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지만 맑은 공기가 흐른다. 따뜻함이 더욱 간절해진다. 이 계절은 또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걷잡을 수 없는 팬데믹의 혹독한 겨울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훗날 이 잔인함은 한 편의 영화가 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줄 게 분명하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영화는 인간의 복잡한 심연을 다룬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보고 나서 꺼내는 이야기는 인간의 그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음악, 미술, 공간, 의상, 말 그대로 영화 속 모든 것이 우리를 자극한다.
배혜경이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 가 바로 그렇다. 수필가로 탄탄한 내공을 지닌 저자가 분류한 주제에 따라 영화를 읽는다. 아련한 기억과 꼬리에 꼬리를 물듯 자연스럽게 연결된 75편의 영화를 통해 그 안의 삶과 우리의 그것을 비춘다. 어떤 영화는 너무도 똑같이 포개어지고 어떤 영화는 어긋나고 어떤 영화는 전혀 다른 삶을 비춘다. 영화를 보던 순간의 기억,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야기는 마치 그 영화를 함께 보는 듯한 착각에 빠드린다. 나도 좋았던 영화라서, 잊고 있던 감각을 깨운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 부모님 몰래 늦은 시각까지 TV를 보던 주말, 낡은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함께 이제는 어디서나 너무 손쉽게 볼 수 있는 영화라서 영화만의 고유성을 찾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면서 조금 쓸쓸해졌다. 연인과 처음 갔던 영화관에서의 떨림이나 혼자 영화관을 찾았던 그때의 절망이 떠오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영화는 기억 속 저편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75편의 영화 가운데 내가 본 영화는 너무 적어서 손에 꼽을 수도 없다. 그랬기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영화를 메모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너무 유명한 영화는 그런 이유로 천천히 보고 싶어 미루고 정작 간절히 원했던 영화는 내가 사는 소읍에서는 개봉을 하지 않아 놓치고 나중엔 기억에서 사라진다. 영화 OST로 내게 남은 영화, 책과 영화로 모두 본 영화, 나만의 영화에 속하는 영화를 목록에서 발견하는 일은 괜히 뿌듯하다. 그러니까 영화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재의 우리에게 말을 건다. 팬데믹의 시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일까.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삶,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사랑! 시간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나면 기쁘고 행복한 추억만 남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대로 그러기를 누구나 바랄 것이다. 자연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주어지고 쉬지 않고 흘러간다. 시간의 잔혹함은 그만 미루어 두고 마음의 시간에 집중하자. 우리에게 남은 시간, 남은 사랑이 지리멸렬하지 않도록. (53쪽)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보석 같은 영화 이야기다. 그럼에도 <밀양>과 <파주>는 손에 데일 듯 뜨겁게 다가온다. <밀양>의 원작을 읽어 그런 걸까. 아니면 내게 각인된 영화 속 한 장면 때문일까. 인상적인 장면 때문이라면 <흐르는 강물처럼>도 빼놓을 수 없다. 어쩌다 보니 세 영화 모두 신에 대한 부분이 있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생각하지 못한 접점이다. 저마다 다른 시선으로 마주하는 영역이다. 신에 대한 나의 생각도 일정 부분은 흐르는 강물에 흘려보내야 할 것 같다.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인연과 관습, 정석이라고 믿었던 어떤 조류이기도 하다. 우리는 강물에 모든 걸 맡기고 함구한다. 그리고 흘려보낸다. (104쪽)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 대한 글로 좋았다.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더 객관적으로 영화를 생각할 수 있었고 보고 싶어졌다. 고흐에 대한 부분, 그러니까 영화로 만날 수 있는 고흐가 많다는 걸 몰랐기에 궁금해졌다. 책에 대한 주제로 소개한 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책을 말하는 영화, 그 영화를 말하는 글이니까.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유독 내게 스며든 영화는 모두 일본 영화였다. 평범한 일생이지만 그 안의 모든 것들은 평범하지 않다는 걸 말해주는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와 소란한 마음속에서 진정한 고요를 찾기를 바라는 <안경>은 포스터도 너무 재밌다. 두 영화는 잔잔하면서도 애틋하고 무심하면서도 다정했다.
이들에겐 말이 필요 없다. 긴 대사가 필요 없는 이 영화는 말치레와 소음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사람과 고요한 내면으로 돌아가게 한다. 나를 찾으라는 게 아니라 나를 그냥 놓아 버려도 좋다. (296쪽)
영화를 읽은 일은 책을 읽는 일과 다르다. 영화를 읽는 일은 입체적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건 통찰의 힘이 필요하고 저자는 그런 능력이 뛰어나다. 영화라는 매개로 삶을 배려하고 타인을 관찰하고 진솔한 사유를 건넨다. 내가 그 모든 걸 온전히 흡수할 수 없기에 안타깝지만 공감할 수 있기에 기쁘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일도 책을 읽는 것도 그런 일이 아닌가.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이 좋은 날, 영화를 찾아 채널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