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학교에 간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젯밤에 쓴  효행일기를 책상 위에 두고 왔으니 좀 갖다 달라고.
(효행일기는 학교 주말 숙제다.)

온 가족이 낄낄대며 모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밤 열 시가 넘는다.
딸아이는 그때부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는데,
- 엄마 커피 타줄까?
- 허리 주물러 줄까?

수학공책도 아니고(수학공책에는 나, 뭐랄까, 외경심을 품고 있다)
효행일기라니 못 갖다준다고
신경질을 있는 대로 내고는 부랴부랴 얼굴을 씻었다.

독립심이든 뭐든 아이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모른척 할 일이지만 먼 장래는 나중 문제다.
그나저나 이렇게 살다보면 발등의 불만 끄다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걸으면서 딸아이의 효행일기를 펼쳐봤더니,
낯이 뜨거워진다.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갑자기 담이 올라말라 해서 등과 허리를 주물러 준 것이 전체의 절반.
심지어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엄마의 요청으로 흰머리를 뽑아주려고 했는데 흰머리가 너무 많아져 골치가 아파서
포기했다는 이야기.
갑자기 늘어난 엄마의 흰머리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뭐 이렇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어젯밤엔 궁리 끝에 딸아이와 상의, 메뉴를 달리 하기는 했다.
커피에서 보이차로.
얼마나 산뜻한가.

지난주엔 경상도 사투리를 조사해 오라는 학교 숙제가 있어
나의 전공이라며 오랜만에 실력을 발휘할 기회라고 쾌재를 불렀는데
딸아이는 뭐가 못 미더웠는지 도와주겠다는 나의 간청을 싸그리 무시했다.

'천지빼까리'도 있고 '입수구리'도 있고 뭐도 있고 뭐도 있고 신나서 주워섬기는데
냉정한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조사하겠다며.

효행일기 좋아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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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0-19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

로드무비 2009-10-19 21:52   좋아요 0 | URL
헤헤헤헤~

마노아 2009-10-19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웃자니 미안하지만 아니 웃을 수가 없군요.^^ㅎㅎㅎ

로드무비 2009-10-19 21:52   좋아요 0 | URL
웃어 주시니 저도 좋아서, 히히히.^^

에로이카 2009-10-19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랜만에 보는 로드무비님 페이퍼, 즐겁게 잘 봤습니다. ^^

로드무비 2009-10-19 21:51   좋아요 0 | URL
너무 이른 시간에 세수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분했는데
돌아오는 발걸음은 또 가뿐하더라고요.
오랜만에 페이퍼도 하나 쓰고, 정말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조선인 2009-10-1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 그나저나 '입수구리'보다는 '주듸'를 찾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로드무비 2009-10-19 21:50   좋아요 0 | URL
조선인 님, 그럴지도 모르지요.^^



바람돌이 2009-10-19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만나는 로드무비님 글이랑 주하 소식이 이렇게 반가울데가.... ^^
아이들이 이렇게 독립을 해나가는군요. 엄마를 슬프게 하면서... 예전에 로드무비님 페이퍼보고 우리 애들은 언제쯤 이렇게 예쁜 짓을 하나 싶었는데 요즘 그러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엄마말을 무시할때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겠죠? ㅎㅎ

로드무비 2009-10-19 21:48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 페이퍼 제목을 '악행일기'로 잡으려다 참았습니다.
주하 처녀 태가 납니다.
좋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합니다.^^
바람돌이 님의 두 자매는 애교가 여전하죠?
그때가 제일 좋은 땝니다.
곧 끝나겠지만.=3=3=3

치니 2009-10-19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주하 최고! 당하는 로드무비님이 하나도 안 불쌍해요.
너무 멋진 처녀로 자랄 거 같은 예감이 들어서.

로드무비 2009-10-19 21:46   좋아요 0 | URL
에잉? 제가 언제 당했습니까!^^
치니 님, 저 좀 불쌍히 여겨주시라요.^^



릴케 현상 2009-10-1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 정말 재밌네요

로드무비 2009-10-19 21:42   좋아요 0 | URL
저의 유머 감각은 녹슬지 않았죠?=3=3
(이런 말만 안하면 평균은 된다는 말을 듣는디.^^)

2009-10-19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9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9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애들은 효행을 너무 행동에서만 찾으려 한다니까요. 마음은 싸그리 무시하고..^^(우리아이만 해당될수도..)

로드무비 2009-10-19 21:39   좋아요 0 | URL
정 님, 마음은 언감생심, 행동이라도 제대로 된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얀마녀 2009-10-1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재미있네요.

로드무비 2009-10-19 22:05   좋아요 0 | URL
헤헤, 고마워유.^^

twoshot 2009-10-19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참으로 즐거운 페이퍼였습니다.^^

로드무비 2009-10-19 22:13   좋아요 0 | URL
간만에 저도.^^

2009-10-20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0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9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1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