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실에 있어요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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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삶에 완벽하게 만족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어쩌면 만족 같은 것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냥 살아갈지도 모른다. 원하는 삶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 말이다. 그럼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생각하고 나가면 되는 거 아닐까. 알다시피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왜 이리 삶은 어렵고 버거울까.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아오야마 미치코의 소설 『도서실에 있어요』 속 인물들의 현실적인 고민도 우리네 사정과 너무도 비슷하다.


사실 제목의 ‘도서실’이라는 단어 때문에 궁금한 소설이었는데 기분 좋은 답을 들은 것 같다고 할까. 도서실에 무엇이 있다는 걸까. 도서실의 비밀 같은 걸까. 도서실에는 사서가 있었다. 책을 찾는 이에게 추천도서 목록과 함께 양모 펠트로 직접 만든 부록을 건네주는 이상한 사서 고마치다. 문화센터의 역할을 하는 '하토리 커뮤니티 센터’에 강의를 들으러 오거나 그 안의 도서실을 찾는 이들의 사연을 들려준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도서실에 찾아오는 이들의 고민과 마치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듯한 고마치의 부록에 대한 따뜻하고 정겨운 이야기다.


지방을 떠나 도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여성복 판매원으로 목표도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도모카, 앤티크 잡화점을 꿈꾸면서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가구업체 경리 료, 아이를 낳고 일찍 복귀했지만 잡지 편집이 아닌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아 일과 육아로 지친 나쓰미, 그림을 잘 그려 전공까지 했지만 구직은 어려운 현실에 속상한 백수 히로야, 유명 과자 회사에 다니다 퇴직 후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 무기력한 마사오까지 평범한 이들이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거나 간절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더 잘 알 것 같아 안타깝다. 그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찾은 도서실에서 사서 고마치를 만나고 그녀가 건네는 부록을 받는다. 컴퓨터를 배우러 온 도모카는 그림책과 프라이팬을, 여자친구를 따라 강습회에 온 료는 식물에 대한 책과 고양이 인형을, 주말에 아이와 함께 온 나쓰미는 별자리 책과 지구본을, 엄마의 심부름으로 프리마켓에 왔다 도서실에 들른 히로야는 자연 도감 비슷한 책과 비행기를, 바둑을 배우로 왔다가 관련 책을 빌리러 온 마사오는 시집과 게를 받았다. 책과 양모 펠트 인형이라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고마치가 권해준 책 때문인지 대충 식사를 때우던 도모카는 그림책 속 요리를 직접 하기 시작했고, 료는 직장을 다니면서 여자친구와 잡화점을 열 준비를 하고, 육아와 일로 고민하던 나쓰미는 자신이 원하던 편집자로 이직한다. 료는 도감 속 사진을 따라 그리다 자신감을 얻고 커뮤니티 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마사오는 퇴직 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알게 된다. 하나같이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같았다.


나는 그 파란 뭉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구는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아침과 밤이 지구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찾아가는’ 것이다. 지금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어딜 가고 싶은 걸까? (204쪽)


치에의 가방에서,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게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지금껏 줄곧 앞으로, 앞으로 걸어왔다. 인생은 세로로 뻗어 있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옆으로 걷는 풍경에는 무엇이 보이려나. (365쪽)


저마다 다른 형태의 고민이지만 결국엔 나를 움직이는 힘에 대한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라고 하면 맞을 듯하다. 나쓰미와 마사오의 생각이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매일 자전하는 지구처럼, 옆으로 걷는 게처럼,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내게도 ‘쿵‘ 하고 뭔가 내려앉는 순간이다.


“하지만 저는 무언갈 알고 있지도,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에요. 모두들 제가 드린 부록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죠. 책도 그래요. 만든 이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부분에서 그곳에 적힌 몇 마디 말을, 읽은 사람이 자기 자신과 연결 지어 그 사람만의 무언갈 얻어내는 거예요.” (368~369쪽)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고마치가 있지만 내면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렇듯이. 힘들면 잠시 멈춰도 좋고 한 걸음 떨어져 바라봐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소설이다. 인생에 있어 길은 하나가 아니고 새로운 길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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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12-24 17: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열심히 읽으시고 글도 꾸준히 쓰시는 자목련님!!
예전부터 알던 분들이 이렇게 활동하시는 모습 아주 보기 좋습니다.
올해도 수고 많으셨어요,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기 바라고
내년에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자목련 2021-12-25 15:58   좋아요 0 | URL
라로 님, 응원의 댓글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항상 공부하시고 도전하시는 라로 님의 일상에 감탄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1-12-24 19: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메리 크리스마스 하세요♡

