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과 택배비가 인상되었으니 책 구매는 한 번 더, 생각한다.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들을 꼼꼼하게 살핀다. 근데 책을 꼼꼼하게 살피는 게 가능한가? 어떤 책이든 내가 읽어봐야 그 내용을 아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그래도 내가 믿는 독자나 이웃의 리뷰가 있다면 장바구니에 오래 있을 수 있다. 여기저기 마감을 알리는 적립금과 쿠폰을 총동원하여 2월 중순부터 어제까지 주문한 책들. 무료 배송을 위해 온라인 서점은 결제 시 굿즈를 쭉 보여준다. 가능한 가격대의 굿즈라나 뭐라나 하면서. 내가 필요한 굿즈는 없고, 사고 싶은 굿즈는 가격이 세고. 아 어쩌라고. 그럴 때는 그냥 택배비를 순순히 결제한다. 중고인 경우에는 빠른 결제가 제일 중요하다. 잠깐 고민하는 사이, 누군가 그 책을 먼저 구매해버리면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도착한 나의 책들. 소중하게 아끼는 책이 될게 분명하다.





최근에 가장 관심이 있는 작가는 보뱅과 비비안 고닉,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중고로 득템, 『사나운 애착』은 양장본으로 든든한 기분이 든다. 『짝 없는 여자와 도시』도 곧 구매할 것 같다. 신간 『흰옷을 입은 여인』은 믿는 독자의 리뷰까지 완벽하다. 그리고 나머지 두 권은 이주혜와 대니샤피로의 책이다. 이주혜의 소설과 번역한 책도 읽었으니 에세이도 읽어보려 한다.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란 제목, 미리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마구 든다. 대니 샤피로란 작가는 처음 만난다. 어쩌면 가장 충동적이면서도 가장 원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계속쓰기: 나의 단어로』는 쓰기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반한 건 ‘나의 단어’다. 모두의 단어가 아니 나의 단어, 나만의 언어, 나만의 글이 주는 치유와 기쁨을 안다. 쓰는 일은 곧 나를 아는 일이고 나를 아는 일은 나를 위로하는 일이다. 


소설은 한 권도 없다. 의도한 구매다. 소설은 집에 있는 세계문학, 고전을 읽어도 충분할 것이다. 쌓아둔 소설들, 사진 뒤의 책장의 책들도 읽지 않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비밀이다. 보뱅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 작가다. 사실 보뱅도 글만 보면 남성 작가의 감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성의 시선으로 보는 사회, 여성의 글쓰기, 여성의 삶을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나의 삶도 함께 생각하고 돌아보게 되는 그런 시간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이 책을 모두 강력 추천하게 될 것 같다. 한 장 한 장, 열심히 즐겁고 신나게 읽어야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3-03-03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마 고전은 싸게 살 수 있으니 이 기회에 못 다 읽은 고전이나 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책은 언제나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적으로나 돈적으로나...ㅋ

자목련 2023-03-04 09:34   좋아요 2 | URL
이 기회에 책장 읽기로 돌입해야 할 것 같아요. 위로가 되어주는 책과 좋은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3-03-03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값/배송료 인상으로 신중하게
책사기가 유행인가 봅니다.

고닉의 책은 일단 지난 겨울에
사서 쟁여 두었다가 어제 다
읽고, 리뷰까지 썼네요.

다른 고닉 여사의 책은 내일 종로
에 나가서 중고로 사는 것으로 ㅋ

보뱅의 신간은 희망도서로 도서관
에 신청해 두었답니다.

어제도 뭔 책을 찾다가 방에 책탑
을 이루고 있는 책들 보면서 절로
한 숨이 나오더라구요. 정리 정리!

자목련 2023-03-04 09:39   좋아요 2 | URL
고닉의 책 벌써 읽고 리뷰까지!
리뷰는 천천히 읽을게요.

