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하루 세 끼를 남이 해주는 밥을 먹었다. 특식 비슷한 음식이 나오기도 했지만 병원 밥은 대체로 그저 그랬다. 간호하는 이의 마음을 잘 알기에 나는 아주 열심히 밥을 먹었다. 눈을 뜨자마자 세수도 하지 않고 밥 한 공기를 다 먹었고 간식을 성실하게 먹었다. 나를 보러 오는 친구들은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뜻밖에도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오징어튀김이었다. 물론 오징어튀김을 사 오는 친구는 없었고 입원해 있는 동안 오징어튀김은 못 먹었다. 퇴원 후에도 오징어튀김은 못 먹었다. 가장 먹고 싶었던 건 낙지볶음과 라면이었다. 매운 낙지볶음은 먹었고 라면은 퇴원 후에 먹을 수 있었다. 퇴원 후 약을 먹어야 한다는 이유로 하루 세 번의 끼니를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3주가 지난 지금 먹는다는 것에 대해 회의가 느껴진다. 어린 조카가 해주는 밥을 먹는 게 미안해지기도 했고 구내염을 핑계로 그저 반찬을 생략하고 밥과 김만 먹기도 하고 밥과 물 김치를 먹기도 하고 구운 고구마나 딸기 한 팩을 비우기도 한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일이 고통스러운 일상이 될 줄은 몰랐다. 복에 겨운 소리다. 통증에 익숙해진 탓이다. 고열에 대한 두려움과 많이 좋아졌다고 자만한 탓이다. 그런데도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때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게 두렵기도 하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건 요리를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쌀을 씻고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내 허기를 채우기 위해 멸치 육수를 내고 된장을 풀었다. 두 달 전에는 익숙했던 일상이 낯설게 느껴진다. 냉동실에서 발견한 우렁이랑 양파만 넣고 국인지 찌개인지 모호한 요리를 했다. 맛은 없었다. 식은 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마시듯 먹었다.
입맛을 찾기 위해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며 냉장고를 채운다. 쉽게 끓일 수 있는 어묵탕,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만두, 한동안 찾지 않았던 인스타트 커피, 바나나 한 덩어리. 식재료를 곁에 두었지만 지금 가장 생각나는 건 짬뽕이다. 오징어, 홍합, 바지락과 양파로 채워진 매콤한 국물과 함께 올라오는 면발. 하필이면 나는 이런 책을 읽으며 맛을 상상한다. 작고 소박한 식탁이 주는 맛의 기쁨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책이다.
짬뽕은 국물을 끓이는 게 아니라 볶는 것이다. 그게 불맛의 근원이다. 가정에서 그 맛을 내기는 어렵다. 그래도 직접 해먹는 맛은 또 다르다. 언젠가 짬뽕 전문점을 하는 분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맛의 비결은 무엇보다도 고춧가루라고 한다. 매운맛을 내되 지나치면 안 된다. 매운맛은 통각을 자극하고 다른 맛을 잊게 한다. 그러니 각종 음식재료의 맛과 잘 어울리기도 하기 위해서는 고춧가루를 잘 사용해야 한다 칼칼하면서도 여러 맛을 놓치지 않고 느낄 수 있게 국물을 만들어야 한다. 여러 번 다른 고춧가루를 사용해보고 나서야 제대로 된 맛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66쪽)
제대로 된 고춧가루와 제대로 된 불맛이 만나 진짜 짬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맛있는 짬뽕을 먹겠다는 요리사의 의지는 꼭 필요한 양념이다. 나는 저자처럼 집에서 짬뽕을 만들 수 없다. 그저 입안의 상처가 빨리 나아 맛있는 불맛을 담아 배달된 짬뽕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집밥 백선생이 추천하는 요리책을 이곳에도 두워야 할까.
이 공간에는 세 개의 식탁이 존재한다. 주방에 붙어 있는 식탁, 창문 가까이에 놓인 4인용 식탁, 조카가 책상 대신으로 사용하는 6인용 식탁. 이곳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마다 윤고은의 단편집 『1인용 식탁』이 생각난다. 바쁜 조카와 식탁을 공유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든다. 먹는다는 것에 부여하는 의미도 다르다. 음식물 쓰레기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같은 음식을 먹는 행위도 다르다. 조카는 사과를 껍질째 먹고 차가운 보리차를 시원하게 마신다. 잡곡밥을 할 때도 밥솥 기능을 이용하지 않고 그냥 백미로 한다. 나는 사용 설명서 대로 하는 편이고 냉장고에서 꺼낸 보리차를 데워 마신다. 조카와 나의 1인용 식탁은 이토록 다르다.
맛의 근원은 간절함과 닿아 았다. 맛의 추억은 그리움과 닿아 있다. 집밥이라는 키워드가 일상을 사로잡는 이유도 그렇다. 요리를 잘 하고 싶은 욕망도 말이다.맛있는 음식을 생각하면 저절로 좋은 재료를 넣어 만든 비싼 최고의 요리가 아니라 가족을 먹이기 위해, 좋은 사람과 함께 먹기 위해 위험하고 뜨거운 불앞에서 오랜 시간 마음을 졸이며 요리를 하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혼자 먹는 식탁이 익숙하지만 머리를 맞대고 개인 접시가 존재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그 밥상을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