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꿈을 꾸었다. 할머니는 건강한 모습이었고 깐깐한 잔소리를 생생하게 늘어놓으셨다. 그것은 큰언니 집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마도 내가 이 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에 그런 꿈을 꾼 것 같다. 예상보다 휠씬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큰언니만 그 자리에 없을 뿐. 작년 여름에 급하게 유품을 정리하지 않았나 싶은 후회가 밀려온다. 온전한 정리를 한 건 아니지만 급한 마음이 있었다. 정리한다는 말이 사라진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존재한다는 걸 느끼는 나는 때때로 서럽다.

 

 우리는 더이상 큰언니의 부재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큰언니를 언급하는 일이 줄어든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나는 큰언니의 손때가 묻은 것들과 함께 한다. 현관문에 달려있는 풍경의 소리는 문을 열 때마다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다. 언니의 부탁으로 내가 주문한 빨간 스탠드, 필요한 생필품을 창고나 서랍에서 꺼낼 때마다 반듯하게 정리된 모습에 감탄한다. 버리지 못한 신분증과 여권 속 사진은 언니의 시간을 짐작하게 만든다.

 

 초반에 몰려오는 고통의 예리한 모서리들이 무뎌지면서, 마비되고 분개하던 마음이 천천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옮겨 간다. 슬픔은 더욱 깊어진다. 허전함과 결핍감, 동요의 순간들과 함께. 상냥함이 깃든 슬픔이 퍼지는 것은 더 나중이다. 부드러운 아픔이 떠난 사람의 이미지를 둘러싼다. 죽음이 우리 안에 똬리를 틀었다. 그 흐름에는 지름길이 없다. 거기서 빠져나올 수도 없다. 죽음은 삶에 속하며, 삶은 죽음을 껴안는다.’ (『수런거리는 유산들』119~120쪽)

 

 아무리 연습해도 이별은 속수무책이다. 그저 멀고 긴 여행을 떠났다고 여겨도 어려운 일이다. 분명 잘 가라고 인사를 했는데 떠나는 이를 바라보며 서 있다. 뒤를 돌아 내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데 한 번에 돌아지지 않고 수많은 연습을 필요로 한다. 이곳에 머물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책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김연수가 언급했다는 이유로 제목만 기억하고 있었지만 읽을 용기를 내지 않았다. 집 안의 모든 사물이 수런거리는 소리를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부모님의 집을 비우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부모님의 연애편지를 읽으면서 그들의 사랑과 삶을 마주하지만 나는 언니가 꼼꼼하게 기록한 메모나 일기를 대면할 수 없다. 일부는 읽다가 덮었거나 일부는 태웠고 일부는 그대로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곳을 정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용기를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옳지 않을 일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용기를 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시간을 요구하는 것들이 있다. 죽음도 그 하나다. 엄마, 할머니, 아버지, 큰언니의 죽음은 저마다 다른 질량의 시간을 요구한다. 마음을 나눠 수많은 비밀의 방을 만들고 살아가는 동안 죽음의 방은 하나가 될 수 없다. 그 방은 열린 채 쉽게 닫히지 않는다. 그곳을 채울 수 있는 건 통증과 그리움이며 애도다. 누구나 언젠가는 누군가가 만든 그 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영원할 수 있다고 믿는 인생은 영원할 수 없다. 어디선가 들은 오늘이 인생이라는 말을 잊지 않으려 한다. 오늘은 오늘일 때 가장 빛난다. 어제였던 시간은 사라졌고 내일인 시간은 잡히지 않기에. 느닷없는 일들이 인생을 지배한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이라는 말에 담긴 절실함을 모르고 산다. 모든 일은 오늘 일어난다. 작별을 준비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오늘이 인생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묘지는 놀이터였다. 놀이터 중에서도 가장 놀랍고 가장 흥미진진한 놀이터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 서 있다. 나는 놀이의 비밀을 잃어버렸다. 나는 어린 시절을 잃어버렸다. 모든 날들이 작별의 나날인 것이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95쪽)​

 

