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란 무엇인가 - 최민식, 사진을 말한다
최민식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6월
품절


--만일 내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사진작가의 길을 걷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경험한 인생의 좌절과 힘겨움은 오늘날 나의 창작활동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 책은 사진의 표현기법이나 방법론이 아닌 위대한 사진작가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들의 대표작 등을 중심으로 사진의 본질적 의미와
작가정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서문)

'집에서의 공부' 1939년, Russell Lee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한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어머니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사진 설명)

어딘가에서 주워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낡은 서랍장은 아이들 책상으로 사용하기에 너무 높다. 하지만 조그만 칠판과 무언가 덕지덕지 붙였다가 뗀 흔적이 분명한 벽이 묘하게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알프레드 슈바이처' 1949년, W. Eugene Smith

--가식 없이 헝클어진 슈바이처의 선명한 흰 머리칼. 이 사진으로 그는 <라이프>지와 결별하게 되었는데 슈바이처를 평범한 인간으로 그리려 한 유진 스미스의 의도가 <라이프>지의 편집자에 의해 무산되었기
때문이다.(사진 설명)

작가의 작품 의도와 잡지라는 매체, 혹은 출판사 측의 의견이 충돌을 일으키면 무조건 작가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피리 부는 소년' 1954년, Werner Bischof

--남루한 옷을 입고 큰 자루를 걸머진 채 피리를 불면서 산길을 걸어가는 페루의 목동. 작가는 1954년 페루에서 교통사고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사진 설명)

이 흑백사진 엽서를 열 장쯤 사서 크리스마스 카드 대신 사용한 해가
있었다. 내가 좋아한 한 여성 시인은 이 엽서를 물끄러미 보며 페루의 마추픽추 부근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어 묻히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회' 1973년, Slava (sal) Veder

--베트남에서 5년 동안 억류돼 있다가 풀려나 공항에서 가족과 재회하는 미 스탐 중령. 1974년 퓰리처 상 수상작품.

그런데 이 부부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고 하니 그때 그 기쁨과 감격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인생사 알 수 없다. 기뻐 날뛰는 순간과 울부짖는 시간의 교차......

'절망의 얼굴' 1969년, 라구 라이

-- 나는 세상에서 잊힌 사람들을 찍는다.(...) 내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운명과 대결해 싸우고 있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이다. 사진 속의 슬픔을 간직한 그들이 내게 다가와 눈물 흘린다. 나는 허리를 굽혀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서러운 인생 얘기에 귀기울이고 싶다.(221쪽)

사진들은 따로 고급용지를 쓴 게 아니라 보통의 본문용지에 그대로 실려 있다. 그것이 이 책과 잘 어울린다.

부산, 1981년, 최민식

--부산 자갈치 바닷가에서 머리를 맞댄 채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있는 두 남자의 모습.

작가가 몰래 스냅촬영했다는 이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어느 바닷가(제2 송도 아카시아 길가로 기억)에서 안주도 부실하게 한잔 마시다가 옆 테이블 데이트족이 남기고 간 파전 반 장 접시를 재빨리 세이브하고 환호작약하던 어느 날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부산, 1980년, 최민식

--길에서 만난 두 아이가 손을 뻗어 올리고 웃고 있다. 이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찍는 건 사진가로서 큰 수확이고 행운이다.(249쪽)

아이들이 손에 든 게 백설기 쪼가린가, 생라면 한 조각인가 유심히 살펴보는데 잘 모르겠다. 가만 생각해 보면 어릴 때 제일 행복했던 날은 동생들과 손잡고 걸어서 15분 거리인 연산시장까지 짜장라면을 사러 가던 그때이다. 그때 우리 세 남매의 입성도 저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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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 2005-07-16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좋습니다.

로드무비 2005-07-16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사량님이다.
반가워서!^^

sudan 2005-07-16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인지 '재회'는 별론데요? 아마겟돈류의 영화에서 자주 연출되는 장면이잖아요 저건.

하이드 2005-07-16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정적인 순간'이란 말은 사진의 표현에서 꼭 있어야 될 요소다. 순간을 고정시킨다는 것은 사진의 중요한 기능을 일치시킨다는 말이지만 물리적인 순간만을 의도한 것은 아니고 ' 내용과 형식, 그리고 감정이 일치된 순간'을 말한다. 현상과 자기 의식이 스파크한 순간에 모든 것은 결정지워진다. 눈과 손가락을 연장으로 하여 자기의 의지에 의하여 비로소 자유롭게 실현되는 것이다.  [종이 거울 속의 슬픈 얼굴]中



 최민식선생님 전시회. 지난 여름.

 '사람만이 희망이다'
고집센 사진 속의 얼굴처럼 고집센 노작가의 전시회는
참 감동적이었어요.

 



하루(春) 2005-07-16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네요. 흑백사진만의 매력 컬러사진은 절대 따라오지 못할...