자목련 2021-12-25 15:56   좋아요 0 | URL
나무 님, 감사합니다.
해피 크리스마스~~
행복한 오후 이어가세요^^*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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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방문객」의 일부)


정현종의 시 「방문객」의 일부처럼 한 사람을 알게 되는 일은 진정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와 관계를 맺는다는 일은 나를 보여준다는 일이고 나 역시 그에게 가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 관계는 일생에 몇 번이나 올까.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내는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 그의 일생을 지켜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며 강요하지 않고 관계를 지속하는 일,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영원할 것 같은 앤과 조지의 우정이 한순간의 결별로 이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앤’과 ‘조지’는 1968년 대학교에서 만났다. 기숙사의 같은 방을 쓰는 사이였다. 앤과 조지는 비슷한 게 하나도 없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앤, 똑똑하고 예쁘고 모든 게 완벽했다. 조지는 그 반대였다. 서로 다른 둘은 어떻게 친해질 수 있었을까. 달라서 친해졌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어쩌면 그 역시 평생의 과제인지도 모른다. 가까웠다가 멀어지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소설 속 앤과 조지처럼.


앤이 바라던 삶은 자신과 정반대의 삶이었다. 가난하고 약자인 삶을 강력하게 바라고 원하는 앤을 조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완벽 그 자체인 부모를 원망하고 무시하는 앤이라니. 자신의 아버지처럼 가정을 버리지도 않았고 엄마처럼 폭력과 욕을 일삼 지도 않는 다정하고 친절한 부모를 왜 그렇게 싫어할까. 사실 이 궁금증은 이 소설의 축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로 앤이 부모와 자신의 환경을 증오하고 경멸하는지 말이다.


소설은 조지의 시선으로 현재와 과거를 교차로 이어간다. 1968년 집을 떠난 홀가분한 기분, 반전시위, 인권운동, 히피, 마약에 취했던 순간들, 앤과 끊임없이 마음을 나누던 시간이 필름처럼 스쳐가고 사회적 이슈와 정치적 문제도 빠지지 않는다. 그것을 대하는 앤의 격렬하고 단호한 태도까지. 그런 이유로 때로 혼란스럽다. 그러나 결국은 ‘앤’이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 조지와 앤 둘 사이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걸 알게 된다. 그러니까 결국은 앤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 앤이 살아온 삶에 대한 기록이다. 앤을 통해 당시 미국 사회의 복잡한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다루는 사회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앤이 사랑한 한 남자로 인해 조지는 앤과 결별한다. 앤보다 열 살이나 많은 흑인 남자, 결별의 이유는 사소했지만 그 사소함에서 앤은 조지가 흑인을 대하는 편견을 보았다고 판단한다.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라 해도 걷잡을 수 없다. 조지는 자신만의 삶에 집중한다. 1학년을 마치고 그만둔 학교로 돌아가고 연애를 하고 가출했다 돌아온 여동생을 돌본다. 처음부터 자신의 삶에는 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다 조지의 삶에 앤이 스며든다. 앤이 경찰을 죽인 사건이었다. 경찰이 남편을 과잉진압하고 폭력을 가하고 총을 쏘았기에 앤은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을 총으로 쏜 것이다. 백인 여성이 경찰관을 살해한 사건, 죄를 시인하지 않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앤의 단호함. 변호를 거부하며 자신의 행동의 당당함을 주장한다. 앤은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낸다. 감옥에서 앤은 오히려 평온하다. 약자가 있고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앤이 감옥에 있는 동안 조지는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두 번의 결혼을 하고 딸과 아들을 두었다. 일어난 사건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과 다르게 조지는 대학시절 처음 만났던 앤을 떠올리며 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옥에서 앤이 자유로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왜 그토록 부모를 미워하고 약자를 위한 삶을 살고 싶어 했는지 조지는 이제서야 비로소 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독자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의 삶을 극단적으로 앤과 조지의 그것으로 분류할 수 없지만 그래도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부류일까 생각한다. 소설의 제목인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에 대해서도 말이다. 가늠하건대 앤이 아닐는지. 소설에서 앤을 ‘시몬 베유’와 ‘개츠비’와 비유하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인데 사실 그 부분에서 앤을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었다. 앤이 선택한 삶이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녀의 삶은 존중 받고 사랑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조지의 삶 또한 그렇다.


