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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마지막 날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연일 내린 눈이 가득하다. 조금씩 녹고 있지만 또 눈 소식이 있다. 연말은 괜히 쓸쓸하다. 숫자에 불과한 날들인데, 어쩜 우리는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한 해를 마무리하며 2010년 책 읽기를 돌아본다. 100권을 목표로 한 책읽기는 성공했다. 실은 몇 년째 100권 읽기다. 중요한 건 다양한 책읽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올해는 시집을 많이 읽지 못했다. 그러하니 리뷰를 쓰지 못한 건 당연하다. 욕심을 내서 시집을 구매했지만, 그저 곁에 있을 뿐이다. 그리고, 두 차례의 입원으로 책 읽기에 공백이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록의 공백이다. 내게 리뷰 쓰기는 기억에 관한 것이다. 좋은 느낌으로 남은 책들, 구절들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글로 남겨두는 것이다. 또한 모든 책을 소유하지 못하기에 기록은 중요한 일이다.  

 특히 아쉬운 건 정말 정말 좋았던 책에 대한 리뷰가 없다는 것이다. 6월~8월에 읽은 책들이 그러하다. 어떤 책이든 바로 쓰지 않고 게으름을 부리면 재독을 하기 전에는 끝내 쓰지 못한다. 입원하기 전에 만난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 병원에서 만난 윤대녕의 <대설주의보>, 한지혜의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 황석영의 <강남몽>, 퇴원 후 읽은 윤대녕의 <이 모든 극적인 순간>까지 그러하다. 

 나의 책읽기는 문학이 주를 이루었다.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내게 읽는 즐거움을 안겨준 소설이 많다. 황정은, 권여선, 김훈, 윤대녕, 강영숙, 윤성희,  김숨, 김이설, 박민규, 편혜영, 김영하, 등 정말
많다.  

 

 

 

 

 

 

 

 

 

 

 

 

 

 

 

 

 

 

   

 

  

 

 

 

 

  

 

   

 

 

  

 

 

  

 

 

 

 그 뒤를 이어 만난 책은 외국문학이다. <숨그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어젯밤>, <가든 파티>, <1Q84>, < 렛미인>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산문집과 여행기도 있었다. 최윤필, 박완서, 서영은, 김도언, 박근영, 윤미나, 김연미, 전미정의 책들이 기억에 남는다.     

 

 

 

 

 

  

 

   

  

 

 

 

  

 

 

 

   

 

 

인문, 과학, 철학 분야는 올 해도 손에 꼽을 정도다. 매년 인문 분야와 시를 좀 더 읽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실천은 제자리 걸음이다. 유아 서적인, 학습서나 동화책도 그러하다.    

 

 

 

 

  

 

 

   

  

 

 2011년에도 나는 책을 읽을 사고 책을 읽고 리뷰를 쓸 것이다. 책을 통해 얻는 즐거움과 위안을 알기에 책은 내 곁에 머무를 것이다. 내년에는 언제나 소망하듯 건강하면 좋겠다. 내 가족과 지인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리. 고 내가 바라는 일도 구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지기를 바란다. 

 모두 건강하고 평온한 새해 맞이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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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2 1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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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3 0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문, 사회, 예술 관련 책은 많이 읽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여행기가 많이 보인다.  떠날 용기가 없는 난 책만 읽나 보다. 여하튼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책을 골라보면 이렇다. 우선 여행기로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굴라쉬 브런치』는 곁에 두고 천천히 읽고 싶은 맛있는 책이다. 여행과 영화를 접목시킨 책으로 프라하와 카프카를 꿈꾸게 한다.

 생각해보면 산다는 게 허기를 채우는 것과 다를 게 뭐냐 싶다. 여행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결국은 서로 다른 종류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p. 60

 인문 사회 분야로 최근에 읽은 엄기호의『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은 20대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내가 그네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세대에 속한다는 게 슬프다.  조카들과의 교감이 줄어들고  거리가 점점 커진다.   

 
나는 이것이 수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됨이 쉽지 않음을 발견하는 것, 이보다 더 인문학적인 발견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 맞지 않으며, 내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발견(깨달음) 말이다.그래서 우리에게 판단과 심판의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찰의 언어이다. 그리고 나는 내 말이 가진 무게를 깨닫도록 해주는 것이 수업이라고 믿는다. p. 263 

 안현신의『키스를 부르는 그림』은 키스를 주제한 그림 이야기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숨겨진 화가의 일상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책이다. 다른 시리즈가 나온다면 만나고 싶다.

