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학교에 간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젯밤에 쓴 효행일기를 책상 위에 두고 왔으니 좀 갖다 달라고.
(효행일기는 학교 주말 숙제다.)
온 가족이 낄낄대며 모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밤 열 시가 넘는다.
딸아이는 그때부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는데,
- 엄마 커피 타줄까?
- 허리 주물러 줄까?
수학공책도 아니고(수학공책에는 나, 뭐랄까, 외경심을 품고 있다)
효행일기라니 못 갖다준다고
신경질을 있는 대로 내고는 부랴부랴 얼굴을 씻었다.
독립심이든 뭐든 아이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모른척 할 일이지만 먼 장래는 나중 문제다.
그나저나 이렇게 살다보면 발등의 불만 끄다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걸으면서 딸아이의 효행일기를 펼쳐봤더니,
낯이 뜨거워진다.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갑자기 담이 올라말라 해서 등과 허리를 주물러 준 것이 전체의 절반.
심지어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엄마의 요청으로 흰머리를 뽑아주려고 했는데 흰머리가 너무 많아져 골치가 아파서
포기했다는 이야기.
갑자기 늘어난 엄마의 흰머리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뭐 이렇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어젯밤엔 궁리 끝에 딸아이와 상의, 메뉴를 달리 하기는 했다.
커피에서 보이차로.
얼마나 산뜻한가.
지난주엔 경상도 사투리를 조사해 오라는 학교 숙제가 있어
나의 전공이라며 오랜만에 실력을 발휘할 기회라고 쾌재를 불렀는데
딸아이는 또 뭐가 못 미더웠는지 도와주겠다는 나의 간청을 싸그리 무시했다.
'천지빼까리'도 있고 '입수구리'도 있고 뭐도 있고 뭐도 있고 신나서 주워섬기는데
냉정한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조사하겠다며.
효행일기 좋아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