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포근한 오후다. 미세먼지가 걱정이지만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도 좋을 것 같다. 이대로 겨울 추위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겨울 속 봄 같아서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아마도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들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친구와의 통화는 언제나 반갑고 고맙다. 나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생각하면 울컥한다. 잡다하고 소소한 일들을 이야기하면 웃으면서 그 안에 숨겨진 걱정과 속상함을 알아차리는 친구다.


떨어져 있지만 항상 그립고 그리운 친구다. 우리는 어쩌다 친구가 되었을까. 긴 시간 친구로 지내지만 자주 통화를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힘겨운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친구. 그저 목소리만 들어도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그런 친구이고 싶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따져보면 어떤 공통점도 없다. 친구라는 끈이 우리를 지탱할 뿐이다. 그래서 친구가 좋다. 가족과는 무언가가 서로를 끌어당긴다. 우리의 통화는 한동안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거기 네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한다.


친구처럼 좋은 시집을 곁에 두었다. 한 권은 이혜미의 『빛의 자격을 얻어』이고 다른 한 권은 윤희상 시인의 『머물고 싶다 아니, 사라지고 싶다』다. 모두 나를 위한 선물이다. 한 권은 내가 나에게 선물한 시집, 다른 한 권은 감사한 선물이다. 시집은 내게 좋은 친구다. 거기 시집이 있어 좋다. 거기 시집이 있어 언제라도 읽을 수 있다. 거기 시집이 있어 마음의 한자리를 부드럽게 안아준다.


불을 켜두고 집을 나선다


들어서면 표정을 감추는

오래된 친구들을 위해


어제는 옛날에 대한 이야기했어

우유 투입구로 불쑥 들어오던 손

싸구려 장난감이 든 캡슐

손끝을 떠나지 않던 새

두꺼운 만화 잡지와

알코올램프, 비커, 샬레

과학실의 아름다운 이름들


꺼지지 않는 벽난로와 단단한 비눗방울

불붙은 들판과 끝없이 이어지는 날개를


가졌으나 잃어버린 것

잊었으나 사라지지 않은 것

슬픔의 다른 이름들에 대해


집이 조용히 불타고 있다


고마워요 이 방에서

너무 오래 어두웠거든요


방문을 연 채 잠이 들었다

꿈속까지 부드러운 채들이 밀려들어왔다 - (이혜미 「도형의 중심」, 전문)

어제의 빗줄기를 풀어 스웨터를 짠다


습한 공기의 타래를 풀어 헤치면

간신히 꿈에 가까워지는 온도들

눈송이들, 새가 되려는


눈송이는 겨울의 파본

일렁이며 찢기다 금세 낱장이 무르는


엮인 공기들


비밀을 누설하는 목소리로

희게 엮인 그물을 빠져나오면

날숨으로 짜인 눈송이들이

공중에서 솟구치다 곧 흐려졌다


실타래가 풀려

새로운 면과 색을 얻듯

우리는 곁에 없을 때 사랑한다


얼음을 거느리고 순간을 말할 때

휘날리다 바래가는 색들의 목록

낱장으로 쌓이는 폭설의 밤들 - (이혜미 「겨울의 목차」, 전문)











상처가 된 아픔은 흉터로 남아 이젠 한없이 흐릿해

져서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럴

수록 어김없이 그 자리에 새살이 먼저 돋는 일이 거

듭된다 어느덧 그 시절도 다 지나 받아들여지는 것

이 내키지 않다 톺아보면, 모든 것이 찰나다 이처럼

사람의 기억 장치는 바보다 그래서, 다시 산다 십 년

을 이불을 덮지 않고 살았다 눈이 내린다 어쩔 것인

가 생각하는 사이, 불현듯 지난봄과 전혀 다를 낯선

봄이 미치도록 꽃 그림자로 펼쳐진다 - (윤희상 「열 번의 겨울과 열한 번의 봄」, 전문)

빠르게 아래로 흐르던 물이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북쪽에서 온 물과

남쪽에서 온 물이 만나

몸을 섞었다


깊은 밤 어둠 속에서도 그랬다

어떨 때는 몸을 섞는 소리가 달빛 아래 가득했다


이제, 어렴풋이 키를 맞추고

마음마저 붙잡았다


가까스로 함께 어깨를 겯고,

하나가 된 물은

다시 바다 쪽으로 흘렀다 - (윤희상 「두물머리」, 전문)












