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2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태어난 곳이 고향이자 조국인 것이 무슨 의미일지 생각했다.

내 출신을 말하는 것이 불이익이 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
조롱과 멸시, 차별이 일상인 공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일본 뿐 아니라 원치 않게 타국에서 살아남아야 한 조선인들을 떠올려본다.
원하는 곳에 취업조차 할 수 없고 몇 가지 제한된 일에 얽매여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때론 분노가 때론 답답함을 일으키게 했다.
내가 살기 위한 땅을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창호가 선택한 북한, 피비가 있는 미국, 선자 가족들이 뿌리내린 일본.
그들이 뿌리내린 그곳에서 그들은 어찌되었든 살아남으려 했다.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꼽아본다.

노아가 친부의 정체를 알기 전 와세다 대학에서 교수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대학을 선택할 때가 떠올랐다.
집안 형편이 어렵지 않았다면, 내가 반항기가 조금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버지는 내가 대학조차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었다. 여자가 공부를 해서 뭐하느냐면서 돈이나 벌라고 했었는데 그 말이 너무 상처가 되었다. 그렇지만 대학은 들어가고 싶었다.
성적에 맞춰 장학금을 받는 것이 가능하고 빠른 취업이 가능한 곳을 선택해야만 했다.
결국 부모님이 원하는 길을 선택했으나 내내 후회가 되었다.

선자가 유미를 끌어안아주는 장면이 있다.
유미는 자신을 내팽개친 엄마를 용서하지 못했는데 그런 그녀를 선자가 고생했다며 끌어안는다.
그리고 모자수는 유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가 모자수 곁에 더 오래 머물렀다면, 아이인 솔로몬과 함께 더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비록 가정이라서 마음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선자가 유미를 끌어안아줌으로써 이후의 비극이 그리 슬프지는 않았다.

솔로몬이 14살이 되어 거주증을 받으러 간 장면이 있다. 모자수는 이 거주증을 개목걸이로 표현한다.
관청 직원은 외국인 이민 규정 기록으로 중요한 것인데 모욕적으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말을 시니컬하게 내뱉는다.
1952년 이후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들은 14살 생일이 되면 지방 관청에 가서 거주 허가증을 받고 3년마다 거주증을 갱신해야했다.
솔로몬 뿐만 아니라 조선인들은 모두 이런 취급을 받았을 걸 생각하니 분노가 끓어올랐다.

솔로몬이 에쓰코 아줌마를 엄마라고 불러주는 장면이다.
에쓰코는 이전 결혼에서 낳은 자식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솔로몬은 그런 에쓰코를 진정으로 위로한다.
그리고 그런 솔로몬을 에쓰코도 꼭 안아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피비와 솔로몬의 갈등이다. 피비의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 뿐이다.
피비는 자신의 미국 친구들에게 일본은 인종 편견이 가득한 곳이라고 했고 솔로몬은 피비가 일본에 갖는 인식이 부정적이고 일본에 사는 조선인의 역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한반도 분단 이후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은 북한 또는 남한을 선택해야 했다. 그들이 일본인이 된다는 것은 어려웠다.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식민지인들이 피식민자 국민이 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갈등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자신이 뿌리를 내리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지.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이삭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의도한 바다라고 이야기했고 모자수는 파친코 게임처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삶은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어쩌면 고통일 수도 있다.
하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내가 하는 노력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자신의 삶은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그 불쌍한 아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거야."
"잘 들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나 같은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어.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달라진 게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을 일본인 새끼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 소리를 듣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공포에 떨고 있어." - P220

"미국에서는 강꼬꾸징韓國人이니 조센징朝鮮人이라는 게 없었어. 왜 내가 남한 사람 아니면 북한 사람이 돼야 하는 거야? 이건 말도 안돼! 난 시애틀에서 태어났어. 우리 부모님은 조선이 분단되지 않았을 때 미국으로 갔고. 왜 일본은 아직도 조선인 거주자들의 국적을 구분하려고 드는 거야? 자기 나라에서 4대째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말이야. 넌 여기서 태어났어. 외국인이 아니라고! 이건 완전 미친 짓이야. 네 아버지도 여기서 태어났는데 왜 너희 두 사람은 아직도 남한 여권을 가지고 다니는 거야? 정말 이상해." - P314

선자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한수도, 심지어는 이삭도 아니었다. 선자가 꿈속에서 다시 마주한 것은 젊음과 시작, 소망이었다. 그랬다. 선자는 그렇게 한 여자가 되었다. 한수와 이삭, 노아가 없었다면 이 땅으로 오는 순례의 길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가 된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 너머로 아름다움과 영광이 반짝거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무리 모른다 해도 그것이 진실이었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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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16 17: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목걸이라니 ㅠㅠ 출신 국적이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 된다니 참 분노할 일이에요 ㅠㅠ 뒤늦게 파친코가 읽고싶네요 ㅎ헤

거리의화가 2022-05-16 18:13   좋아요 1 | URL
새로 나오는 판권으로 구입하실 수 밖에 없겠네요 중고가가 비싸다고 하더라구요^^;
전 이 책이 개인의 삶도 삶인데 역사적 맥락과 얽혀져서 너무 안타깝고 슬펐어요. 미니님 감사합니다^^

2022-05-16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16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2-06-02 1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은근히 인상적인 장면이 많은 소설이더라구요. 한국과 일본의 이야기지만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이유도 알 것 같아요. 잊어버리기 전에 저도 빨리 리뷰를 써봐야 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6-02 17:20   좋아요 2 | URL
네. 특히 2권에서 더 그걸 느꼈던 것 같아요. 외국인들도 주목한 부분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게 민족의 아픔 이런 것도 있겠지만 인간의 정서와 감정 측면에서 와닿는 것들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상처를 보듬는 장면들 같은 거요. 괭님의 리뷰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