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부를 못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아이 교실에 청소를 하러 한 달에 두 번쯤 간다. 
보통은 두세 명의 자모들이 짝을 이뤄 청소를 하는데 지난번에 내가 갔을 땐
아무도 나오지 않아 혼자 낑낑거리며 스무 개의 책상과 마흔 개의 걸상을 옮기며 교실을 쓸고 닦았다.
땀이 비오듯이 흘렀다.
바닥을  대걸레로 깨끗이 닦고 책상 줄을 맞추고 있는데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나타났다.
왜 혼자서 청소를 하시느냐고 깜짝 놀라서 묻는데 나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그럴 수도 있죠, 당번 엄마가 깜빡하셨나봐요." 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무척 흡족스러웠다.
오늘 나의 노고를 알아준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서.
더구나 그것이 아이의 담임선생님이라니!

책상을  한 개 한 개  깨끗이 닦고 걸레를 깨끗이 씻어 널어놓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실소를 금치 못했다.
담임선생님이 앞문을 드르륵 열고 나타났을 때 내 속에는 혼자 청소하는 게 서러워
입을 삐쭉삐쭉거리는 계집아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 나이에도 문득문득 이런 심정으로 살지 어떻게 알았겠나!
한가지 확실한 건 나이 예순이 넘어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사실이다.
사실  책상을 반쯤 옮겼을 때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대강 해치우고 가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꼼꼼하게 청소한 나의 노고는 유치하게도 선생의 등장으로 보상을 받았던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연륜이 빛나면서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기는커녕
더욱 치졸해지고 변덕만 늘어가는 자신을 느낀다.
이럴 때 솔직히 나는 당황한다. 앞으로 어떡해야 하지?
이런 몰골로 엄마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또 어른의 도리를 다하며 살아야 한다니!
아아, 한 마디로 나는 지금도 살아가는 일이 자신 없고 순간순간 아득하기만 하다.

어제 읽기 시작한 야마다 에이미의 <나는 공부를 못해>를 조금 전 마저 읽었다.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이 책 한 권을 통해 뭔가 조금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열일곱 살의 공부 못하는 개성 만점 고교생 도키다 히데미와,  말썽꾸러기 아들 때문에
학교에 불려와서도 눈치 안 보고 담임선생 앞에서 할 말 못할 말 다하는 젊은 엄마 진코와,
아비 없는 자식을 기르며 사는 딸의 집에 함께 살며 잔소리도 간섭도 어설픈 훈수도 없이
유쾌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할아버지, 이 세 가족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뭔가 조그만 힌트를 얻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잠시 잊고 있던 것 정도랄까.

다음은 히데미가 한 초등학교에 전학 왔을 때의 인상적인 장면.

--자기 소개를 할 때 히데미는 교단 위에서 그냥 멍하니 서 있는 듯이 보였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한 오쿠무라(선생)는 그의 뒷머리에 손을 대고
인사를 하게 했다.  그러자 히데미는 그 손을 뿌리치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억지로 머리를 숙이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열한 살 소년 히데미의 말대로 누구도 누구의 머리를 강제로 숙이게 할 수는 없다.
부모든 선생이든 대통령이든 대통령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라도......
이 간단하고 명료한 원칙만 알고 지키더라도 세상은 좀더 자유스럽고 살 만할 터인데......
<나는 공부를 못해>는  자신도 모르게 구축된 오만 가지의 편견과 불길한 암시로 가득한 
삶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나 같은 어른이 가볍게 일독하면 더 좋겠다. 작가의 바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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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07-09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 많으셨네요.
매달 2번째 토요일, 전일제 CA가 끝나면 저는 혼자서 저희반 청소를 합니다. 평일에 학생들의 청소 시간이 있지만, 남자애들이다 보니 워낙 게으르고 대충대충. 게다가 청소하고 또 보충수업하고 저녁먹고 야간자율학습하니. 청소는 하나마나. 학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저 역시 혼자 교실을 쓸고 책상 줄을 맞추면서, 고교에서도 한달에 한번이라도 학부모님들이 자식들 학교 청소 좀 해봐야 자기 자식 잘 타이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로드무비 2005-07-09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니님. 그러시군요.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갑니다.
선생님들이 온갖 궂은일을 하실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책은 특히 선생님들이 보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실마다 히데미 같은 녀석이 한둘은 꼭 있을 것 같아서요.
소설로 보면 개성 넘치는 매력적인 소년.
현실에서는 문제아!^^

서연사랑 2005-07-09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문제아'라고 '낙인'찍는 어른들이 없다면 '문제아'도 없을텐데 말이예요. 중간고사 기간을 '가을방학'이라며 가방에 책 한 권 안 넣어가지고 오던 녀석들도 학교를 벗어나니 사회에서 다들 제 자리 찾아 한 몫하는 성인들로 자라더군요. 그럴때면 '도대체 왜 그러니? 어!', '한심하다, 이놈들아'하고 화내던 제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정말 미안해지더라구요.
꼭 읽어볼께요.^^

