중 한 곳이었다. 1947년 뉴델리에서 아시아관계회의가 열렸다. 이후 동아시아에서 국공내전이 격화되고 동남아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이 고양되었으나 정작 아시아관계회의 상설기구는 활동하지 못했다. 2차 회의가 1949년 뉴델리에서 개최되었는데 여기에는 조선대표가 참가하지 못했다. 조선의 참여로 첫 국제회의 참가 기회여서 국내외적 관심이 높았지만 미군정이 독단적으로 대표를 선정하면서 여운형이 대표에서 사퇴하였고 3명의 대표는 회의에 늦게 도착하면서 실질적 토의에 불참하여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만다. 


지속적으로 연재 중인 세종 시대에 대한 조명은 이번에도 있었다. 이번 호 내용은 세종 시대의 여진 정벌에 대한 조명이었다. 세종의 외교적 성과 중 영토 확장에 대한 부분 중 흔히 배우는 것이 4군 6진 개척이다. 해당 투고에서는 세종대 대외정벌에 대한 이해가 외부 세력의 침입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 맞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어 충격을 주었다. '그럼 아니란 말인가?' 세종 시기는 아무래도 조선 시기 중 가장 훌륭한 업적이 많았던 시기이기 때문에 실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심하게는 신성시되는 면이 있다. 1434년 12월까지 여진족이 여러 차례 조선 변경 지역을 침입한 적은 있으나 피해가 적었고 조선 조정에서는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았다. 1432년 12월 평안도 감사는 여진이 여연을 침입해 약탈 행위를 하고 도망가던 것을 추격해 일부 백성과 우마 등을 탈환했지만 끝까지 추격하지 못하자 이를 조정에 보고했다. 이에 세종이 분노했고 세종은 여진 세력을 응징하기 위해 추격 여부를 논의했다. 세종은 여진 세력에 대한 정벌을 단행하기 위해 그들의 흉악함을 증명해야 했으나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여연을 침입한 세력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조정 관리들은 정확한 상황 확인이 먼저라고 이야기했으나 세종은 명에 주본을 작성하도록 지시하며 여연 침입 세력을 여진으로 특정하여 조선에 피해를 끼친 것으로 적었다. 결국 조선은 세종 뜻대로 파저강 일대에 대한 대규모 정벌을 단행한다. 정벌군 규모가 1만 5천이었다. 세종은 죄지은 자를 정의로운 군대로 응징한다는 정벌 취지를 내세웠으나 대상을 정확히 특정할 수 없었던 상황을 은폐한 채 진행되었던 것이기에 정벌 취지에 부합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특집으로 경제 관련 투자 권하는 사회 투고들이 실린 것이 눈에 띄었다. 주식과 코인 투자가 한국 사회에서 최근 몇 년 사이 붐을 일으킬 정도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겠으나 이것이 투기로 이어지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많아진 것은 그에 대한 환기가 필요해 보인다. 최근에는 루나와 테라 코인의 주가 폭락 사태가 있었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20세기 주식 시장의 역사와 투자 기법들의 역사를 다루어 준 것은 적절했다고 보인다. 과거 사례로 다양한 투자와 투기 모습의 사례도 제시해준다. 1920년대 미 플로리다에서 일어났던 부동산 붐과 과열 투기, 1980년대 중후반 일본에서 나타났던 투기의 모습, 토지독점에 기초한 부동산 재벌의 도시지배로 홍콩이 극단적인 양극화 도시가 된 모습, 중국의 주식투자 열풍까지 보여준다. 나는 홍콩의 과거와 현재를 부동산 재벌과 관련지어 분석한 투고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홍콩은 부동산 재벌이 땅까지 독점하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크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집을 사지 못하고 쪽방 신세가 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는데 2014년 우산혁명에 이어 이후 송환법 제정까지 이것과 무관하지 않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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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원전 (컬러 도판 양장본) - 역사의 목격자들이 직접 쓴 2,500년 현장의 기록들
존 캐리 엮음, 김기협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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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가진 역사 서술로 이루어진 근대 역사학의 논리에서 벗어나서 정치적 색을 지운 역사를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듯. 당시 사람들의 기록들을 모아놓은 책으로 역사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기록한 사람들의 의도와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면 효과가 더 큰 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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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도나 해러웨이 커뮤니케이션 이론총서
이지언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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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해러웨이가 여러 책에서 주장한 바를 핵심만 쏙쏙 골라내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한 책이다.
도나의 주장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외부 이론가들과 저서를 함께 들고 와 제시하여 도움을 준다. 그리고 친절한 예시는 어려운 이론을 이해시켜주는 데 충실한 입문서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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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5-24 1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러웨이 선언문> 읽기 전에도 이 책이 정리가 잘 됐다고 생각했지만 읽고난 후에도 역시 이 책이 정리가 잘 되었단 생각이 들어요.