종로에 나간다는 말이 무척 심상하게 다가오네요.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책 정리는 언제나 긴 숙제입니다. ㅎ

희선 2023-03-04 0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헌책 잘 안 샀는데, 얼마전에 살까 하고 넣어뒀는데 어느새 팔렸어요 다시 나오길 기다려야 할지 꼭 사야 하는 게 아니어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네요 누군가 사 갈 것 같다 생각하는 건 바로 팔리는 듯해요

자목련 님 사신 책 즐겁게 만나세요


희선

자목련 2023-03-04 09:4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온라인 알라딘 중고에서 책 사기는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근처에 매장이 있다면 좋겠다 싶어요.그런 분들이 부럽기도 하고요. ㅎ

희선 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문학의 무용함을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학이 아니더라도 봐야 할 것이 많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유용한 것들이 많다고 여겨서다. 그럼에도 문학은 우리의 가난한 영혼을 살찌우는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내어 소설을 읽는 일, 그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시대를 읽는 일이며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벨문학상 필독서 30』 란 제목을 보고 한 편으로는 안타깝고 한 편으로는 고마웠다. 문학 읽기, 특히나 무슨 수상작이라고 하면 어렵게 여기는 이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를 만났으니까. 


우선, 알아야 할 게 있다. 해마다 10월이면 전 세계의 관심이 모이는 노벨문학상은 작품이 아닌 작가에게 수여한다는 것이다. 생존 작가여야 한다. 작품성과 시대 상황, 작가의 환경 등 선정 기준은 하나가 아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글이 시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람이 선정하는 것이라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읽는 일은 세계적 흐름을 읽는 일과도 같다. 1901년부터 2022년까지 119명의 작가가 수상했다. 수상 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을 수 없기에 우리는 먼저 읽은 이들의 추천을 도움을 받는다.


조연호의 『노벨문학상 필독서 30』 은 노벨문학상 작품 읽기에 왠지 모를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지만 도전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아주 좋은 추천서라 할 수 있다. 저자가 선택한 30권에는 세계문학전집이나 고전 목록에서 볼 수 있는 1900년대 작품부터 최근 2022년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까지 다양하다. 시대별로 수상 작가를 분류해 관심 있는 시대를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아니, 끌리는 작가부터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다.


개인적으로 내가 아는 책과 읽은 책의 목록을 먼저 살펴보았다. 너무 좋았던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올가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가 반가웠고 고전 필독서로 많은 이들이 읽었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은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에 반해 동화로만 알고 있었던 『닐스의 이상한 모험』이나 『파랑새』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라는 건 처음 알았다. 나만 몰랐던 걸까? 


겹치는 책의 경우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언급하거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노벨문학상의 수상 작가 선정 스펙트럼이 다양해지고 넓어지는 걸 볼 수 있다. 선정에 있어 시대를 반영하려고 노력한다는 게 느껴졌다. 작가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생애를 알 수 있어 좋았다. 작품에는 전반적으로 작가의 경험이나 이상 신념 같은 게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마련이니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를 읽을 당시 자전적 소설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카뮈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전쟁에서 전사했고 문맹이며 청각장애가 있던 어머니와 살았다면 카뮈의 생 자체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그의 어머니조차 세상에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이었고, 가난했으며, 이민자였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이방인으로 살아온 카뮈는 결국 작품 속 주인공 뫼르소를 통해서 이방인의 된 자신의 삶을 고발하고 싶었던 것이다. (69쪽)


작가 이름도 낯서니 당연 작품도 그러했지만 끌리는 작품은 아프리카인 최초 수상인 월레 소잉카의 『해설자들』로 독립된 조국에 대한 해설로 작가는 고국 나이지리아의 치부를 그대로 녹여냈고 엘리트들의 민낯을 비판한 내용이다. 아프리카 출신 작가의 작품은 과거 우리 역사와 닮은 부분이 많아 공감하며 저자의 이런 글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에는 어떤 해설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수많은 채널이 있어도 단 두 가지로 압축되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 작품이 주는 의미는 바로 진정한 다양한 채널, 여러 가지 목소리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115쪽)


