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유리창에서 밤낮없이 반짝이던 성탄 풍선장식을 조금 전 떼냈다. 1월 3일이 지나면 떼야겠다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열흘을 훌쩍 넘긴 것이다. 어젯밤에도 아이와 먼저 자러 들어가면서 남편에게 풍선장식을 떼달라고 말했다. 컴퓨터 카드 게임에 코를 박고 있던 남편은 "알았어, 알았다구." 하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조금전 일어나 서재에서 30분만 놀고 일을 하기로 굳은 결심을 하고 들어와 가장 최근 올라온 마태우스님과 수선님의 글을 읽으며 키득키득 웃다가 댓글을 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떼놓았다. 커피 한잔을 타가지고 방에 들어가려는데 문득 눈에 띈 풍선 장식. 코드를 찾아 뽑고 의자를 놓고 올라가 못에 걸린 실을 빼니 간단하게 떨어졌다. "아니, 이 남자가 왜 이렇게 간단한 일을 안하는 거야!" 그것을 치우며 투덜거리다 보니 문득 깨달아지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로드무비, 니가 치우면 되잖아!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섬섬옥수 귀부인도 아니면서 나는 대부분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전부 남편에게 떠넘겼다. 생각해 보면 풍선장식 떼내는 정도의 간단한 일도 나는 미리 못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게을러서 또 두려워서 내가 엄두도 못 내고 미루었던  수많은 일들. 어쩌면 그 일들은 성탄장식을 떼내는 일처럼 간단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또 하나 깨달은 게 있다. 풍선 장식을 직접 떼내고 그 사실이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던 나는 그 오죽잖은 경험을 페이퍼로 하나 쓰려고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슬그머니 다시 기어들어왔다는 사실. 깨달음은 정말 도처에서 쓰리쿠션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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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3 0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05-01-13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쥑이는 제목에다, 근사한 내용임다. 쫌 있음 득도하시겠네요..^^

깍두기 2005-01-13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로드무비님. 알고 보니 아침형 인간이시네요. 새벽 세시에 일어나 '일'을 하신다니....

urblue 2005-01-13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깨달음이 사방에서 밀려와도 너무 많이 깨닫지는 마세요. 마냐님 말씀처럼, 그러다 득도라도 하시면, 재미없다구요. =3=3

날개 2005-01-13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가 할 줄 알아도 남편 시킵니다.. 오늘 안하면 다음날 다시 시키고, 다음날도 안하면 그 다음날... 끈질기게 할 때까지 시킵니다..흐흐흐~

좀 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소굼 2005-01-13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 줄 아시면 그걸로 된겁니다^^;; 나중에 혼자 있을 때 할 줄 몰라 버벅대는 것보다야 낫지요

숨은아이 2005-01-1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아침이 아니라 새, 새벽인데요.

하얀마녀 2005-01-13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주님!

하얀마녀 2005-01-1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보니 저도 책 주문하러 들어왔는데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지... -_-a

진주 2005-01-13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안 시켜 버릇하면 남편이 나중엔 집안일에 무능해지더라는........

"도 닦으며 적당히 시키세!"

icaru 2005-01-1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의 도처에서 깨달음을 발굴해 내시는 님~ ...

낯선바람 2005-01-13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님 서재에선 늘 재밌는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2005-01-13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1-1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이 안되어 시장 가는 길에 잠시 PC방에 왔습니다.

메일 확인할 게 있어서요.

호호, 이 페이퍼 반응이 좋네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요 고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요.^^

니르바나 2005-01-13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도 드디어 道의 세계로 드셨군요.

이런 걸 初見性이라고 하지요. ㅎㅎㅎ

파란여우 2005-01-13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리쿠션이라고 해서 당구야근가 했었죠...너무 단박에 대오각성하시는거 아녀요? 저도 함께 깨우칩시다!!^^

로드무비 2005-01-13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오랜만이에요.

저 도에 관심 많아요.

지금은 돈에 더 관심 많지만......^^

로드무비 2005-01-1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만세!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더군요.

자, 저와 함께 도의 세계로 떠나볼까요? 니르바나님 뒤를 따라......

니르바나 2005-01-13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그럼 빠져볼까요. 道의 세계로... 로드무비님, 파란여우님.

잠간 격조했던 일은 로드무비님따라하기 중이어서 그랬습니다.

2005-01-13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룸 2005-01-13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이) 저 쓰리쿠션 성공해본적 있어요!!! ^ㅂ^)/ 왕년에 당구 250이었답니다!!(그걸 자랑이랑고 하냐구요~ 그래도 저희 과에서는 여자 1등이었다구요!!! ^^;;;;;;;;;)

로드무비 2005-01-14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한 말씀 한 말씀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그런데 파란여우님은 대오각성 과(科)라는데요?

투풀니임, 전 당구장 딱 한번 가봤어요.

투풀님과 당구라 왠지 무척 어울립니다.

흑거미라는 프로당구 여성이 있는데 폼이 아주 멋지더라구요.

투풀님도 아마 그에 못지 않을 듯.ㅎㅎ

2005-01-14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1-14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