불평등과 차별이 여전한 세상이다. 여성으로 살아내기란 더욱 힘듦을 체감한다. 수많은 앤과 조지를 생각하면 울컥해진다. 우리 역시 앤과 조지이기 때문이다. 내 삶에 찾아온 특별한 방문객을 헤아린다. 앤과 조지처럼 나에게도 그런 소중한 우정이 있어 감사하다. 지켜보며 응원하고 때로 질책하며 나를 사랑하는 이들. 사랑하는 친구, 자매, 닉네임으로 존재하는 이들까지. ‘누구와 알고 지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589쪽)란 소설 속 문장처럼 내 인생에 그들과 알고 지내며 살아간다는 게 감격스럽다.


많은 것들로 채워졌고 그 이상의 것들을 말하며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하여 자꾸만 뭔가 더 설명하고 싶은 소설이다. 하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말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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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4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저도 이책!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설!!
꺼내 놓지 못할 정도로! ㅎㅎ

가족 모두 행복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
⠀()_/)
⠀(。ˆ꒳ˆ)⠀
ଫ/⌒づ🎁

자목련 2021-12-24 16:39   좋아요 1 | URL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이 조금씩 좋아집니다. ㅎ
스콧 님, 즐겁고 평온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해피 크리스마스~~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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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익숙해지면 빛의 소중함을 잊는다. 어둠이 전부였던 걸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그 어둠을 걷어낼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 희미한 빛이 시작일 것이다. 꺼질 듯 희미한 빛, 설사 꺼졌다 하더라도 빛이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면 충분하다. 빛을 기억해 낼 수 있으니까. 김호연의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그런 빛 같은 소설이다. 밝고 환한 온기를 전하는 작은 빛 말이다. 거기 빛이 있으니 어둠은 사라지고 빛을 향해 나갈 수 있다. 엉뚱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다.


소설은 제목처럼 편의점을 배경으로 그곳의 사람들 이야기다. 편의점 사장, 편의점 알바, 편의점 손님이 모두 주인공이며 화자가 되어 그들의 사연을 들려준다. 청파동 골목의 작은 편의점 ‘ALWAYS’에서 벌어지는 크리마스의 기적 같은 이야기라고 할까.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던 ‘독고’ 씨는 사장 염 여사의 지갑을 찾아준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술에 찌든 그에게 염 여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게 해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아르바이트생 시현은 사장의 지시가 맘에 들지 않지만 매일 저녁 8시에 찾아오는 독고를 상대한다. 이상한 건 독고가 조금 늦으면 걱정되고 신경이 쓰인다. 도시락을 먹고 주변 청소를 해준 탓일까. 그런 독고가 야간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는 습득력이 빨랐다. 물건 파악도 잘 하고 한 번 알려주면 모두 잘 따라 했다. 시현은 점점 그가 궁금하다. 그건 독자인 나도 마찬가지다. 뭔가 대단한 과거가 있을 것 같은 호기심.


소설은 이처럼 독고란 인물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편의점을 중심으로 이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자칭 ‘아싸’인 시현에게 편의점은 자신만의 시간을 위한 공간이다. 오전 알바를 하는 50대 선숙은 대기업을 그만두고 영화감독 교육을 받다가 백수로 전전하며 게임만 하는 아들이 걱정이다. 가장 역할을 하는 엄마의 마음도 모르는 아들 때문에 화가 날 지경이다. 거기다 이상한 알바 독고까지. 그런데 동네 할머니를 도와주고 물건을 배달하는 그의 행동이나 속상할 때 마시라고 내미는 ‘옥수수수염차’가 선숙을 기분 좋게 만든다. 이상하게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아들에 대한 말들을 털어놓는다. 가만히 듣고 있던 독고가 말한다.


들어주면 풀려요. (108쪽)


책을 읽던 나는 순간 울컥한다. 들어주면 풀린다는 말이 나에게 건네는 말 같았다. 대화 자체가 사라진 가족의 일부에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들킨 것 같았다. 정말 독고는 어떤 사람일까. 쌍둥이 딸을 둔 가장이자 영업을 하는 40대 경만에게도 그는 옥수수수염차를 권한다. 집에 가기 전 혼술의 자유를 느끼는 경만은 그가 사장질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편의점에 오는 쌍둥이 딸들이 하는 말들을 전해주고 술을 끊을 수 있다고 독려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편의점 손님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그들이 원하는 걸 주려고 노력했다. 새벽마다 찾아오는 극작가 인경에게도 그랬다. 인경이 찾는 도시락을 챙겨주는 그가 불편했지만 손님을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궁금해졌다. 독고와 편의점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하다 그녀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수 있었다. 정말 묘한 편의점이다.