인터라겐 2005-07-16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란건 참 매력있어요... 한때 흑백사진에 열을 올렸던 적이 있었는데..
으 그런데 로드무비님 처럼 저도 따라 해볼려고 그랬더니 포토리뷰 아무나 하는게 아니더라구요.. 이제 전 안할꺼예요...ㅎㅎㅎㅎ

히피드림~ 2005-07-16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르트르의 외삼촌 슈바이처 박사가 있군여.
이 책 평소에 궁금했는데 잘 보고 가요^^

싸이런스 2005-07-16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 피리부는 소년..십년전쯤 잘가던 카페 놀이하는 사람들 입구 들어가는데 그려져 있는 그림...그게 저거 였네요

검둥개 2005-07-16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민식 사진전이 있었는지 몰랐어요. 저 유명한 사진이 커다랗게 신영복 선생 글씨 위에 걸려 있는 걸 보니 좋.네.요.

플레져 2005-07-17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머니즘, 이란 말을 님에게서 들으니 가슴에 와닿아요.
몰래 찍었다는 두 남자의 사진처럼...
근데, 로드무비님도 전문용어로 다른 테이블에서 남기고 간 안주 긁어오는 '하이에나' 를 하셨단 말씀이어요? 히히... 왠지 방가!

니르바나 2005-07-17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밑의 사진에 올인합니다. 로드무비님
이 사진을 찍은 건 작가 최민식의 수확이지만, 이 사진을 여기서 만난 건 니르바나의 행운입니다.

로드무비 2005-07-17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나중에 책으로 좀더 확실하게 보세요. 저 어린 남매.^^

플레져님, 오 '하이에나' 남의 안주 싹쓸이를 우리 플레져님도
해보셨다고요? 어머나, 반가워라.^^

검정개님, 하이드님께 감사하자고요.
전 알고도 못 갔습니다.(그런데 눈이 참 밝으시네요?!^^)

싸이런스님, 반갑습니다.
마태우스님이 얼마 전 님의 이름을 가지고 리뷰 추천 어쩌고 하는
재미난 글을 올리셨죠?ㅎㅎ
저 사진 저도 참 좋아했어요.
예전 교보문고에는 저렇게 좋은 그림, 사진엽서를 더러 팔았는데 말입니다.
저 사진을 붙여놓았다는 10년 전의 카페 저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

펑크님, 이 책에는 최민식이 좋아하는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꽤 많이 실렸어요.^^

인터라겐님, 아니 왜요?
포토리뷰 구경 갈게요. 잠시만.......^^

하루님, 그렇죠?
요즘도 일부러 흑백사진만 찍는 사람도 있다잖아요.
사진작가 아닌데도......^^

하이드님, 전시회 직접 보셨군요.
아유, 전시장 입구만 봐도 가슴이 설렙니다.
어떤 얼굴에서 느껴지는 고집은 드물게 참 보기가 좋습니다.
사진작가 최민식의 얼굴이 바로 그렇지요.^^
(고맙습니다.)

SUDAN님, 베트남전이고 미국의 가정이고 이런 거 저런 거 떠나서
어떤 사람들이 저렇게 기뻐하는 인생의 순간에 초점을 맞춰주시라요.^^

국경을넘어 2005-07-17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노해 曰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자 실상사 도법스님 曰 "그려 사람이 제일 문제여"
(너무 산통깨는 댓글인가요^^*)

로드무비 2005-07-1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미에서 나온 도법 스님 책(<내가 본 부처>)은 별로였는데......
폐인촌님, 자주 와서 산통 좀 깨주세요.^^
('사람만이 희망이다' 저도 저런 제목은 조금 거시기해요!;;)

국경을넘어 2005-07-17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 무진 드라이한 책인데. 불교에 대한 상당한 애정으로 무장하고서 봐야.... 음...*^^*

2005-07-17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7-18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유머라고 한마디 하시는 것 하고는.^^
폐인촌님, 그러니까요.
너무 드라이한 책이더라고요.^^*

2005-07-20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7-21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전 이분의 책을 오래전부터 나오는 족족 읽었고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나저나 너무 오랜만이에요.
반가워요.^^

2005-07-20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7-21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님은 뭐가 창피하다고 그러시는지.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라는데.
아무튼 콤배콤은 너무 기쁜 소식입니다요.^^

숨은아이 2005-07-22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바이처 사진 좋으네요, 라고 하려 했는데, 잇따라 아래 사진을 다 보고 났더니, 아 잇따라 보기 버거워요. 하나하나가 찐해서.

내가없는 이 안 2005-07-28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반가운 마음에... 이분의 책을 좀 뒤져보고 싶더라구요. 로드무비님이 무한한 신뢰를 가지신다니, 그럼 저도... ^^ 그런데 요즘에도 '~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붙이는 신간이 있네요.

로드무비 2005-07-28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오랜만입니다.
사실 이 책 사진은 좋았지만 글은 별로였어요.
책 제목도 그렇고......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을 강력 추천합니다.
숨은아이님, 허름한 종이에 찍힌 사진들이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