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을 다르게 보는 매력적인 철철 넘치는 작품, 역시 박민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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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무당벌레와 나밖에 없다 
추위를 피해 이 방에 숨어들기는 마찬가지 
 
방바닥을 하염없이 기어가다 
무료한 듯 몸을 두집고 버둥거리다 
펼쳐놓은 책갈피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갑자기 기억이라도 난 듯 
뒤꽁무니에서 날깨를 꺼내 위이잉 ㅡ 털기도 한다 
 
작은 전기톱날처럼 
마음 어딘가를 베고 가는 날개 소리 
 
겨울 햇살이 점박이등을 비추고 
그 등을 바라보는 눈가를 비추면 
내 속의 자벌레가 
네 속의 무당벌레에게 말을 건넨다 
 
조금은 벌레인 우리가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는 어떤 것일까 
 
냄새를 피우거나 
서로의 주위를 맴돌며 붕붕거리는 것? 
함께 뒤집혀서 버둥거리는 것? 
암술과 수술을 드나들며 
꽃가루를 헛되이 일으키는 것? 
 
구석진 창틀에서 말라가기 전까지 
조금은 벌레인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온기는 어떤 것일까 
 
노루꼬리처럼 짧은  
겨울 햇살 
한줌 
 
-------------------------------------------------------------------------------------- 
 
옥수수밭이 있던 자리  
 
어제까지 열려 있던 문이 닫혔다 
바람에 소리를 내던 옥수수밭이 사라져버렸다 
옥수수가 사라지면서 
흔들림도, 허고도 함께 베어졌다 
허공은 달빛을 안을 수 있는 팔을 잃었다 
소리내어 울 수 있는 입술을 잃었다 
갑옷과 투구 부딪치는 소리, 
석탄을 지닌 산줄기가 먼저 폐허가 되듯이 
열매는 실한 순서대로 베어져갔다 
밑둥의 피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밭은 더 어두워질 것이고 
성근 열매들은 여분의 삶을 익혀갈 것이다 
 
피 흘리는 허공, 
희고 붉고 검은 옥수수알, 
수확한 옥수수를 자루에 넣는 손, 
푸른 자루를 실은 트럭이 산모퉁이를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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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사과 
 
어떤 영혼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붉은 절별에서 스며나온 듯한 그들과 
 
목소리는 바람결 같았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흘러가는 구름과 풀을 뜯고 있는 말, 
모든 그림자가 유난히 길고 선명한 저녁이었다 
 
그들은 붉은 절벽으로 돌아가며 
곁에 선 나무에서 야생사과를 따주었다 
 
새가 쪼아먹은 자리마다 
개미들이 오글거리며 단물을 빨고 있었다 
 
나는 개미들을 훑어내고 한입 베어물었다 
달고 시고 쓰디쓴 야생사과를 
 
그들이 사라진 수평선, 
내 등 뒤에 서 있는 내가 보였다 
 
바람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그들이 건네준 야생사과를 베어물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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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집안 일을 하다보면 "여보, 나 좀 도와줘."하고 소리칠 때가 있다. 그럼 남편은 집안 어딘가에서 "왜, 무슨 일인데..."하고 대꾸해온다. 그렇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게 새삼 좋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은 혼자서 열심히 살아간다고 잘 살아갈 수 있늘 곳이 아니다. 나만 혼자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면 되는 것이 아니란 얘기를 했다.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자식 교육 문제라고, 교육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했던게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었다는 얘기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결국 나도 스트레스 주지 않겠다고 열심히 놀리다가 정말 현준이나 현수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하고 세월을 흘려 보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잠깐했다. 세상이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는 늘 진보라고 생각해왔는데 어느순간 보수의 탈을 쓰고 앉아 있기도 하고 나는 늘 평등을 얘기해왔는데 어느날엔 권위를 따지기도 했던 부끄러운 인간이었다는 걸 알았다. 

이 에세이가 마음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부끄러운 기억들을 모조리 끄집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것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들을 꺼내 놓고 반성하고 다른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 수 있을까?  

