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가 한창이던 때에 읽은 책이다. 그때는 비가 조금 왔으면 싶었다. 장마철이시작되고는 쨍한 햇볕이 그립니다. 자연의 뜻은 알 수 없기에 그냥 맡길 뿐이다. 감자와 마늘은 땅 속에서 숨겼던 굵고 예쁜 자태를 세상에 드러냈다. 이제 얼마후에는 고추를 따는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을 읽지 않았더라면 논과 밭의 작물을 보면서 벌써 이렇게 컸구나, 수국을 보러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쳤을 것이다. 시골에 살면서 직접 농사를 짓지 않기에 큰 감흥을 놓친다.


올해 초 「농부와 소설가」란 다큐를 흥미롭게 시청했다. 소설가 김탁환이 섬진강에 내려가 직접 농사를 짓고 소설을 쓰고 책방을 여는 과정을 담은 다큐였다.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는 2021년 열두 달의 기록이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건 농사를 짓는 방법보다는 곡성에서 글을 쓰고 땅을 만지며 만난 하루하루와 계절의 모습이다.


서울의 집필실을 정리하고 섬진강 옆 폐교였던 곳에 ‘달문의 마음’이라는 새로운 집필실을 장만한 김탁환은 40분은 쓰고 20분은 쉬면서 눈앞에 마주한 논과 밭의 풍경을 감상하고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그것들에게 스며든다. 1월부터 12월까지 꼬박 365일을 다 채운 일기는 아니지만 어느 날엔 한 줄, 어느 날엔 하고 싶은 말들이 더 많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기쁘고 벅찬 날들의 기록이다.


숙소와 집필실을 오가는 길을 걷으며 마주한 풍경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만나는 할머니, 하나하나 품게 된 개와 고양이들. 그를 섬진강으로 이끈 농부 과학자 이동현에게 배우는 농사일. 맨발로 흙을 밝으면 손으로 직접 모를 심고 피를 뽑고 풀을 매는 모습은 유유자적한 풍경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익히는 일이다. 흙을 만지고 제철 채소를 심고 키우면서 체득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시금치와 시금치 사이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거기 흙이 있다. 시금치의 뿌리가 흙을 파고든다. 그렇게 파고들어야만, 시금치는 힘을 길러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독자도 상상력의 뿌리를 맘껏 내려야 한다. 단어와 문장과 문단에 대한 작가의 집착과 욕심이 독자를 틀에 가둬 자유를 빼앗을 때도 있다. (83~84쪽)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준비하는지 소설을 읽는 독자인 나는 상상한 적이 없다. 백 명이 넘는 사람이 등장하고 몇 년 동안 구상과 자료를 준비하고 시작했지만 초고를 버리고 다시 쓰는 마음을 어찌 알 수 있을까. 더운물에 손을 넣고, 커피를 내리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트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는 그가 곡성에서 창문을 열면 들리는 새소리와 함께 시작하면서 그가 적는 바람은 신성하면서도 뭉클하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아침에 집필실 근처에 찾아와 울어주는 새들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고, 떨어지는 물방울들에게 ‘오늘 내 글이 잘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는 마음을 갖는 것. 지극히 모자라고 어리석지만 다른 존재와 교감하는 생명체란 사실을 아는 순간은 소중하다. (86쪽)


그래, 차차 쓰면, 살면, 걸으면, 만나면 될 것이다. 오늘 아니면 내일, 내일 아니면 그 뒷날이라도. 이번에 얻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그 자리에 닿지 않더라도. 저 나무들처럼 그래, 차차. (128쪽)


곡성에서 소설을 쓰고 초보 농군으로 살면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섬진강을 걷고 탐하는 그가 들려주는 섬진강의 자연은 아름답고 황홀하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든든함이라고 할까. 11월의 강가와 습지를 상상하게 된다. 조금은 쓸쓸하면서도 오직 11월에만 볼 수 있는 풍경과 감상이다.