 아침에 아주 소중한 사람과 통화를 했다. 목소리로는 자주 만났지만 눈을 바라보며 같은 공간에서 머문 시간을 모두 합해도 하루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 우리는 그렇게 산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집중하며 자신의 삶을 산다. 가까운 듯 멀리서 서로를 응원하며 살아간다.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으며 산다. 무엇이 인생인지 모르며 그렇게 살아간다. 아무리 연습해도 속수무책인 이별을 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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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20 14: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뎌지지않는 것이 있다면 그게 아마 이별의 상실일텐데 그래서 어쩜 신은 (신이 있다면) 인간성의 최후에 만들어 놓은 것 중 하나가 죽음 아닌가 그럴 적이 있어요.
잘 읽고 갑니다...이런 글에 ㅡ개인의 사유에 (인지)덧글함이 옳은지 한참 망설이다 혼자보다는 누군가 이런 고민을 같이 한다는게 덜 외로우실 듯 하여..

자목련 2016-02-22 10:51   좋아요 1 | URL
[그장소] 님, 고맙습니다. 이별을 인정하고 삶을 직시하고 살아가는 과정에 [그장소] 님의 댓글이 힘이 됩니다.

blanca 2016-02-20 14: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쩔 수 없이 죽음과 만나야 하는 시간들이 앞에 놓여 있는 인생이 참 무섭기도 하지만...태어난 이상 숙명이겠지요? 자목련님처럼 잘 해 나갈 수 있을런지, 자문해 보게 됩니다.

자목련 2016-02-22 10:50   좋아요 2 | URL
멀리 있다고 여겼던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걸 실감하는 날들입니다. 말씀처럼 숙명이니 받아들여야하겠지요.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것을 알아가는 게 삶인 것 같아요.

2016-02-20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2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16-02-20 1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니를 보내고, 언니가 남긴 일기장을 본 적이 있어요. 가슴이 미어진다는 게 어떤 건지 그때 알았어요. 그 일기장을 다시 펼칠 수가 없어 49재 마지막에 옷가지랑 태웠는데 지금도 후회가 되진 않아요. 10년이 지났어도 지금도 펼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이런 얘길할 때는 어둠이 함께 했는데 이젠 햇살 드는 빈 방에 허전히 앉아 있는 느낌이 들어요. 용을 쓰며 견디다 이제 힘이 빠진 탓일까요?

자목련 2016-02-22 10:44   좋아요 2 | URL
이누아 님, 고맙습니다. 같은(결코 같을 수는 없겠지요)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떤 시간은 흐리지 않는 것 같아요. 어둠이 지나고 햇살로 가득한 방을 저도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시한 번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6-02-20 2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죽음을 영원한 안식으로 이해하면 삶의 완성, 삶의 일부로 긍정할 수 있을텐데요. *^

자목련 2016-02-22 10:43   좋아요 2 | URL
머리로는 인식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지 못하는 게 아닐가 싶어요. 그러니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걸 모른 채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장소] 2016-02-22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위로받으셨다면..^^
 

 

 설 연휴가 한 입 베어 물면 절반이 사라지는 솜사탕처럼 지나갔다. 사골 국물로 끓인 떡국을 먹었고 흥미롭지 않은 특집 방송을 시청하며 보낸 날들이다. 휴일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나에게도 마치 월요일처럼 시작된 목요일이다. 아침에 맑았던 하늘은 점차 흐려졌고 지금은 얇은 비가 내리고 있다고 믿는 저녁이다. 평소보다 일찍 저녁을 먹었고 조카는 방으로 나는 거실에 남았다. 2월 11일이라니. 탁상 달력을 보고서야 가장 적은 날을 소유한 2월의 두 번째 목요일을 실감한다.

 

 TV를 켜지 않은 거실, 수명을 다하는 형광등의 존재, 음악이 흐르지 않는 블로그.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식물의 숨소리와 닿은 것 같은 저녁. 보이지 않을 뿐 조금씩 자라는 달을 상상하며 이런 시를 옮긴다. 빗소리가 들리면 좋겠다. 이 공간에 벤자민이 함께 한다면 더욱 좋겠지만 벤자민은 없다. 그러니 벤자민의 숨소리를 상상할 수 있다.