시를 읽는 오후는 부드럽다. 시를 읽는 오후는 따뜻하다. 시를 읽는 오후는 시와 나 단둘의 시간이다. 그래서 달콤하고 황홀하다. 아무도 끼어들 수 없는 순간이다. 친구와의 대화처럼, 친구와 나 사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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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은 어둠과 통한다. 어둠은 암흑이며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이어진다. 새벽 두 시 어슴푸레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모자를 쓴 여인의 실루엣만 목격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우선 공포가 몰려올 것이다. 그 여인이 누구인가는 나중 문제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 뒤로 어디선가 자신을 쫓는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는 누군가를 찾는 행동은 지나친 것일까. 권정현의 장편소설 『검은 모자를 쓴 여자』 속 ‘민’에게 일어난 일이다.


주인공 ‘민’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건실한 남편과 아들 ‘동수’와 고양이 ‘까망이’, 반려견 ‘무지’까지 누가 봐도 단란한 가족의 일상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찾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다녔던 학원에서 우연하게 남편과 만나 결혼한 민은 은수를 낳고 행복했다. 유모차에 세 살 된 은수를 태우고 산책을 나갔던 약수터 근처에서 사고가 났다. 민이 화장실에 간 사이 은수가 유모차에 나와 떨어져 죽은 것이다. 그때 민은 무언가를 목격했다. 알 수 없는 형체, 빠르게 지나가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남편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민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사고일 뿐이라고 민을 달랬다.


민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더 이상 아이를 갖기 않기로 한 민과 남편은 ‘무지’라는 반려견을 키웠다. 그러다 동수를 입양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교회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했고 그것이 입양으로 이어졌다. 신기한 건 아이가 아주 갓난아이가 아니었고 아이의 품에 고양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아이를 지키려는 것처럼.


동수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출판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모든 게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그 검은 모자를 쓴 여자를 목격하지 전까지는. 민은 상담을 받던 의사를 찾아 약을 처방받고 일상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났다. 동수와 무지, 까망이와 함께 나간 산책길에서 무지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짖기 시작했고 까망이가 무지의 눈을 공격했다. 단순하게 여길 수 없었던 민과 다르게 남편은 여전히 별일 아니라 여겼다. 그건 시작이었다. 기괴하고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났고 민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민에게 남편은 여행을 권했고 집에는 친정엄마가 오셨다. 여행을 떠난 민에게 닥친 소식은 엄마의 죽음이었다. 화재로 인해 엄마가 죽은 것이다. 자기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자책하는 민은 집에 설치한 홈 카메라를 떠올렸다. 동수의 부주의로 불이 난 것으로 보였다. 엄마는 동수의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민은 모든 게 그 검은 모자를 쓴 여자 때문이라고 여겼다. 남편과도 관계가 있는 여자, 어쩌면 동수의 친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남편의 자동차에서 증거도 발견했다. 차계부에 그동안 여자와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완벽한 증거를 찾기 위해 민은 남편의 제안대로 순순히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한다.


병원에 입원한 민은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도 약은 먹지 않았다.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전직 경찰이었던 아버지에게 남편의 자동차에서 증거를 수집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확인한 자동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민이 직접 본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민은 자신이 직접 모든 걸 밝히기 위해 몰래 병원을 나왔다. 정말 이 모든 게 남편의 계락은 아닐까. 소설을 읽는 나는 남편은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고 민이 치유받기를 바랐다.


병원에서 나온 민의 앞에 나타난 남편과 여자, 그리고 동수의 모습은 진짜일까, 거짓일까. 그 어떤 것도 확인하지 못한 채 민은 도망자처럼 오래전 동수를 발견한 폐허가 된 교회에 숨어든다. 인적이 끊긴 밤에 나와 먹을거리를 사며 자신의 집을 바라본다. 그런데 만약 민이 정말 허상을 보는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검은 모자를 쓴 여자가 민이 만든 이미지라면 말이다. 섣불리 단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는 민의 망상이라 여길 수도 있고 누군가는 모두가 민을 속이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재하는 것이 허상이고 허상 또한 실재합니다. 무대 밖으로 내려가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겠지요. 모자의 안팎에 진실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것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순간 비로소 형체를 갖고 여러분을 따라다닙니다. 따라서 삶이란 모자 속 고양이를 꺼내는 일의 연속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냥 꺼내는 겁니다.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라 꺼내는 순간 결정되는 거예요.” (212~213쪽)


소설 속 민이 입원한 병원에 강연을 하는 마술사의 말처럼 모든 건 마음속에 있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실재와 허상을 구분하는 일 말이다. 모자 속에 숨겨진 고양이를 볼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고양이를 꺼낼 수 있는 이는 또 얼마일까. 모호함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미로에 갇힌 채 출구를 알 수 없는 길을 계속 걷는 느낌이라고 할까. 작가의 말 가운데 이런 부분이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글쎄, 모르겠다. 읽는 동안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를 떠올린 건 나뿐이 아닌 것이다. 몽상과 악몽 사이를 오가는 서늘한 공포에 소름이 돋는다.