작가는 편의점의 일상을 섬세하게 묘사해 독자를 그곳으로 이끈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과 함께 도시락과 옥수수수염차를 먹고 만 원에 네 캔인 맥주를 계산대에 놓고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나와 우리였다는 걸 인정한다.


누구나 한 번쯤 실패하고 좌절하고 절망한다. 어디 한 번뿐일까. 수없이 많은 실패에 넘어지고 일어나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 내민 손, 건네는 말 한마디가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된다. 어쩌면 식상하고 긍정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이 벼랑 끝에 서 있는 이들에게는 절실하다.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지난가을과 겨울을 보낸 ALWAYS 편의점에서, 아니 그전 몇 해를 보내야 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 그들을 보며 혼잣말하며 서성였고 괴로워했으며, 간신히 무언가를 깨우친 것이다. (252~253쪽)


독고에게 염 사장이 그랬고 편의점을 찾는 이들에게 독고가 그랬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순간, 온통 어둠뿐이라 여기는 순간에 우리가 기댈 곳은 아마도 소설 속 ALWAYS 편의점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항상 환한 빛을 밝히는 그곳. 소설이 아닌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그런 곳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무람없이 가서 말을 건네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당신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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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12-17 09: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도서관에 대기가 너무 많아 빌릴 수가 없더라구요.
구입해서 아이랑 같이 읽어볼까 합니다.

들어주면 풀려요...저도 울컥🥲

자목련 2021-12-18 12:18   좋아요 0 | URL
아이랑 읽어도 좋을 소설이에요.
들어주는 게 왜 이리 어려울까요, ㅎ
쿨캣 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희선 2021-12-18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편의점 불빛이 따스한 곳도 있겠지요 편의점도 사람이 오고가는 곳이니 정이 오고가기도 하겠습니다 사람하고 잘 지내지 못해도 사람은 다른 사람과 이어져 있기도 하네요 그걸 잊지 않아야 할 텐데...


희선

자목련 2021-12-18 12:19   좋아요 1 | URL
누군가에는 편의점이 그러할 테고 누군가에게는 다른 어딘가가 그러하겠지 싶어요.
희선 님, 날씨가 차네요. 건강하고 포근한 오후 이어가세요^^

2021-12-19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0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0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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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얀 마텔의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르는 질문이다. 질문은 삶의 분명한 목적을 알고 사는 이가 있을까로 이어졌다. 존재함과 동시에 그냥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연작소설이라 설명해도 좋을 얀 마텔의 소설은 묘하고 독특하다. 그 독특함은 내게 난해함이었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끄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의 여정은 고단했지만 흥미로웠고 슬프고도 애통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모두 세 명의 주인공의 삶을 들려준다. 그들의 연결점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고 그것들의 의미하는 바는 같은 듯 다르다. 「1부 집을 잃다」는 1904년 리스본에 사는 토마스의 이야기다. 고미술 박물관 학예사로 연인인 도라와 아들, 그리고 아버지를 잃었다. 상실의 슬픔은 신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 그는 뒤로 걷는 일로 그것을 실천하다. 하루하루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던 그는 박물관에서 17세기 사제의 일기를 발견한다. 일기 속 십자고상을 찾아 떠난다. 소설의 제목인 ‘포르투갈의 높은 산’ 근처의 교회에 있다고 단정한다.


인간은 고난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눈을 뜨게 해줄까? 고난의 결과로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될까? (「1부 집을 잃다」, 127쪽)


부자인 숙부의 자동차를 타고 시작된 여행은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다. 자동차가 기괴한 물체로 인식되었고 정작 토마스는 운전을 할 줄 몰랐다. 가는 곳마다 구경꾼은 모여들고 토마스는 그들을 피해 달아나는 형국이었다. 휘발유를 구하는 일도 어려웠다. 급기야 자동차는 망가지고 불이 붙고 토마스는 아이를 치고 만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토마스는 도망을 택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교회에서 찾은 사제의 십자고상은 그에게 침팬지였다. 그가 그토록 찾았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2부 집으로」의 주인공은 포르투갈의 의사로 부검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온갖 서류로 가득한 병원에 두 여인이 찾아온다. 에우제비우의 아내 마리아와 남편 라파엘의 부검을 부탁한 여인 마리아. 아내는 그에게 복음서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이 얼마나 비슷한지 설명한다. 하지만 에우제비우는 아내의 설명이 지루할 뿐이다. 아내가 돌아가고 그를 찾아온 또 다른 노부인 마리아.