2005-07-09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7-10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쑥스럽긴요.
이런 리뷰 쓰는 제가 쑥스럽죠.
님의 댓글이 항상 반가워요.
더 자주 뵈었으면......^^

서연사랑님, 화내던 당시에는 그런 아이들이 또 걱정이 되어서
그랬던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이 책에 나오는 교사의 몇 유형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서연 사랑님이 한 번쯤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인터라겐 2005-07-1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이 바뀌는게 좋은것만은 아닌것 같아요.. 아이들 손으로 청소하는것도 나쁘지 않은데 왜 엄마들이 학교에 가서 청소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개인적으론요...
아이들이 같이 분단을 나눠 청소하면서 더 끈끈해 지고 그런거 아닐까요?

로드무비님이 쓰시는 글을 보다 보면 꼭 읽어야 할것들이 너무 많아져요..

딸기엄마 2005-07-1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인적으로 히데미 같은 아이 맘에 쏙 들어요~ 저도 꼭 읽어 볼게요~

로드무비 2005-07-1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우개님, 네.
지우개님, 히데미도 히데미지만 미혼모로도 당당한 엄마랑,
항상 누군가랑 연애중인 할아버지도 무지 마음에 들었답니다.^^

인터라겐님, 제 생각에 1학년은 아직 청소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고요.
그래도 매일 청소를 하려니 한달에 두세 번 순서가 다가오는데
하루 걸러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 책은 극적인 스토리 위주의 책은 아니고요,
살아가는 자세랄까 룰을 조용히 말해주는 듯해요.
한번 당신 인생의 주머니를 몽땅 까뒤집어 보시지! 하는 듯한......

urblue 2005-07-10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추천만. ^^

로드무비 2005-07-10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만 해주시면 블루님께 미련 없어요.ㅎㅎㅎ
--이렇게 말하면 삐지실 거죠?^^

날개 2005-07-10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학교는 요즘 고학년 애들의 자원봉사(울 효주도 신청했대요..^^)를 받아서 저학년 반 급식해주고 청소해줘요.. 엄마들은 1주일에 한번만 가고요.. 잘됐죠?^^

로드무비 2005-07-1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거 괜찮네요.
효주 칭찬해 주고 싶어요.^^

2005-07-10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7-10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제가 왜 웃을까요?

로드무비 2005-07-11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 물론 내 글이 재밌어서 웃겠지.^^
아니면, 허리 아프다는 대목에서 "살 좀 빼슈!"라는 말을 하고 싶었거나......

미완성 2005-07-11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제가 이 리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요!
아무튼 저도 추천만. 이뻐해주세요;;

로드무비 2005-07-1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 빨간 치마는?@,.@
멍든사과님, 그런데 왜 놀라셨을까?('')(..)

로드무비 2005-07-1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사과님, 추, 추, 추천한 거 마, 맞아요?
카운트가 어젯밤 그대론데?^^

비로그인 2005-07-11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 로드무비님, 카운트..그거 진짜 세고 계셨어요? 진짜죠? 캬..어쩜 저랑 일케 같으실까..이러니 제가 로드무비님을 좋아할 수 밖에..^^a

로드무비 2005-07-1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아니 추천수에 신경 안 쓰면 이 허무한 세상
뭐에 신경 쓰고 살겠습니까요.
저도 복돌이님이 너무너무 좋아요.
그, 그, 그런데 추천은요?ㅎㅎㅎ

2005-07-11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5-07-11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징검다리 같은 댓글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아무나 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미완성 2005-07-13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옛날 옛적에 미리 추천해뒀었다구요 흥흥흥;;
삐져서 빨간 치마는 저만 입을 거예요 -_-V

로드무비 2005-07-13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든사과님, 정말 훌륭하십니다.
전 꼭 제가 추천했다고 밝혀야 속이 시원하던데......
사실 모르는 이의 추천은 감미로워요.
저도 요즘 그런 추세로 나가고 있답니다.^^
니르바나님, 죄송합니다. 댓글을 늦게 봤어요.
제가 좀 부흥사 같은 면이 있어서요.
(추천과 댓글을 강요한달까! 헌금처럼.^^;;)

조선인 2005-07-1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와 별개로 입을 삐죽삐죽대고 있는 계집아이 몫으로 추천을 하지요. 히히

로드무비 2005-07-17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속에도 있는 계집아이인게죠?^^*
추천 감사.^^

조선인 2005-07-18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들켰네요. 우리 친구인 거 맞죠? 부비부비. 히히

로드무비 2005-07-18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비부비,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