 

 

 

그녀에게 새들이 놀러오지 않은 건

다친 발을 흙으로 덮어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불안정한 초록 문신들 때문일까

아니 누구나 그녀의 손목을 잘라

물병에 꽂아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앙상하게 말라가고 있다

아무리 집중해도 숨소리는 들리지 않고

치명적인 초침 소리만 한 방울씩 이파리에 떨어진다

긴 수염 같은 새로운 길이 뚫리고

달빛을 따라 고요히 퍼지는 벤자민의 비명

 

이파리들이 형광등 불빛에 초록 거울처럼 빛난다

금이 간 거울 속엔 수족관과 벤자민

물뱀이 거침없이 활보한다

물고기들은 돌 틈에 숨어 나오지 않고

이파리를 흔드는 물속의 젖은 소리들을

내 귀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

긴 부츠를 신고 달빛이 서성인다

 

파랗게 부풀었던 벤자민이 말라간다

빛이 사라진 빈방

밤잠을 설치는 생쥐처럼

내 귀를 닮은 잎사귀 뒤쪽에서 가쁜 숨소리가

가는 지진처럼 들려온다

내가 듣고 싶은 건 단지 그녀의 숨소리일까 (「벤자민」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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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벤자민을 쓴 작가가 누구지요. 정말 시를 잘 쓰네요.

자목련 2016-02-13 14:4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배익화시인 님
「벤자민」은 김현서 시인의 시로 시집 <나는 커서>에 있습니다.
 

 

 병원에서 하루 세 끼를 남이 해주는 밥을 먹었다. 특식 비슷한 음식이 나오기도 했지만 병원 밥은 대체로 그저 그랬다. 간호하는 이의 마음을 잘 알기에 나는 아주 열심히 밥을 먹었다. 눈을 뜨자마자 세수도 하지 않고 밥 한 공기를 다 먹었고 간식을 성실하게 먹었다. 나를 보러 오는 친구들은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뜻밖에도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오징어튀김이었다. 물론 오징어튀김을 사 오는 친구는 없었고 입원해 있는 동안 오징어튀김은 못 먹었다. 퇴원 후에도 오징어튀김은 못 먹었다. 가장 먹고 싶었던 건 낙지볶음과 라면이었다. 매운 낙지볶음은 먹었고 라면은 퇴원 후에 먹을 수 있었다. 퇴원 후 약을 먹어야 한다는 이유로 하루 세 번의 끼니를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3주가 지난 지금 먹는다는 것에 대해 회의가 느껴진다. 어린 조카가 해주는 밥을 먹는 게 미안해지기도 했고 구내염을 핑계로 그저 반찬을 생략하고 밥과 김만 먹기도 하고 밥과 물 김치를 먹기도 하고 구운 고구마나 딸기 한 팩을 비우기도 한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일이 고통스러운 일상이 될 줄은 몰랐다. 복에 겨운 소리다. 통증에 익숙해진 탓이다. 고열에 대한 두려움과 많이 좋아졌다고 자만한 탓이다. 그런데도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때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게 두렵기도 하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건 요리를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쌀을 씻고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내 허기를 채우기 위해 멸치 육수를 내고 된장을 풀었다. 두 달 전에는 익숙했던 일상이 낯설게 느껴진다. 냉동실에서 발견한 우렁이랑 양파만 넣고 국인지 찌개인지 모호한 요리를 했다. 맛은 없었다. 식은 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마시듯 먹었다.

 

 입맛을 찾기 위해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며 냉장고를 채운다. 쉽게 끓일 수 있는 어묵탕,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만두, 한동안 찾지 않았던 인스타트 커피, 바나나 한 덩어리. 식재료를 곁에 두었지만 지금 가장 생각나는 건 짬뽕이다. 오징어, 홍합, 바지락과 양파로 채워진 매콤한 국물과 함께 올라오는 면발. 하필이면 나는 이런 책을 읽으며 맛을 상상한다. 작고 소박한 식탁이 주는 맛의 기쁨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책이다.

 

 

 짬뽕은 국물을 끓이는 게 아니라 볶는 것이다. 그게 불맛의 근원이다. 가정에서 그 맛을 내기는 어렵다. 그래도 직접 해먹는 맛은 또 다르다. 언젠가 짬뽕 전문점을 하는 분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맛의 비결은 무엇보다도 고춧가루라고 한다. 매운맛을 내되 지나치면 안 된다. 매운맛은 통각을 자극하고 다른 맛을 잊게 한다. 그러니 각종 음식재료의 맛과 잘 어울리기도 하기 위해서는 고춧가루를 잘 사용해야 한다 칼칼하면서도 여러 맛을 놓치지 않고 느낄 수 있게 국물을 만들어야 한다. 여러 번 다른 고춧가루를 사용해보고 나서야 제대로 된 맛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66쪽)

 

 제대로 된 고춧가루와 제대로 된 불맛이 만나 진짜 짬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맛있는 짬뽕을 먹겠다는 요리사의 의지는 꼭 필요한 양념이다. 나는 저자처럼 집에서 짬뽕을 만들 수 없다. 그저 입안의 상처가 빨리 나아 맛있는 불맛을 담아 배달된 짬뽕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집밥 백선생이 추천하는 요리책을 이곳에도 두워야 할까.

