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한 입 베어 물면 절반이 사라지는 솜사탕처럼 지나갔다. 사골 국물로 끓인 떡국을 먹었고 흥미롭지 않은 특집 방송을 시청하며 보낸 날들이다. 휴일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나에게도 마치 월요일처럼 시작된 목요일이다. 아침에 맑았던 하늘은 점차 흐려졌고 지금은 얇은 비가 내리고 있다고 믿는 저녁이다. 평소보다 일찍 저녁을 먹었고 조카는 방으로 나는 거실에 남았다. 2월 11일이라니. 탁상 달력을 보고서야 가장 적은 날을 소유한 2월의 두 번째 목요일을 실감한다.

 

 TV를 켜지 않은 거실, 수명을 다하는 형광등의 존재, 음악이 흐르지 않는 블로그.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식물의 숨소리와 닿은 것 같은 저녁. 보이지 않을 뿐 조금씩 자라는 달을 상상하며 이런 시를 옮긴다. 빗소리가 들리면 좋겠다. 이 공간에 벤자민이 함께 한다면 더욱 좋겠지만 벤자민은 없다. 그러니 벤자민의 숨소리를 상상할 수 있다.

 

 

 

그녀에게 새들이 놀러오지 않은 건

다친 발을 흙으로 덮어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불안정한 초록 문신들 때문일까

아니 누구나 그녀의 손목을 잘라

물병에 꽂아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앙상하게 말라가고 있다

아무리 집중해도 숨소리는 들리지 않고

치명적인 초침 소리만 한 방울씩 이파리에 떨어진다

긴 수염 같은 새로운 길이 뚫리고

달빛을 따라 고요히 퍼지는 벤자민의 비명

 

이파리들이 형광등 불빛에 초록 거울처럼 빛난다

금이 간 거울 속엔 수족관과 벤자민

물뱀이 거침없이 활보한다

물고기들은 돌 틈에 숨어 나오지 않고

이파리를 흔드는 물속의 젖은 소리들을

내 귀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

긴 부츠를 신고 달빛이 서성인다

 

파랗게 부풀었던 벤자민이 말라간다

빛이 사라진 빈방

밤잠을 설치는 생쥐처럼

내 귀를 닮은 잎사귀 뒤쪽에서 가쁜 숨소리가

가는 지진처럼 들려온다

내가 듣고 싶은 건 단지 그녀의 숨소리일까 (「벤자민」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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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벤자민을 쓴 작가가 누구지요. 정말 시를 잘 쓰네요.

자목련 2016-02-13 14:4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배익화시인 님
「벤자민」은 김현서 시인의 시로 시집 <나는 커서>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