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무당벌레와 나밖에 없다
추위를 피해 이 방에 숨어들기는 마찬가지
방바닥을 하염없이 기어가다
무료한 듯 몸을 두집고 버둥거리다
펼쳐놓은 책갈피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갑자기 기억이라도 난 듯
뒤꽁무니에서 날깨를 꺼내 위이잉 ㅡ 털기도 한다
작은 전기톱날처럼
마음 어딘가를 베고 가는 날개 소리
겨울 햇살이 점박이등을 비추고
그 등을 바라보는 눈가를 비추면
내 속의 자벌레가
네 속의 무당벌레에게 말을 건넨다
조금은 벌레인 우리가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는 어떤 것일까
냄새를 피우거나
서로의 주위를 맴돌며 붕붕거리는 것?
함께 뒤집혀서 버둥거리는 것?
암술과 수술을 드나들며
꽃가루를 헛되이 일으키는 것?
구석진 창틀에서 말라가기 전까지
조금은 벌레인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온기는 어떤 것일까
노루꼬리처럼 짧은
겨울 햇살
한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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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이 있던 자리
어제까지 열려 있던 문이 닫혔다
바람에 소리를 내던 옥수수밭이 사라져버렸다
옥수수가 사라지면서
흔들림도, 허고도 함께 베어졌다
허공은 달빛을 안을 수 있는 팔을 잃었다
소리내어 울 수 있는 입술을 잃었다
갑옷과 투구 부딪치는 소리,
석탄을 지닌 산줄기가 먼저 폐허가 되듯이
열매는 실한 순서대로 베어져갔다
밑둥의 피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밭은 더 어두워질 것이고
성근 열매들은 여분의 삶을 익혀갈 것이다
피 흘리는 허공,
희고 붉고 검은 옥수수알,
수확한 옥수수를 자루에 넣는 손,
푸른 자루를 실은 트럭이 산모퉁이를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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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사과
어떤 영혼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붉은 절별에서 스며나온 듯한 그들과
목소리는 바람결 같았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흘러가는 구름과 풀을 뜯고 있는 말,
모든 그림자가 유난히 길고 선명한 저녁이었다
그들은 붉은 절벽으로 돌아가며
곁에 선 나무에서 야생사과를 따주었다
새가 쪼아먹은 자리마다
개미들이 오글거리며 단물을 빨고 있었다
나는 개미들을 훑어내고 한입 베어물었다
달고 시고 쓰디쓴 야생사과를
그들이 사라진 수평선,
내 등 뒤에 서 있는 내가 보였다
바람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그들이 건네준 야생사과를 베어물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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