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카스테라>, <핑퐁>(물론 <핑퐁>은 좀 별로였다고 기억하지만). 그러고보니 <지구영웅전설>은 아직 못 보았구나. 아쉽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역시 본질은 바뀌지 않는구나. 작가의 그릇이 바뀌진 않았어.
책을 집어 들며 책 표지를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다. 개옆에 서 있는 못생긴 여자를 밝게 처리한, 못생긴 여자의 이야기, 나도 언젠가 써보고 싶은 얘기가 있었는데, 아, 얘기를 이렇게 풀어가다니, 하고 싶은 얘기는 너무 많이 비슷했는데, 아, 아쉽다. 하지만 분명 너무나도 다른 못생긴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었다.
내게도 못생긴 여자의 이야기가 있다. 물론 나의 이야기이다.
고1때 써클활동으로 알게된 남학생이 있었다. 그냥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냈다. 가끔 전화 연락도 했고 필요할때는 만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남학생이 친구의 소개팅을 제안했고 남자 친구 만나고 싶어하던 한 친구를 소개했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소개를 시켜주었던 남학생과 친하게 된게 아니라 나와 친구처럼 지내던 아이와 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까진 그래도 괜찮았다. 별 사이도 아니었고 별 감정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남학생이 내 친구에게 한 말이 정말 충격이었다. 내 친구와 나를 비교하는 말이었는데 나는 참 못생겼었다는 얘기였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었고 사실 사춘기 한참 예민한 나이라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고2때 같은 동네 살던 선배가 같은 교회에 다니는 남자아이가 하도 미팅을 해달란다고 조른다며 친구들 네명을 구해달라고 했었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네명이었다. 나와 한 친구, 그리고 같은 동네 살던 1년후배 두명, 이렇게 넷이 소개팅을 하게 되었었다. 그때 난 그런 자리가 어색하기도 했거니와 외모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하기 싫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친한 언니의 부탁이라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서 나갔다. 여하튼 상대방 남자아이들 네명과 짝을 정했다. 그때 유행했던게 소지품 고르기였던 것 같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들 하나를 내놓고 남자들이 고르는 것이었는데 유독 잘생긴 남자 아이는 걸리지 않길 바랬다. 그런데 내가 내놓았던 손수건을 집어들었고 그날 하루를 그냥 저냥 보냈다. 다들 연락처를 주고 받았는지도 궁금하지 않았고 나에게는 연락처를 묻지 않기에 그럼 그렇지했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함께 미팅을 했던 후배중 예쁘게 생겼던 아이의 연락처를 내 짝이었던 아이가 원했다고 전해 들었다. 뭐 기분이 나빴는지 어땠는지는 지금은 정확하게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만 그런 일이 있었다.
스무살, 첫사랑의 몸살을 앓았었다. 너무 쓰리고 아파서 여기서는 말할 수가 없지만 이때도 나는 참 못났다는 걸 알았다.
스물셋, 운전면허시험을 보고 불합격 판정을 받고 털래털래 다시 접수하러 돌아가던 길에 만났던 한 남자, 내 인지까지 사서 붙이라고 내밀고 차 한잔 마시자고, 선하게 생겼고 벌써 여러차례 떨어져서 실망하던차라 간단히 차한잔 마시고 싶었다. 그 인연이 길게 갈 수 있었을지도 몰랐는데 나를 통해 알게된 친구에게 내가 너무 닭살이라는 표현을 했다는 걸 또다른 친구를 통해 들었을때 정말 이건 뭐지 싶었다. 난 한번도 남자로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분 지금은 내 친구 언니랑 결혼해서 살고 있다.
가장 외모에 신경쓰이던 그때 내가 외모때문에 받았던 상처를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 보면 나는 참 밴댕이 속알딱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때부터 참 못났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기에 더 많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컸던 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어느때였는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내가 날 사랑하기 시작한 그 무렵부터 나는 조금씩 윤이나고 반짝반짝해졌다. 이십대초반의 짙은 화장 속에 가려진 얼굴이 아니라 나의 맨 얼굴을 당당하게 들고 다니던 그때. 이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과 상관없이 나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내 안은 계속해서 아름답게 커나가고 있다. 책들과 함께, 그리고 내 안의 나를 봐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사랑하는 그들이 아름답지 않다는 걸 내가 먼저 알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