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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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둠에 익숙해지면 빛의 소중함을 잊는다. 어둠이 전부였던 걸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그 어둠을 걷어낼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 희미한 빛이 시작일 것이다. 꺼질 듯 희미한 빛, 설사 꺼졌다 하더라도 빛이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면 충분하다. 빛을 기억해 낼 수 있으니까. 김호연의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그런 빛 같은 소설이다. 밝고 환한 온기를 전하는 작은 빛 말이다. 거기 빛이 있으니 어둠은 사라지고 빛을 향해 나갈 수 있다. 엉뚱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다.


소설은 제목처럼 편의점을 배경으로 그곳의 사람들 이야기다. 편의점 사장, 편의점 알바, 편의점 손님이 모두 주인공이며 화자가 되어 그들의 사연을 들려준다. 청파동 골목의 작은 편의점 ‘ALWAYS’에서 벌어지는 크리마스의 기적 같은 이야기라고 할까.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던 ‘독고’ 씨는 사장 염 여사의 지갑을 찾아준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술에 찌든 그에게 염 여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게 해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아르바이트생 시현은 사장의 지시가 맘에 들지 않지만 매일 저녁 8시에 찾아오는 독고를 상대한다. 이상한 건 독고가 조금 늦으면 걱정되고 신경이 쓰인다. 도시락을 먹고 주변 청소를 해준 탓일까. 그런 독고가 야간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는 습득력이 빨랐다. 물건 파악도 잘 하고 한 번 알려주면 모두 잘 따라 했다. 시현은 점점 그가 궁금하다. 그건 독자인 나도 마찬가지다. 뭔가 대단한 과거가 있을 것 같은 호기심.


소설은 이처럼 독고란 인물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편의점을 중심으로 이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자칭 ‘아싸’인 시현에게 편의점은 자신만의 시간을 위한 공간이다. 오전 알바를 하는 50대 선숙은 대기업을 그만두고 영화감독 교육을 받다가 백수로 전전하며 게임만 하는 아들이 걱정이다. 가장 역할을 하는 엄마의 마음도 모르는 아들 때문에 화가 날 지경이다. 거기다 이상한 알바 독고까지. 그런데 동네 할머니를 도와주고 물건을 배달하는 그의 행동이나 속상할 때 마시라고 내미는 ‘옥수수수염차’가 선숙을 기분 좋게 만든다. 이상하게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아들에 대한 말들을 털어놓는다. 가만히 듣고 있던 독고가 말한다.


들어주면 풀려요. (108쪽)


책을 읽던 나는 순간 울컥한다. 들어주면 풀린다는 말이 나에게 건네는 말 같았다. 대화 자체가 사라진 가족의 일부에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들킨 것 같았다. 정말 독고는 어떤 사람일까. 쌍둥이 딸을 둔 가장이자 영업을 하는 40대 경만에게도 그는 옥수수수염차를 권한다. 집에 가기 전 혼술의 자유를 느끼는 경만은 그가 사장질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편의점에 오는 쌍둥이 딸들이 하는 말들을 전해주고 술을 끊을 수 있다고 독려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편의점 손님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그들이 원하는 걸 주려고 노력했다. 새벽마다 찾아오는 극작가 인경에게도 그랬다. 인경이 찾는 도시락을 챙겨주는 그가 불편했지만 손님을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궁금해졌다. 독고와 편의점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하다 그녀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수 있었다. 정말 묘한 편의점이다.


작가는 편의점의 일상을 섬세하게 묘사해 독자를 그곳으로 이끈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과 함께 도시락과 옥수수수염차를 먹고 만 원에 네 캔인 맥주를 계산대에 놓고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나와 우리였다는 걸 인정한다.


누구나 한 번쯤 실패하고 좌절하고 절망한다. 어디 한 번뿐일까. 수없이 많은 실패에 넘어지고 일어나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 내민 손, 건네는 말 한마디가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된다. 어쩌면 식상하고 긍정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이 벼랑 끝에 서 있는 이들에게는 절실하다.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지난가을과 겨울을 보낸 ALWAYS 편의점에서, 아니 그전 몇 해를 보내야 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 그들을 보며 혼잣말하며 서성였고 괴로워했으며, 간신히 무언가를 깨우친 것이다. (252~253쪽)


독고에게 염 사장이 그랬고 편의점을 찾는 이들에게 독고가 그랬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순간, 온통 어둠뿐이라 여기는 순간에 우리가 기댈 곳은 아마도 소설 속 ALWAYS 편의점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항상 환한 빛을 밝히는 그곳. 소설이 아닌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그런 곳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무람없이 가서 말을 건네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당신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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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12-17 09: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도서관에 대기가 너무 많아 빌릴 수가 없더라구요.
구입해서 아이랑 같이 읽어볼까 합니다.

