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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하는 여자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2월
평점 :
정말 오랜만에 몰입하며 소설을 읽었다. 소설을 읽지 못하는 시간이 안타까울만큼, 얼른 할 일을 하고 책을 집어 들고 싶어서 안달을 떨었다.
<바느질 하는 여자> 요새는 도통 찾아보기 힘든 여자의 모습이 아닐까! 모든 것이 흔해서 낡지 않은 옷가지들이 재활용품으로 수북히 쌓인다. 미싱으로 들들 박아 대량 생산된 옷가지들이 좌판으로 널려 있다. 심지어 90% 할인 매장에서 유행과 동떨어진 옷들이 널브러져 있다.
양말에 구멍이 나면 어김없이 기어 신던 몇십년 전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구멍난 양말, 목이 늘어진 양말들도 쉽게 버리지 못했던 적이 있었나 싶게 옷장은 가득 채워져 있다.
내 어린시절의 기억 속에도 실타래에 감긴 실들, 내 두 손에 올려져 있던 실타래, 풀 먹이고 마름질하고 다듬이질 하던 엄마의 모습이 간혹 떠오른다. 한참 어릴때는 대부분 집에서 옷을 지어 입었었다. 엄마도 옷을 꽤나 잘 지었다고 들었는데 워낙 집안 대소사가 많아 옷 만드는 일은 따로 옷 잘 짓는 집에서 해다 입었다고 들었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도 옷 욕심이 엄청나게 많으셔서 옷장으로 철마다 해놓은 옷들, 한참 묵혀둔 모시 등등 별별 것들이 자개장에서 쏟아져 나왔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것들 정리하는데만도 고생을 많이 한 엄마는 요새 본인 옷가지들을 틈틈이 정리하신다.
소설을 거의 읽어갈즘에 이 긴 소설이 끝이나는 게 아쉬웠다. 좀 더 금택과 화순의 이야기를 붙잡고 싶었다. 아니 이 소설 속에 나온 수많은 바느질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책장을 덮는 게 정말 아쉬웠다.
책을 들고 보기에 손목이 뻐근할 정도로 두껍다. 하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흡입력있는 소설은 정말 처음인 듯 오랫만이었다.
바늘 하나에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꿰고 있을 줄이야,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가볍게 읽을 수 없는 깊이가 전해지는 소설이다.
몇 년 전 김숨 작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물‘이라는 소설이었다) 그때도 범상치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바느질 하는 여자>는 정말 최고이다. 소설 속에 쓰인 문장들을 읽는데 내 눈앞에 한복집거리가, 우물집 풍경이, 금택과 화순의 얼굴이, 그녀들이 다닌 학굣길이 그려졌다. 누비바느질을 하고 있는 수덕의 고요한 자태가, 마당에 널려 하늘거리는 염색천들이, 부령할매 수의점 앞에 걸어 둔 수의가,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듯 했다. 금택과 화순의 두려움과 욕망도 마치 내 것인양 읽혀졌다. 오후내내, 저녁을 먹는내내, 아이들도 남편도 내 눈앞에 있었지만 나는 온통 바느질 하는 여자를 생각했다.
한참 몰입하며 읽고 있는데 남편이 ˝숨은 쉬는 거야?˝하고 물으며 어깨를 툭 쳤다.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집요하게 이 책을 읽고 있는지 깨달았다.
김숨 작가의 집요함에 홀려 다른 어떤 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사서 봤어야 했던 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빌려 읽은 게 미안했다. 이 소설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까 싶었다.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소설가들이 떠올랐는데 그들 중 진심으로 최고의 소설이고 최고의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심지가 굳은 금택이, 내 마음대로 작가의 모습일 것 같다고 상상하면서 그런 사람이니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 라고 생각하다가, 이런 소설은 정말 아무나 쓰는 게 아니지, 라고 생각을 고쳤다.
밑줄 박박 긋고 싶은 구절들이 너무 많아 특별한 문장 하나 둘 고르기가 쉽지 않다. 모든 문장이 정말 너무 좋다. 천천히 공을 들여 필사해 보고 싶은 책이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듯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고 싶다.
어머니가 누비대 위에서 누빌 선을 따라 바늘땀을 뜨는 광경은, 물수제비를 뜨는 광경과 흡사했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로 던진 돌이 수면 위를 담방담방 튀기어 가면서 파문이 일듯, 바늘이 옷감 위를 튀기어 가면서 바늘땀이 떠졌다.
어머니의 눈속눈금자는 단골들의 미묘하게 달라지는 치수를 그때그때 정확하게 짚어냈다. 반년에 한 번, 1년에 한 번꼴로 누비옷을 지어 입기 위해 우물집을 찾는 단골들은 살이 내려 있거나, 올라 있었다.
옷감용 천들은 재료가 같아도, 그것을 짜는 과정에서 다른 느낌의 천이 되었다. 한 명주여도 풀을 얼마나 먹이고, 다듬이질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윤기와 질감과 짜임의 촘촘한 정도가 달라지듯. 감나무 잎과 대나무 잎이 다른 것처럼 생판 다르기도 했고, 소나무 잎과 전나무 잎이 다른 것처럼 미미하게 다르기도 했다. 곰취와 참취가 같은 취이면서도 향이 다른 것처럼 달랐던 것이다.
한 땀만 더 뜨면 떠 넣으면 된다는 심정으로 매달려 봐. 한 땀이요? 한 땀만......떠도, 떠도 끝이 나지 않으니 딱 한 땀만 더 뜨면 된다는 심정으로 뜨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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