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얀 마텔의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르는 질문이다. 질문은 삶의 분명한 목적을 알고 사는 이가 있을까로 이어졌다. 존재함과 동시에 그냥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연작소설이라 설명해도 좋을 얀 마텔의 소설은 묘하고 독특하다. 그 독특함은 내게 난해함이었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끄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의 여정은 고단했지만 흥미로웠고 슬프고도 애통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모두 세 명의 주인공의 삶을 들려준다. 그들의 연결점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고 그것들의 의미하는 바는 같은 듯 다르다. 「1부 집을 잃다」는 1904년 리스본에 사는 토마스의 이야기다. 고미술 박물관 학예사로 연인인 도라와 아들, 그리고 아버지를 잃었다. 상실의 슬픔은 신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 그는 뒤로 걷는 일로 그것을 실천하다. 하루하루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던 그는 박물관에서 17세기 사제의 일기를 발견한다. 일기 속 십자고상을 찾아 떠난다. 소설의 제목인 ‘포르투갈의 높은 산’ 근처의 교회에 있다고 단정한다.


인간은 고난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눈을 뜨게 해줄까? 고난의 결과로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될까? (「1부 집을 잃다」, 127쪽)


부자인 숙부의 자동차를 타고 시작된 여행은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다. 자동차가 기괴한 물체로 인식되었고 정작 토마스는 운전을 할 줄 몰랐다. 가는 곳마다 구경꾼은 모여들고 토마스는 그들을 피해 달아나는 형국이었다. 휘발유를 구하는 일도 어려웠다. 급기야 자동차는 망가지고 불이 붙고 토마스는 아이를 치고 만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토마스는 도망을 택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교회에서 찾은 사제의 십자고상은 그에게 침팬지였다. 그가 그토록 찾았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2부 집으로」의 주인공은 포르투갈의 의사로 부검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온갖 서류로 가득한 병원에 두 여인이 찾아온다. 에우제비우의 아내 마리아와 남편 라파엘의 부검을 부탁한 여인 마리아. 아내는 그에게 복음서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이 얼마나 비슷한지 설명한다. 하지만 에우제비우는 아내의 설명이 지루할 뿐이다. 아내가 돌아가고 그를 찾아온 또 다른 노부인 마리아.


부검에 참여한 마리아에게 에우제비우는 과정을 설명하지만 그녀는 발부터 시작해달라고 말한다. 그럴 수 없다고 설명하다 포기하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시작한다. 마리아는 죽은 남편과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에우제비우에게 들려준다. 첫 만남, 결혼, 아이의 죽음까지 담담하게 말한다. 마리아의 아들이 「1부 집을 잃다」에 등장한 토마스가 차로 친 아이였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 죽은 아이를 곰이라 부르며 겨울잠을 자는 거라고 말했던 라파엘. 아이를 잃은 후 부부가 겪은 상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살았는지 천천히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아이와 남편과 같이 잠들기를 원한다.


1부와 2부 모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등장한다. 3부에서도 마찬가지다. 「3부 집」의 주인공 1984년의 캐나다에 사는 상원 의원 피터도 아내 클래라를 잃었다. 아들 부부는 이혼을 했고 피터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우연한 기회에 방문한 동물원에서 침팬지 오도를 만난다. 운명처럼 오도에게 끌린 피터는 오도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더 이상 피터는 캐나다에 살 이유가 없었다. 오도를 데리고 그의 고향 포르투갈로 떠난다. 말 그대로 험난한 여정이었다. 포르투갈에 도착해 말이 통하지 않는 그곳의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집을 구한다. 피터와 다르게 오도는 빠르게 적응하며 자신만의 삶을 방식을 유지한다. 그런 오도의 자유로움에서 피터는 돌고 돌아 편안한 집에 온 기분을 느낀다. 오도는 마을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는다. 여인들은 오도에게 먼저 말을 건다. 피터는 마을을 관찰하다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장례 조문 행렬이 마을을 지나 교회로 향할 때, 그는 그것을 처음으로 발견하다. 많은 조문객들이 뒤로 걷고 있다. 그것은 슬픔의 표현으로 보인다. 길을 따라 내려가고, 광장을 가로지르고, 계단을 오르면서, 그들은 슬픔을 곱씹으며 수심에 젖은 얼굴을 옆으로 기울이고 뒤로 걷는다.( 「3부 집」, 374쪽)


모든 퍼즐이 제자리를 찾는 듯하다. 토마스의 반발, 라파엘의 애통, 피터의 슬픔이 도달한 곳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걸. 그러나 정작 책 어디에서도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찾을 수 없다. 높은 산은 어디에 있는가. 저마다 찾아 헤매는 높은 산은 실재하는 것일까.