들어주면 풀려요...저도 울컥🥲

자목련 2021-12-18 12:18   좋아요 0 | URL
아이랑 읽어도 좋을 소설이에요.
들어주는 게 왜 이리 어려울까요, ㅎ
쿨캣 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희선 2021-12-18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편의점 불빛이 따스한 곳도 있겠지요 편의점도 사람이 오고가는 곳이니 정이 오고가기도 하겠습니다 사람하고 잘 지내지 못해도 사람은 다른 사람과 이어져 있기도 하네요 그걸 잊지 않아야 할 텐데...


희선

자목련 2021-12-18 12:19   좋아요 1 | URL
누군가에는 편의점이 그러할 테고 누군가에게는 다른 어딘가가 그러하겠지 싶어요.
희선 님, 날씨가 차네요. 건강하고 포근한 오후 이어가세요^^

2021-12-19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0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0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소설을 좋아한다. 오랜만에 올해 내가 읽은 소설을 돌아보고 몇 권을 생각한다. 거의 십 년 만이다. 한국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많이 읽지는 못했고 읽었지만 리뷰를 쓰지 못한 책도 많다. 어떤 책은 기대보다 살짝 아쉬워서, 어떤 책은 너무 좋아서 그 기대를 더 잘 표현하고 싶어서 미루고 미룬다. 내 맘대로 정하는 2021 한국소설은 올해 출판된 소설에 한한다.


이런 시간이 좋은 건 내가 쓴 리뷰를 훑어보면서 책과 다시 만나는 일이다. 사실 책이라는 게 읽고 나서는 줄거리가 날아가 버리거나 주인공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 나만 그런가. 점점 한국소설을 읽는 독자가 줄어든다고 한다. 한국소설이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엄지의 『겨울장면』은 지금 이때 읽어도 좋다. 얼음, 겨울, 차가운 공기, 쓸쓸함이 가득하다. 익명의 주인공들의 여정, 죽음, 그 모든 모호함에 빠지는 소설이다. 눈이 내리는 저수지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 상념의 시간에서 무엇을 찾으려 하는지 나는 끝내 알지 못했다. 조남주의 첫 단편집 『우리가 쓴 것』도 좋았다. 동시대의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의 삶은 우리의 것이었기에. 소설을 읽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고 위안을 주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내 주변의 친구, 가족, 그리고 알지못하는 모든 여성을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조해진의 단편집 『환한 숨』과 편혜영의 단편집 『어쩌면 스무 번』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외로운 사람들, 혼자 고독한 이들의 풍경이다. 그들의 모습에 내가 있고 우리가 있어 더욱 공감하면서도 속상한 마음도 감출 수 없었다. 단편처럼 곱고 아름다운 최은영의 『밝은 밤』은 먹먹하면서도 따뜻했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넣어두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빛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밝은 밤』중에서)











장르 소설에 대한 흥미와 기대를 안겨준 이선영의 『지문』과 케이시의 『네 번의 노트』는 영화나 드라마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거상 수상으로 영향력이 더 커진 윤고은의 『도서관 런웨이』도 인상적이다. 윤고은의 놀라운 상상력은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결혼보험이라니. 가까운 시일에 그런 보험 광고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목록을 작성하면서 알게 된 사실, 모두 여성작가다. 여성이라서 그들의 삶에 내밀하게 파고드는 힘이 있다고 느낀다. ‘젊은작가상’이나 ‘소설 보다 시리즈’도 좋았다. 새로운 작가, 새로운 소설을 읽은 일은 즐겁다. 아직 리뷰를 쓰지 못했지만 올해의 소설로 꼽는 소설은 최은미 단편집 『눈으로 만든 사람』와 한강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소설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리뷰를 꼭 쓰고 싶다. 


살구꽃이 피면 톡 하겠대.  (최은미 소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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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16 10: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페이퍼를 쓰면서 돌아보는것도 정말 좋은거 같아요~!!
<겨울장면>과 <눈으로 만든 사람>은 읽어보고 싶네요 ^^

자목련 2021-12-17 09:31   좋아요 2 | URL
매달의 읽기를 정리해도 좋은데, 그게 잘...
말씀하신 두 권 다 괜찮았어요. 새파랑 님도 즐겁게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scott 2021-12-16 15: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2021년 서재의 달인 추카 합니다 ^ㅅ^

자목련 2021-12-17 09:31   좋아요 1 | URL
스콧 님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려요^^
좋은 하루 시작하세요~

쎄인트 2021-12-16 16: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021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12-17 09:32   좋아요 0 | URL
감사드리며 셰인트 님도 축하드립니다.
건강하고 활기찬 하루 이어가세요^^

mini74 2021-12-16 16: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서관런웨이가 눈에 딱. ㅎㅎ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1-12-17 09:33   좋아요 1 | URL
제목 때문에 더 끌렸던 것 같아요. ㅎ
미니 님도 축하드려요. 환한 하루 이어가세요^^