이 소설은 처음과 끝이, 왼쪽과 오른쪽이, 위와 아래가, 과거와 현재가 구분되지 않고 동그라미 안에 뒤섞여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제 꼬리의 기원을 찾아, 제 꼬리를 물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진실과 정의, 시대와 역사, 슬픔과 기쁨, 잠깐 스치는 인연들, 나아가 우리 삶이 이럴 것이다. (263쪽,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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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1-17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 모자를 쓴 여자]도 읽으면 푹 빠지겠지만, 자목련님, 글에 첫문단부터 푸욱 빠져서...^^

자목련 2021-11-19 13:56   좋아요 1 | URL

얄라 님의 과분한 댓글에 하루가 신나게 열립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금요일 보내세요^^^*
 

책을 정리할 때마다 주저하는 몇 권의 책이 있다. 바로 동화책이다. 책등이 낡고 누렇게 변했지만 차마 버릴 수 없다. 책을 버리면 그 시절의 나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서다. 동화를 읽으면서 느꼈던 어떤 감정들, 그러니까 주인공과 내가 하나가 되어 울고 웃던 마음까지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라는 게 맞겠다. 그냥 저기 저 책이 있으니 혼탁해진 내 마음도 책을 펼치는 순간 맑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는다.


이서희의 책 제목처럼 어쩌면 동화를 읽어야 할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라 바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공감하고 저자가 소개한 책과 구절을 따라 읽고 밑줄을 긋게 된다. 목차를 통해 만난 반가운 제목의 동화들, 아, 이 동화를 내가 읽었고 만화로 보고 매일 기대하고 기다렸던 그 책들이다. 동화가 전하는 일종의 교훈적인 메시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모르는 어떤 나만의 마음을 동화 속 주인공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할까.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동화책은 어린 시절이 아닌 사춘기와 청소년기에 읽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고 최근에 만난 동화도 있다. 저자가 분류한 대로 5가지 키워드(잃어버린 가치를 찾아, 불안한 시간을 위하여, 모험과 불확실함 속에서, 특별한 세상을 마주하며,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며)를 차례대로 읽어도 좋고 반가움의 크기대로 만나도 좋다. 저자가 소개하고 알려주는 동화 속 명언 320가지는 모두 다 감동적이다. 이미 우리는 메마른 감성의 어른이니 그 어떤 동화라도 사실상 필요하다는 걸 잘 안다. 매일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모두 필요한 마음이니까.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 속 남매가 찾은 파랑새는 결국 집에서 키우던 멧비둘기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항상 먼 곳에서 타인의 삶에서 행복을 찾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다. 코로나로 인해 행복은커녕 작은 웃음조차 잃어버렸다고 믿는 우리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묻는 시간이다.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걸. 어쩌면 이 시기가 지나면 또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소박한 행복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행복을 전혀 알아보지 못해요. (30쪽)


여전히 가장 사랑하는 동화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 머리 앤」이 주는 희망과 긍정의 힘은 항상 우리는 웃게 만든다. 어려운 현실을 잊기 위한 상상의 나래가 다소 엉뚱하고 어른들의 눈에는 괴상해 보이지만 앤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무엇 하나 쉽게 얻을 수 없었던 앤의 인생이 가장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앤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아침은 언제나 흥미로워요. 하루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상상할 거리도 아주 많으니까요. (75쪽)


이제 저는 길모퉁이에 이르렀어요. 그 모퉁이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좋은 것이 있다고 믿을 거예요. 길모퉁이는 매력이 있어요,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까 궁금하거든요. (78쪽)


사실 어른이 되고 모퉁이는 기대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피할 수 없으니 우리는 삶이라는 모퉁이를 돌 수밖에 없다. 어떤 모퉁이가 나오더라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그러니 스물일곱 번의 수술을 한 R.J. 팔라시오의 「아름다운 아이」의 주인공 어기에게 삶은 얼마나 힘들까. 동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많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 생각은 이렇다. 내가 평범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아무도 나를 평범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173쪽)