부검에 참여한 마리아에게 에우제비우는 과정을 설명하지만 그녀는 발부터 시작해달라고 말한다. 그럴 수 없다고 설명하다 포기하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시작한다. 마리아는 죽은 남편과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에우제비우에게 들려준다. 첫 만남, 결혼, 아이의 죽음까지 담담하게 말한다. 마리아의 아들이 「1부 집을 잃다」에 등장한 토마스가 차로 친 아이였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 죽은 아이를 곰이라 부르며 겨울잠을 자는 거라고 말했던 라파엘. 아이를 잃은 후 부부가 겪은 상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살았는지 천천히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아이와 남편과 같이 잠들기를 원한다.


1부와 2부 모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등장한다. 3부에서도 마찬가지다. 「3부 집」의 주인공 1984년의 캐나다에 사는 상원 의원 피터도 아내 클래라를 잃었다. 아들 부부는 이혼을 했고 피터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우연한 기회에 방문한 동물원에서 침팬지 오도를 만난다. 운명처럼 오도에게 끌린 피터는 오도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더 이상 피터는 캐나다에 살 이유가 없었다. 오도를 데리고 그의 고향 포르투갈로 떠난다. 말 그대로 험난한 여정이었다. 포르투갈에 도착해 말이 통하지 않는 그곳의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집을 구한다. 피터와 다르게 오도는 빠르게 적응하며 자신만의 삶을 방식을 유지한다. 그런 오도의 자유로움에서 피터는 돌고 돌아 편안한 집에 온 기분을 느낀다. 오도는 마을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는다. 여인들은 오도에게 먼저 말을 건다. 피터는 마을을 관찰하다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장례 조문 행렬이 마을을 지나 교회로 향할 때, 그는 그것을 처음으로 발견하다. 많은 조문객들이 뒤로 걷고 있다. 그것은 슬픔의 표현으로 보인다. 길을 따라 내려가고, 광장을 가로지르고, 계단을 오르면서, 그들은 슬픔을 곱씹으며 수심에 젖은 얼굴을 옆으로 기울이고 뒤로 걷는다.( 「3부 집」, 374쪽)


모든 퍼즐이 제자리를 찾는 듯하다. 토마스의 반발, 라파엘의 애통, 피터의 슬픔이 도달한 곳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걸. 그러나 정작 책 어디에서도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찾을 수 없다. 높은 산은 어디에 있는가. 저마다 찾아 헤매는 높은 산은 실재하는 것일까.


이른 오후, 그들은 ㅡ 지도에 따르면 ㅡ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도 도착한다. 공기는 더 서늘하다. 피터는 어리둥절하다. 산이 어디 있지? 그가 예상한 것은 겨울 색을 입은 우뚝 솟은 알프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숲이 높은 골짜기 사이로 숨어 있고, 봉우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들쭉날쭉하고 황량한 사바나도 아니었다. 피터와 오도는 초원에 제각각 자리를 잡고 앉은, 거대한 잿빛 암석들이 솟아난 평원을 지나간다. 어떤 바위는 2층 건물에 닿을 만큼 높다. 어쩌면 바위 옆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변이 산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바위는 길게 뻗어 있다. (「3부 집」, 319쪽)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찾으로 애쓰는 것도 같을 것이다. 찾을 수 없어서 더욱 애태우는 그것. 아이러니하게도 삶은 그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돌아 운명처럼 이끌린 세 명의 이야기. 죽음의 애도와 상실에 대해 말하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삶이란 무엇인가 묻는다.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결코 쉬운 소설이 아니다. 그래서 더 매혹적인 지도 모른다.


정녕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수많은 답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랑이다. 소설의 흐름처럼 집을 잃고 집으로 돌아와 비로소 발견한 집에 안착하는 일.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사랑이며 그 끝에도 사랑이 있다. 놀랍도록 눈부신 소설의 여러 문장 가운데 이 부분을 오래 읽고 기억하려 한다. 우리가 거하는 집, 그 안을 밝히는 따뜻하고 환한 사랑에 대해서.