얄라알라 2021-12-16 1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낮에 이 글 읽으러 들어왔는데 두 번째네요^^ 축하드리러 왔어요 이번에는

자목련 2021-12-17 09:34   좋아요 0 | URL
두 번씩이나 들려주시다니요. 감사합니다.
얄라 님, 저도 축하드려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12-16 17: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과 좋은 하루 되세요.^^

자목련 2021-12-17 09:3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달인,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새파랑 2021-12-16 18: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의 왕 자목련님 달인선정되신거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1-12-17 09:35   좋아요 1 | URL
페이퍼의 왕을 향해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ㅎ
저도 축하드립니다. 맑은 하루 이어가세요^^

책읽는나무 2021-12-16 2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쓴 것>,<밝은 밤> 두 권 읽었네요^^
<눈으로 만든 사람>은 읽으려다 못 읽었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사다 놓고 안 읽었고...
<런웨이도>랑 <환한 숨>도 늘 눈도장은 찍었었는데...
자목련님이 선정하시는 책들이라 더욱 눈길이 갑니다.늘 믿고 따라 읽게 만드시는 한국 소설 길라잡이 친구 같달까요??
올 한 해도 수고 많으셨어요.내년에도 더 좋은 글을 통해 계속 읽고 싶네요^^
저도 서달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12-17 09:37   좋아요 1 | URL
나무 님의 길라잡이 친구가 되어 기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ㅎ
저도 서재 달인 축하드리며 책과 함께 달콤한 하루 이어가세요^^*

thkang1001 2021-12-16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2021 서재의 달인!‘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자목련 2021-12-17 09:38   좋아요 0 | URL
축하와 응원의 댓글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려요.
건강한 하루 이어가세요^^

그레이스 2021-12-16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12-17 09:39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저도 축하드려요^^
향기로운 하루 이어가세요!

희선 2021-12-17 0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 소설도 괜찮지요 읽기는 해도 여전히 잘 못 읽지만... 자목련 님 축하합니다 다음해에도 책 즐겁게 보시고 글도 즐겁게 쓰시기 바랍니다


희선

자목련 2021-12-17 09:40   좋아요 2 | URL
많이 읽지는 못하고요. ㅎㅎ
희선 님, 저도 축하드립니다. 건강하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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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얀 마텔의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르는 질문이다. 질문은 삶의 분명한 목적을 알고 사는 이가 있을까로 이어졌다. 존재함과 동시에 그냥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연작소설이라 설명해도 좋을 얀 마텔의 소설은 묘하고 독특하다. 그 독특함은 내게 난해함이었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끄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의 여정은 고단했지만 흥미로웠고 슬프고도 애통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모두 세 명의 주인공의 삶을 들려준다. 그들의 연결점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고 그것들의 의미하는 바는 같은 듯 다르다. 「1부 집을 잃다」는 1904년 리스본에 사는 토마스의 이야기다. 고미술 박물관 학예사로 연인인 도라와 아들, 그리고 아버지를 잃었다. 상실의 슬픔은 신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 그는 뒤로 걷는 일로 그것을 실천하다. 하루하루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던 그는 박물관에서 17세기 사제의 일기를 발견한다. 일기 속 십자고상을 찾아 떠난다. 소설의 제목인 ‘포르투갈의 높은 산’ 근처의 교회에 있다고 단정한다.


인간은 고난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눈을 뜨게 해줄까? 고난의 결과로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될까? (「1부 집을 잃다」, 127쪽)


부자인 숙부의 자동차를 타고 시작된 여행은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다. 자동차가 기괴한 물체로 인식되었고 정작 토마스는 운전을 할 줄 몰랐다. 가는 곳마다 구경꾼은 모여들고 토마스는 그들을 피해 달아나는 형국이었다. 휘발유를 구하는 일도 어려웠다. 급기야 자동차는 망가지고 불이 붙고 토마스는 아이를 치고 만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토마스는 도망을 택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교회에서 찾은 사제의 십자고상은 그에게 침팬지였다. 그가 그토록 찾았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2부 집으로」의 주인공은 포르투갈의 의사로 부검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온갖 서류로 가득한 병원에 두 여인이 찾아온다. 에우제비우의 아내 마리아와 남편 라파엘의 부검을 부탁한 여인 마리아. 아내는 그에게 복음서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이 얼마나 비슷한지 설명한다. 하지만 에우제비우는 아내의 설명이 지루할 뿐이다. 아내가 돌아가고 그를 찾아온 또 다른 노부인 마리아.