거리의화가 2022-05-24 11:17   좋아요 0 | URL
이 책 읽기 정말 잘한 듯합니다 덕분에 그나마 정리가 된 것 같아요 도나 해러웨이 다른 책 읽기 전이나 후 읽으면 도움이 많이 될 듯요^^*
 
5.18 푸른 눈의 증인 - 폴 코트라이트 회고록
폴 코트라이트 지음, 최용주 옮김, 로빈 모이어 사진 / 한림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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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배제, 편견은 사건을 감추고 왜곡하며 원하는 그림으로 조장한다.

1980년 광주는 20대 이전까지만 해도 내게 희미한 존재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TV와 언론에 비춰진 당시의 광주는 폭도들의 봉기가 일어난 위험한 도시였다.

이 책은 5.18 40주년이 되던 2020년 5월 1일 발간되었다.
작가인 폴 코트라이트는 당시 평화봉사단으로 파견되어 있는 상태에서 광주 상황을 목격하였다.
(그는 당시 광주에서 30여분 정도 떨어진 나주의 한센병 환자 정착촌인 호혜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이전에는 나주 보건소에서 1년 반을 일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 독일 외신기자인 위르겐 힌츠페터는 현장 사진과 보도로 우리에게 알려졌지만 외국인이 쓴  회고록은 이 책이 최초라고 볼 수 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일종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 행위이며 사건에 대한 솔직한 나의 목소리가 더해질 것이다. 문제는 당시 내가 목격했던 사건의 시작과 끝을 정확히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건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는 그 역사를 내가 어떻게 전부 증언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꼈던 것만을 말하는 것이다. - P14

그는 5월 14일 비무장지대와 가까운 강원도에서 평화봉사단 건강 교육을 마치고 서울로 온다.
평상시와 달리 평화봉사단 건물 근처 도로를 학생들이 점거한 채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한국에 온 후 나는 단 한번도 위험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한국은 사실상 강력범죄가 없는 나라였다.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장면도 안전을 위협하지는 않았다.  - P17

제3자의 눈에서 본 한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외부인이지만 그는 당시 한국에 들어온 지 2년 정도가 지났기에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다만 외부인이기에 한국의 내부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0.26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신군부가 들어섰기에 국민에 대한 감시와 압제는 여전했으나 외국인이었기에 서울 시위를 보고도 위협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광주 현장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당부 때문이었다.
알려진 바대로 당시의 광주는 철저히 외부에서 고립되었고 방송과 언론에서는 전두환 정권에 구미에 맞는 보도만 내보내고 있었다.
광주는 외부와의 연락선도 끊겼기에 지인이 있다고 해도 연락하기 어려웠고 내부의 사정을 알기에 어려웠다.

"미국인인가요?"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봤지요?"
"지금 당신은 우리를 대변해주어야 해요."
"한국 사람들은 지금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없어요. 미국인인 당신이 증인이 되어 우리를 대신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사정을 알려 주세요."
내가 목격한 이 사태가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내 의사와 관계없이 나는 이미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 답은 더듬거렸고 나는 이 소극적인 대답을 속으로 자책했다. - P70

할머니는 광주의 상황을 외부에 알려달라며 애원하였다.

광주를 떠나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왔지만 평화봉사단원들은 위험을 감수한 채 그곳에 남기로 한다.
폴 코트라이트, 팀 원버그, 주디 챔벌린, 데이브 돌린저는 위르겐 한츠페터를 비롯한 외신 기자들에게 광주의 상황을 통역했다.
구타당하는 민간인을 목격하면 보호하고 병원으로 이송시키는 작업을 하는 등 평화봉사단원들은 비폭력적 개입을 통해 미국인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현장에는 1980년 타임지 사진 기자로 한국에 왔다가 광주민주항쟁 소식을 듣고 광주로 향한 로빈 모이어도 있었다.
그가 촬영한 광주항쟁 사진은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데 처음 공개되는 사진들이라고 한다.

