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 - 사과
박솔뫼 외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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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읽기도 전에 기대하는 게 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 대상작인 박솔뫼의 「사과」가 그랬다. 정확하게는 기대가 아니라 떠오르는 소설이 있었다. 박솔뫼의 「사과」란 제목과 흩어지는(이별하는) 과정을 담았다는 소개에서 나는 은희경의 단편 「내가 살았던 집」속 문장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사과 역시 자기들끼리 닿아 있는 부분에서부터 썩기 시작한다는 걸 알았다. 가까이 닿을수록 더욱 많은 욕망이 생기고 결국 속으로 썩어 문드러지는 모양이 사람의 집착과 비슷했다. 갈색으로 썩은 부분을 도려냈지만 살이 깊게 팬 사과들은 제 모양이 아니었다. (「내가 살았던 집」 중에서)


하지만 박솔뫼의 「사과」는 결이 달랐다. 뭐랄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채 다투지 않고 헤어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붙잡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박솔뫼의 소설이 예의 그랬듯이 산책하듯, 걷고 이동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담은 듯했다. 「사과」의 주인공 ‘애리’도 다르지 않았다. 사원 숙소를 제공하는 회사에 다니는 애리는 주 4일일하고 주말엔 카페에 나간다. 애리는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카페의 손님이자 커피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커피의 맛을 구현하는 일을 하는 ‘선호’를 만난다. 애리와 선호는 가까워지며 선호의 집에서 주말을 보내기도 한다.


선호가 출장을 가면서 애리는 선호의 집에 머물며 선호의 화분을 돌본다. 보통의 연인이라면, 아니 소설에서 그런 관계를 다룬다면 떨어져 있는 게 힘들어 보일 텐데 둘 사이에는 그런 게 없다. 애리는 선호가 출장에서 돌아오면 둘 사이가 멀어질 거라는 걸 아는 듯하다. 특별한 사건 없이 말이다. 이상한 건 시간이 흐른 뒤에 둘은 여전히 카페 직원과 손님 사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모든 게 예정되었는지도 모른다. 커피 본연의 맛이 사라진 세계에서 커피를 파는 카페 직원 애리와 다르게 아버지를 통해 그것을 아는 선호, 회사 숙소에서 출퇴근하는 애리와 부모님이 남겨준 바닷가 근처에 건물을 세놓은 선호. 선호는 애리를 흙이 묻은 감자를 굳이 씹어 먹는 사람이라고 느꼈고 애리는 자신이 먹던 건 사과라고 보여줄 수 있었지만 변호하지 않았다. 어떤 만남은, 어떤 연애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서서히 이별이 이어지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사과」는 연인 사이의 이별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존재라는 인식과 삶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게 놔두는 삶의 순간에 대한 포착이라고 할까.


박솔뫼의 「사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설정은 ‘잠’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애리는 잠이었고 선호는 꿈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장소를 잠이라고 구현할 수 있는 이는 오직 박솔뫼뿐이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내가 언제든 갈 수 있는 공간, 잠.


애리는 잠이라는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잠이라는 장소가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여긴다. 어느 곳에서 살든지 나에게 잠이라는 곳이 있고 나는 잠을 잘 때 그곳에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 「사과」, 14쪽)


잠과 꿈은 서로 다른 존재로, 잠은 자신에게 주어진 장소이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꿈은 애리가 가끔 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애리는 잠을 자지 않을 때도 가끔 꿈을 꿀 수 있었다. ( 「사과」, 22쪽)





자선작 「비둘기 옮기기」도 흥미롭다. 여러 나라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지금 읽는 것을 다른 것으로 옮기고 싶다는 열망에 지닌 화자의 이야기.‘도쿄’와 ‘나카타’를 거닐며 마주한 풍경과 사유. 그것은 박솔뫼 본연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비둘기와 고양이는 같을 수 있을까. 아니면 얼마나 다를까. 서로 다른 존재를 옮기는 일, 서로 다른 존재를 옮기는 것과 말하는 것. 그것은 이해하고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사과」와 「비둘기 옮기기」는 박솔뫼의 매력에 빠지기 충분한 단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읽었다는 말은 아니다. 박솔뫼의 소설은 풍경, 산책, 걷기, 이동과 같은 분위기로 남았다.