부검에 참여한 마리아에게 에우제비우는 과정을 설명하지만 그녀는 발부터 시작해달라고 말한다. 그럴 수 없다고 설명하다 포기하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시작한다. 마리아는 죽은 남편과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에우제비우에게 들려준다. 첫 만남, 결혼, 아이의 죽음까지 담담하게 말한다. 마리아의 아들이 「1부 집을 잃다」에 등장한 토마스가 차로 친 아이였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 죽은 아이를 곰이라 부르며 겨울잠을 자는 거라고 말했던 라파엘. 아이를 잃은 후 부부가 겪은 상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살았는지 천천히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아이와 남편과 같이 잠들기를 원한다.


1부와 2부 모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등장한다. 3부에서도 마찬가지다. 「3부 집」의 주인공 1984년의 캐나다에 사는 상원 의원 피터도 아내 클래라를 잃었다. 아들 부부는 이혼을 했고 피터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우연한 기회에 방문한 동물원에서 침팬지 오도를 만난다. 운명처럼 오도에게 끌린 피터는 오도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더 이상 피터는 캐나다에 살 이유가 없었다. 오도를 데리고 그의 고향 포르투갈로 떠난다. 말 그대로 험난한 여정이었다. 포르투갈에 도착해 말이 통하지 않는 그곳의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집을 구한다. 피터와 다르게 오도는 빠르게 적응하며 자신만의 삶을 방식을 유지한다. 그런 오도의 자유로움에서 피터는 돌고 돌아 편안한 집에 온 기분을 느낀다. 오도는 마을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는다. 여인들은 오도에게 먼저 말을 건다. 피터는 마을을 관찰하다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장례 조문 행렬이 마을을 지나 교회로 향할 때, 그는 그것을 처음으로 발견하다. 많은 조문객들이 뒤로 걷고 있다. 그것은 슬픔의 표현으로 보인다. 길을 따라 내려가고, 광장을 가로지르고, 계단을 오르면서, 그들은 슬픔을 곱씹으며 수심에 젖은 얼굴을 옆으로 기울이고 뒤로 걷는다.( 「3부 집」, 374쪽)


모든 퍼즐이 제자리를 찾는 듯하다. 토마스의 반발, 라파엘의 애통, 피터의 슬픔이 도달한 곳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걸. 그러나 정작 책 어디에서도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찾을 수 없다. 높은 산은 어디에 있는가. 저마다 찾아 헤매는 높은 산은 실재하는 것일까.


이른 오후, 그들은 ㅡ 지도에 따르면 ㅡ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도 도착한다. 공기는 더 서늘하다. 피터는 어리둥절하다. 산이 어디 있지? 그가 예상한 것은 겨울 색을 입은 우뚝 솟은 알프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숲이 높은 골짜기 사이로 숨어 있고, 봉우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들쭉날쭉하고 황량한 사바나도 아니었다. 피터와 오도는 초원에 제각각 자리를 잡고 앉은, 거대한 잿빛 암석들이 솟아난 평원을 지나간다. 어떤 바위는 2층 건물에 닿을 만큼 높다. 어쩌면 바위 옆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변이 산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바위는 길게 뻗어 있다. (「3부 집」, 319쪽)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찾으로 애쓰는 것도 같을 것이다. 찾을 수 없어서 더욱 애태우는 그것. 아이러니하게도 삶은 그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돌아 운명처럼 이끌린 세 명의 이야기. 죽음의 애도와 상실에 대해 말하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삶이란 무엇인가 묻는다.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결코 쉬운 소설이 아니다. 그래서 더 매혹적인 지도 모른다.


정녕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수많은 답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랑이다. 소설의 흐름처럼 집을 잃고 집으로 돌아와 비로소 발견한 집에 안착하는 일.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사랑이며 그 끝에도 사랑이 있다. 놀랍도록 눈부신 소설의 여러 문장 가운데 이 부분을 오래 읽고 기억하려 한다. 우리가 거하는 집, 그 안을 밝히는 따뜻하고 환한 사랑에 대해서.


사랑은 방이 많은 집이다. 사랑을 먹이는 방, 사랑을 즐겁게 하는 방, 사랑을 씻기는 방, 사랑에게 웃음을 입히는 방, 사랑을 쉬게 하는 방. 이 방들은 또한 웃음을 위한 방, 이야기를 듣는 방이거나 비밀을 털어놓는 방이거나 단란함을 위한 방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새로 들어온 식구들은 위한 방들도 있다. 사랑은 집이다. 매일 아침 수도관은 거품이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나르고, 하수구는 말다툼을 씻어 내리고, 환한 창문은 활짝 열어 새로이 다진 선의의 싱그러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1부 집을 잃다」,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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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2-14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는데 리뷰 보니 읽었네요.;;;