습지에 서면, 오감이 새롭게 작동한다. 강물은 검푸른 빛을 짙게 띠고, 겨울철새들 울음은 낭랑하며, 마른 풀과 젖은 낙엽의 냄새는 묘하고, 나무들의 껍질은 거칠고 단단하다. (362쪽)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를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성실하게 하루를 보내고 차곡차곡 인생을 살아가는지 알게 된다. 그가 판소리를 배우고 대본을 쓰고 작품을 발표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단순한 일기의 형태를 지녔지만 그의 다짐이며 계획표이자 미래를 향해 나가는 동력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곡성에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까지 냈으니까.


문득 궁금해진다. 작년에 문을 연 생태책방엔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을까. 김탁환의 밭에서는 어떤 작물이 자라고 있을까. 큰 키에 해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땅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대신 올해는 작약을 심는다고 했는데 정원에 작약꽃이 활짝 피었을까. 섬진강을 떠올리면 이제 김탁환의 달문의 마음과 들녘의 마음이 함께 따랄 올 것 같다. 언제나 그곳에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은 말할 것도 없이.


김탁환의 일기처럼 최근 작가들의 에세이(일기)가 출판의 대세인 듯하다. 작가의 개인적인 일상과 은밀함을 기대하는 독자에게 반가울 수도 있을 터.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건 좀 설명하게 복잡하다. 모든 일기는 사적일 수밖에 없다. 일기가 일기장을 벗어나면 모두의 글이 되기 때문이다. 황정은, 김연수의 일기는 기대했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행복한 시간이었고, 문보영의 개성 넘치는 글도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작가의 글이라는 이유만으로 문학적인 부분만 궁금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글쓰기의 비밀 같은 걸 들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문보영의 글에서 만난 이런 문장처럼 말이다. 


개인이 각자의 정신이 미치지 않도록 기울이는 노력의 형태는 조금씩 다를 것이다. 글만 쓰면 안 된다고, 새로운 경험이 글의 밑천이 될 거라는 말은 반만 맞다. 글쓰기는 도자기 빚기와 같다. 도자기를 빚을 때, 물레는 계속 비슷하게 돈다. 도는 행위는 유지되지만, 미묘한 손길에 변화를 줌으로써 도자기의 형태와 아름다움이 빚어진다. 그러므로 도자기를 빚는 인간에게 왜 자꾸 도냐고, 왜 자꾸 똑같은 동작만 반복하냐고, 그만 돌고 새로운 것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 사람은 거대한 반복 안에서 자신만의 내밀하고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기시대』 중에서)


내가 좋았던 일기가 모두에게 좋을 수 없고 내가 좋지 않았던 일기가 모두에게 좋지 않은 건 아니다. 모든 문학이 그러하듯이,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기도 문학이니까. 그래서 여전히 누군가의 일기를 읽고 싶다. 비밀스럽고 은밀한 이야기를 말이다. 가장 읽고 싶은 건 아직 읽지 못한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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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6-29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농부와 소설가‘ 어디서 했나요? ebs?
알았으면 저도 봤을텐데...
김탁환 작가 참 열심히 사는 작가죠.
저 힘들어서 우찌 사나 했더니 섬진강에 둥지를 틀었군요.
정말 멋지게 사네요. 책 읽어봐야겠어요.^^

자목련 2022-06-30 12:28   좋아요 1 | URL
kbs로 기억합니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확인하실 수 있을 듯해요.
김탁환 작가를 지지하는 어머님과 아내 분이 더 멋진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2-06-30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진강‘ 보고 김용택? 그랬는데
김탁환의 에세이네요
이분 소설 좋아하는데, 관심이 가네요.

자목련 2022-06-30 12:26   좋아요 1 | URL
김탁환 소설가의 소설 좋아하신다면 더 즐겁게 읽으실 것 같아요.
편안하고 좋은 글이었어요^^

그레이스 2022-07-08 18:38   좋아요 0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님~♡

자목련 2022-07-11 17:57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저도 축하드려요^^

mini74 2022-07-08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2관왕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2-07-11 17:58   좋아요 0 | URL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