 서로에게 녹아들어 하나의 덩어리로 일체화된 두 몽뚱이는 마치 하나의 짐승 같은 모습이다. 홀로 버티기 버거운 존재들이 서로의 경계를 강하게 침투해보지만 그 몸짓은 오히려 불안하고, 채워질 길 없는 사랑의 갈망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p. 99    

 


 

 

 

 

 

 

 

 

 

 

 

 

 

 

 

 

 

 

 

  

 정민 교수가 풀어 읽은 민세 안재홍 선생의 『백두산 등척기』을 읽으면서 백두산을 만나는 시간은 조금 울컥했다. 간결한 문장으로 묘사한 1930년대 풍경은 쓸쓸했고 아름다웠다. 쉽게 읽히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읽어도 좋을 책이다. 

 여행은 한가한 일이 아니다. 높은 산에 오르고, 한바다에떠서 천지의 드넓은 기운을 마시면서 웅장하고 아득한 기상을 기르는 것은 그대로 세상에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도시와 시골, 산과 들에서 백성의 만물이 살아 숨 쉬는 실제 상황을 폭넓게 보고, 고금에 변해온 자취를 살피는 것은 사회인에게 가장 으뜸가는 책무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여행이 필요하고, 여행기도 가치가 있다. p. 5 - 서문 중에서  

 
이야기꽃이 쓴 동화『신데렐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신데렐라가 아닌 토론을 위한 책이라 하겠다. 고학년 자녀를 두었다면 아이와 함께 읽고 의견을 교환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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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중된 책읽기를 고치고 싶은데, 쉽지 않다. 그 중에서도  소설만 읽으려니 말이다. 이번에는 산문이다. 2010년에 읽은 산문집을 살펴보니, 좋았던 책들이 많았다. 내 선택을 받은 5권은 이렇다. 우선 제일 먼저 떠오른 책은 최윤필의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멋진 제목이 또 있을까. 부제는 또 어떤가.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좋다라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 아, 좋다.  

 ‘흔희들 삶을 여행에 비유하지만, 삶에서 맞닥뜨리는 세상은 새로운 여행지와 달리 대개는 외롭고 황량하다. 그것은 우리가 지나쳐갈 나그네나 구경꾼이 아니라, 불편한 시선을 무릎쓰고 어떻게든 비집고 껴 앉아야 하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세상은 그들이 마음 편히 앉을 수 있는 빈자리가 넉넉한 세상, 지금보다는 휠씬 헐겁고 느슨한 세상이라고 나는 믿는다.’ p. 313

 박완서님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편안한 글이었다. 우리네 엄마, 할머니의 삶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할까. 전쟁을 겪은 세대의 슬픔을 읽는 그런 시간들이다. 연평도 사태를 보면서 전쟁을 떠올리는 순간, 자꾸 이 책이 생각난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 나는 누구인가? 잠 안 오는 밤, 문득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물은 적이 있다.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이다. 그 두개 의 나를 합치니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 다만 그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 뿐이다.’ p. 25~26  

『나는 가짜다』는 작가들의 초상화와 글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짧은 글은 작가 각각의 개성이 묻어나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 처음 만난 작가, 궁금했던 작가들을 만나는 시간은 즐겁고 즐겁다. 거기다 그들이 직접 그린 그림까지 만나니, 괜찮은 기획이다. 

 ‘자화상이란 모름지기 이미 존재하는 육체적 외관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내면의 윤관 사시에 아슬아슬하게 맺히는,  하나의 긴장에 찬 이미지다. 모든 예술이 그럴 것이다. 외관과 내면 사이, 우연과 필연 사이, 자유와 부자유 사이, 필멸과 불멸 사이를 오락가락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p.163  권여선의 글  

  

 

 

 

 

 

 

 

 

  

 

 

 

 

 

 

 

 

 김동리의 세 번째 아내, 서영은의 진솔한 삶의 여정을 들을 수 있는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산티아고 길에 관한 책이 맞다. 그러나 여행기가 아니다.  종교가 같다면 더 좋을 책이다. 내려놓을수록 버릴수록 영혼이 풍요로워지는 삶을 만난다.