정치에 관심도 별로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고 그들이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도 잘 몰랐는데 이 책을 보고나니 어렴풋이 그런 곳이었구나 짐작을 해볼 수 있었다. 세상은 참 이상하기도 하지만 재미있기도 한 것 같단 생각도 함께 한다. 

이런 저런 것들 다 제쳐두고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여보, 나 좀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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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9-04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 책 제목을 보곤, 결국 '여보가 안 도와줬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6월초 친정에 가면서 봤는데 아직도 리뷰를 안 썼네요.ㅜㅜ

꿈꾸는섬 2009-09-05 00:18   좋아요 0 | URL
리뷰 쓰긴 부담스러워 페이페에만 올리려구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참 소탈한 성격이 면면이 드러나서 참 좋더라구요.

같은하늘 2009-09-05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인간적이지요? ^^
다시 한번 뵙고싶네요...

꿈꾸는섬 2009-09-05 00:32   좋아요 0 | URL
같은하늘님도 늘 이시간을 즐기시는군요.^^ 반가워요.ㅎㅎ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없는 시간을 쪼개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오랜만에 만난 박민규, 그의 글이 갖고 있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야유와 조롱, 뭐 그런 시선이 좋았다. 그리고 이 책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도 만나게 되니 더없이 반갑다. 

그와 그녀, 요한. 그들의 아픈 상처를 들여다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 못생긴 엄마의 상처가 자신의 상처가 되었다. 배우의 길을 가는 아버지를 위해 헌신하며 살았는데 아버지는 잘나가는 배우가 되면서 처자식을 버렸다. 그렇게 엄마와 아들은 상처를 받았다. 

그녀, 못생긴 외모의 소유자.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모욕하고 상처준다. 그녀의 삶 자체가 모욕과 상처의 연속이었다. 

요한, 예쁜 여배우 엄마, 백화점 회장의 첩으로 숨어 지내다 어느날 자살을 선택한 엄마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산다. 

그런 그들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이야기는 실로 적나라하다. 

   
 

 세계라는 건 말이야, 결국 개인의 경험치야. 평생을 지하에서 근무한 인간에겐 지하가 곧 세계의 전부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산다는 게 이런 거라는 둥, 다들 이렇게 살잖아... 그 따위 소릴 해선 안 되는 거라구.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이야. 아무도 너처럼 살지 않고, 누구도 똑같이 살 수 없어. 그딴 소릴 지껄이는 순간부터 인생은 맛이 가는 거라구.164쪽

 
   
   
 

모두가 열망하는 파티에 집에서 입던 카디건을 걸치고 불쑥 갈 수 있는 인간은 진짜 부자거나, 모두가 존경하는 인간이거나 둘 중 하나야.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은 아예 가지 않아. 자신을 받쳐줄만한 옷이 없다면 말이야. 파티가 끝나고 누구는 옷이 좀 그랬다는 둥, 그 화장을 보고 토가 쏠렸다는 둥 서로를 까는 것도 결국 비슷한 무리들의 몫이지. 결국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알아? 추녀를 부끄러워하고 공격하는 건 대부분 추남들이야. 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인 거지. 안 그래도 다들 시시하게 보는데 자신이 더욱 시시해진다 생각을 하는 거라구. 실은 그 누구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데 말이야. 보잘 것없는 여자일수록 가난한 남자를 무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야.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는데 더더욱 불안해 견딜 수 없기 때문이지. 보잘 것없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런 거야.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없는 거라구. 220쪽

 
   

요한이 그에게 던지는 이야기들,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마음 아프게 읽었던 그녀의 편지, 

   
 
 왜 균등한 조건이 주어진 듯, 가르치고 노력을 요구했냐는 것입니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것은 분명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한 부분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한 번도 스스로의 인생을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로지 스스로의 태생만을 평가받아온 인간입니다. 280쪽
 
   
   