이른 오후, 그들은 ㅡ 지도에 따르면 ㅡ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도 도착한다. 공기는 더 서늘하다. 피터는 어리둥절하다. 산이 어디 있지? 그가 예상한 것은 겨울 색을 입은 우뚝 솟은 알프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숲이 높은 골짜기 사이로 숨어 있고, 봉우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들쭉날쭉하고 황량한 사바나도 아니었다. 피터와 오도는 초원에 제각각 자리를 잡고 앉은, 거대한 잿빛 암석들이 솟아난 평원을 지나간다. 어떤 바위는 2층 건물에 닿을 만큼 높다. 어쩌면 바위 옆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변이 산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바위는 길게 뻗어 있다. (「3부 집」, 319쪽)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찾으로 애쓰는 것도 같을 것이다. 찾을 수 없어서 더욱 애태우는 그것. 아이러니하게도 삶은 그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돌아 운명처럼 이끌린 세 명의 이야기. 죽음의 애도와 상실에 대해 말하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삶이란 무엇인가 묻는다.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결코 쉬운 소설이 아니다. 그래서 더 매혹적인 지도 모른다.


정녕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수많은 답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랑이다. 소설의 흐름처럼 집을 잃고 집으로 돌아와 비로소 발견한 집에 안착하는 일.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사랑이며 그 끝에도 사랑이 있다. 놀랍도록 눈부신 소설의 여러 문장 가운데 이 부분을 오래 읽고 기억하려 한다. 우리가 거하는 집, 그 안을 밝히는 따뜻하고 환한 사랑에 대해서.


사랑은 방이 많은 집이다. 사랑을 먹이는 방, 사랑을 즐겁게 하는 방, 사랑을 씻기는 방, 사랑에게 웃음을 입히는 방, 사랑을 쉬게 하는 방. 이 방들은 또한 웃음을 위한 방, 이야기를 듣는 방이거나 비밀을 털어놓는 방이거나 단란함을 위한 방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새로 들어온 식구들은 위한 방들도 있다. 사랑은 집이다. 매일 아침 수도관은 거품이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나르고, 하수구는 말다툼을 씻어 내리고, 환한 창문은 활짝 열어 새로이 다진 선의의 싱그러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1부 집을 잃다」, 35쪽)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1-12-14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는데 리뷰 보니 읽었네요.;;;

얄라알라 2021-12-15 13:21   좋아요 2 | URL
애서가 그레이스님, 얼마나 많이 읽으셨으면^^


자목련 2021-12-16 09:43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정말 그레이스 님은 대단하십니다.
저는 이 소설이 아름답지만 어려웠습니다. ㅠ,ㅠ

그레이스 2021-12-16 15:21   좋아요 0 | URL
;;;;

얄라알라 2021-12-15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페이퍼는 글씨체도 장평도 눈에 편해서 읽기가 참 좋아요. 닉네임과 어울리는 활자^^
장평 넓히는 건 어떻게 하시는 지 궁금하네요. 따라해보고 싶은 따라쟁이^^:;

scott 2021-12-15 13:27   좋아요 2 | URL
저도 .🖐 자목련님 글씨체 따라하고 싶습니돵
알라딘에서 이런 글씨체 기능 없는데 ^^

자목련 2021-12-16 10:01   좋아요 2 | URL
아, 그런가요?
저는 서재가 아니라 블로그에서 작성하고 복사하는 편이거든.
그래서 딱히 장편 넓이는 방법은 잘 모르겠어요. ㅠ
폰트는 Courier new 입니다.

자목련 2021-12-16 10:02   좋아요 2 | URL
스콧 님, Courier new는 알라딘에도 있습니다.
설명을 잘 해드려야 하는데...

새파랑 2022-01-07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당선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2-01-10 08:36   좋아요 2 | URL
새파랑 님, 저도 축하드리며 활기찬 한 주 시작하세요^^

mini74 2022-01-07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무슨 책 사실지 궁금 ㅎㅎ 축하드립니다 ~

자목련 2022-01-10 08:37   좋아요 1 | URL
사고 싶은 책은 항상 너무 많아요. ㅎㅎ
미니 님, 축하드리며 맑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1-0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님~~

자목련 2022-01-10 08:38   좋아요 1 | URL
저도 많이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2-01-07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자목련 2022-01-10 08:38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건강한 월요일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