그를 비롯한 평화봉사단원들은 군인이 민간인을 구타하고 살상하는 모습을 똑똑이 지켜보았다.
평화봉사단원은 한국인과 정치적 문제로 토론을 하거나 정치 상황과 관련된 행동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그들은 시민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주체였으나 점차 다양한 계층의 범위로 항쟁은 확대되었다.

여기 작은 도로에서 그 요구와 분노는 학생들을 넘어서 놀랍게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하고 근면한 집단이었던 '할머니'와 '아주머니'로 확대되고 있었다.
이들은 현재의 암담한 상황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으면서도 마주치는 군인들을 향해서 '부끄러운 줄 알라'고 당당히 외치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들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 P68

5월의 봄은 잔혹한 피로 물들었다.
그는 안치된 시신들을 보면서 분노하고 군과 정부가 민간인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모습에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충격과 혼돈에 빠진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괴리감이 느껴졌다. 거짓말처럼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마치 영혼들이 이 지역을 접수한 것 같았다. 5월의 태양은 여전히 따뜻하게 나를 비추고 있었고, 새는 지저귀고, 은행나무이 여린 잎은 바람에 팔랑이고 있었다. 과연 누가 여기에 있었던 이 일을 목격했을까? 육신 없는 영혼들은 이 장면을 증언하지 못할 것이다. - P97

그는 다시 호혜원으로 돌아와 마을 지도자를 만났는데 자신에게 온 편지를 발견하고 놀란다.
'보호'대상이 된 그는 군인 한 명이 배치되어 그동안 감시를 당해왔다는 것이다. 마을 지도자는 그의 행적을 군사당국에 보고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졌다.
한달쯤 후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국의 군사정부가 광주에 머물며 외신 기자들의 통역을 맡았던 그들을 추방할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평화봉사단 책임자가 사실 증명을 요구하며 완강히 버틴 끝에 그는 다행히 한국에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외국인이었지만 결코 광주 항쟁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미국의 국민이었다.
때문에 이 상황은 그를 내내 괴롭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할머니와 했던 약속을 뒤늦게 이렇게라도 지키는 것은 부름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1980년의 미국은 한국과 한국인을 실망시켰다. 나는 이 책을 쓴 미국인으로서 미국인과 한국인이 우리 공동의 역사, 공동의 열망, 나아가 공동의 고통을 서로 더 잘 이해하기를 바란다. - P182

평화봉사단원, 외신기자들을 비롯해 광주를 위해 나서준 외국인들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어제 5.18 기념식이 열렸다.

보수 진영 정당 포함 1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하는데 통합을 강조한 정부가 말 뿐이 아니라 광주 정신을 계승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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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19 10: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제가 5.18. 이었군요. 정신이 없어서 몰랐었네요. 외국인이 썼기 때문에 내용이 더 신빙성 있고 객관적인거 같아요~!! 제발 통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5-19 10:42   좋아요 5 | URL
네^^ 매년 기억할 날이 늘어난다는 것이 기쁜 일로 기억이 되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지만. 사건을 왜곡하려는 세력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우리는 매년 끊임없이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건 당시 광주가 고립된 상황에서 광주의 현장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외부로 나가야 했을 때는 도로가 다 봉쇄되어 있었기 때문에 산길을 타고 자전거로 이동해요. 길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고 감시당하거나 위협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탈출이 쉽지 않았을텐데 그 상황이 리얼하게 묘사되요. 서울로 다시 올라가야 했을 때는 나주의 택시 기사가 도움을 주어 봉쇄된 바리케이트를 몇 차례나 거치면서 무사히 탈출하구요.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 상황이 혼란스럽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청아 2022-05-19 10: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21세기에는 이런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자국민에게,이웃 나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네요. 언론통제라는것의 무서움도 실감하게 해주는 사건이었죠. 저도 어릴때 아버지가 몰래 구해오신 사진들보고야 알았어요.