우리 사회에 필요한 여러 가지 목소리는 연대와 공감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있는 시대를 살고 있어 그런지 인상적인 작품은 아직 읽지 못한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였다. 작가의 『다섯 번째 아이』를 읽으면서도 아프고 안타까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족에게 벗어나 오직 자신 자신으로 존재하기를 원했던 주인공이 찾은 호텔 19호실. 외도로 의심하는 남편에게 거짓으로 외도를 인정하는 아내는 그곳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려 한다. 울프가 주장한 자기만의 방은 레싱의 19호실에서 그 목소리를 확장한다.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노벨문학상 필독서 30』를 읽다 보면 함께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일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한 일이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하다는 사실도 말이다. 이름뿐인 독서모임과 모둠이 아니라 진짜 생각을 말하고 다름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 문학의 역할이자 위치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어른에게도 좋지만 청소년과 학생에게 더욱 좋다. 이 책의 책을 시작으로 나만의 작가를 발견하고 나만의 필독서 목록을 기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성장일 것이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5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3-03-01 1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살아 있는 이에게만 수상
한다는 게 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충
분히 노벨문학상 받을 자격
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읽은 책보다 안 읽은 노벨문
학상 작가의 책이 더 많다는
건 안 비밀입니다.

자목련 2023-03-02 08:40   좋아요 1 | URL
독자와 선정위원회의 기준은 다른 것 같습니다.
읽지도 않으면서 자꾸 사들이는 책, 노벨문학상 작가의 소설이 아닐까 싶고요. ㅎㅎ

레삭매냐 2023-03-02 09:14   좋아요 0 | URL
저 말씀하시는 줄 알고
깜놀했답니다.

읽지도 않으면서 사들이는...

앨리스 먼로 책, 수상발표하던
날 뛰쳐 나가서 샀지만 여적도
안 읽고 있더라는.

페넬로페 2023-03-01 2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으네요.
저는 작년에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의 작품을 내리 4권 다 읽었는데 모두 좋았습니다^^

자목련 2023-03-02 08:41   좋아요 1 | URL
이런 책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가의 소설을 읽은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찾아보게 되고요^^

은오 2023-03-01 2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숨그네가 눈에 들어오네요! 저는 조금 지루해서 읽다 말았던 기억이 ㅋㅋㅋㅋ 이방인은 좋았고요. 소설을 많이 안읽다보니 심지어 저는 데미안도 안읽었는데.... 아니 에르노는 단순한 열정 하나 읽었네요 ㅎㅎ 근데 저 요즘 소설 좀 좋아져서 계속 읽다보면 언젠가는....!!

자목련 2023-03-02 08:42   좋아요 0 | URL
책과의 만남도 어떤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청소년 추천 도서로 데미안은 아닌 것 같고요. ㅎ
은오 님이 만날 소설 기대할게요. 3월이니 바쁜 일상이겠지 싶네요^^

그레이스 2023-03-02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면 줄줄이 사탕 될것 같네요^^

자목련 2023-03-03 09: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장바구니는 이미 가득찼고요!
 
태풍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을 때 어떤 작품을 가장 먼저 읽어야 좋을까? 읽기 전에 해야 할 질문이므로 내게는 큰 의미는 없다. 읽기로 했으니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소세키의 소설을 읽으려고 한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도련님』이 아닌 『태풍』을 선택한 건 우연이다. 읽고 나니 오히려 잘 한 일 같다. 사실,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이 책을 읽었으니 다른 작품은 얼마나 즐겁게 읽겠는가 싶은 거다. 


어떤 시대를 살든 누군가는 주류가 되고 누군가는 비주류가 된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선택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진정 주류가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태풍』 속 세 인물은 그야말로 내 맘대로 사는 사람이니까.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도야 선생, 유유자적 돈 많은 한량 나카노, 과거 도야 선생의 제자이자 나카노의 대학 친구 다카야나기. 셋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 않지만 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는 말처럼 셋은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학교 선생으로 지냈으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지 않고 잘 지냈을 텐데, 도야 선생은 이런저런 이유로 마찰을 빚고 결국엔 도쿄로 되돌아왔다. 생활을 위해 닥치는 대로 글을 쓰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야 선생은 자신이 추구하는 글을 쓴다. 이런 남편과 사는 아내는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부족함이라고는 하나 없는 도련님 그 자체인 나카노는 인생에 문제라고는 없다. 그러니 가난하고 병약한 친구 다카야나기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방법도 결국엔 다카야나기를 실의에 빠트리게 할 뿐이다. 그래도 친구라서 종종 만남을 갖는데 대화 도중에 과거 도야 선생을 학교에서 쫓아낸 이야기를 나눈다. 기회가 되면 꼭 용서를 빌고 싶다고 말이다.