얄라알라 2021-12-15 13:21   좋아요 2 | URL
애서가 그레이스님, 얼마나 많이 읽으셨으면^^


자목련 2021-12-16 09:43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정말 그레이스 님은 대단하십니다.
저는 이 소설이 아름답지만 어려웠습니다. ㅠ,ㅠ

그레이스 2021-12-16 15:21   좋아요 0 | URL
;;;;

얄라알라 2021-12-15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페이퍼는 글씨체도 장평도 눈에 편해서 읽기가 참 좋아요. 닉네임과 어울리는 활자^^
장평 넓히는 건 어떻게 하시는 지 궁금하네요. 따라해보고 싶은 따라쟁이^^:;

scott 2021-12-15 13:27   좋아요 2 | URL
저도 .🖐 자목련님 글씨체 따라하고 싶습니돵
알라딘에서 이런 글씨체 기능 없는데 ^^

자목련 2021-12-16 10:01   좋아요 2 | URL
아, 그런가요?
저는 서재가 아니라 블로그에서 작성하고 복사하는 편이거든.
그래서 딱히 장편 넓이는 방법은 잘 모르겠어요. ㅠ
폰트는 Courier new 입니다.

자목련 2021-12-16 10:02   좋아요 2 | URL
스콧 님, Courier new는 알라딘에도 있습니다.
설명을 잘 해드려야 하는데...

새파랑 2022-01-07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당선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2-01-10 08:36   좋아요 2 | URL
새파랑 님, 저도 축하드리며 활기찬 한 주 시작하세요^^

mini74 2022-01-07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무슨 책 사실지 궁금 ㅎㅎ 축하드립니다 ~

자목련 2022-01-10 08:37   좋아요 1 | URL
사고 싶은 책은 항상 너무 많아요. ㅎㅎ
미니 님, 축하드리며 맑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1-0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님~~

자목련 2022-01-10 08:38   좋아요 1 | URL
저도 많이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2-01-07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자목련 2022-01-10 08:38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건강한 월요일 시작하세요^^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 - 영화가 묻고 심리학이 답하다,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김혜남 지음 / 포르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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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만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삶에 대해 알고 싶기 때문이다. 유머와 즐거움으로 가득 찬 영화에도 슬픔이 있고 고단함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 예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인간의 심연에 닿는 것처럼.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박사가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에서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 역시 인간의 마음이다. 쉽게 들여다볼 수 없어서 잘 모르고 어려운 그것. 영화라는 질료를 토대로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설명하고 그에 따른 분석을 이끌어내며 성장할 수 있도록 알려준다.


모두 34편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데 최근 개봉된 작품보다는 그 이전의 작품이 대다수다. 저자의 10~20년 전 원고를 뒤늦게 책으로 출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작품이 아니라도 해서 문제 될 건 없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그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본질적인 고민과 삶에 대한 의문은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끌리는 영화, 좋았던 영화, 궁금한 영화를 먼저 읽어도 큰 무리는 없다.


살면서 사랑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때가 있다. 모든 게 사랑으로 응집되는 순간들, 기쁨으로 채워지기만 바라는 순간들 말이다. 하지만 사랑이 이별의 수순으로 끝나기도 한다. 그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고통스럽다. 사랑했던 기억만을 안고 아름답게 이별하면 좋겠지만 머리의 생각은 가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영애와 유지태 주연의 <봄날은 간다>에서 쪼잔하고 유치한 행동을 일삼는 유지태처럼 말이다.


실연은 일상을 빛이 사라진 어둠의 세계로 전락시킨다. 그 과정에 개인차가 있겠지만 단 번에 벗어나기는 어렵다. 아마도 지금 이별 중이거나 이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라면 저자의 이런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사랑에 국한된 건 아니다. 어쩌면 모든 관계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친구와 다투고, 오래된 이들과 관계를 단절할 때 상처를 받는 이유도 비슷하니까.


우리가 사랑할 때 자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릴 때 자아가 수축하고 감소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랑할 때 느낀 충만함이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허탈하고 공허해지는 것이다. 사랑 중에 느꼈던 합치의 희열은 반대로 실연후의 외로운 자아를 더욱 상처받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연인이 함께 만든 우리라는 세계는 이제 나라는 원소로 환원된다. 자신만이 상대의 유일한 사랑이라 여겼던 행복감이 사라지고, 고갈되고 무가치하며 무의미한 자신만이 홀로 남는다. 실연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에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자아 중심부를 강타하여 그것을 흩트리고 부수어버리기도 한다. (「사랑의 종말이 마치 죽음처럼 느껴질 때」30쪽, <봄날은 간다> 중에서)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들의 사랑에 스스로를 대입시킨다. 타자를 통해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좋은 인생 교과서가 된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경험하지 못한 부분,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과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 이런 영화를 보면 좋을 것 같다. 노년의 부부에게 찾아온 돌봐야 할 아이와의 시간. 영화에서 불화한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주변에서 흔한 모습이다. 딸이 남자친구의 아들을 부모에게 맡긴다. 내가 부모의 입장이라고 맘에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돌봄의 시간에서 부모는 딸의 어린 시절을 기억할 게 분명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모르고 온전히 저자의 소개에 따라 짐작하고 상상한다.