 

 

 이 공간에는 세 개의 식탁이 존재한다. 주방에 붙어 있는 식탁, 창문 가까이에 놓인 4인용 식탁, 조카가 책상 대신으로 사용하는 6인용 식탁. 이곳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마다 윤고은의 단편집 『1인용 식탁』이 생각난다. 바쁜 조카와 식탁을 공유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든다. 먹는다는 것에 부여하는 의미도 다르다. 음식물 쓰레기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같은 음식을 먹는 행위도 다르다. 조카는 사과를 껍질째 먹고 차가운 보리차를 시원하게 마신다. 잡곡밥을 할 때도 밥솥 기능을 이용하지 않고 그냥 백미로 한다. 나는 사용 설명서 대로 하는 편이고 냉장고에서 꺼낸 보리차를 데워 마신다. 조카와 나의 1인용 식탁은 이토록 다르다.

 

 맛의 근원은 간절함과 닿아 았다. 맛의 추억은 그리움과 닿아 있다. ​집밥이라는 키워드가 일상을 사로잡는 이유도 그렇다. 요리를 잘 하고 싶은 욕망도 말이다.맛있는 음식을 생각하면 저절로 좋은 재료를 넣어 만든 비싼 최고의 요리가 아니라 가족을 먹이기 위해, 좋은 사람과 함께 먹기 위해 위험하고 뜨거운 불앞에서 오랜 시간 마음을 졸이며 요리를 하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혼자 먹는 식탁이 익숙하지만 머리를 맞대고 개인 접시가 존재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그 밥상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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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1-25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쉬면서 잘 드시고 잘 일어나시기 바라요. 먹는다는 것, 엄정한 일인 것 같아요. 입병이 나면 먹는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지요.

자목련 2016-02-04 10:43   좋아요 0 | URL
입병이 나니 먹는다는 일이 감사하고 숭고한 것이구나 생각했어요. 입춘이에요, 그곳엔 봄이 더 가까이 왔나요?

사과나비🍎 2016-01-26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앞으로도 드시는 거 꼭 챙겨서 잘 드셔야 해요~

자목련 2016-02-04 10:43   좋아요 1 | URL
네, 열심히 챙겨 먹고 있어요. 사과나비 님 고맙습니다. 이르지만 명절 잘 보내세요^^

사과나비🍎 2016-02-04 13:39   좋아요 0 | URL
^^* 비록 북플로 알게 된 분이지만, 아프시다기에 글을 남기게 되더라구요~ 잘 드시고 계신다니 다행이네요~^^* 자목련님도 명절 잘 보내시길 바랄게요~^^*

조선인 2016-01-26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사히 퇴원하시고 조금씩 회복중이신가봐요. 쾌유를 기원합니다.

자목련 2016-02-04 10:44   좋아요 0 | URL
퇴원 후 게으르고 게으른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ㅎ
조선인 님은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책읽는나무 2016-01-26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프셨군요?
얼른 나으셔야죠^^
구내염은~~~우리집 아이들도 번갈아 가며 자주 생기느라 음식을 삼키지 못해 괴로워하는 심정을 알아요
그래도 옆에 있는 사람으로선 먹어야 낫지~~~~모질게 재촉을 하게 되구요ㅜ
따스한 기운이 감돌면 걷기라도 하여 체력단련을 해요! 우리^^

자목련 2016-02-04 10:45   좋아요 0 | URL
많이 좋아졌어요. 감사해요. 건강이 제일인데 매번 놓치고 나서야 다짐을 하네요, ㅎ
입춘이니 곧 따뜻한 날들이 시작되겠지 싶어요. 달콤한 하루 보내세요^^
 

 