친절이란, 참으로 간단한 일. 누군가 필요로 할 때 던져줄 수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 우정 어린 행동. 지나치다 한 번 웃어주기. (176쪽)


가장 최근에 만난 이현의 「푸른 사자 와니니」나 누구에게라도 추천하는 루리의 「긴긴밤」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혼자가 아닌 같이의 삶을 생각한다. 여성, 외국인, 장애인, 노인 등 사회 약자를 모두 품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극심한 개인주의 집단 이기주의가 팽창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게 바로 연대의 가치라는 걸 알려주는 아름다운 동화다.


와니니 무리는 그리 용맹하지 않았지만, 늘 함께해 왔다. 강해서 함께하는 게 아니었다. 약하고 부족하니까 서로 도우며 함께하는 거였다. 그게 친구였다. 힘들고 지칠 때 서로 돌봐 주는 것, 와니니들은 그것이 무리 지어 사는 이유라고 믿고 있었다. (157쪽)


어른이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알 수 없고 잘 할 수 없다. 계획은 언제나 실패하고 쉽게 실망하고 쉽게 좌절한다. 어디서 위로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놓친 마음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320개의 문장으로 만나는 동화를 통해 깨우친다. 지치고 찌든 일상을 일으켜 세우고 펴줄 것들은 때로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다. 우리 곁을 지키는 이 동화책들처럼.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속 주디의 말처럼.


저는 행복의 참된 비법을 찾았어요. 바로 현재를 사는 거예요. 한없이 과거를 후회하는 것도 아니고 미래만 꿈꾸는 거도 아니에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이에요. (210쪽)


순수했던 마음까지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한없이 가라앉은 마음을 달래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동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벅찬 감동과 환한 미소를 안겨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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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1-03 14: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책 내보낼 때 갈등 고조시키는 장르가 그림책이더라고요. 반가우세요

[푸른 사자 와니니」 「긴긴밤」을 추천해주시니, 찾아보겠습니다^^

자목련 2021-11-04 13:58   좋아요 2 | URL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책은 정말 떠나보내기 어려워요. ㅎㅎ
와니니와 긴긴밤은 참 좋은 동화라고 말씀드려요. 기회가 닿으면 만나보세요^^

그레이스 2021-12-09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리하셔도 아깝진 않으실듯 이 페이퍼 고이 간직하시면...^^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12-10 10:35   좋아요 2 | URL
넵!!
좋은 동화는 계속 이어지니 그 자리를 대신하겠지요^^

mini74 2021-12-09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강 머리 앤 ㅎㅎ저도 넘 좋아요. 축하드립니다 *^^*

자목련 2021-12-10 10:35   좋아요 2 | URL
앤은 볼 때마다 새롭고 좋아요^^

서니데이 2021-12-09 2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1-12-10 10:36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 님, 건강하고 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을 거라 생각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란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뭐랄까, 코로나 시국에 떠나지 못한 여행지에 대한 낭만 같은 걸 기대했다고 하면 맞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여성의 권리 옹호』를 썼고 너무도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셀리의 엄마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어쩌면 ‘길 위의 편지’란 제목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길 위라는 건 여행을 의미했고 낯선 곳에서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경험하는 삶에 대해 마냥 설레는 마음만 품었던 것이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이 책은 25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여행기가 맞다. 저자 울스턴크래프트가 여행한 경로를 따라 6월에서 10월 초까지 이어진 여행, 영국의 헐을 시작으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함부르크, 영국 도버로 마무리되는 여행이다. 배를 타고 떠나는 시점의 자세한 해상의 날씨, 그에 따른 저자의 솔직한 마음으로 편지는 시작된다.