우리가 삶을 지루해하거나 따분해하지 않는다면, 주변에 돌봐야 할 사람이나 일이 있다면, 또 피할 수 없는 상실을 감수할 만큼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으며 성숙하다면 늙는다는 것은 그리 어렵거나 두려운 일이 아니다. 노년을 향한 행진은 유아 시절부터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동안 겪어온 수많은 상실과 이별은 인생 최후의 상실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를 충분히 준비시켜주었다. (「시간이 모여 황금빛 호수를 이룬 곳에서」141~142쪽, <황금 연못> 중에서)


무기력하게만 여기는 노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스스로 포기한다면 삶은 앙상한 가지처럼 쉽게 부러지고 말 것이다. 뭔가 생산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관계를 돌아보며 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한다면 노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사와 즐거움이 충분하지 않을까.


영화를 말하는 책이 주는 즐거움은 영화제 수상작은 물론이고 좋은 영화를 다시 만나는데 그치지 않고 한 번 더 감동하고 치유받는 일이다. <가위손>, <굿 윌 헌팅> , <러브레터> , <흐르는 강물처럼>, <왕의 남자>, <박하사탕>, <기생충> 같은 영화를 다시 찾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제목만으로 익숙한 영화도 많이 글로 영화를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기회가 닿으면 보고 싶은 영화는 <더 도어>였다. 과거의 한순간으로 돌아가 지난 삶을 수정하고 싶은 모두의 욕망을 잘 보여준 영화라고 여겨진다. 소재나 구성도 독특하고 그 안에 담긴 사유도 훌륭한다. 물론 이 모든 건 저자의 소개 덕분이다.


세상에는 완전히 악한 사람도, 완전히 선한 사람도 없으며,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흘러가며 윤회한다. 우리는 종종 시간을 되돌린다면 모든 것이 나아질 거라 생각하지만, 결국 우리는 자신의 선택들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다.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언제나 남을 수밖에 없다. 때로 잘못된 선택을 통해 배워나가면서 그만큼 성장하고 오늘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일 테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을까」155쪽, <더 도어> 중에서)


정신분석 전문의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도 훌륭하다. 균형 잡힌 해설이라고 할까. 영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지는 느낌을 찾을 수 없다. 영화의 매력을 잘 살리고 있어 이제껏 만나지 못한 영화에 대한 갈증도 해소시킨다.


영화 속 인물은 현실 속 우리와 닮았기에 쉽게 빠져들어 공감할 수 있다. 현실에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을 영화를 통해 만났을 때 어쩌면 그랬을 수 있겠다 하는 유연한 생각을 안겨준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그런 건 아닐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인간의 내면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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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의 저편 이판사판
기리노 나쓰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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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읽고 쓴다. SNS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의견을 말한다. 개인적인 공간에 남긴 기록은 한순간 사회적 공론에 휩싸일 때도 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생각에 댓글로 다툼이 이어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자기 검열을 시작한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교정 같은 단순한 일부터 문맥이 맞는지 주장에 대한 근거가 있는지 살피게 된다. 좋아서 쓰던 글이 타인과 소통을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면 의문이 생긴다.


궁극적으로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일까. 글의 형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순한 행복, 기쁨, 즐거움은 아닐까. 그 모든 것을 충족하는 장르 중 하나가 소설일 것이다.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이 만들어 낸 가공의 이야기, 그 안에서 독자는 함께 울고 웃고 분노한다. 하나의 소설을 읽고 느끼는 감정은 저마다 다르기에 일률적인 평가를 내릴 수 없다. 그러니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로 나누는 획일적인 기준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인간을 탐구하는 문학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니까.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정부가 관리하고 판단하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나오키상과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요미우리문학상 등을 수상한 기리노 나쓰오의 장편소설『일몰의 저편』(북스피어, 2021)에서 벌어지는 일은 결코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 성애 소설을 쓰는 작가인 주인공 ‘마쓰’는 ‘문예윤리위원회’(이하 문윤)라는 조직으로부터 소환장을 받는다. 독자의 고발이 있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설명 없이 강습에 참여하라는 내용이었다. 며칠이면 끝날 거라는 직원의 설명에 아무런 의심 없이 길을 나선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 채 말이다. 마쓰가 도착한 곳은 외부와 단절된 바닷가 절벽 위에 위치한 ‘요양소’다. 마쓰에게 지정된 방은 형무소와 같았다. 작은 책상, 화장실, 지급되는 생필품으로 생활하며 식사, 목욕도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했다. 인터넷도 전화도 사용할 수 없었다. 감시 카메라와 스피커가 설치되었다. 건물 곳곳에서 자신과 같은 복장의 사람들을 지나쳤지만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언제 이곳에 왔는지 확인이 어려웠다. 말 그대로 고립 상태에 놓였다.


