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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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시간을 쪼개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오랜만에 만난 박민규, 그의 글이 갖고 있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야유와 조롱, 뭐 그런 시선이 좋았다. 그리고 이 책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도 만나게 되니 더없이 반갑다. 

그와 그녀, 요한. 그들의 아픈 상처를 들여다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 못생긴 엄마의 상처가 자신의 상처가 되었다. 배우의 길을 가는 아버지를 위해 헌신하며 살았는데 아버지는 잘나가는 배우가 되면서 처자식을 버렸다. 그렇게 엄마와 아들은 상처를 받았다. 

그녀, 못생긴 외모의 소유자.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모욕하고 상처준다. 그녀의 삶 자체가 모욕과 상처의 연속이었다. 

요한, 예쁜 여배우 엄마, 백화점 회장의 첩으로 숨어 지내다 어느날 자살을 선택한 엄마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산다. 

그런 그들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이야기는 실로 적나라하다. 

   
 

 세계라는 건 말이야, 결국 개인의 경험치야. 평생을 지하에서 근무한 인간에겐 지하가 곧 세계의 전부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산다는 게 이런 거라는 둥, 다들 이렇게 살잖아... 그 따위 소릴 해선 안 되는 거라구.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이야. 아무도 너처럼 살지 않고, 누구도 똑같이 살 수 없어. 그딴 소릴 지껄이는 순간부터 인생은 맛이 가는 거라구.164쪽

 
   
   
 

모두가 열망하는 파티에 집에서 입던 카디건을 걸치고 불쑥 갈 수 있는 인간은 진짜 부자거나, 모두가 존경하는 인간이거나 둘 중 하나야.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은 아예 가지 않아. 자신을 받쳐줄만한 옷이 없다면 말이야. 파티가 끝나고 누구는 옷이 좀 그랬다는 둥, 그 화장을 보고 토가 쏠렸다는 둥 서로를 까는 것도 결국 비슷한 무리들의 몫이지. 결국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알아? 추녀를 부끄러워하고 공격하는 건 대부분 추남들이야. 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인 거지. 안 그래도 다들 시시하게 보는데 자신이 더욱 시시해진다 생각을 하는 거라구. 실은 그 누구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데 말이야. 보잘 것없는 여자일수록 가난한 남자를 무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야.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는데 더더욱 불안해 견딜 수 없기 때문이지. 보잘 것없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런 거야.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없는 거라구. 220쪽

 
   

요한이 그에게 던지는 이야기들,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마음 아프게 읽었던 그녀의 편지, 

   
 
 왜 균등한 조건이 주어진 듯, 가르치고 노력을 요구했냐는 것입니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것은 분명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한 부분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한 번도 스스로의 인생을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로지 스스로의 태생만을 평가받아온 인간입니다. 280쪽
 
   
   
  세상 모든 여자들과 달리 자신의 어두운 면만을 내보이며 돌고 있는 '달'입니다. 스스로를 돌려 밝은 면을 내보이고 싶어도... 돌지마, 돌면 더 이상해...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달인 것입니다. 감춰진 스스로의 뒷면에 어떤 교양과 노력을 쌓아둔다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달인 것입니다. 우주의 어둠에 묻힌 채 누구도 와주거나 발견하지 못할... 붙잡아주는 인력이 없는데도 그저 갈 곳이 없어 궤도를 돌고 있던 달이었습니다. 그곳은 춥고, 어두었습니다. 283쪽  
   
 
예쁜 사람이 대우를 받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예쁜 여자가 공부도 잘하고 못하는게 없네라고 말하는 것과 못생긴게 공부라도 했어야지는 정말 천지차이인 것이다. 
   
  요한의 말처럼 인간은 이상한 것이었고,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각자 자신의 어둠을 나고 사는 존재들이었다. 인간은 이상한 것이다. 인생은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더없이 이상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296쪽  
   
   
  자본주의는 언제나 영웅을 필요로 한다. 잘 좀 살아, 피리를 불 누군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스타를 내세운다. 좀 예뻐져 봐, 피리를 불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311쪽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끊임없이 경쟁해야만 한다. 경쟁하는 사회, 뭔가 그럴 듯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다. 끊임없이 이 사회의 쳇바퀴 속을 달려야만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의 그냥 여자 말이에요. 굳이 분류를 당한다 해도 저는 이제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독신의 동양인 여자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물론 속으로야 어떤 생각을 한다 해도 자신의 시각으로 남을 비하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인 사회란 거죠. 사회의 가치는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동등한 기회를 얻고, 그 대가를 바랄 수 있는... 그리고 노력할 수 있는... 그런 점에서 저는 이곳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375쪽

 
   

이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누군가를 비하할 수 없는 상식이 바로 선 사회. 바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그와 그녀의 해후이후 해피엔딩을 끝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이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바라는데 난데없이 '그와 그녀, 그리고 요한의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 맞아, 박민규, 역시, 당신은 정말 끊임없이 놀래키는군. 그게 바로 당신의 매력이라구. 요한이 써놓은 소설을 읽은 그녀, 그리고 그는 납골당에 있다. 세희라는 딸아이를 둔 살아있는 사람들은 결국 살아간다는 얘기로 마무리를 짓는 당신의 위트가 너무 좋아요. 그리고 마지막 '사랑해'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다시한번 들여다보게 만드네요. 사랑하며 살자구요. 

책과 함께 온 음반을 들으며 책을 읽었죠. 정말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리고 엽서,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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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9-04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가 엄청 많아서 수정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