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아이들을 시원한 물 속에 좀 빠트려 주자고 하여
집 근처 다리 밑 개울가에 가기로 했다.
남편이 출퇴근하며 유심히 봐둔 가까운 개울은 그늘도 물의 양도 신통찮아서 그냥 통과,
퇴계원의 왕숙천까지 갔더니 그곳은  캠핑 지역이어서 제법 많은 돗자리와
그늘막 텐트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날은 올케가 삼겹살을 준비하기로 하여 우리 가족은 빈손으로 갔다.

다리 밑 그늘에 용케 끼어들어 자리 두 개를 펴고 아이들은 바로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풍경이 근사하거나 그런 게 아니고 단지 차들이 지나는 다리 밑으로
개울이 흘러서 근처에 사는 가족들이 하나둘 모여들다 보니 이런 풍경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조그만 튜브 두 개를 빵빵하게 부느라고 남동생과 책장수님은 땀을 뻘뻘 흘리고, 
여자 둘은  고기 굽느라고 땀을 뻘뻘.

주변을 살펴보니 돗자리 위마다 가스버너에 준비해온 음식을 해먹느라 난리들이다.
간단한 도시락 정도가 아니다.
살림을 이고 지고 싸매어 왔다.
우리 오른쪽에는 열 명쯤 단체로 온 일가친척이 갈매기살 항정살을 구워 먹고 나서
조그만 프라이팬을 꺼내더니 반죽을 부어  부추전을 부쳐 먹는다.
(빈 소주병이 무수히 비닐 속에 뒹굴고......)
푸릇푸릇 깻잎까지 넙적하게 섞인 전이 얼마나 맛나 보였는지......

우리 뒤에 자리를 편 부부는 짐이 좀 많다 싶더니만 압력밥솥을 꺼내어 닭을 넣고 물을 붓고
기세좋게 백숙을 끓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음식 해먹을 준비를 해오지 않은 사람들은 치킨이며 피자를 시켜 아구아구.
삼복염천에도 아랑곳 않고 뭔가를 먹는 사람들로 다리밑과 개울 옆이 왁자했다.
(다리 기둥에는 중국집, 치킨집, 족발집 전화번호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준비해온 삼겹살이 동이 나서 책장수님은 다리 위 매점으로 고기를 사러 가고.
아이들이 노는 물도 뭐 그리 맑고 청정해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신나라~~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는 삼겹살은 맛있었지만 더위와 마치 피난민 대열 같은
그 기이한 광경은 정답다기보다 약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짐작대 중하류층 가족의 대표적인, 그리고 가장 경제적인
나들이 풍경이 이렇지 않을까.

"서민적이야,  그야말로 서민적!! "

내 감탄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를 한 점이라도 더 집어먹으려 정신없는  와중에도......

입가심으로 준비해온 라면 두 개를  끓여 먹으며 다음에 올 때는 옆자리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의  메뉴를 준비해 오자고  올케와 쑥덕였다.
물 속에서 나온 아이들도 날름날름 주는 대로 구운 고기를 잘 받아 먹었다.
백숙이 다 끓었는지 옆자리 압력밥솥의 추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나는 백숙보다는 옆자리의 부추전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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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8-09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개울가에서 만한전석을 차리시진 않으시겠죠..^^
가끔 올리시는 음식페이퍼 보면 분명 맛스럽고 풍족한
나들이 밥상이 되겠군요..^^

sooninara 2006-08-09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도 다리밑은 아니지만 개울가에서 놀았는데..
시어머님이 해주신 찰밥에 김 싸서 밥 먹었어요.
나중엔 치킨 한마리 시켜 먹고..
옆에 있던 집은 자장면에 탕슉에..맛나보이더군요
내년에는 그렇게 시켜 먹으려구요.
서민적인 물놀이...아이들은 캐러00베이처럼 잘 놀던걸요^^

프레이야 2006-08-0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귀여워라~~ 시원하겠네.. 같이 놀고시퍼~~

물만두 2006-08-0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운데 시원해보여요^^

로드무비 2006-08-0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TA반대 물만두님, 아이들만 신났답니다.
실컷 먹어놓고 엉뚱소리.ㅎㅎ