비둘기를 고양이로 옮길 수는 없었지만 그 순간 비둘기는 이전처럼 보이지 않기는 했고 비둘기는 날아가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비둘기를 이전과 같이 보지 않고 아주 조금 고양이처럼 보게 되었다. (「비둘기 옮기기」, 54쪽)


5편의 우수작품상도 나쁘지 않았다. 성혜령의 「하악」은 화자 ‘자인’이 보낸 마흔 번째 생일 이야기다. 엄마와 함께 장애시설에 거주하는 여동생 ‘태인’을 보러 가고 나머지 시간은 사촌 동생인 ‘서린’을 만나는 하루를 담았다. 장애를 가진 태인, 완벽한 외모를 가진 서린, 그 사이에 자인.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대비하면서 우리 사회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자기들은 정상이고 너희들은 비정상이라며 분명하게 선을 긋는 사람들. 이제 자인은 분노하지 않는다. 구분하는 게 편리하다는 걸 자인도 아니까. 실은 자인도 이 시설과 마을로부터 분리되고 싶으니까. (「하악」, 100~101쪽)


정희원의 「영주」는 학교 폭력 피해자인 ‘영주’가 가해자이자 방관자였고 현재 작가가 된 화자 ‘우진’을 느닷없이 찾아와 자신의 죽음을 지켜봐 달라고 말하는 이야기다. 우진에게 영주의 등장은 잊고 살았을지 모르는 과거가 불쑥 나타나 자신을 옥죄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우진은 그런 영주를 피하지 않고 만나고 영주가 원하는 곳으로 운전을 한다. 과거의 죄의식 때문일까.


반려견 ‘조아’의 유골함을 어디에 안치할까 고민하다 가족묘에 안장하기로 한 임솔아의 「나의 빈 묘에」, 우연히 발견한 벽에 박힌 쇠갈고리로 자신의 거죽을 벗긴다는 기이한 설정의 정기현의 「그거 점 된다」, 사고로 인해 두 다리가 마비된 ‘세진’의 재택근무 일상과 제목 그대로 일일업무를 보고하는 하루를 담은 황시운의 「일일업무 보고서」까지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우리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문학이라는 허구의 세계로 치부할 수 없는 현실의 단면을 말한다. 사느라고 바빠서 놓치고 있던,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기는 삶과 고스란히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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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를 좋아한다.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그가 경북 김천 출신이라는 걸 알고는 대학 동기 하나가 그와 같은 출신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 동기의 이름은 유명 정치인과 같아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연락이 닿았다면 나는 김연수 작가에 대해 물어봤을 것이다. 김천이 뉴욕제과점에 대해서도. 어제 <책빵 뉴욕제과점>이란 곳에서 보낸 책을 받았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였다. 작가의 사인본, 그러니까 나만을 위한 사인본이다. 내가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는 걸 아는 다정한 동생이 보낸 선물이다.


<책빵 뉴욕제과점>이란 이름이 왠지 익숙해서 검색하니 독립서점이었다. 짐작하는 바로 그곳. 김연수 작가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그 빵집이 독립서점이 된 것이다. 작가의 누나가 운영하신다고 한다. 아마 동생의 선물이 아니면 나는 몰랐을 곳이다. 내가 독립서점을 방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까운 곳에 독립서점도 없거니와 온라인 서점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가 사인본의 경우 거의 같은 경로로 내게 도착했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니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과 『소설가의 산책』이란 비매품 도서에도 있었다. 날짜는 2014년 11월 15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기억하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 우리는 만난 적이 없고 단 한 번의 통화가 전부였다. 우리는 이어준 건 책이었고 그 가운데 김연수 작가가 있었다.


한 번씩 소장하고 있는 책을 정리한다. 읽지 않을 책, 읽게 될까 생각하지만 그대로 미루는 책, 누렇게 바랜 책을 이제는 과감히 정리하는 편이다. 시집은 남겨야지 했던 마음도 차츰 시들어져서 시집도 정리를 한다. 정리하는 과정에 읽으면서 분류를 다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현재 나에게 책은 가까운 사이면서도 정리할 사이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러니 김연수 작가의 책도 모두 소장한 건 아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애정은 줄어들지 않고 희미해지지도 않는다. 읽지 않은 책도 여전하다.





처음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었던 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내가 쓴 글을 검색하니 나는 그의 소설에서 큰 위로를 받은 것 같다. 내가 기억하고 싶었던 문장을 다시 읽어보는데 최근에 그가 쓴 소설에서 받은 느낌과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다니. 놀라웠다. 누군가는 한 작가의 글이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건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2007년의 글이었다. 다시 이 소설을 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장은 오래 기억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드』 중에서)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중에서)




이 가을, 김연수 작가의 신잡 소설집이 나와서 참 기쁘다. 내가 아는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주변에는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아주 많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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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6-10-0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 뉴욕제과점이 독립서점이 된 거군요. 친필 사인본이라니, 우와....자목련님과 함께 김연수를 좋아하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 기뻐요. ^^;;

자목련 2026-10-08 11:58   좋아요 0 | URL
김연수의 소설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반가울 독립서점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블랑카 님과 김연수 작가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아요. 많이 많이요!
 