 2015년 마지막 날 퇴원을 했다. 24일이라는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병원 생활을 뒤로 하고 병원을 나섰다. 해넘이와 해돋이를 보러 가는 흥분을 숨기지 않고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들과 함께 고속도로를 지나 큰언니네 집으로 도착했다. 큰언니 아파트에 있기로 했다. 열을 안고 퇴원한 나는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고 항생제 사용으로 인해 발진과 가려움과 함께 지냈다. 익숙한 반응이었지만 친숙해지기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퇴원 일주일 후에는 가까운 병원에서 몇 가지 피검사를 했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고 외래로 병원을 찾았다. 역시 피검사와 엑스레이를 찍고 1시간 30분 가까이 기다렸다 의사를 만났다. 염증 수치를 비롯한 모든 수치가 괜찮았고 수술 부위도 깨끗하다며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간단한 내 질의에 답변을 해주었고 2달 후 CT를 찍자고 말했다. 모든 게 감사했다.  생사를 결정하는 수술을 한 건 아니다. 그러나 8시간 이상의 큰 수술이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의사에게 계획한 대로 수술을 했다는 말을 듣고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달고 산다.

 

 이 공간에서는 조카가 나를 돌봐주고 있다. 바쁜 아이라서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니지만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며 내가 필요한 것들을 살핀다. 2주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지나치게 게으름을 부렸다. 그로 인해 살이 많이 졌고 도토리 같았던 머리카락은 아주 지저분해졌다.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고 낮잠을 자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증상은 다리가 붓는다는 것이다. 의사에게 언급했지만 친절한 답은 없었다.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스스로 약속한 리뷰를 지키지 못했고 당분간도 그러할 것이다. 집으로 도착한 택배에 어떤 책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주문한 책인데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이곳으로 두 권의 시집을 주문했다. 읽을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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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1-15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몹시 힘든 과정을 겪으셨군요. 어서 빨리 쾌차하시길 빕니다.

자목련 2016-01-23 11:27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oren 님. 갑자기 추워진 날들 건강하게 보내세요^^

사과나비🍎 2016-01-15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술하셨었군요... 회복 잘하시길 바랄게요~ 드시는 거 잘 챙겨드시구요~ 푹~ 쉬시길 바랄게요~

자목련 2016-01-23 11:28   좋아요 1 | URL
네, 사과나비 님의 댓글이 회복을 보태주네요. 잘 먹고 잘 자는 게 필요해요!!

서니데이 2016-01-15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시간이면 큰 수술이었겠네요. 앞으로는 좋아지는 일만 계속되셨으면 좋겠어요.
자목련님, 행복한 금요일 되세요.^^

자목련 2016-01-23 11:28   좋아요 1 | URL
좋아지는 일, 이 말이 정말 좋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건강하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프레이야 2016-01-15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그동안 너무 뜸해서 걱정했어요. 수술을 8시간이나 걸려 하셨다니요.ㅠ
잘 되었다니 마음 놓이지만 다리 붓는 증상은 속히 알아보시기 바래요.
잘 나으셔야 합니다. 마음 편히 쉬세요.

자목련 2016-01-23 11:31   좋아요 2 | URL
짧은 잠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구요.
모든 건 지나간다고 믿지만 여전히 그 과정이라서 때때로 지치기도 합니다, ㅎ
프레이야 님의 안부 고맙고 감사합니다!

hnine 2016-01-1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술을 무사히 마치셨다니 다행이고 회복 과정도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자목련 2016-01-23 11:32   좋아요 1 | URL
잘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지내고 있어요. hnine 님 감사합니다^^
 
조금씩 도둑
조명숙 지음 / 산지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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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남는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다. 남겨진 이들의 삶에는 죽은 자가 있다. 어떤 이에게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머물고 어떤 이에게는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오늘과 내일을 지배해버린 느닷없는 죽음, 상실을 채우려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와 상관없는 게 아니다. 그러니 저마다의 생은 슬프고 아프다. 왜 남겨져야만 하는지 따지고 물을 존재조차 없이 혼자 살아내야 하는 게 남겨진 자의 가혹한 운명일까. 조명숙의 소설을 읽다 보면 남겨진 자로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남겨진 자다. 누군가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버림받았든, 연습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했든 말이다. 잔혹한 생은 상실의 아픔을 달랠 겨를도 없이 살아야 한다고 다그친다. 버려진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이치로와 한나절」속 화자는 함께 가출을 감행할 정도로 친했지만 자살한 친구 창수의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낸다. 창수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고 주어진 생의 한계를 드러내는 할아버지를 위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갑자기 나타난 이국인 청년 이치로는 창수의 환영 같다. 놀랍게도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삶은 현실 속 어디에나 존재한다.