거리의화가 2022-05-19 11:03   좋아요 5 | URL
네 맞습니다 미미님. 현재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라는 게 믿고 싶어지지 않죠ㅠ
종교, 이념 등의 갈등이 점점 더 커지고 필리핀처럼 이전 독재자였의 아들이었던 사람이 다시 재집권하기도 하는 등 세계가 왜 이렇게 극단으로 치달을까 걱정스럽습니다.
광주는 통제로 인해서 고립되었다고 생각해요. 언론과 정부가 광주를 통제하지 않았다면 전국으로 시위가 확산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모님이 경상도 분들이라 광주에 대한 왜곡과 편견이 강했어요. 이런 의식들을 보고 자란 우리 세대들이 왜곡된 시선을 갖지 않도록 더욱 지금의 현 세대들에게 제대로 된 의식을 계승시켜주어야 할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2-05-19 16: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직접 현장에서 목격하고 참여했던 일이라 더 생생하게 글이 씌어 있겠어요.
어제가 5,18이었는데 임을 향한 행진곡을 불렀더라고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5-19 16:10   좋아요 3 | URL
네. 첫날은 지인을 통해서 들었지만 나머지는 다 목격한 일이라 생생했어요. 군인들이 총부리를 겨눌 때 여러 번 분노가 끓어오르고 질러버리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구요. 다만 봉사단 규정상 그렇게 되면 자신 뿐 아니라 봉사단 인원 모두에 피해가 가니까 참을 수 밖에 없었겠죠.
저도 임을 향한 행진곡 제창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과연 남은 임기동안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어제처럼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희망이 절망이 된 경우가 많았던지라-_-;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mini74 2022-05-19 16: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잘 먹고 잘 살다 죽고, 그 일가들 부를 누리며 살고....제가 사는 동네에선 그래도 그 인간이 잘했다 의리있다 이런 헛소리나 하고....그 지역 예산을 확 깎는다는 기사가 떴더라고요. 발췌글만 읽어도 마음이 참 ㅠㅠ대학시절 몰래 영상 보고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저 빨갱이들과 간첩을 때려잡았다는 걸로 배웠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거리의화가 2022-05-19 17:01   좋아요 2 | URL
네 미니님 대구, 부산을 비롯해서 경상도 지역이 학생운동도 많고 새로운 기치를 들고 많이 일어서던 곳이었는데이제는 전라도와 경상도 색깔정치가 너무 짙어져서 통합과 협치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해도 광주항쟁은 결코 색깔론으로 붙일 수 없는 사건인데 그걸 색안경을 끼고 보니 참 할말이... 저도 그런 교육을 받고 자라서 정말 한참 후에 진상을 알고 얼마나 놀랬던지-_- 제대로 된 교육이 참으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2-05-20 0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보여주는 아이러니!
우리의 현실인듯요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ㅠ

거리의화가 2022-05-20 08:48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서로 다른 의견으로 갈등할 수는 있지만 이를 하나로 합하기 위해 조장하려는 세력이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 다양성을 용인하는 태도가 많이 부족하다 싶은데 이는 이전의 역사에서 받은 영향이 큰 듯합니다. 점차 나아져야 할텐데 말이죠.
 
파친코 2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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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태어난 곳이 고향이자 조국인 것이 무슨 의미일지 생각했다.

내 출신을 말하는 것이 불이익이 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
조롱과 멸시, 차별이 일상인 공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일본 뿐 아니라 원치 않게 타국에서 살아남아야 한 조선인들을 떠올려본다.
원하는 곳에 취업조차 할 수 없고 몇 가지 제한된 일에 얽매여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때론 분노가 때론 답답함을 일으키게 했다.
내가 살기 위한 땅을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창호가 선택한 북한, 피비가 있는 미국, 선자 가족들이 뿌리내린 일본.
그들이 뿌리내린 그곳에서 그들은 어찌되었든 살아남으려 했다.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꼽아본다.

노아가 친부의 정체를 알기 전 와세다 대학에서 교수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대학을 선택할 때가 떠올랐다.
집안 형편이 어렵지 않았다면, 내가 반항기가 조금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버지는 내가 대학조차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었다. 여자가 공부를 해서 뭐하느냐면서 돈이나 벌라고 했었는데 그 말이 너무 상처가 되었다. 그렇지만 대학은 들어가고 싶었다.
성적에 맞춰 장학금을 받는 것이 가능하고 빠른 취업이 가능한 곳을 선택해야만 했다.
결국 부모님이 원하는 길을 선택했으나 내내 후회가 되었다.