사랑은 방이 많은 집이다. 사랑을 먹이는 방, 사랑을 즐겁게 하는 방, 사랑을 씻기는 방, 사랑에게 웃음을 입히는 방, 사랑을 쉬게 하는 방. 이 방들은 또한 웃음을 위한 방, 이야기를 듣는 방이거나 비밀을 털어놓는 방이거나 단란함을 위한 방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새로 들어온 식구들은 위한 방들도 있다. 사랑은 집이다. 매일 아침 수도관은 거품이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나르고, 하수구는 말다툼을 씻어 내리고, 환한 창문은 활짝 열어 새로이 다진 선의의 싱그러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1부 집을 잃다」,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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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2-14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는데 리뷰 보니 읽었네요.;;;

얄라알라 2021-12-15 13:21   좋아요 2 | URL
애서가 그레이스님, 얼마나 많이 읽으셨으면^^


자목련 2021-12-16 09:43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정말 그레이스 님은 대단하십니다.
저는 이 소설이 아름답지만 어려웠습니다. ㅠ,ㅠ

그레이스 2021-12-16 15:21   좋아요 0 | URL
;;;;

얄라알라 2021-12-15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페이퍼는 글씨체도 장평도 눈에 편해서 읽기가 참 좋아요. 닉네임과 어울리는 활자^^
장평 넓히는 건 어떻게 하시는 지 궁금하네요. 따라해보고 싶은 따라쟁이^^:;

scott 2021-12-15 13:27   좋아요 2 | URL
저도 .🖐 자목련님 글씨체 따라하고 싶습니돵
알라딘에서 이런 글씨체 기능 없는데 ^^

자목련 2021-12-16 10:01   좋아요 2 | URL
아, 그런가요?
저는 서재가 아니라 블로그에서 작성하고 복사하는 편이거든.
그래서 딱히 장편 넓이는 방법은 잘 모르겠어요. ㅠ
폰트는 Courier new 입니다.

자목련 2021-12-16 10:02   좋아요 2 | URL
스콧 님, Courier new는 알라딘에도 있습니다.
설명을 잘 해드려야 하는데...

새파랑 2022-01-07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당선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2-01-10 08:36   좋아요 2 | URL
새파랑 님, 저도 축하드리며 활기찬 한 주 시작하세요^^

mini74 2022-01-07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무슨 책 사실지 궁금 ㅎㅎ 축하드립니다 ~

자목련 2022-01-10 08:37   좋아요 1 | URL
사고 싶은 책은 항상 너무 많아요. ㅎㅎ
미니 님, 축하드리며 맑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1-0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님~~

자목련 2022-01-10 08:38   좋아요 1 | URL
저도 많이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2-01-07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자목련 2022-01-10 08:38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건강한 월요일 시작하세요^^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 - 영화가 묻고 심리학이 답하다,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김혜남 지음 / 포르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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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만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삶에 대해 알고 싶기 때문이다. 유머와 즐거움으로 가득 찬 영화에도 슬픔이 있고 고단함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 예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인간의 심연에 닿는 것처럼.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박사가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에서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 역시 인간의 마음이다. 쉽게 들여다볼 수 없어서 잘 모르고 어려운 그것. 영화라는 질료를 토대로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설명하고 그에 따른 분석을 이끌어내며 성장할 수 있도록 알려준다.


모두 34편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데 최근 개봉된 작품보다는 그 이전의 작품이 대다수다. 저자의 10~20년 전 원고를 뒤늦게 책으로 출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작품이 아니라도 해서 문제 될 건 없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그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본질적인 고민과 삶에 대한 의문은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끌리는 영화, 좋았던 영화, 궁금한 영화를 먼저 읽어도 큰 무리는 없다.


살면서 사랑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때가 있다. 모든 게 사랑으로 응집되는 순간들, 기쁨으로 채워지기만 바라는 순간들 말이다. 하지만 사랑이 이별의 수순으로 끝나기도 한다. 그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고통스럽다. 사랑했던 기억만을 안고 아름답게 이별하면 좋겠지만 머리의 생각은 가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영애와 유지태 주연의 <봄날은 간다>에서 쪼잔하고 유치한 행동을 일삼는 유지태처럼 말이다.