  세상 모든 여자들과 달리 자신의 어두운 면만을 내보이며 돌고 있는 '달'입니다. 스스로를 돌려 밝은 면을 내보이고 싶어도... 돌지마, 돌면 더 이상해...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달인 것입니다. 감춰진 스스로의 뒷면에 어떤 교양과 노력을 쌓아둔다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달인 것입니다. 우주의 어둠에 묻힌 채 누구도 와주거나 발견하지 못할... 붙잡아주는 인력이 없는데도 그저 갈 곳이 없어 궤도를 돌고 있던 달이었습니다. 그곳은 춥고, 어두었습니다. 283쪽  
   
 
예쁜 사람이 대우를 받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예쁜 여자가 공부도 잘하고 못하는게 없네라고 말하는 것과 못생긴게 공부라도 했어야지는 정말 천지차이인 것이다. 
   
  요한의 말처럼 인간은 이상한 것이었고,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각자 자신의 어둠을 나고 사는 존재들이었다. 인간은 이상한 것이다. 인생은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더없이 이상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296쪽  
   
   
  자본주의는 언제나 영웅을 필요로 한다. 잘 좀 살아, 피리를 불 누군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스타를 내세운다. 좀 예뻐져 봐, 피리를 불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311쪽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끊임없이 경쟁해야만 한다. 경쟁하는 사회, 뭔가 그럴 듯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다. 끊임없이 이 사회의 쳇바퀴 속을 달려야만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의 그냥 여자 말이에요. 굳이 분류를 당한다 해도 저는 이제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독신의 동양인 여자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물론 속으로야 어떤 생각을 한다 해도 자신의 시각으로 남을 비하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인 사회란 거죠. 사회의 가치는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동등한 기회를 얻고, 그 대가를 바랄 수 있는... 그리고 노력할 수 있는... 그런 점에서 저는 이곳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375쪽

 
   

이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누군가를 비하할 수 없는 상식이 바로 선 사회. 바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그와 그녀의 해후이후 해피엔딩을 끝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이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바라는데 난데없이 '그와 그녀, 그리고 요한의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 맞아, 박민규, 역시, 당신은 정말 끊임없이 놀래키는군. 그게 바로 당신의 매력이라구. 요한이 써놓은 소설을 읽은 그녀, 그리고 그는 납골당에 있다. 세희라는 딸아이를 둔 살아있는 사람들은 결국 살아간다는 얘기로 마무리를 짓는 당신의 위트가 너무 좋아요. 그리고 마지막 '사랑해'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다시한번 들여다보게 만드네요. 사랑하며 살자구요. 

책과 함께 온 음반을 들으며 책을 읽었죠. 정말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리고 엽서,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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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9-04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가 엄청 많아서 수정했어요.^^
 

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카스테라>, <핑퐁>(물론 <핑퐁>은 좀 별로였다고 기억하지만). 그러고보니 <지구영웅전설>은 아직 못 보았구나. 아쉽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역시 본질은 바뀌지 않는구나. 작가의 그릇이 바뀌진 않았어. 

책을 집어 들며 책 표지를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다. 개옆에 서 있는 못생긴 여자를 밝게 처리한, 못생긴 여자의 이야기, 나도 언젠가 써보고 싶은 얘기가 있었는데, 아, 얘기를 이렇게 풀어가다니, 하고 싶은 얘기는 너무 많이 비슷했는데, 아, 아쉽다. 하지만 분명 너무나도 다른 못생긴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었다. 

내게도 못생긴 여자의 이야기가 있다. 물론 나의 이야기이다. 