선자가 유미를 끌어안아주는 장면이 있다.
유미는 자신을 내팽개친 엄마를 용서하지 못했는데 그런 그녀를 선자가 고생했다며 끌어안는다.
그리고 모자수는 유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가 모자수 곁에 더 오래 머물렀다면, 아이인 솔로몬과 함께 더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비록 가정이라서 마음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선자가 유미를 끌어안아줌으로써 이후의 비극이 그리 슬프지는 않았다.

솔로몬이 14살이 되어 거주증을 받으러 간 장면이 있다. 모자수는 이 거주증을 개목걸이로 표현한다.
관청 직원은 외국인 이민 규정 기록으로 중요한 것인데 모욕적으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말을 시니컬하게 내뱉는다.
1952년 이후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들은 14살 생일이 되면 지방 관청에 가서 거주 허가증을 받고 3년마다 거주증을 갱신해야했다.
솔로몬 뿐만 아니라 조선인들은 모두 이런 취급을 받았을 걸 생각하니 분노가 끓어올랐다.

솔로몬이 에쓰코 아줌마를 엄마라고 불러주는 장면이다.
에쓰코는 이전 결혼에서 낳은 자식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솔로몬은 그런 에쓰코를 진정으로 위로한다.
그리고 그런 솔로몬을 에쓰코도 꼭 안아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피비와 솔로몬의 갈등이다. 피비의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 뿐이다.
피비는 자신의 미국 친구들에게 일본은 인종 편견이 가득한 곳이라고 했고 솔로몬은 피비가 일본에 갖는 인식이 부정적이고 일본에 사는 조선인의 역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한반도 분단 이후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은 북한 또는 남한을 선택해야 했다. 그들이 일본인이 된다는 것은 어려웠다.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식민지인들이 피식민자 국민이 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갈등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자신이 뿌리를 내리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지.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이삭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의도한 바다라고 이야기했고 모자수는 파친코 게임처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삶은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어쩌면 고통일 수도 있다.
하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내가 하는 노력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자신의 삶은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그 불쌍한 아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거야."
"잘 들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나 같은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어.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달라진 게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을 일본인 새끼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 소리를 듣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공포에 떨고 있어." - P220

"미국에서는 강꼬꾸징韓國人이니 조센징朝鮮人이라는 게 없었어. 왜 내가 남한 사람 아니면 북한 사람이 돼야 하는 거야? 이건 말도 안돼! 난 시애틀에서 태어났어. 우리 부모님은 조선이 분단되지 않았을 때 미국으로 갔고. 왜 일본은 아직도 조선인 거주자들의 국적을 구분하려고 드는 거야? 자기 나라에서 4대째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말이야. 넌 여기서 태어났어. 외국인이 아니라고! 이건 완전 미친 짓이야. 네 아버지도 여기서 태어났는데 왜 너희 두 사람은 아직도 남한 여권을 가지고 다니는 거야? 정말 이상해." - P314

선자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한수도, 심지어는 이삭도 아니었다. 선자가 꿈속에서 다시 마주한 것은 젊음과 시작, 소망이었다. 그랬다. 선자는 그렇게 한 여자가 되었다. 한수와 이삭, 노아가 없었다면 이 땅으로 오는 순례의 길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가 된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 너머로 아름다움과 영광이 반짝거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무리 모른다 해도 그것이 진실이었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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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16 17: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목걸이라니 ㅠㅠ 출신 국적이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 된다니 참 분노할 일이에요 ㅠㅠ 뒤늦게 파친코가 읽고싶네요 ㅎ헤

거리의화가 2022-05-16 18:13   좋아요 1 | URL
새로 나오는 판권으로 구입하실 수 밖에 없겠네요 중고가가 비싸다고 하더라구요^^;
전 이 책이 개인의 삶도 삶인데 역사적 맥락과 얽혀져서 너무 안타깝고 슬펐어요. 미니님 감사합니다^^

2022-05-16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16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2-06-02 1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은근히 인상적인 장면이 많은 소설이더라구요. 한국과 일본의 이야기지만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이유도 알 것 같아요. 잊어버리기 전에 저도 빨리 리뷰를 써봐야 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6-02 17:20   좋아요 2 | URL
네. 특히 2권에서 더 그걸 느꼈던 것 같아요. 외국인들도 주목한 부분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게 민족의 아픔 이런 것도 있겠지만 인간의 정서와 감정 측면에서 와닿는 것들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상처를 보듬는 장면들 같은 거요. 괭님의 리뷰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