도야 선생을 먼저 만난 건 나카노다. 잡지 기고 부탁으로 도야 선생이 나카노를 찾은 것이다. 둘 사이에 긴밀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고 잡지에 쓴 글을 읽고 다카야나기는 도야 선생을 찾아간다. 가난한 살림에서 벗어나지 못한 도야 선생과 다카야나기는 비슷한 점이 많다. 인문과 문학을 꿈꾼다는 게 그렇다. 현실적으로 밥벌이도 안 되는 번역이나 글쓰기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목표로 하는 방향이 갔다고 할까.


『태풍』은 세 사람이 처한 상황을 그들이 입은 옷이나 집안 묘사를 통해 설명한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방법이다. 계절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다카야나기는 나카노의 결혼식에도 홀로 눈에 띄는 옷을 입었다. 그들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다카야나기를 대하는 나카노의 태도는 묘한 부분이 있는데 뭐랄까, 다카야나기를 돕는데 악의가 전혀 없지만 이상하게 진심이 없어 보인다고 할까. 


노송나무로 만든 문짝에 은으로 만든 듯한 기와를 올린 문을 통과하면, 물을 뿌린 화강암이 깔린 비스듬한 길을 열 발자국 정도 걷는다. 포석의 끝자락에 간유리로 된 여닫이문이 좌우에서 쓸쓸하게 닫혀서, 가을이 깊어가는 저택 안이 고요하다. (46쪽)


도야 선생, 나카노, 다카야나기는 그 시대 가장 보편적인 지식인이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카노가 문화생활을 누리며 병약하고 아픈 친구를 걱정하고 자신의 일상에 초대하는 일, 도야 선생이 사람을 위하고 사회의 개혁을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쓰고 노력하는 일, 다카야나기가 문학자로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자 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누구의 삶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고 그 가치에 대해 논하기는 어렵다. 100년 전의 고민이 현재에 이르도록 같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결국 사는 일은 비슷비슷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한다. 도야 선생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를 응원하겠다는 말을 할 수 없겠다.


문학은 인생 그 자체입니다. 고통이 있고, 궁핍이 있고, 고독이 있고, 무릇 인생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곧 문학이고, 이런 것들을 맛본 사람이 문학자입니다. 문학자란 원고지를 앞에 두고 숙어사전을 참소해가면 머리를 흔들어대는 그런 여유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원숙하고 심오한 취미를 명심하고 지키며 인간만사를 기죽지 않고 적절히 다루거나 터득하는 보통 이상의 우리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처리한 방법이나 터득한 것을 종이에 옮겨놓은 것이 바로 문학서가 되는 것입니다. (100쪽)


그럼에도 나와 닮은 누군가를 만나고 그와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일이 있어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세상을 알고 조화를 배운다. 스스로를 외톨이라 인정하며 외톨이는 숭고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도야 선생, 세상이 하나의 색이 아닌 형형색색이라는 걸 인정하는 다카야나기, 자신만의 색으로도 충분한 나카노. 세상은 그렇게 다양한 인생이 만드는 것이다. 


『태풍』은 알려진 대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가운데 인기가 있는 건 아니다. 간단하게 말해 재미가 없다. 나쓰메 소세키의 팬이 아니라면 권하지 않는다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도야 선생과 아내가 티격태격하는 장면이나 나카노와 다카야나기의 만남과 대화나 그들의 분위기는 흥미롭고 나쁘지 않다. 감동의 파도가 밀려오거나 강력한 여운이 남는 건 아니지만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대신 잔잔한 지루함이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3-02-27 12: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필이면 <태풍>을 가장 먼저 읽으셨어요! 하지만 자목련 님 말씀처럼 나머지 작품이 다 정말 재미나게 느껴질 것입니다...ㅎㅎㅎㅎㅎ

자목련 2023-02-28 09:41   좋아요 2 | URL
잘 참고(?) 읽고 나니 스스로 대견했어요. ㅎ 다음 소설은 더 큰 기대로~~

2023-02-27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8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3-02-27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세키 책들은 잔뜩
쟁여 두었으나 미처 읽지
못하고 있네요.

