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전 한 포털에서 '훔친 양복 너무 커서 백화점서 바꾸려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읽었다.
울산에 거주하는 35세 모 씨가 원룸에 들어가 한 벌 180만 원 상당의 고급 브랜드 양복 두 벌과
골프채(도합 960만 원)를 훔쳤는데, 훔친 양복이 너무 커서 부산의 모 백화점 매장에 들러
수선을 맡겼다가 도난품임을 알게 된 백화점측의 신고로 덜미가 잡혀 구속되었다는 것.
자기 딴에는 머리를 써서 양복을 훔친 지역을 멀리(!) 벗어나 부산까지 갔는지도 모른다.
그 고급양복은 부직포 케이스에 잘 보관된 채로 그의 고물차 뒷좌석에 걸려 있었을 것이다.
평소 연예인이나 연예계 소식에 유독 관심이 많은 나같은 사람의 경우
우연히 거리나 마트의 주차장에서 정장을 옷걸이에 걸어 뒷좌석 창문 가에
대롱대롱 매달고 있는 차를 보면 혹시라도 막 공연을 떠나는 연예인이 탄 차가 아닌가 하여
유심히 차창 안을 들여다 보게 된다.
어쩌면 그 도둑은 '울산 - 부산' 간 고속도로를 달리며 며칠 후면 자신의 것이 온전히 될 고급양복을
백미러로 훔쳐보며 휘파람이라도 불었는지 모른다.
트로트 가수 박상철이라도 된양 기분을 내며 '자옥아' 라는 노래를 흥얼거렸을지도.
양복과 골프채를 도난당한 울산의 40대 원룸 주인은 자신의 집이 털린 사실을 알고
자신이 양복을 샀던 백화점의 매장에 즉각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점원으로 하여금 양복의 종류와 치수까지 꼼꼼히 기록하게 했다.
허름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손님들이 매장을 맴돌며 혹여라도 고가의 상품을 슬쩍 만지기라도 하면
잽싸게 달려와 그 양복의 가격을 통보함으로써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떼게 하고
그 표정을 은밀히 즐겼던 매장의 거만한 점원과 점장은 전화를 받자마자
그 사실을 전국의 백화점에 알렸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그 브랜드의 모든 매장에 있는 컴퓨러 단말기에는
180만 원짜리 양복을 원 주인에게 찾아준다는 사명에 의거해서라기보다는
훔친 도둑이 그 브랜드의 양복을 입게 할 수는 없다는 사측과 점원들의 대동단결로
도난당한 양복의 정보가 빠짐 없이 입력되었다.
그리하여 이왕 훔친 고가의 양복이니만큼 자신의 몸에 맞게 고쳐서 입어보겠다는
도둑의 야무진 계획은 무산되었다.
도난당한 양복을 찾았다는 전화를 받고 울산 원룸의 그 주인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멍청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그 도둑의 낯짝도 슬며시 궁금해지니,
에라이 이 화상아, 별게 다 궁금하다.(혼잣말)
이 세상은, 특히 우리 사회는 이것저것 허술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데,
어떤 건 깜짝 놀랄 정도로 확고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철옹성으로 느껴질 정도로 견고하다.
부자들의 집 담벼락과 대문은 어찌어찌 뚫었는데 결과적으로 도둑이 뚫지 못한 옷장처럼.
4월 들어 알라딘에서 준 4000원짜리 영화 예매 할인권을 오랜만에 사용해 보겠노라
한 시간여 컴 앞에서 낑낑거리다 결국 실패하고 이 기사를 읽었다.
예약실패 영화의 제목처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이 아니고,
혐오스런 도둑과 로드무비의 무능한 일상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