여행하는 도중의 자연현상과 그것에 대처하는 선장과 선원들의 사소함부터 여행지에 도착해 묵은 숙소의 면모와 사람들에 대한 인상까지 무척 섬세하고 자세하게 기술되어 독자는 마치 그 풍경을 직접 보는 듯하다. 각각의 장소에서 느끼는 아름답고 훌륭한 자연의 모습, 나라의 사람들의 말과 태도로 알 수 있는 그들의 사회적 관습과 문화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편지라고 할까. 저자가 묘사한 북유럽의 자연은 말 그대로 웅장하고 경이롭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특별한 점은 저자의 통찰력과 사유라고 할 수 있다. 각 편지마다 저자의 마음을 일기처럼 보여주는데 때로 외롭고 때로 고독하고 때로 슬픈 감정들을 만날 수 있다. 거기다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추천하고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쓸쓸하고도 안타까운 건 그녀가 바라보는 시대의 단점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다양성과 개별성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획일된 쪽으로 편향된 사회를 미리 알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나라가 자기네 나라를 닮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행자들은 집구석에 있는 편이 낫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가 어느 정도 윤택해졌을 때라야 취향의 연마로 만들어지고 만들어지게 되는 개인의 청결과 기품의 수준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국민성을 비난하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작가들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인간 정신을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를 나타내는 종이 지구본처럼 가상의 구(球) 안에 가둬놓기 위해 계산된 듯한 독단적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탐구와 토론을 장려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58쪽)


1796년에 출간된 책이라는 걸 생각하면 무척 놀랍다. 그 시기에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사업차 여행을 떠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싶어서다. 21세기인 현재에도 그리 쉬운 결정도 아니고 실행도 어려웠을 테니까. 그렇기에 이런 부분에서는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독을 견디며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어떤 이에게도 자신의 공포와 슬픔을 말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면의 진중한 고백이라고 할까.


소멸에 대한 공포는 제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거랍니다. 실존이 종종 불행만을 고통스럽게 의식하는 것이라 해도 저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잃는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습니다. 아니, 저로서는 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기쁨과 슬픔에 똑같이 민감한 이 활달하고 들썩대는 정신이 한낱-용수철이 툭 끊어지거나 불꽃이 사라지는 순간 날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먼지가 되고 만다는 사실도요. 제 영혼을 붙들고 있는 것이 한낱 먼지라니요. 우리 마음에는 소멸할 수 없는 것이 살고 있고, 인생은 꿈 그 이상입니다. (88쪽)


쉽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한없이 다정한 책이다. 내게는 사는 동안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많이 사유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인생 대 선배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현재에 우리 곁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다.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삶의 가치와 진리에 대해 좀 더 깊이 사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읽어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배워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환경은 인간의 성격이 형성되는 거푸집 같습니다. 제가 최근까지 관찰한 바를 토대로 환경의 영향을 추론해 볼게요. 제가 지난번에 왜 성직자들은 대체로 교활하고 정치가들은 기만적일까라고 물었을 때만큼 심각하진 않습니다. 상업에만 전념하는 인간은 심미안과 정신의 위대함을 전혀 습득하지 못하거나 모조리 잃어버립니다. 기품이 빠진 부의 과시와 정서가 빠진 탐욕적 쾌락은 인간을 짐승같이 만들어, 급기야 그들은 영웅적인 성향의 모든 미덕을 우리의 본성 너머 무언가에 대한 낭만적인 도전이라 부릅니다. 사실 우리는 타인의 행복을 걱정하거나 불행을 탐색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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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에 나와 놀아주던 고양이는 사라졌다. 아픈 고양이였기에 아마도 하늘나라로 떠났을 거라고 모두가 예측했다. 그리고 이웃집 아주머니가 기르는 고양이가 제 집인 양 오빠네 집에 안착했다. 봄에 그러했고 얼마 후 새끼를 낳았다고 한다. 두 마리를 낳았다고 했는데 추석에는 한 마리만 보였다. 어미 고양이는 날씬하고 예뻤다. 새끼 고양이는 그 자체만으로 귀여웠다. 나머지 한 마리는 집을 떠났다고 했다. 어미가 그러했듯 다른 집에 가서 그 집에서 잘 살고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엄마를 닮은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추석에 마당 한쪽에 테이블을 펴고 대하를 구워 먹었다. 대하는 씻은 작은언니가 고양이들이 겁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수돗가에서 대하를 씻는데 고양이가 그냥 구경만 하고 있더라고. 작년에 있던 고양이 라면 잽싸게 한 마리를 물어서 달아났을 텐데. 대하 머리를 던져주워도 그랬다. 냉큼 다가오는 게 아니라 아주 조심스럽게 와서 맛을 보았다. 우리를 무서워하거나 그래 보이지는 않았다. 어미 고양이는 자기 혼자 먹느라 새끼를 챙기지도 않았다. 엄마가 그렇다는 걸 아는지 아기 고양이는 혼자서도 잘 놀았다. 잘 울지도 않았다. 엄마 고양이가 근처에 있어서 그랬을까. 아기 고양이는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풀을 주시했다. 풀을 뜯어 먹으려는 모양이었다.