원 먼쓰, 원 북 프로젝트
응원하는 바입니다.

자목련 2023-02-28 09:44   좋아요 2 | URL
바로 바로 읽는 건 어렵고, 감히 전작읽기는 못해도 있는 책은 읽어보려고 해요.
응원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3-02-28 0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래 맛있는건 맨 마지막에 먹는거 아니겠습니까 ㅋ 순서대로 읽는것도 좋을거 같아요 ^^

자목련 2023-03-03 09:44   좋아요 3 | URL
그렇겠지요? 맛있는 걸 먹기 위해 쓴 맛을 참아보겠습니다. ㅎ

그레이스 2023-03-03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는 갱부, 우미인초, 풀베개, 산시로가 기억에 남습니다.

자목련 2023-03-06 09:46   좋아요 1 | URL
폴베개와 산시로는 제 책장에 있어요.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기대가 됩니다^^
 


어떤 내용인지 다 안다고 여기는 책이 있다. 제목이 익숙해서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유명한 작품이 그러하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괴물을 형상화하면 제일 먼저 떠오를 이미지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이 아닐까. 그런데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괴물의 이름은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다. 그의 주인, 그를 만든 창조주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다.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프랑켄슈타인』 은 일러스트레이터 버니 라이트슨이 7년에 걸쳐 완성한 세밀하고 독창적인 펜화 작품 45점을 수록해 더욱 풍성하게 만든 작품이다. 소설은 편지 형태로 시작된다. 북극 탐험을 하던 모험가 로버트 월턴이 여동생에게 쓴 편지로 여행 중 한 남자를 구한 이야기다. 그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으로 어쩌다 북극에 오게 되었는지 월턴에게 일어난 일들을 들려준다. 빅터가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한 연구와 실험, 창조물을 만들었지만 괴물 같은 그것에 대한 애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창조물을 만들고 열병에 시달려 정신착란 증상까지 경험한 빅터, 그건 시련의 시작이었다.


가족의 죽음을 시작으로 친구와 사랑하는 연인까지 잃어야 하는 고통이 이어진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누가 이토록 빅터의 인생을 처참하게 만들었을까? 놀랍게도 빅터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만든 괴물의 짓이라는 걸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누가 믿어주겠는가.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창조물(이하 괴물)의 시점이다. 자신을 만든 주인은 버렸고 스스로 세상에 내던져진 괴물, 스스로 자신의 모습에도 놀랄진대 누가 자신을 온전히 바라봐 주겠는가. 추위를 피해 숨어든 오두막의 주인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것만 봐도 충분하다.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하는 괴물은 불이 주는 온기로, 열매를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며 계절이 변화하는 것을 느끼고 배운다. 낮에는 숨어 지내고 밤에 활동하며 가난한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며 인간의 삶을 배운다. 눈 먼 아버지를 모시며 살아가는 남매는 어렵고 힘든 살림이지만 서로를 사랑한다. 그 모습에 감동하여 몰래 장작을 패고 도와준다. 그들을 엿보며 언어를 배우고 서로에게 가르치는 책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한다. 괴기스럽다는 이유로 자신을 만든 창조주로부터 거부당한 존재. 누구나 한 번쯤 마주했을 정체성의 시기를 마주한 것이다.


인간은 부와 신분이 높은 순수한 혈통 중 하나만 지녀도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이오. 하지만 어느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랑자와 노예 취급을 받으며, 선택받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자기 능력을 낭비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할 거요!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229쪽)


그들을 관찰한 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줄 것 같았던 괴물은 용기를 낸다. 아버지가 혼자 있을 때 찾아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다. 괴물의 형체를 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모든 걸 이해하고 받아주지만 나갔다 돌아온 남매는 달랐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괴물은 혼자가 되었고 그 분노로 어린아이를 죽게 만드는데 그게 바로 빅터의 동생이었다. 빅터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진실을 밝힐 방법은 없었다. 가엾는 소녀가 범인으로 지목되었고 죽음에 이른다. 빅터와 만난 괴물은 자신과 같은 형상을 지닌 여성을 창조주에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럼 단둘이 사라져 살겠다고. 


