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어둠에 익숙해지면 빛의 소중함을 잊는다. 어둠이 전부였던 걸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그 어둠을 걷어낼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 희미한 빛이 시작일 것이다. 꺼질 듯 희미한 빛, 설사 꺼졌다 하더라도 빛이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면 충분하다. 빛을 기억해 낼 수 있으니까. 김호연의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그런 빛 같은 소설이다. 밝고 환한 온기를 전하는 작은 빛 말이다. 거기 빛이 있으니 어둠은 사라지고 빛을 향해 나갈 수 있다. 엉뚱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다.


소설은 제목처럼 편의점을 배경으로 그곳의 사람들 이야기다. 편의점 사장, 편의점 알바, 편의점 손님이 모두 주인공이며 화자가 되어 그들의 사연을 들려준다. 청파동 골목의 작은 편의점 ‘ALWAYS’에서 벌어지는 크리마스의 기적 같은 이야기라고 할까.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던 ‘독고’ 씨는 사장 염 여사의 지갑을 찾아준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술에 찌든 그에게 염 여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게 해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아르바이트생 시현은 사장의 지시가 맘에 들지 않지만 매일 저녁 8시에 찾아오는 독고를 상대한다. 이상한 건 독고가 조금 늦으면 걱정되고 신경이 쓰인다. 도시락을 먹고 주변 청소를 해준 탓일까. 그런 독고가 야간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는 습득력이 빨랐다. 물건 파악도 잘 하고 한 번 알려주면 모두 잘 따라 했다. 시현은 점점 그가 궁금하다. 그건 독자인 나도 마찬가지다. 뭔가 대단한 과거가 있을 것 같은 호기심.


소설은 이처럼 독고란 인물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편의점을 중심으로 이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자칭 ‘아싸’인 시현에게 편의점은 자신만의 시간을 위한 공간이다. 오전 알바를 하는 50대 선숙은 대기업을 그만두고 영화감독 교육을 받다가 백수로 전전하며 게임만 하는 아들이 걱정이다. 가장 역할을 하는 엄마의 마음도 모르는 아들 때문에 화가 날 지경이다. 거기다 이상한 알바 독고까지. 그런데 동네 할머니를 도와주고 물건을 배달하는 그의 행동이나 속상할 때 마시라고 내미는 ‘옥수수수염차’가 선숙을 기분 좋게 만든다. 이상하게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아들에 대한 말들을 털어놓는다. 가만히 듣고 있던 독고가 말한다.


들어주면 풀려요. (108쪽)


책을 읽던 나는 순간 울컥한다. 들어주면 풀린다는 말이 나에게 건네는 말 같았다. 대화 자체가 사라진 가족의 일부에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들킨 것 같았다. 정말 독고는 어떤 사람일까. 쌍둥이 딸을 둔 가장이자 영업을 하는 40대 경만에게도 그는 옥수수수염차를 권한다. 집에 가기 전 혼술의 자유를 느끼는 경만은 그가 사장질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편의점에 오는 쌍둥이 딸들이 하는 말들을 전해주고 술을 끊을 수 있다고 독려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편의점 손님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그들이 원하는 걸 주려고 노력했다. 새벽마다 찾아오는 극작가 인경에게도 그랬다. 인경이 찾는 도시락을 챙겨주는 그가 불편했지만 손님을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궁금해졌다. 독고와 편의점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하다 그녀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수 있었다. 정말 묘한 편의점이다.


작가는 편의점의 일상을 섬세하게 묘사해 독자를 그곳으로 이끈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과 함께 도시락과 옥수수수염차를 먹고 만 원에 네 캔인 맥주를 계산대에 놓고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나와 우리였다는 걸 인정한다.


누구나 한 번쯤 실패하고 좌절하고 절망한다. 어디 한 번뿐일까. 수없이 많은 실패에 넘어지고 일어나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 내민 손, 건네는 말 한마디가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된다. 어쩌면 식상하고 긍정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이 벼랑 끝에 서 있는 이들에게는 절실하다.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지난가을과 겨울을 보낸 ALWAYS 편의점에서, 아니 그전 몇 해를 보내야 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 그들을 보며 혼잣말하며 서성였고 괴로워했으며, 간신히 무언가를 깨우친 것이다. (252~253쪽)


독고에게 염 사장이 그랬고 편의점을 찾는 이들에게 독고가 그랬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순간, 온통 어둠뿐이라 여기는 순간에 우리가 기댈 곳은 아마도 소설 속 ALWAYS 편의점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항상 환한 빛을 밝히는 그곳. 소설이 아닌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그런 곳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무람없이 가서 말을 건네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당신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21-12-17 09: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도서관에 대기가 너무 많아 빌릴 수가 없더라구요.
구입해서 아이랑 같이 읽어볼까 합니다.

들어주면 풀려요...저도 울컥🥲

자목련 2021-12-18 12:18   좋아요 0 | URL
아이랑 읽어도 좋을 소설이에요.
들어주는 게 왜 이리 어려울까요, ㅎ
쿨캣 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희선 2021-12-18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편의점 불빛이 따스한 곳도 있겠지요 편의점도 사람이 오고가는 곳이니 정이 오고가기도 하겠습니다 사람하고 잘 지내지 못해도 사람은 다른 사람과 이어져 있기도 하네요 그걸 잊지 않아야 할 텐데...


희선

자목련 2021-12-18 12:19   좋아요 1 | URL
누군가에는 편의점이 그러할 테고 누군가에게는 다른 어딘가가 그러하겠지 싶어요.
희선 님, 날씨가 차네요. 건강하고 포근한 오후 이어가세요^^

2021-12-19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0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0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