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내용인지 다 안다고 여기는 책이 있다. 제목이 익숙해서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유명한 작품이 그러하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괴물을 형상화하면 제일 먼저 떠오를 이미지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이 아닐까. 그런데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괴물의 이름은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다. 그의 주인, 그를 만든 창조주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다.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프랑켄슈타인』 은 일러스트레이터 버니 라이트슨이 7년에 걸쳐 완성한 세밀하고 독창적인 펜화 작품 45점을 수록해 더욱 풍성하게 만든 작품이다. 소설은 편지 형태로 시작된다. 북극 탐험을 하던 모험가 로버트 월턴이 여동생에게 쓴 편지로 여행 중 한 남자를 구한 이야기다. 그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으로 어쩌다 북극에 오게 되었는지 월턴에게 일어난 일들을 들려준다. 빅터가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한 연구와 실험, 창조물을 만들었지만 괴물 같은 그것에 대한 애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창조물을 만들고 열병에 시달려 정신착란 증상까지 경험한 빅터, 그건 시련의 시작이었다.


가족의 죽음을 시작으로 친구와 사랑하는 연인까지 잃어야 하는 고통이 이어진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누가 이토록 빅터의 인생을 처참하게 만들었을까? 놀랍게도 빅터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만든 괴물의 짓이라는 걸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누가 믿어주겠는가.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창조물(이하 괴물)의 시점이다. 자신을 만든 주인은 버렸고 스스로 세상에 내던져진 괴물, 스스로 자신의 모습에도 놀랄진대 누가 자신을 온전히 바라봐 주겠는가. 추위를 피해 숨어든 오두막의 주인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것만 봐도 충분하다.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하는 괴물은 불이 주는 온기로, 열매를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며 계절이 변화하는 것을 느끼고 배운다. 낮에는 숨어 지내고 밤에 활동하며 가난한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며 인간의 삶을 배운다. 눈 먼 아버지를 모시며 살아가는 남매는 어렵고 힘든 살림이지만 서로를 사랑한다. 그 모습에 감동하여 몰래 장작을 패고 도와준다. 그들을 엿보며 언어를 배우고 서로에게 가르치는 책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한다. 괴기스럽다는 이유로 자신을 만든 창조주로부터 거부당한 존재. 누구나 한 번쯤 마주했을 정체성의 시기를 마주한 것이다.


인간은 부와 신분이 높은 순수한 혈통 중 하나만 지녀도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이오. 하지만 어느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랑자와 노예 취급을 받으며, 선택받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자기 능력을 낭비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할 거요!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229쪽)


그들을 관찰한 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줄 것 같았던 괴물은 용기를 낸다. 아버지가 혼자 있을 때 찾아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다. 괴물의 형체를 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모든 걸 이해하고 받아주지만 나갔다 돌아온 남매는 달랐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괴물은 혼자가 되었고 그 분노로 어린아이를 죽게 만드는데 그게 바로 빅터의 동생이었다. 빅터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진실을 밝힐 방법은 없었다. 가엾는 소녀가 범인으로 지목되었고 죽음에 이른다. 빅터와 만난 괴물은 자신과 같은 형상을 지닌 여성을 창조주에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럼 단둘이 사라져 살겠다고. 


빅터는 괴물의 부탁을 수락했다.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괴물과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악마가 된 괴물은 빅터의 소중한 친구를 죽이고 빅터는 범인으로 몰리기도 한다. 사랑하는 연인마저 죽음을 당하자 빅터와 괴물 간의 전쟁이 시작된다. 괴물을 죽이거나 빅터가 죽어야만 끝나는 전쟁. 기괴하고 무섭고 공포스러운 내용이지만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자연 경광에 대한 묘사가 그것을 잊게 만든다. 당시 여행을 누릴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빅터는 그런 여유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었다. 


19세기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니 놀랍다. 하지만 단순히 고딕소설로만 읽을 수 없다.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가부장적 모습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역할로 존재하는 여성. 빅터는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선택할 수 있지만 약혼자 사촌은 아버지와 집안을 돌봐야 한다. 그렇다면 괴물은 소설에만 존재하는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해야만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이들은 여전하다. 


빅터의 욕망과 괴물의 그것은 전혀 다르지 않다. 생명 탄생이라는 신의 영역에 도전한 프랑켄슈타인의 욕망이 빚어낸 결과는 새로운 욕망을 탄생시켰을 뿐이다. 현재 우리가 만들고 매달리는 인공지능, DNA 복제는 과연 어떤 미래를 우리에게 안겨줄까. 날로 커지는 인간의 욕망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를 영영 놓치는 건 아닐까. 공포가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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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2-21 14: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첫줄부터 뜨끔했어요 자목련님!! 😢 그리고 진짜 괴물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인줄 헐 ㅋㅋㅋㅋㅋㅋㅋ이거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 미루고 잊고 지냈는데 자목련님 리뷰 읽으니 드디어 읽고싶어집니다...

자목련 2023-02-22 08:30   좋아요 1 | URL
대부분의 고전은 읽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고요 ㅎ
은오 님, 맑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여전히 누워있는 건 아니겠죠?

은오 2023-02-22 13:25   좋아요 0 | URL
일어났어요!! 저 지금 책상앞!! ㅋㅋㅋㅋㅋ 목련님도요💕

햇살과함께 2023-02-21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청소년 소설 버전으로 읽었는데, 풀버전으로 읽어보고 싶네요!

자목련 2023-02-22 08:31   좋아요 0 | URL
청소년 버전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네요. 즐겁게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3-02-21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당연히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헉? 했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ㅋㅋㅋ
메리 셸리의 필력! 정말 대단한 소설이었어요^^

자목련 2023-02-22 08:32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저도 그랬어요. 어떻게 어린 나이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놀라워요^^

blanca 2023-02-22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소설 정말 아름다웠어요. 괴물 장르물인줄 알았는데 완전 오해더라고요.

자목련 2023-02-23 09: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레삭매냐 2023-02-27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셸리는 이미 오래 전에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것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것보다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혜안
을 제시한 게 아닐까요...

저는 2번으로 만났네요.

자목련 2023-02-27 11:52   좋아요 1 | URL
메리셸리에겐 선구안이 있었던 것 같아요.
놀랍고 대단한 작가구나 싶어요.

맛난 점심 드세요^^*

서니데이 2023-03-13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3-03-15 08:23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