빅터는 괴물의 부탁을 수락했다.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괴물과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악마가 된 괴물은 빅터의 소중한 친구를 죽이고 빅터는 범인으로 몰리기도 한다. 사랑하는 연인마저 죽음을 당하자 빅터와 괴물 간의 전쟁이 시작된다. 괴물을 죽이거나 빅터가 죽어야만 끝나는 전쟁. 기괴하고 무섭고 공포스러운 내용이지만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자연 경광에 대한 묘사가 그것을 잊게 만든다. 당시 여행을 누릴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빅터는 그런 여유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었다. 


19세기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니 놀랍다. 하지만 단순히 고딕소설로만 읽을 수 없다.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가부장적 모습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역할로 존재하는 여성. 빅터는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선택할 수 있지만 약혼자 사촌은 아버지와 집안을 돌봐야 한다. 그렇다면 괴물은 소설에만 존재하는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해야만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이들은 여전하다. 


빅터의 욕망과 괴물의 그것은 전혀 다르지 않다. 생명 탄생이라는 신의 영역에 도전한 프랑켄슈타인의 욕망이 빚어낸 결과는 새로운 욕망을 탄생시켰을 뿐이다. 현재 우리가 만들고 매달리는 인공지능, DNA 복제는 과연 어떤 미래를 우리에게 안겨줄까. 날로 커지는 인간의 욕망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를 영영 놓치는 건 아닐까. 공포가 몰려온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5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오 2023-02-21 14: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첫줄부터 뜨끔했어요 자목련님!! 😢 그리고 진짜 괴물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인줄 헐 ㅋㅋㅋㅋㅋㅋㅋ이거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 미루고 잊고 지냈는데 자목련님 리뷰 읽으니 드디어 읽고싶어집니다...

자목련 2023-02-22 08:30   좋아요 1 | URL
대부분의 고전은 읽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고요 ㅎ
은오 님, 맑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여전히 누워있는 건 아니겠죠?

은오 2023-02-22 13:25   좋아요 0 | URL
일어났어요!! 저 지금 책상앞!! ㅋㅋㅋㅋㅋ 목련님도요💕

햇살과함께 2023-02-21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청소년 소설 버전으로 읽었는데, 풀버전으로 읽어보고 싶네요!

자목련 2023-02-22 08:31   좋아요 0 | URL
청소년 버전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네요. 즐겁게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3-02-21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당연히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헉? 했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ㅋㅋㅋ
메리 셸리의 필력! 정말 대단한 소설이었어요^^

자목련 2023-02-22 08:32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저도 그랬어요. 어떻게 어린 나이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놀라워요^^

blanca 2023-02-22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소설 정말 아름다웠어요. 괴물 장르물인줄 알았는데 완전 오해더라고요.

자목련 2023-02-23 09: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레삭매냐 2023-02-27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셸리는 이미 오래 전에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것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것보다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혜안
을 제시한 게 아닐까요...

저는 2번으로 만났네요.

자목련 2023-02-27 11:52   좋아요 1 | URL
메리셸리에겐 선구안이 있었던 것 같아요.
놀랍고 대단한 작가구나 싶어요.

맛난 점심 드세요^^*

서니데이 2023-03-13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3-03-15 08:23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 우리가 사랑이라 말하는 모든 것들 날마다 인문학 4
정지우 지음 / 포르체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사랑이라고 답을 하겠지만 그 사랑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면 주저할 것이다. 한때 내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에 외면당했고 사랑이라는 말에 떨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을 믿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사랑은 단순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설렘에 국한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모든 감정을 대표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지우의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사랑을 안내하는 괜찮은 책이다. 