  ‘인생의 중요한 결단이란 불시에 찾아들어 남모르게 치러지는 정신적 엑스터시와 같다. 그가 코앞에 있는 수건을 흔든다고 해서, 그 수건이 빨간색인가  하얀색인가 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는 없다. 입술을 꾸욱 다물고 시위를 당긴 방향, 화살이 날아가는 방향이 중요한 것이다. ’ p 18 

 김도언과의 첫 만남은 박범신의 책에서 그리고  앞서 소개한 나는 가짜다에서 짧은 글로 만났다. 그리고 그의 소설집을 샀다. 소설집보다 먼저 만난 산문집이 바로, 불안의 황홀 이 책을 사랑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같은 날의 내 일기(블로그의 메모나 리뷰)를 찾기도 했다.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꺼내 읽어도 좋다.    

 11월은 소금 같다
 눈동자에 떨어지는 소금처럼,
 긴 황홀이다
 나뭇가지마다 흉터가 열리는,
 11월은
 비늘을 벗은 물고기처럼
 등이 따갑다 - 2005년 10월 30일 일요일 일기 전문   

 김도언이 소금같다고 말한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연평도 주민은 피난민이 되었고, 연말은 불안하게 다가온다. 모두에게 행복한 12월이 되면 좋겠다. 연평도 주민에게 의식주가 해결되면 좋겠고, 흥청망청 송년회가 아닌 조금은 경건하고 나눔이 있는 시간들이면 좋겠다. 12월은 설탕처럼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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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창비와 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을 선보였다. 창비에서는 나라별로 작가의 단편들을 모아 엮었고 문학동네에서는 장편을 선택했다. 창비 10권 중에서 영국, 러시아를 만났고, 프랑스와 중국의 단편을 하나씩 골라 읽고 있다. 문학동네 시리즈 중에서는 헤르타 뮐러, 스탕달, 오에 겐자브로만 읽었다. 발자크의 나귀가족은 아지 읽지 못했다.  해서, 특히 올해는 다양한 외국 문학을 많이 읽지 않았다. 그 중에 선택한 5권이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없겠다. 내겐 좀 더 폭넓은 책읽기가 필요하다.  
 
 여하튼 내가 선택한 5권은 이렇다. 읽어내기가 힘든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이 책을 시작으로 그녀의 책을 두 권 더 읽었다. 내게는 모두 어려웠다. 전쟁으로 붕괴된 삶은 세대를 고통을 안겨준다. 엊그제 연평도 사건은 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고픈 천사가 나를 저울에 올릴 때 나는 그의 저울을 속일 것이다. 
 아껴둔 빵처럼 나는 가벼워지리라.
 그리고 아껴둔 빵처럼 씹기 어려워지리라. 두고 봐,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간단한 계획이지만 오래 버틸테니까. ’p 251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 파티』에서 만난 단편들, 같은 제목으로 펭귄시리즈도 만나볼 생각이다.  가장 최근에 만난 바진의 『차가운 밤』이다. 자욱한 안개가 떠나지 않았던 소설이다. 역시나 전쟁이 배경이다. 아름다운 문장은 쓸쓸하고 안타깝고 슬펐다. 

 ‘그녀는 정신이 없었다.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수면에는 새하얀 안개가 가로놓여 있었으나, 그녀는 안개가 언제부터 짙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안개가 짙게 스며왔다. 질식시킬 듯한, 가슴을 채우는 듯한 기분이었다. 밤중에도 흰빛을 내며 강 언덕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그 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p. 150 


 

 

 

 

 

 

 

 

 

 

 

 

 

 

 

 

 

    

 

  매혹적인 표지로 시선을 사로잡는 두 권의 책.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마이클 온다치의잉글리시 페이션트』. 어젯밤은 단편집이고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장편이다. 어젯밤은 신선하고 기발했다. 제임스 설터의 다른 책들도 궁금하다.   

 우리는 그런 얘기를 가끔 했다.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도 바꿀 수 없는가에 대해서. 사람들은 언제나 뭔가, 말하자면 어떤 경험이나 책이나 어떤 인물이 그들을 완전히 바꾸어놨다고들 하지만, 그들이 그 전에 어땠는지 알고 있다면 사실 별로 바뀐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p 99 

 마지막 잉글리시 페이션트도  중심에 전쟁이 있다. 이런, 어찌하다 보니 세계 문학은 전쟁이 되고 말았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슬픔과 고통은 이렇게 다시 문학으로 피어나 우리 곁에 있었다

