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을 좋아한다. 오랜만에 올해 내가 읽은 소설을 돌아보고 몇 권을 생각한다. 거의 십 년 만이다. 한국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많이 읽지는 못했고 읽었지만 리뷰를 쓰지 못한 책도 많다. 어떤 책은 기대보다 살짝 아쉬워서, 어떤 책은 너무 좋아서 그 기대를 더 잘 표현하고 싶어서 미루고 미룬다. 내 맘대로 정하는 2021 한국소설은 올해 출판된 소설에 한한다.
이런 시간이 좋은 건 내가 쓴 리뷰를 훑어보면서 책과 다시 만나는 일이다. 사실 책이라는 게 읽고 나서는 줄거리가 날아가 버리거나 주인공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 나만 그런가. 점점 한국소설을 읽는 독자가 줄어든다고 한다. 한국소설이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엄지의 『겨울장면』은 지금 이때 읽어도 좋다. 얼음, 겨울, 차가운 공기, 쓸쓸함이 가득하다. 익명의 주인공들의 여정, 죽음, 그 모든 모호함에 빠지는 소설이다. 눈이 내리는 저수지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 상념의 시간에서 무엇을 찾으려 하는지 나는 끝내 알지 못했다. 조남주의 첫 단편집 『우리가 쓴 것』도 좋았다. 동시대의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의 삶은 우리의 것이었기에. 소설을 읽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고 위안을 주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내 주변의 친구, 가족, 그리고 알지못하는 모든 여성을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조해진의 단편집 『환한 숨』과 편혜영의 단편집 『어쩌면 스무 번』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외로운 사람들, 혼자 고독한 이들의 풍경이다. 그들의 모습에 내가 있고 우리가 있어 더욱 공감하면서도 속상한 마음도 감출 수 없었다. 단편처럼 곱고 아름다운 최은영의 『밝은 밤』은 먹먹하면서도 따뜻했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넣어두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빛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밝은 밤』중에서)
장르 소설에 대한 흥미와 기대를 안겨준 이선영의 『지문』과 케이시의 『네 번의 노트』는 영화나 드라마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거상 수상으로 영향력이 더 커진 윤고은의 『도서관 런웨이』도 인상적이다. 윤고은의 놀라운 상상력은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결혼보험이라니. 가까운 시일에 그런 보험 광고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목록을 작성하면서 알게 된 사실, 모두 여성작가다. 여성이라서 그들의 삶에 내밀하게 파고드는 힘이 있다고 느낀다. ‘젊은작가상’이나 ‘소설 보다 시리즈’도 좋았다. 새로운 작가, 새로운 소설을 읽은 일은 즐겁다. 아직 리뷰를 쓰지 못했지만 올해의 소설로 꼽는 소설은 최은미 단편집 『눈으로 만든 사람』와 한강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소설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리뷰를 꼭 쓰고 싶다.
살구꽃이 피면 톡 하겠대. (최은미 소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