실연은 일상을 빛이 사라진 어둠의 세계로 전락시킨다. 그 과정에 개인차가 있겠지만 단 번에 벗어나기는 어렵다. 아마도 지금 이별 중이거나 이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라면 저자의 이런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사랑에 국한된 건 아니다. 어쩌면 모든 관계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친구와 다투고, 오래된 이들과 관계를 단절할 때 상처를 받는 이유도 비슷하니까.


우리가 사랑할 때 자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릴 때 자아가 수축하고 감소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랑할 때 느낀 충만함이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허탈하고 공허해지는 것이다. 사랑 중에 느꼈던 합치의 희열은 반대로 실연후의 외로운 자아를 더욱 상처받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연인이 함께 만든 우리라는 세계는 이제 나라는 원소로 환원된다. 자신만이 상대의 유일한 사랑이라 여겼던 행복감이 사라지고, 고갈되고 무가치하며 무의미한 자신만이 홀로 남는다. 실연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에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자아 중심부를 강타하여 그것을 흩트리고 부수어버리기도 한다. (「사랑의 종말이 마치 죽음처럼 느껴질 때」30쪽, <봄날은 간다> 중에서)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들의 사랑에 스스로를 대입시킨다. 타자를 통해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좋은 인생 교과서가 된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경험하지 못한 부분,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과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 이런 영화를 보면 좋을 것 같다. 노년의 부부에게 찾아온 돌봐야 할 아이와의 시간. 영화에서 불화한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주변에서 흔한 모습이다. 딸이 남자친구의 아들을 부모에게 맡긴다. 내가 부모의 입장이라고 맘에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돌봄의 시간에서 부모는 딸의 어린 시절을 기억할 게 분명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모르고 온전히 저자의 소개에 따라 짐작하고 상상한다.


우리가 삶을 지루해하거나 따분해하지 않는다면, 주변에 돌봐야 할 사람이나 일이 있다면, 또 피할 수 없는 상실을 감수할 만큼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으며 성숙하다면 늙는다는 것은 그리 어렵거나 두려운 일이 아니다. 노년을 향한 행진은 유아 시절부터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동안 겪어온 수많은 상실과 이별은 인생 최후의 상실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를 충분히 준비시켜주었다. (「시간이 모여 황금빛 호수를 이룬 곳에서」141~142쪽, <황금 연못> 중에서)


무기력하게만 여기는 노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스스로 포기한다면 삶은 앙상한 가지처럼 쉽게 부러지고 말 것이다. 뭔가 생산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관계를 돌아보며 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한다면 노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사와 즐거움이 충분하지 않을까.


영화를 말하는 책이 주는 즐거움은 영화제 수상작은 물론이고 좋은 영화를 다시 만나는데 그치지 않고 한 번 더 감동하고 치유받는 일이다. <가위손>, <굿 윌 헌팅> , <러브레터> , <흐르는 강물처럼>, <왕의 남자>, <박하사탕>, <기생충> 같은 영화를 다시 찾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제목만으로 익숙한 영화도 많이 글로 영화를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기회가 닿으면 보고 싶은 영화는 <더 도어>였다. 과거의 한순간으로 돌아가 지난 삶을 수정하고 싶은 모두의 욕망을 잘 보여준 영화라고 여겨진다. 소재나 구성도 독특하고 그 안에 담긴 사유도 훌륭한다. 물론 이 모든 건 저자의 소개 덕분이다.


세상에는 완전히 악한 사람도, 완전히 선한 사람도 없으며,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흘러가며 윤회한다. 우리는 종종 시간을 되돌린다면 모든 것이 나아질 거라 생각하지만, 결국 우리는 자신의 선택들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다.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언제나 남을 수밖에 없다. 때로 잘못된 선택을 통해 배워나가면서 그만큼 성장하고 오늘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일 테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을까」155쪽, <더 도어> 중에서)


정신분석 전문의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도 훌륭하다. 균형 잡힌 해설이라고 할까. 영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지는 느낌을 찾을 수 없다. 영화의 매력을 잘 살리고 있어 이제껏 만나지 못한 영화에 대한 갈증도 해소시킨다.


영화 속 인물은 현실 속 우리와 닮았기에 쉽게 빠져들어 공감할 수 있다. 현실에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을 영화를 통해 만났을 때 어쩌면 그랬을 수 있겠다 하는 유연한 생각을 안겨준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그런 건 아닐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인간의 내면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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