 
‘이제는 식사 시간에 그녀와 다시 이야기하고 그들이 천막 안에서나 영국인 환자의 방에서 가장 친밀감을 느꼈던 그 단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요동치는 강같은 공간을 포함하고 있었던 두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를 회상하자 그는 그녀에게 매료되었던 것만큼 자기 자신에게 매료되었다. 소년답고 진지한 사람. 나긋나긋한 팔은 그가 사랑에 빠져버린 소녀를 향해 허공으로 뻗는다. 젖은 장화는 끈을 한데 묶어 이탈리아의 문가 옆에 서 있다. 그의 팔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침대 위에는 엎드린 인물 형상이 있다.’ p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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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여기 저기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 열심히 투표를 하다가, 가만 생각했다. 내 맘대로 정하는 2010년 최고의 소설을 말이다. 문학에서 시작하여 인문까지 골라도 좋다. 우선 5권의 소설이다. 제목처럼 내 맘대로 정하는 소설이다.(순전히 내 개인적인 취향이다).  한국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었으면 좋겠다.  

 김이설의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은 사실 불편하고 읽기 힘든 소설이다. 해서, 어떤 이는 피하고 싶은 소설이다. 신춘문예 등단 소설인 '열 세 살'이나 '엄마들' 부터 그녀의 소설은 예고되었는지도 모른다. 여성의 삶을 다루는 그녀의 소설, 그 인물들이 행복해질 날이 언제 올까, 문득 궁금해진다. 곤궁하고 치욕스런 삶이 아닌, 조금은 평범한 일상을 다룬 소설도 기대해 본다.   

 암에 걸린 것도 억울한 것도 아니었다.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병이니까. 나는 그저 무수한 암 환자 중에서 한 명일 뿐이었다. p.105 

 황정은의 白의 그림자는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오늘 수상 발표가 났다. 좋아하는 작가의 수상 소식은 그녀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다. 단편집에서 느꼈던 환상과 상상의 세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여전히 리뷰는 쓰지 못했다. 아, 맑고 투명한  소설, 다시 한 번 더 읽으면 과연 리뷰를 제대로 쓸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차가운 음식 말고 따뜻 음식이 먹고 싶어요. 먹으면 배가 따뜻해지는, 따끈하고 맑고 개운한 국물이 있는 것을, 듬뿍 먹고 싶거든요. p. 147

 

 

 

  

 

 

 

 

 

 

  

 

 

 

 

 

 

 

  

 

 올 여름 나는 심하게 아팠다. 병실에서 읽은 윤대녕의 대설주의보 보리밭에 가고 싶었던 소설이다. 연두빛 고운 보리 사이를 걷고 싶었던 소설들. 봄을 떠올리는 소설이다. 최근에 만난 산문집 이 모든 극적인 순간』엔 그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역시나 리뷰를 올리지 못했다.   

 청명에 내가 보리 같은 여자를 만났군. p.27 

 권여선의 내 정원의 붉은 열매는 아름답고 촘촘한 문장들이었다. 하나의 문장을 단단한 문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장을 다듬고 다듬었을까. 나에게서 나온 나의 문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푸른른 틈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모두 색이 들어있다. (제목이 작가의 의지로 탄생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다음엔 갈색이나, 보라가 들어가면 좋겠다.   

 찻잔이나 술잔, 밥공기 같은 것이 결코 화분이 될 수 없던 시절에도, 한쪽 모서리가 기운 사다리꼴의 그 방은 내게 충분히 훌륭한 화분이었다. p.117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이다. 얼마전 하성란의 책을 삼킨 TV에 그녀가 출연했다. 방송이 끝날 무렵 시청했기에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그는 쓰지 말라고 한다고 했다. 글을 쓰면서 더 행복해져야 하는데 작가의 삶은 점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면서 말이다. 그래도 써야 한다면, 죽을 각오로 쓰라는 말이리라. 재미있는 소설이었고 글쓰기를 다룬 소설이라 더 의미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낭독한 부분은 이렇다.  

 글쓰기 모드의 필요조건이라는 게 있을까. 금방 색각나는 건 일단 날씨가 너무 더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이나 보리 파스테르나크가닥터 지바고 유리 지바고를 상상해보면 좋겠다. 날씨와 소설은 누가 뭐래도 상관관계가 있다. 그리고 너무 배가 불러도 안 되고 너무 배가 고파도 안 된다. 배가 부르면 문제의식을 상실하고 배가 고프면 꼬르륵거리는 소리 때문에 글 쓰는 데 집중을 못 한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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