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S 2006 다큐멘터리 한마당 중 사진전시회에 걸린 작품, 퍼왔습니다.
우리 동네 큰길 건널목 바로 앞 담벼락에는 낮이고 밤이고
가방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습니다.
알록달록한 무늬의 작은 손가방부터 배낭, 핸드백까지......
주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작은 봉고와 소형차 두어 대가 부근에 항상 서 있는데
가방들의 주인은 그 차들 중의 하나에 숨어 앉아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건 아닐까요?
남편이 출퇴근시 드는 가방 하나가 더 필요하다고 말해서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눈여겨 보는데 마땅한 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입성은 허름해도 가방만은 고급으로, 하는 이상한 고집이 있어서
양에 차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디자인이며 가방의 재질이며 꽤 괜찮아 보이거든요.
지지난주엔 슈퍼에서 장을 보고 오다가 그 건널목 바로 앞 수레에서
2000원짜리 보리튀밥을 한 봉지 샀습니다.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심란한 얼굴의 주인 아저씨와 문득 눈이 마주쳐서.
조리퐁의 달콤함에 이미 입맛이 길들여진 아이는 심심한 보리튀밥을 외면했습니다.
주둥이를 잘 묶어놓았는데도 어느새 바람이 들었는지 엊그제 열어보았더니
약간 눅눅해졌더군요.
금요일 밤 놀이터에서 잠시 놀다 모기에 물린(팔뚝을) 아이의 손등이 어제 아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잠을 못 이루고 새벽에 소파에 나와 앉았더니,
자다가 팔뚝을 긁어 손등이 더 부어오를까봐 걱정이 되어 그랬답니다.
어제 외출중에 안심이 안 되어 약국을 두 군데나 들렀더니,
얼음찜질 해주다가 그래도 안 되면 병원에 데리고 가 주사를 맞히라고.
새벽에 자지 않고 소파에 혼자 나와 오도마니 앉아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살다보면 너무나 외롭고 두려운 인생의 시간이 있습니다.
단지 모기에 물려 수북히 부어오른 아이의 손등에도 이렇게 기겁을 하는데......
방금 도착한 책 속에 저자가 사랑하는 곡들을 수록한 음반이 들어 있었습니다.
네 번째 곡 차이코프스키의 '오직 외로움을 아는 자만이' 에 눈길이 꽂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담벼락 가방 노점상과 눅눅해진 보리튀밥 얘기로
페이퍼를 하나 쓰는데...... 2분 48초, 곡이 너무 짧네요.
그래서 이렇게 쓰나마나한 싱거운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참, 아이 손등의 부기는 많이 가라앉아 오늘아침 시락국에 밥 말아먹고
씩씩하게 학교에 갔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