그곳에서 마쓰는 이름이 아닌 ‘B98’번이었고 소장이라는 사람과 상담이 시작되었다. 마쓰가 쓴 소설이 폭력적이고 가학적이라고 문윤이 판단해 요양소에서 갱생과 교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간은 마쓰가 얼마나 문윤의 조치에 따르고 협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B98번이 된 마쓰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설은 그저 허구이며 상상의 세계가 아니던가. 단지 한 장면의 묘사, 몇 줄의 표현으로 인해 소설 전체를 평가받는 일은 부당했다. 독자의 호불호가 있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당연한 감정이다. 작가에게 그 누구도 그런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제재를 가할 수 없으니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주의 국가에서 개인을 갱생한다는 상상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소설은 너무도 비참한 방법으로 마쓰를 구속하고 학대한다. 자신들이 정해 놓은 규정을 위반하면 요양소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인간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도 묵살했다. 그들의 설명은 산책이나 운동을 하면서 창작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산책을 빌미로 요양소를 탐색하는 마쓰가 알게 된 사실은 더욱 잔인했다. 하루하루 요양소에 적응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처음에 끓어올랐던 분노는 어느새 사라지고 작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말이었다.


마쓰가 그들의 요구대로 쓴 글을 읽고 검열하며 문윤은 그녀가 충분히 갱생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윤에서 원하는 글은 명확하고 단순했다. 누구나 감동을 느낄 착하고 아름다운 글이었다. 그런 소설이 좋은 소설이고 훌륭한 소설이라며 노벨문학상을 언급한다. 마쓰도 쓸 수 있었다. 요구하는 대로 변절자, 배신자도 충분히 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하지만 그건 작가가 원하는 글이 아니고 쓰고 싶은 글이 아니었다. 무엇을 쓸지 창작의 영역까지 허락이 필요한 세상이 도래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글은 다양성과 고유성은 무시한 AI나 써내는 글이 아닐까. 기능적으로 소설을 잘 쓰는 작가를 원할 뿐 마쓰라는 인간 개인의 글은 필요하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개인과 국가의 싸움이었다. 누가 봐도 개인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마쓰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정하며 그녀를 자극했고, 도발하게 만들어 마침내 모든 걸 포기하게 만드는 게 문윤의 전략이었다. 인간은, 그것도 예술가인 작가는 갱생되거나 교정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소설은 마치 문학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교묘하게 포장한다. 독자에게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을 선별할 능력이 있냐는 듯 말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말하는 문학이라는 세계, 작가의 창작적 자유는 그들의 집단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작가는 곧 개인이며 독자다. 소설속 문윤의 논리에 따르면 좋은 소설을 쓰는 작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처럼 좋은 소설만 읽는 독자가 필요하다. 그것은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폭력이다.


이쯤에서 독자인 나는 어떤 독자인가 생각한다. 더불어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지난 정부의 예술가 명단을 떠올린다. 정부의 뜻에 반하는 목소리를 지닌 이들은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준다며 불이익을 받는 이들이다. 정치가 예술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서 왔을까. 예술가의 정치적 신념은 작품과는 별개다. 설령 같다고 해도 그건 개인의 자유 영역이다. 그렇다면 소위 문학상 수상작, 베스트셀러, 고전만 읽어야 하는 것일까. 다양한 시도를 하는 실험적인 소설이나 사회를 비판하는 고발 소설과 추악한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는 탐사 소설은 읽지 말아야 할까. 그렇다면 작가 마쓰가 아닌 비주류 소설을 읽는 독자도 문윤의 요양소에서 갱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 시대인 21세기에 불가능한 이야기라 장담했지만 막상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이런 일이 자행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아무도 모르는 권력이 움직이는 검열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쓰는 이 글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불편하고 불안해진다.


“작품은 자유야. 인간의 마음은 자유니까. 무엇을 표현해도 돼. 국가권력이 그걸 금지하면 안 돼.”(317쪽)


“내가 말하는 건 작가가 책임을 지고 표현한 작품이야. 허구의 이야기 말이야. 허구는 다양한 인간을 묘사하지. 개중에는 차별적 인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인간도 있지. 왜냐하면 인간 사회가 그러니까. 다양한 사람의 고통을 그리는 게 소설이니까 아름다운 것만 쓸 수 없지.”(317쪽)


그리하여 마쓰의 처절한 외침은 곧 내 것이 된다. 표현의 자유가 사라지고 좋은 소설만 읽으라고 강요하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만으로 꾸며진 세상은 좋은 세상일까. 인형처럼 똑같은 얼굴과 마음을 지닌 인간들이 가득한 사회를 상상하자 오싹해진다. 작가 기리노 나쓰오는 마쓰의 목소리를 통해 묻는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어떠냐고 말이다. 소설 속 디스토피아와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인간의 심연을 포착한 글이 소설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는 이유다. 소설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배우고 소통하기 위해서다. 마쓰가 문윤의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그 때문이다.