배혜경님, 요즘 둘이 앙숙인데 저때는 얼마나 사이가 좋던지요.^^

FTA 반대 새벽별 님, 처음엔 어이가 없었는데 나중엔 부럽더군요.ㅎㅎ

수니나라님, 좀 초라해서 가슴이 뭉클한 부분도 있더군요.
찰밥에 치킨도 맛났겠어요.
물론 생맥주도 한잔 곁들이셨지요?^^

메피스토님, 만한전석이 멉니까?
사전 찾아봐야겠군요.
다음에 제대로 준비해 가면 사진 찍어 올릴게요.
나들이 밥상, 생각만 해도 신납니다.^^


건우와 연우 2006-08-09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리밑 개울가에서 고기구워먹고 놀다보면 정말 그말이 절로 나와요. 그야말로 서민적이라는...^^
그래도 내가 먹고싶은 음식 먹으며 맘편히 놀기에는 그만한 장소가 드물죠...^^

瑚璉 2006-08-09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저는 PS2와 함께 꿋꿋이 집을 사수하렵니다.

2006-08-09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6-08-09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이기도 힘들지만, 일단 가족끼리 친한 사람들끼리 모이면
무엇을 먹느냐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무더윈들 어떻겠습니까. 맘맞는 사람들끼리 모였는데 ^^
정말 맛났겠어요, 삼겹살. 흑.

어룸 2006-08-09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쩝쩝....입맛만 다셔봅니당

해리포터7 2006-08-09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딜가나 먹는게 빠지면 섭하지요 ㅋㅋㅋ 전 개울가에서 족발시켜먹었는뎅 ㅎㅎㅎ

2006-08-09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사춘 2006-08-0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자연과 음식과 인정이 어우러지는 집안분위기 너무 부러워요.

니르바나 2006-08-10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대로 정이 소록소록 들 것 같은 정경입니다.
음식백경- 제가 단 로드무비님 책 이름입니다.^^

로드무비 2006-08-10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음식백경이라니, 하하 메뉴가 몇 가지 안되는데......
그것도 찌질한 음식들.
정이 너무 들까봐 무서운 정경이었습니다.

산사춘님, 한 점이라도 더 자기 입에 넣으려고 쌍심지를 돋우는 풍경을 봤으면
인정이 어떻고 그런 소리는 못 하실 텐데요.^^

귀여븐 것들 님, 소장함 좀 공개하시라니까요.
주문할 때마다 수시로 제것도 좀 체크해 주시고요.
한나절 경제적으로다가 잘 놀고 왔습니다.^^

따우님, 제법 다정해 보이죠? 흐뭇.
평소에는 둘이 앙숙입니다.

해리포터 7님, 우와, 족발도 괜찮지요.
쟁반국수도 함께 먹으면 맛난데...ㅎㅎ

투풀님, 님은 혹시 과자와 아이스크림으로 연명하시는 것 아니어요?
갑자기 그런 의심이.ㅎㅎ

플레져님, 마음은 별로 안 맞습니다.
가차이 살다보니 자주 어울리게 되는 거죠.
삼겹살은 역시 밖에서 먹는 게 맛있어요.
집에서 구워 먹으면 고작 900~ 1000그램인데
저날은 600그램 추가했습니다.^^

호질님, 피부가 백옥같으시겠어요.
볕을 못 봐서.
안 그래도 피부 좋기로 소문 나셨더만.^^
(책을 덮고 음악을 끄고 다리 밑으로 가자, 라는 말 못 들어보셨어요?
테라야마 슈지가 한 말인데.('' )

건우와 연우님, 뭔가 눈물 겨운 데가 있었어요.
"서민적"이라는 말이 정겹기도 하고 좀 지겨운 데도 있지요.
아무튼 집 근처 개울가는 가깝고 편리해서 좋아요.^^



아키타이프 2006-08-10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리밑... 기피 지역인데요... 어릴때 너희 진짜 부모는 다리밑에 있으니 찾아 가라는 소리를 들어놔서... 정겨운 장소는 아니네요. 글고 보니 한번도 다리밑에서 놀아본 기억이 없네요. 정말로 진짜 부모가 다리밑에 있을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지만 애들이 말을 안듣거나 겁을 주기 위해서 자기 자식임을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말(농담이라도)은 이런식으로라도 영향을 미치네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찬물 끼얹는 소리를... 너무 덥나봅니다.

로드무비 2006-08-10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키타이프님, 찬물은 아니고 미지근한 물 끼얹는 소리였습네다.ㅎㅎ
전 다리 밑이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거지의 피가 흐르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