고1때 써클활동으로 알게된 남학생이 있었다. 그냥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냈다. 가끔 전화 연락도 했고 필요할때는 만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남학생이 친구의 소개팅을 제안했고 남자 친구 만나고 싶어하던 한 친구를 소개했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소개를 시켜주었던 남학생과 친하게 된게 아니라 나와 친구처럼 지내던 아이와 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까진 그래도 괜찮았다. 별 사이도 아니었고 별 감정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남학생이 내 친구에게 한 말이 정말 충격이었다. 내 친구와 나를 비교하는 말이었는데 나는 참 못생겼었다는 얘기였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었고 사실 사춘기 한참 예민한 나이라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고2때 같은 동네 살던 선배가 같은 교회에 다니는 남자아이가 하도 미팅을 해달란다고 조른다며 친구들 네명을 구해달라고 했었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네명이었다. 나와 한 친구, 그리고 같은 동네 살던 1년후배 두명, 이렇게 넷이 소개팅을 하게 되었었다. 그때 난 그런 자리가 어색하기도 했거니와 외모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하기 싫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친한 언니의 부탁이라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서 나갔다. 여하튼 상대방 남자아이들 네명과 짝을 정했다. 그때 유행했던게 소지품 고르기였던 것 같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들 하나를 내놓고 남자들이 고르는 것이었는데 유독 잘생긴 남자 아이는 걸리지 않길 바랬다. 그런데 내가 내놓았던 손수건을 집어들었고 그날 하루를 그냥 저냥 보냈다. 다들 연락처를 주고 받았는지도 궁금하지 않았고 나에게는 연락처를 묻지 않기에 그럼 그렇지했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함께 미팅을 했던 후배중 예쁘게 생겼던 아이의 연락처를 내 짝이었던 아이가 원했다고 전해 들었다. 뭐 기분이 나빴는지 어땠는지는 지금은 정확하게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만 그런 일이 있었다. 

스무살, 첫사랑의 몸살을 앓았었다. 너무 쓰리고 아파서 여기서는 말할 수가 없지만 이때도 나는 참 못났다는 걸 알았다. 

스물셋, 운전면허시험을 보고 불합격 판정을 받고 털래털래 다시 접수하러 돌아가던 길에 만났던 한 남자, 내 인지까지 사서 붙이라고 내밀고 차 한잔 마시자고, 선하게 생겼고 벌써 여러차례 떨어져서 실망하던차라 간단히 차한잔 마시고 싶었다. 그 인연이 길게 갈 수 있었을지도 몰랐는데 나를 통해 알게된 친구에게 내가 너무 닭살이라는 표현을 했다는 걸 또다른 친구를 통해 들었을때 정말 이건 뭐지 싶었다. 난 한번도 남자로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분 지금은 내 친구 언니랑 결혼해서 살고 있다. 

가장 외모에 신경쓰이던 그때 내가 외모때문에 받았던 상처를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 보면 나는 참 밴댕이 속알딱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때부터 참 못났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기에 더 많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컸던 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어느때였는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내가 날 사랑하기 시작한 그 무렵부터 나는 조금씩 윤이나고 반짝반짝해졌다. 이십대초반의 짙은 화장 속에 가려진 얼굴이 아니라 나의 맨 얼굴을 당당하게 들고 다니던 그때. 이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과 상관없이 나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내 안은 계속해서 아름답게 커나가고 있다. 책들과 함께, 그리고 내 안의 나를 봐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사랑하는 그들이 아름답지 않다는 걸 내가 먼저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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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9-04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미슈퍼스타즈 정말 좋았는데 이것도 읽어봐야겠어요.

꿈꾸는섬 2009-09-04 22:18   좋아요 0 | URL
박민규 작가 작품은 모두 좋아요.^^ 앗, 지구영웅전설을 못봤어요.ㅎㅎ

순오기 2009-09-0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멋진 글인데 이제야 읽어보다닛!
여덟번째 추천은 저예요.^^

꿈꾸는섬 2009-09-05 00:33   좋아요 0 | URL
앗, 이런 그럼 아홉번째는 누구일까요?
전 부끄러워하면서 썼는데 역시 사람들은 솔직한 걸 좋아하는거죠? 아님 가슴 아픈 걸 좋아하는걸까요?

같은하늘 2009-09-0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는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런지...
아름다움이란 위선으로 겉포장만 깔끔하게 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

꿈꾸는섬 2009-09-05 00:40   좋아요 0 | URL
하지만 아름다운 건 정말 좋잖아요. 눈도 즐겁고 마음도 즐겁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