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작은 언니와 서울극장에 가서 <글러브>를 보고 왔다. 8시에 상영된 영화는 10시25분쯤 끝이 났고 부랴부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서울의 밤공기를 마시고 온 탓인가. 주말내내 발열과 오한, 콧물,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머리가 아파서 내내 누워 있었는데 아들이와서 이마 한번 짚어보고는 열이 많이 난다며 물수건을 만들어와 이마에 덮어 주었다. 아프던 머리가 조금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침대에 누워 잠시 쉬었다가 밥 차려 주고 또 누워 있고, 밥 시간되면 또 일어나 차려주고 또 누워 있고, 그랬더니 허리가 다 아프고 더 이상 잠이 오질 않는다.
멀뚱멀뚱 누워 있다가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왔다.
요새 마음 쓸 일이 많아 기력이 쇠했졌던 것 같다.
올 해 예순 둘인 작은 엄마가 폐암이란 소식을 들었다. 작년부터 편찮았던 것은 알았는데 폐암이란 사실은 감추시고 씩씩하게 지내셨다. 그러더니 돌연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그제서야 폐암이었다고 말씀을 하신다. 아들만 둘인 작은 엄마가 폐암이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는 이유때문에 더 많이 가슴 아팠던 것 같다.
작은엄마는 아들을 둘을 낳았다. 큰애는 정말 잘생겼고, 자신의 일에 빠져 정신없이 살아간다. 결혼적령기가 한참 지났는데도 일하느라 결혼도 안하고 있다. 작은애는 아기때부터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뼈가 약해 매일 부러지고, 우리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팔이며 다리가 성한 날이 없었다. 제대로 된 정규 교육을 포기할 정도였다. 나중에 검정고시 패스하고 지방의 전문대학을 졸업했다. 장애인들에겐 이 사회가 호락호락하거나 만만하지 않다. 자신의 일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아도 일을 갖기가 쉽지 않았고, 심지어 보건소에서 잠깐 일했는데 왜소증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나보다. 작은 엄마는 작은 아이때문에라도 돈 버는데 집중했었다. 부모가 없는 세상에서 작은애가 어찌 견디며 살아갈까를 생각하면 돈이라도 많이 물려줘야 그 녀석 죽을때까지 고생 안하며 살거라는게 작은엄마네 생각이었던 것 같다. 결국 아들들에게도 폐암이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다 죽어가는 모습이 되어서야 폐암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병실 침대에 누워 온 몸이 퉁퉁 부어있는 작은 엄마의 모습은 솔직히 끔찍하다. 온 몸에 암세포가 전이되어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의사선생님 말씀, 더 이상 그 어떤 노력도 할 수가 없는 지경이란다. 내가 봐도 이번 달을 넘기실 수 있을까 싶다.
가만히 있어도 자꾸만 눈물이 난다. 20여년을 넘게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했던 작은 엄마의 삶을 알기에 더 많이 가슴이 아프다. 이제 좀 살만하다 싶은 순간에 암이란 녀석이 불쑥 찾아왔으니 말이다. 조금이라도 기력이 있을때 폐암이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자신의 병 치료를 위해 노력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내 생각은 안쓰럽고 안타깝고 그런 마음때문인데 언니들은 이런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만든다.
아, 그제, 박완서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담낭암 수술을 받았던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제 도저히 견디실 힘이 남아 있지 않으셨던가 보다. 문학계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박완서 선생님의 부고 소식에 또 많이 안타까웠다.
박완서 선생님, 부디 편안한 세상에서 영면하시길 바랍니다.ㅠ.ㅠ