 

 조명숙은 보통의 그것을 소설에 아주 잘 녹여낸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 노동으로 채워진 고단한 일상, 상처 입은 이들의 내면을 담담하면서도 적확하게 말이다. 그리하여 소설을 통해 현재를 조명하는 것이다. 이제는 가시와 다르지 않은 고유명사가 된 2014년 세월호 사건 10년 후의 유가족의 일상을 그린 「점심의 종류」는 사건을 잊은 수동적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은 슬픔을 걷어갈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누군가는 그만 잊고 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지급된 보상금이면 충분하다 수군거렸다. 그러나 딸을 잃은 영애에게 삶은 2014년 4월 16일의 반복이었다. 그 어떤 것에도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없었지만 딸을 기억하기 위해 살아내야만 했다.

 

 ‘냄새, 소리, 움직임…. 한때 이 공간을 채우고 있던 냄새와 소리와 움직임을. 아무 냄새도 나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점심의 종류」, 56쪽)

 

 그러니 결코 당신의 아픔을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불확실한 죽음에 대한 애도를 끝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위로와 조언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말을 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당신을 위한 게 아니라 지켜보는 나를 위한 것이다. 「나비의 저녁」 속 서정이 친구 오윤이 선택한 사랑에 대해 축복할 수 없었던 것도 그랬다. 현실이 아닌 꿈과 이상을 좇아 사는 오윤의 남편으로 인해 자신이 구축한 안정이 흔들리는 게 싫었다.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무시할 수 없었던 차에 멀리 이사를 간 오윤이 내심 반가웠다. 종이공장의 기계에 빨려 들어가 남편이 기이하게 죽고 구례의 시골로 떠난 오윤이 종이를 만든다는 연락을 했을 때 서정의 마음은 선뜻 그곳으로 향하지 않았다.

 

 ‘종일 초지망(抄紙網)으로 한 장 한 장 종이를 뜨면서 내 마음 켜켜이 놓인 그 사람을 생각했지. 마음의 켜에서뿐만 아니라 몸의 켜에서도 아직 생생하게 그 사람이 느껴져.’ (「나비의 저녁」, 150쪽)

 

 조명숙의 소설에는 평탄한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 곧고 길게 이어진 길이 아니라 일부러 구불구불한 길만 골라서 걷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게 삶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기에 평생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조금씩 도둑」,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혼을 선택하며 의미 없는 삶을 지속하는 「사월」, 막내딸의 암 소식을 인정할 수 없어 달리는 아버지「러닝 맨」에 이어 작가 지망생의 시선으로 주변을 관찰하는 「하하네이션」에서 독보적으로 전달된다. 고아원에서 자란 작가 지망생 유는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과 체력을 관리하고 아르바이트를 세 개나 한다. 등단 후를 대비해 옷매무새도 철저하게 신경 쓰고 오피스텔의 규약도 잘 지킨다. 그러나 유는 타인의 절망과 슬픔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고 인간의 깊은 심연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진심을 가지고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것 모르고 있었다.

 

 ‘사물과 사람과 시간의 갈피 속에서 독특한 느낌을 찾아낸다는 게 쉽지 않지만, 그만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겠어?’ (「하하네이션」, 204쪽)

 

 남겨진 자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삶은 소설보다 더 치열하고 더 기막히다. 그래서 완전한 행복체를 꿈꾸기보다 몸과 마음에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를 바란다. 비탄, 좌절, 죽음으로 비워진 자리를 채우기 위해 살아내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과정을 소설로 쓰고 누군가는 소설을 읽는다. 조금 더 가까이 당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조금 더 깊이 당신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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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12-3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읽노라니 눈물이 핑~~~도네요
늘 조곤조곤 님의 글은 슬며시 깊게 다가옵니다^^

새해 인사 미리 드리러 왔다가 많은 생각을 품고 갑니다
모쪼록 오늘이 지나면 내일부터는 복만 받으시옵소서!!
건강하시길 바라며 올해보다는 좀더 나은 내년이 되시길 바랍니다^^

2016-01-15 1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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