경험한 이는 알겠지만 사랑은 개별적이고 고유한 감정이다. 사랑을 느끼는 상대도 저마다 다르고 그와 사랑을 유지하고 지키려는 노력도 다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전부를 원하면서도 나의 전부를 꺼내놓는 건 거부하는 이기심, 그 안에는 나의 결점이나 단점을 보익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사랑으로 인해 다른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삶을 포용하고 이제껏 가징 않았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삶의 가치를 바꾸기도 한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누군가 위대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누구가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는. 


사랑은 내 안의 기준이나 자아만 바꾸지 않는다. 사랑은 내가 존재하는 세계, 내가 경험하는 ‘세계 그 자체’를 바꾼다. 그 세계는 사랑 이전에는 없던, 경험할 수 없던 세계이다. (46쪽)


사랑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프고 고통스럽다. 무엇 때문에 아프고 힘든지 모른다는 게 우리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때로는 익숙해서 그 익숙함이 권태로움으로 이어지고 새로운 것을 갈망한다는 이유로 또 다른 세계를 찾는다. 미래를 꿈꾸고 무엇이든 함께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하찮게 보인다. 그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멈춰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작가의 이런 표현처럼 ‘점’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과거에 우리였던 시절이 점에서 끝났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선을 긋고 그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했기에 우리가 아닌 혼자가 되었다는걸. 


서로를 옆에 세워 두거나 저기 어디에 둔 ‘점’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서로의 삶으로 끌어들여 영향을 주고받는 ‘선을 만들어 가는 운동’이 사랑이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고정된 세계가 아니라, 세계와 함께 역동하며 만들어 가는 우주다. (89쪽)


선을 만들지 못한 관계는 상처를 남긴다. 이별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사랑에 있어 이별은 큰일이 아니라는 걸우리는 배워야 한다. 이별은 어디에나 있고 우리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과제이니까. 연인과의 사랑뿐 아니라 가족, 친구, 부모 사이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이별은 감당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사랑이 끝났다고 삶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이별했다고 해서 나의 사랑이 부정당하거나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는 게 아니다. 좋은 기억, 행복했던 순간, 사랑으로 인해 성장한 자신을 남겨두어야 한다. 영원한 이별 후 우리가 끊임없이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것처럼. 


하나의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진 건 아니다. 사랑은 언제든 시작할 수 있고 이전의 사랑으로 인해 더 나은 사랑을 할 수 있다. 사랑에 대해 조금 더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고 상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하지 않으면 좋을지, 일종의 서로의 간의 협의나 계약이 필요하다는 걸 말이다. 사랑하는 일에 있어 무슨 계약이 필요하냐고 의야 해 할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무조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의존하다면 그건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다투고 갈등하고 서운함을 느낀다. 사랑하는 게 맞냐고 묻고 따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협의나 계약은 중요하다. 사랑을 지속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말이다. 중요한 것 협의나 계약을 위한 대화가 필수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더 이상 상대를 알려 하지 않고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 나에게 맞춰야 한다는 건 좋은 사랑이 아니니까.


우리가 상대방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은 상대에게 끊임없이 열려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나 또한 세월이 흐르며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 한 명의 사람이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엄격하게 규정하여 그 속에 가두기보다, 변화하는 나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고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두 사람이 하는 사랑이란 그런 서로에 대해 ‘열려 있음’을 유지하며 폭력적으로 서로를 재단하지 않는 것이다. (164쪽)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은 철학, 문학, 영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사랑을 말하며 사랑을 정의하고 사랑을 관찰한다. 사랑이라는 모호하면서도 확연한 감정이 어떻게 흐르고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줌을 통해 사랑에 대해 질문한다. 소개된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찾아보는 즐거움도 안겨주는데 내게는 모드 루이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내 사랑>을 보고 싶게 만들었다. 


저자가 안내하는 사랑이 모두 옳은 답은 아닐 것이다. 다시 생각한다. 사랑은 무엇일까. 저마다의 답은 다를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 사랑을 배우고 사랑하는 방식은 다르고 고유하니까. 그러나 그 사랑 안에서 충만하고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내 사랑의 가치를 생각하고 내 사랑이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고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므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갱지 2023-02-19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노력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언제나 실천은 쉽지 않네요.

자목련 2023-02-20 09:00   좋아요 1 | URL
갱지 님은 좋은 사랑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