드립백 에티오피아 G1 시다모 보나 - 12g, 5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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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커피는 계속 마시고 싶다. 이번 드립백에는 추가 스탬프까지 있으니 구매해야지!! 땡스투는 사촌동생에게 책과 커피를 선물하는 멋진 언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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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10-08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름을 사랑하는 그 언니인가요?! ㅋㅋㅋ

자목련 2026-10-10 09:40   좋아요 0 | URL
네, 바로 그 언니입니다!

다락방 2026-10-1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바로 그 언니입니다! 저도 여기에 땡투하러 왔어요 ㅋㅋㅋㅋㅋ
 


연휴가 있어 기다렸던 책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책을 사는 일은 일상이 되었지만 사고 싶은 책을 바로 사는 일은 일상의 큰 즐거움이다. 사고 싶은 책을 바로 사는 게 무슨 대단한 즐거움이나 싶겠지만 사고 싶을 때 사지 못하고 나중에 사게 되면 당시의 기쁨이 조금 사그라든 기분이다. 사고 싶을 때 사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책이 도착했을 때 책을 바로 받아보지 못할 사정도 있고 예약판매일 때도 그렇다. 예약판매는 바로 책을 받아볼 수 없다. 그러니 사고 싶을 때 바로 책을 받아볼 수 없다. 좀 엉뚱한 말인가. 아무튼 그렇다.


기다리던 책은 김연수의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였다. 사고 싶을 때 바로 샀지만 바로 도착하지 않은 책이다. 그리고 이서수의 『우리 착한 나진』은 제목에서 뭔가 알 것 같은 내용이다. 아직 읽기 전이다. 윤단과 최미래의 단편이 더 읽고 싶어서 『소설보다 가을 2026』와 10월엔 시의적절 시리즈도 구매했다. 신용목 시인의 『포도』다. 책을 감싸는 보랏빛이 좋다.





포도를 생각하면 여름이 자동으로 따라오는데 10월의 포도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좋아서 더 좋을 것 같은 김연수의 소설집, 이번에 읽으면 더 좋아할 것 같은 이서수와 윤단, 최미래. 그리고 신용목 시인은 가지고 있는 시집이 있지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번에 산문집을 읽으면 무언가 겹쳐지는 게 있을 것 같다.


책이 있지만 자꾸 책을 산다. 아침에 읽을 책, 점심에 읽을 책, 저녁에 읽을 책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읽는 날보다 읽지 않는 날이 많지만 책을 생각한다. 쓰는 날보다 쓰지 않는 날이 많지만 쓰고 싶은 마음을 꽉 잡고 있다. 사실 그건 읽기에 대한 마음이 더 그렇다. 그렇게 읽지는 않지만. 꽉 잡은 손, 꽉 잡은 마음, 꽉 잡은 가을. 손이 아플 정도로 꽉 잡고 있어도 좋을 그런 것들. 꽉 잡은 마음을 생각하고 필요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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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6-10-07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혹시 김연수 작가 메이킹북 부록도 주문하셨나요? 인터뷰 내용이 참 좋더라고요. <포도> 책 너무 이뻐요. 저 시리즈 참 좋아하는데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눈부신 가을날입니다.

자목련 2026-10-08 11:37   좋아요 0 | URL
이 소설집은 제가 주문한 것과 선물로 받기도 했어요. 선물로 받은 책에 부록이 있었어요. 말씀처럼 정말 좋더라고요. 다음에는 메이킹북이 있으면 잊지 말고 함께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포도> 표지 정말 예쁘죠? 블랑카 님도 즐겁게 만나시길 바라요. 짧아서 더 특별하고 아름다운 가을이에요!

다락방 2026-10-0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자목련님 덕에 이서수 작가 책 어제 처음 잀었는데 좋더라고요. 더 읽어봐야지 싶은데 언급하신 책 제목 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어쩐지 짐작이 되면서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자목련 2026-10-08 11:40   좋아요 0 | URL
제 덕분이라니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ㅎㅎ
이서수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단편, 장편 다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요.『헬프 미 시스터』도 좋았고요!
 
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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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이었다. 저자와 비슷하게 가까운 이의 입원과 퇴원의 반복을 지켜봤던 기억이 떠올라 읽기가 힘들기도 했다. 저자의 마음과 고통에 대해서는 전부 알 수 없지만 읽기의 위로와 의미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고 나를 위로한 책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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