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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희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8
조해진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5월
평점 :
나로 살아간다. 나의 안위와 행복이 우선이다. 나의 상처에만 매몰되어 주변을 둘러볼 여력이 없다. 그러다 움찔한다. 나를 둘러싼 우리를 만난 때, 내가 여기 존재할 수 있는 근원과 마주했을 때 말이다. 누군가 역사의 한 조각이라 말하고 누군가 나로 이어져, 나와 연결된 단단한 뿌리라 말한다. 나의 조부모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의 젊음을 모르고 부모의 시간을 모르는데 말이다.
조해진의 『우리 세희』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끊임없이 타인을 향한 연민과 이해를 놓지 않으려는 작가임을 알았지만 이번에는 그 무게가 달랐다. 어쩌면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몰라도 상관없다. 그저 소설로만 읽어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맞닿는다. 한 사람의 생이 이처럼 참담할 수 있을까. 역사라는 거대한 운명 앞에 한 개인의 삶은 무참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가. 끝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이었던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자 기쁨이었다.
소설은 업무를 위해 런던에 도착한 연주가 선생님이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선생님은 연주의 죽은 엄마 오세희와 연결된 분으로 연주 자신과도 이어진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엄마와 같은 세계와 속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엄마가 한국에 오기 전 살았던 그곳, '자이니치'로서 재일한인들이 살았던 대학시절 선생님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던 선배이자 친구로 지낸 선생님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 선생님은 일본에서 나오 자랐고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자이니치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냉대를 받았다. 선생님과 센세를 만날 때마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로 연주는 이제껏 생각하지 않았고 몰랐던 시절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이 떠나면 일본의 양로원에 계시는 치매를 앓는 외할머니를 제외하면 엄마 세희를 기억할 사람은 선생님의 아내 센세뿐이다.
연주가 런던에 온 이유는 일본계 영국인 예술가 ‘제이비 류’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그가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자품을 전시했기 때문이다. 소설은 연주가 런던에 머무는 3일 동안 선생님의 죽음과 동시에 연주 엄마 세희의 삶을 들여다본다. 현재 런던에서 연주가 느끼는 이방인을 향한 차별과 세희가 서울에서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타인의 시선, 선생님과 엄마의 부모가 살아온 오사카의 삶을 교차하며 들려준다.
'자이니치'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다시 일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서글프고 고단한 삶에 대해서. 단 3일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연주는 모멸감을 느끼고 치욕스러웠는데 엄마 세희와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땠을까. 1942년 원산에서 오사카 항만공사 인부로 강제 징용된 세희의 부모,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살아야 했던 시간. 그럼에도 세희는 단 한 번도 일본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일본에서는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왔다는 이유로 조롱거리가 되었다. 세희는 평생 한국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내력이 죄가 되고 죄는 죄책감으로 수렴되는 삶이었다. (47쪽)

한국 어디에도 기댈 수 없던 세희가 자신을 아는 선생님과 재회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어린 연주는 그런 엄마를 지켜보며 세희가 선생님과 센세를 만났을 때 보였던 모습을 지울 수 없다. 연주가 런던에서 단 3일 동안 머무는 동안에 받았던 이방인으로의 시간을 세희와 선생님, 그리고 그들의 부모는 평생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그건 그들이 원한 것도 아니었고 잘못도 아니었다. 역사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견디며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그랬기에 세희의 오빠는 세희가 원하는 삶을 살게 해주기 위해 북으로 떠난 것이다. 동생은 자신과 달라야 하니까. 그러나 그렇게 북으로 떠난 오빠의 죽음은 세희를 가장 힘들게 했다. 그러나 세희도 알고 있었다. 오빠의 죽음은 개인이 아니라 역사와 국가의 문제라는걸. 개인을 지켜줘야 할 국가가 부재했다는 것을. 그것은 ‘제이비 류’의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그의 할아버지가 고향 제주에서 겪었던 무자비한 폭행도 역사와 국가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라는 것. 살아남기 위해 그곳을 떠나야 했던 심경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거대한 슬픔을 현재를 살아가는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세희와 선생님이 서로에게 회복의 존재라는 사실을 생각할 뿐이다. 거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은 연주가 다시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간직하려 한다는 것을. 세희라는 이름 속에 담긴 그들의 사랑과 기쁨, 그리고 소망을 말이다. 기억이 흐려져 손녀인 연주를 세희라 부르는 외할머니의 목소리마저도 소중하다.
‘세’ 뒤에 ‘희喜’를 넣어 ‘세희世喜’를 완성한 사람은 외할아버지였다. 세이지 sage의 꽃말은 ‘구원’. 그러니까 ‘세희’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스스로를 구원하면서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히로코가 그저 몸에 맞는 옷이라면 세희는 보호막 같은 옷에 가까웠다고 엄마는 말했다.
세희야,라고 불리면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고도. (95~56쪽)
우리는 때로 아프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역사를 지나간 과거로 여긴다. 현재가 아닌 과거니까. 돌이킬 수 없고 바꿀 수 없다고 쉽고 안일하게 생각한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책을 통해, 수업을 통해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만 알았다. 나는 모어를 잃은 적이 없고, 전쟁을 경험한 적도 없고 단 한 번도 이방인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여기 나로 존재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으니까. 역사의 고통은 온전히 회복될 수 없고 치유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몰랐다. 그 불가능한 상처를 잊어버린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그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고스란히 내 몸 안에 새겨져 있다. 숨이 멎는 날까지 내 피와 뼈에 저장된 그들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분실되지 않으리라. (116쪽)
그러니 나는 이제 기억하려 한다. 보호막 같은 옷을 입은 세희의 마음을, 감히 우리 세희라 불러본다. 조해진의 소설을 통해 연주처럼 내 몸에 새겨둔다. 언제 어디서든 모어를 말하고,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삶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내가 여기 존재할 수 있는 근원에 대한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한다. 간직하고 기억하여 잊지 않겠다고, 나와 우리는 그들과 이어져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