작은언니가 사진을 찍는 동안 아기 고양이는 신나게 풀과 놀았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원하는 장소를 이동하는 모습이 참 자유로워 보였다. 자신만의 영역에서 재미나게 노는 모습이라고 할까.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것 같이 느껴졌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가는 대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작년에 살았던 고양이들은 음식을 할 때마다 창문으로 와서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애를 썼는데 아기 고양이와 엄마 고양이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적당한 시기를 보고 있을 수도 있다.


엄마 고양이의 이름은 그냥 ‘나비’다. 아기 고양이에게는 아직 이름이 없다. 아무도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고양이를 제일 좋아하고 챙기는 큰 조카가 부르는 이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만났을 때에는 아기 고양이 티를 벗고 성장한 모습으로 의젓하게 우리 앞에 나타나겠지 싶다. 그때까지 건강학 잘 자라면 좋겠다. 지금처럼 신기한 세상과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신나게 지냈으면 한다. 




엄마 고양이의 이름은 그냥 ‘나비’다. 아기 고양이에게는 아직 이름이 없다. 아무도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고양이를 제일 좋아하고 챙기는 큰 조카가 부르는 이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만났을 때에는 아기 고양이 티를 벗고 성장한 모습으로 의젓하게 우리 앞에 나타나겠지 싶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면 좋겠다. 지금처럼 신기한 세상과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신나게 지냈으면 한다. 



엄마 고양이의 이름은 그냥 ‘나비’다. 아기 고양이에게는 아직 이름이 없다. 아무도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고양이를 제일 좋아하고 챙기는 큰 조카가 부르는 이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만났을 때에는 아기 고양이 티를 벗고 성장한 모습으로 의젓하게 우리 앞에 나타나겠지 싶다. 그때까지 건강학 잘 자라면 좋겠다. 지금처럼 신기한 세상과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신나게 지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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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9-23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예전 제사 지낸다고 마루에 상 차려놓고 그 옆 부엌에서 단체로 커피마시며 작은할아버지 기다리고 있는데 동네 고양이가 수육을 물고 갔어요 ㅎㅎ 그런데 수육이 크고 무거워서 멀리 못 가고 잡혔지요. 고양이 침 묻은 수육은 어쩔 수 없이 물에 푹 넣어놨다가 동네 양이들한테 나눠준 기억이 납니다. 조상님이 동네고양이들한테 보시한거라며 웃었던 기억이~아기고양이 넘 예쁩니다. 저희 엄마는 모든 고양이는 살찐이~ 저도 잘자라길 바랍니다 ~~

잠자냥 2021-09-23 17:29   좋아요 1 | URL
수육 슉~ ㅋㅋ 생각만 해도 귀엽네요. 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1-09-24 16:47   좋아요 1 | URL
에고, 수육을 비밀 장소로 가져가지 못한 냥이네요. 덕분에 다른 고양이까지 포식했네요.
어린시절의 고양이는 생선도 잘 물고 가고 그랬는데, 할머니가 마구 싫은 소리를 했던 기억도 나요. ㅎ

잠자냥 2021-09-23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코 저 녀석 발이 정말 만지고 싶게 생겼네요...;

자목련 2021-09-24 16:45   좋아요 1 | URL
아기 고양이라 그런지 눈빛도 넘 사랑스러워요.
신기하게도, 한 쪽 발은 흰 장화를 신었어요.
다음에는 워킹 모습을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coolcat329 2021-09-23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저 앞 발 너무 치명적이네요.

자목련 2021-09-24 16:44   좋아요 2 | URL
네, 정말 귀여워요. 아직은 손이 아닌 눈으로만 보고 있어요.
좀 시간이 지나면 친해지기를 바라면서요. ㅎ

희선 2021-09-24 0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끼 고양이 귀엽네요 대하 하니 <나츠메 우인장>에서 야옹 선생이 새우튀김을 좋아한 게 생각납니다 진짜 고양이는 아니지만... 고양이가 오래오래 살면 좋겠습니다

자목련 님 명절 잘 보내셨어요 남은 구월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자목련 2021-09-24 16:43   좋아요 1 | URL
구운 것보다 생 대하를 더 좋아하더라고요. 말씀처럼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희선 님도 평온하게 지내시지요? 일교차가 심하니 특별히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