단순하게 재미만 놓고 봐도 스릴 넘치는 소설이다. 하지만 묵직한 여운을 안겨 준다. 흥미롭게 진행된 마쓰와 소장의 토론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다 정신을 차린다. 읽고 싶은 소설을 선택할 자유와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 하나의 목소리가 지배하는 독재의 사회가 될 것임을 알기에 모든 소설을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논리를 따라갈 수 없다. 작가와 독자의 인격과 존엄성을 무시하는 처사를 따를 수 없고 따라서도 안 된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마쓰가 생각날지도 모른다. 현명한 독자가 되려는 묘한 욕망과 함께 말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문학의 궁극적인 목표와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소설 밖 현실에선 ‘일몰의 저편’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Littor》 33호에 수록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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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12-09 0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리노 나쓰오? 누구지 내가 아는 작가인데...찾아보니 옛날에 재미있게 읽은 <아웃>의 작가였네요.
신간이 나왔군요. 문학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다룬 스릴러~~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자목련 2021-12-10 10:43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소설로 처음 만났는데 쿨캣 님은 이미 만나셔군요.
재미와 함께 많은 생각을 안겨준 소설이었어요. 소설은 나에게 무엇인가 생각도 하고요.

scott 2021-12-09 10: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자목련님
리뷰가 잡지 릿터에 실렸네요!^^

2021-12-10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1-12-09 1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사랑과 어듐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나쁜독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른 내용이지만 그 부분만은 닮은 듯한 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님 *^^*

자목련 2021-12-10 10:46   좋아요 2 | URL
좋은 소설, 나쁜 소설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좋은 독자와 나쁜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었어요.

기억의집 2021-12-09 1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2/3까지 읽다가 포기 했어요. 지하방에 감금될 때… 그래. 그래도 공권력이 어떡해서든 찾아 와 이들을 처벌하고 자유가 될 거야… 아무리 읽어도 경찰의 관여할 낌새가 안 보여 결말 봤다가.. 걍 접었어요. 기리노여사 지금 칠십이라던데… 끝까지 독자를 절망에 빠뜨리는구나 원망하면서요. 전 일몰의 저편이란 제목에서 저편 너머에 있는 게 어둠인지 빛인지 모른 상태에서 그래 결론은 희망적인 빛일거야라고 희망회로 돌려가며 읽었는데… 기리노 여사님 참 독하더라구요 한편으론 자민당에 대한 정치적 은유인가 싶기도 하고… 글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 2021-12-10 10:47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저도 계속 그곳을 탈출하는 장면을 기대했는데...
작가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나 봐요.
어쩌면 어딘가에서 자행되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자꾸 생각나요.

책읽는나무 2021-12-09 19: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늘 읽어 보고 싶게 만드는 자목련 님의 글입니다.
릿터 잡지에도 실리다니...축하 드립니다^^

2021-12-10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1-12-09 23: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책을 읽으시고 꾸준히 조근조근 말하시는 것처럼 올려주시는 리뷰의 힘!! 멋져요!! 계속 화이팅!!^^

자목련 2021-12-10 10:50   좋아요 3 | URL
꾸준히 읽고 쓰는 일, 알라딘에서는 대단한 분들이 많지요. ㅎㅎ
라로 님의 응원으로 하루가 따뜻할 것 같습니다^^

희선 2021-12-11 04: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 축하합니다 이 글이 릿터에 실렸군요 뭐든 자유롭게 써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는 곳도 있고 한국에서도 마음대로 다 쓰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예전보다 나아졌네요


희선

자목련 2021-12-11 20:02   좋아요 1 | URL
희선 님, 감사합니다. 좋은 기회였어요.
읽고 쓰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고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12-11 0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ns와 다양한 플랫폼!
서재와 블로그 관리도 겨우 하고 있는 저로서는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자목련 2021-12-11 20:03   좋아요 1 | URL
저 역시 그렇습니다. ㅎㅎ
운이 좋았어요.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새파랑 2021-12-11 0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릿터를 읽어본적은 없지만 33호는 읽어봐야 겠어요 ^^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12-11 20:04   좋아요 2 | URL
새파랑 님, 감사합니다. 릿터33호 즐겁게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포근한 주말 이어가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